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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14. 2023

암 환자를 살리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내시경실 문이 열리고, 사우님이 회복실에서 남편 침대를 끌고 나왔다. 

남편은 수면마취에서 깨어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여전히 먼 곳을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병실로 올라왔다.


그날 담당 교수님의 회진시간.

“내시경 결과 다행히 출혈은 멈춘 것 같아요. 특별한 조치 없이 끝났습니다.”

남편의 몸은 이런 상황에도 최선을 다해 출혈부위를 지혈하고 새로운 위장 내벽을 만들어냈다.

위암 4기가 되면 스스로 새로운 세포를 왕성하게 생성하고, 치유하는 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의 세포들은 조금씩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고 있었다.

세포가 참 기특했다.


“윙~”

“네, 여보세요. 아, 1층 로비에 도착하셨나요? 지금 내려 갈게요.”

1층 로비에 도착해서 전화를 걸었다. 

50미터 전방 기둥 앞에 키도, 덩치도 큰 까무잡잡한 피부의 젊은이가 서 있었다.

서서히 다가가서,

“안녕하세요. A 씨죠? 평소 남편 통해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상상했던 것보다 건장 하시네요. 남편 통해 들었을 때 좀 말랐을 거라 상상 됐거든요. 여기 차 많이 막히죠?”

“안녕하세요, 형수님. 저 저번에 한번 뵌 적 있어요. 회식 후 설차장님 취하셔서 집으로 모셔다 드렸을 때요.”

“아! 그날 같이 계셨던 분이셨어요? 어머! 제가 기억력이 나빠서.”

그날도 남편은 떡이 되어 들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남편은 술에 취하면 그냥 집에 들어오면 될 텐데,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꼭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밖으로 나가니 덩치 큰 사람이 비틀거리는 남편을 부축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형수님! 죄송합니다! 설 차장님이 속상한 일이 있으셔서요, 좀 많이 마시신 것 같아요.”

“설상호씨 말릴 사람이 있나요, 괜찮아요.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부터 제가 데리고 들어갈게요.”

나는 엄살을 부리는 남편 뒷덜미를 잡고,

“약한 척하지 말고 따라와.”

남편은 꼿꼿하게 걸어가며,

“넵! 선장님!

이라고 대답하더니 다시 나에게 기댔다.

“아, 그날! 민망하네요.”

“설 차장님 몸은 좀 어떠세요?”

“항암 1차 시작해서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긴 하지만 잘 견뎌내고 있어요.”

“… 아무래도 제가 너무 힘들게 해서 더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에이 무슨 소리예요, 그게.”

“사실 제가 1년간 육아휴직을 썼었거든요. 아무래도 제 몫까지 일하시느라 몸이 이렇게 된 것 같아요.”

A 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과로가 어느 정도 원인이라 해도 그건 회사 조직의 문제지 개인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도 몇 해 전 사랑하는 누나를 갑작스럽게 잃었어요. 그래서 형수님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아요.”


3년 전 예고 없이 팬데믹이 터지고, 남편은 중국 출장 중 겨우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나 오늘 마음이 너무 그래, 우리 딱 한 잔만 하자. 부탁이야.”

그날도 남편과 함께 단골 김치찌개집에서 김치찌개와 막걸리를 주문했다.

“A가 지금 인도에 있는데, 누나가 갑자기 하늘나라에 갔대.”

“말도 안 돼. 젊은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하늘나라에 가? 자동차 사고가 있었던 거야?”

“아니, 패혈증. 아마 해산물을 먹고 그렇게 됐다나 봐. 증세가 나타나고 며칠 만에 그렇게 됐대. 그래서 A가 귀국할 비행기를 구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은 것 같아. A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

“아니, 교과서에서 보긴 했지만, 요즘같이 의학이 발달한 세상에 그게 말이 돼?”

