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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11. 2023

첫 번째 항암

남편이 입원한 지 일주일 되던 날 장기간 항암을 받기 위한 캐모포트 시술을 받았다.

쇄골뼈 아래를 절개한 후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주머니를 피부 속에 삽입한 후 끝에 달린 관이 피부 속 쇄골뼈 위를 지나 정맥과 연결되었다.

항암제라는 것이 독성이 강해 피부에 닿게 되면 괴사 할 수 있고, 팔의 링거로 투약하게 되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부분 항암을 받는 환자들은 큰 혈관인 정맥과 바로 연결될 수 있는 포트 시술을 받는다.

항암제가 들어갈 때 두꺼운 바늘로 피부를 뚫고 포트에 연결하는 것이다.

겉에서 보면 코인물티슈 같은 것이 쇄골뼈 아래에 볼록 튀어나와 있다.

“당신은 뼈 미남이야.”

나는 남편의 일자로 뻗은 도드라진 쇄골뼈를 좋아했었다. 

이성에 대한 매력과 취향은 암 앞에서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아침 8시 반 권교수님은 침대 하단에 접혀 있는 책상을 꺼내 펼친 후 서류를 올렸다.

“오늘 항암을 시작하기 전 항암 동의서에 사인을 하셔야 하는데요, 음… 이 항목 항암의 목적은 완치가 아니라 통증 완화와 생명연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계시죠?”

우리는 4% 완치율을 목표로 했지만, 공식적으로 우리의 의지는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

그 뒤로 어떤 항암제를 사용해서 치료할 것인지,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는지 길게 설명이 이어졌다.

항암제는 독극물로 암세포를 억제하고 괴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약물이다.

하지만, 문제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몸속에서 빠르게 분열하는 정상세포도 공격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머리카락, 구강 점막세포, 위의 내벽, 장의 내벽이 가장 먼저 공격당하고 항암이 장기화될수록 독성은 모든 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독극물을 해독하는 간과 신장, 소뇌, 안구, 심장 등 항암제의 독성으로 인해 합병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횟수가 늘어날수록 독성이 누적되어 간이나 콩팥이 안 좋아져 더 이상 항암제를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망가진 장기는 항암을 그만둔다고 해서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항암을 하는 과정에서 신부전증으로 투석을 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고, 시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장기가 다 망가지기 전 암세포가 사라지는 것이다.

성공한 자산가도 아니고,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고, 강남에 아파트를 사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희망은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항암제가 주사 한  두대만 맞으면 끝나는 것인 줄 알았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12시 항암제 투약 전 알레르기 방지 주사와 울렁임 방지제 주사를 맞은 후 30분 동안 면역항암제를 맞는다.

알레르기 방지 알약을 또 먹고, 2시간 동안 세포독성항암제 옥살리플라틴을 맞고, 그 후 22시간 맞아야 하는 5-FU를 2개 맞으면 항암 1회가 끝나는 것이다.

사이사이 여러 가지 수액이 추가되었고, 총 걸리는 시간은 약 48시간 2박 3일이 걸렸다.

첫 번째 항암제인 면역항암제를 다 맞았을 때다.

‘설상호 환자분, 어디 불편한 곳은 없나요?”

회진 시간도 아닌데 권교수님이었다.

“네, 아직까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항암제 옥살리플라틴을 2시간 맞고 나자마자,

“설상호 환자분, 어떠세요?”

“식은땀 같은 게 좀 나는 것 같기는 한데, 괜찮은 것 같은데요?”

“다행히 특별한 부작용은 없는 것 같네요.”

22시간 걸리는 마지막 5-FU 항암제로 교체하자 항암이 생각보다 부작용이 없는 것 같아 안심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지도 못한 채.


이제 미루어왔던 숙제를 할 시간이다. 

어제 외래 때 항문외과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저, 치질에 좌욕이 좋다던데, 정말 도움이 되나요?”

“부기를 빼주는데 효과가 있어요. 하시면 좋습니다.”

항문외과 선생님에게 진료는 받았지만, 부풀어 오른 치핵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변기 커버를 열고, 유연한 재질의 좌욕기를 얹은 후, 따뜻한 물을 채웠다.

“상호씨 이제 앉아도 돼.”

다리힘이 없는 남편이 양쪽 안전바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앉았다.

따뜻한 물이 엉덩이에서 흘러넘쳐 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으, 이게 뭐야. 제대로 하는 거 맞아?”

“맞아. 내가 출산하고 좌욕해봐서 아는데 첨엔 좀 기분이 이상해. 차츰 나아지니까 조금만 더 있어보자.”

“그런데, 너무 아파.”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변기에서 일어나는 남편의 다리가 안전바를 잡고 있음에도 부들부들 떨렸다.

좌욕한 것 만으로 남편의 체력은 방전되고 말았다.

겨우 남편을 부축해서 침대에 눕혔다.

그대로 잠이 든 남편은 새벽부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침밥은 겨우 국에 말아 반정도 먹었고, 점심은 입에도 대지 못했다.

문제는 관장 한 이후 계속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상태라는 것이다.

“나 이번엔 정말 가야 할 것 같아.”

“기저귀 차고 누운 상태로 보자.”

“안돼, 수술 상처 부위에 묻으면 어떻게 해.”

“당신, 지금 체력으로는 화장실 가는 건 무리야.”

“아니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말할 힘없으니까 제발 내 뜻대로 해 줘.”

남편은 워커에 몸을 얹어 천천히 기어가듯 걸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내가 그 뒤를 따랐다.

병동문과 장애인 화장실 사이 순식간에 남편의 다리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팔랑거리더니 풀썩 주저앉으려고 했다.

남편은 풀린 다리가 완전히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팔 힘으로 워커에 매달렸다.

나는 머릿속이 흰 물감을 떨어뜨린 듯 아무것도 못하고 허둥거리다가 무언가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도와주세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막 병동에서 나오던 파란 옷을 입은 의사분이 남편이 차고 있는 교정기에 손을 넣어 남편을 번쩍 들어 워커 위에 매달릴 수 있도록 했다. 남편을 놓지 않은 상태로,

“얼른 병동 간호사에게 도움 요청하고, 휠체어 가져오세요.”

잠시 후 나는 병동 간호사와 함께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조심스럽게 젖은 봉제인형처럼 축 쳐진 남편을 휠체어에 앉힌 후 침대로 갔다.

문제는 키가 큰 남편을 어떻게 침대 위로 안전하게 올릴 것이냐였다.

다들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중년의 사우님이 남편 침대 위로 올라갔다.

사우님이 남편의 겨드랑이를 잡고 나와 간호사 한 분이 엉덩이를 잡고 한 번에 올렸다.

노련한 사우님 덕분에 남편을 안전하게 눕힐 수 있었다.

“진아, 너무 추워”

남편은 종이처럼 하얀 얼굴에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곧 주치의 최선생님이 오셨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아 빈혈이 온 것 같네요. 안 그래도 혈장과 혈액 4팩 처방해 놓은 상태입니다. 수혈받으면서 상태를 좀 보시죠. 그리고, 기운이 많이 없는 것 같으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뼈 전이라서 골절 위험이 크다는 것 아시죠?”

남편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핏기가 전혀 없는 얼굴로 식은땀을 쉼 없이 흘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을 자는지 의식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어 밤새 코에 손가락을 대봤다. 

나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을 수도 마실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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