“그러게. 말이 안 되지. 기저질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는 A 씨를 바라보며

“예전에 남편 통해 들었어요. 제가 A 씨 마음을 어떻게 가늠이나 하겠어요.”

“그래도, 설 차장님은 잘 이겨내실 거예요.”

“그럼요. 제가 옆에서 많이 도울게요. 꼭 건강해질 거예요.”

“형수님이 옆에 있으니 꼭 그렇게 될 거예요. 지난주 설 차장님을 위한 모금과 바자회가 있었어요. 얼마 안 되지만 동료들의 마음입니다.”

내민 봉투 안엔 쾌차를 비는 메시지와 현금이 들어있었다.

“동료분들의 따뜻한 마음 너무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잘 전달하겠습니다.”


남편은 입원 한 이후로 모든 사람의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감정이 복받쳐 너무 고통스러워했고 모든 전화는 내가 대신 받고 있다.

병원에 입원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지금은 퇴직한 전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재수씨, 지금 상호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상황엔 도움을 마다하지 마세요. 저도 간암으로 누나한테 간이식받아봐서 알아요. 몇 달씩 입원하면 1주일에 한 번은 병원비 중간정산을 하는데 몇 백씩 날아가잖아요. 아무리 실비보험이 있다 해도 퇴원이 된 후 지급이 되니 당장 돈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

맞는 말이었다. 입원 한 이후 주당 평균 4~5백만 원씩 결제하고 있었다. 카드 값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숫자가 누적되어 갔다.

내 계좌를 알려줬고, 입금된 금액이 10만 원, 20만 원이 아니었다.

몇 백만 원 단위의 금액이 여러 사람 이름으로 입금이 됐다.

아무리 친한 회사 동료라 하더라도 50만 원을 넘기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금액으로 사람의 마음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날 정도의 금액을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보낸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가능한 것일까?


남편은 적당히를 몰랐다.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남편은 굳이 나를 데려가서는 홀로 세워둔 채 전화를 붙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 혼주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

결혼식에 오는 직장 동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위치를 파악하고, 주차 방법을 설명하느라 바빴고 그 길로 마중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항상 남편의 입사동료가 나를 챙겼다.

그날도 계속 통화 중인 남편을 뒤고 하고 입사동료와 식사를 하기 위해 피로연장으로 내려갔다.

한 술 뜨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 테이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남편이 웃으며 식사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맛있니?”

“어, 여기 음식 맛있어. 어떻게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선언했다. 다시는 당신 회사의 그 어떤 공식 행사에도 가지 않겠다고.

그뿐 아니라, 남편은 모든 부서의 회식에 참석했고,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모든 사람을 귀가시킨 후 새벽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설상호 씨, 요즘 세상에 당신처럼 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지금이 1980년도도 아니고”

“당신이 사회생활을 몰라서 그래.”

“미안하지만 나도 회사 다니는 거 기억하지? 정말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나는 남편이 사회생활 하는 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날 정도의 성실성과 그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아직도 모르겠다.

남편의 전 팀장님은 후원금을 모아 전달하고, 상호 씨와 연락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중간 연락책이 되어 상호 씨가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또한, 남편의 친한 회사 동생 J는 우리를 대신해서 상호 씨가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알아보고, 빅 5 병원에 연락하는 역할을 했다.

큰 형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리스트를 작성해서 편의용품, 간식 등을 일요일마다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마치, 구호물품을 싣고 주위를 맴도는 헬리콥터와 같았다.

가족들은 계좌를 만들어 매월 일정 금액을 모았고, 우리 회사 대표님, 동료들, 친구들의 많은 위로와 격려가 있었다. 

이런 큰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가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인지 느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선한 마음속에서 암이라는 거대한 괴물과 싸워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암 환자를 살리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며칠 후 남편을 병원에 남겨두고 병원 앞 택시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보죠? 보통 병원에서 택시 타시는 분은 표정이 어두운데, 손님은 너무 밝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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