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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19. 2023

암과의 싸움은 마치 한 민족이 내전을 하는 것과 같다

“상호씨, 우리가 책이나 유튜브에서 배운 암에 관한 내용은 머릿속에서 다 지우자. 일단 체중을 되돌리는 것 만 생각하자. 지금 당신 몸 상태에서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이 있어?”

“글쎄… 과자. 버터와플이나 다이제 같은 거?”

“두 과자는 입 속에서는 바삭하지만, 씹으면 죽처럼 변하니까 가능할 것도 같아. 그렇다면 편의점으로 레츠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 편의점에 도착했다.

“상호씨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먹을 수 있는 것 다 골라.”

남편은 오렌지색 워커를 밀며 즉석식품 코너 앞에 섰다.

“참치마요 삼각감밥? 아니야, 밥은 삼키기 어려울 것 같아. 샌드위치? 음… 채소와 빵은 너무 덩어리가 커.”

과자 코너에 서서,

“이 과자는 입 안이 너무 거칠 것 같고, 잘 모르겠어.”

“상호씨, 내 생각엔 짠맛은 식도가 아플 것 같아. 달콤하고 부드러운 제품 위주로 보자.”

한 참을 엄격하게 과자를 고른 후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서니 봉투 안에 과자가 가득했다.

“얼마만의 과자인지 모르겠어. 나 지금 당장 먹고 싶어.”

남편은 평소 달콤한 과자를 좋아했다. 구운 과자를 앉은자리에서 3통씩 먹어 치우곤 했었다.

우리는 지하 1층 에스컬레이터 뒤편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다.

“이 중 가장 칼로리 높은 게 뭐지?”

“다이제.”

“좋았어. 기다려봐.”

과자 끝에 매달린 붉은 테이프를 당겨 표면을 따라 둥글게 당기자 패키지가 나선형으로 벗겨지면서 다양한 색상의 입자로 된 구운 과자가 나타났다.

쿠키 하나를 네 조각으로 잘라 남편에게 건넸다.

“그나마 통밀이니까 괜찮겠지? 칼로리도 높으니까 마음에 들어. 꼭꼭 씹어서 반죽형태로 만들어야 해. 알았지?”

쿠키를 받아 든 남편은 야금야금 베어문 후 오랜 시간 입 안에서 씹어 삼켰다.

“진짜 진짜 맛있어! 우와! 과자가 원래 이렇게 맛있었나?”

남편은 과자 패키지 든 손을 들었다 과자를 쥔 손들 들었다 신기한 듯 시선이 왔다 갔다 했다.



남편은 워커에 기댄 채 과자 4 조각이나 먹었다.

“나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병실로 올라와 본격적인 과자파티를 시작했다.

감자를 구운 것, 깨가 박힌 달콤한 쿠키, 버터가 가득 들어간 쿠키까지 한 팩 씩 먹어치우고 나서 남편의 과자 먹방이 끝났다.

한 번 탄력 받은 식욕은 점점 다양한 음식에 대한 욕구로 번져갔다.

음식에 대한 제약을 없애자 남편의 메뉴선택은 과감 해졌다.

병원에서 나온 저녁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이번엔 빵집 탐방에 나섰다.

남편은 으깬 계란을 잘게 썰은 채소와 함께 마요네즈로 버무린 후 부드러운 식빵 사이에 넣은 계란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그 걸로 모자라 버터과자 한 봉지를 또 먹어치웠다.


‘어제까지 목으로 삼키기 힘들다고 울먹였던 사람이 맞나.’

좋아하는 음식은 예외인가 보다.

그게 어떤 음식이 됐건 몸무게를 올릴 수 있다면 다 상관없다.

이제 곧 있을 항암을 버티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몸무게니까.

몇 달 전까지 74kg였던 몸무게는 순식간에 62kg이 되었다.

체중이 떨어지는 속도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고, 어떻게든 체중을 유지해 보려 노력했지만 너무 어렵다.

조금만 먹어도 더부룩해 잘 먹지 못하고, 위는 소화를 잘 시키지 못했다.

몸 안의 암세포는 탄수화물, 지방, 근육 상관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정상세포를 먹어치웠다.

승기를 잡은 암세포는 숙주가 굶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계획인 것 같다.

암이라는 세포는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바이러스나 세균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몸에서 스스로 만들어지고 게걸스럽게 정상세포를 먹어치워 버린다.

마치 같은 민족끼리 사상을 두고 싸우는 내전처럼 적군을 쉽게 구분해서 사멸시키기도 어렵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항암제라는 무분별한 폭격을 맞아가며 마지막까지 병력을 공급하는 쪽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싸움인 것 같다.

처음 암과 싸우기로 마음먹었을 땐, 암세포의 먹이가 되는 보급품인 당분을 차단하고, 정상세포에 도움이 되는 채소와 현미,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면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암의 공격은 거셌으며 항암이라는 아군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암과의 싸움 방법을 자연치유가 아닌 항암으로 잡은 이상 튀긴 음식이 아니라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전부 섭취해서 몸무게를 늘려야 한다.

빼앗긴 영토를 다시 되찾는 것은 몇 배나 더 어렵다. 더 이상 체중과의 싸움에서 밀려날 수는 없다.


항암 2회 차 첫째 날.

우리의 노력에도 불과하고 상호씨의 몸무게는 61kg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골반, 특히 치골이 손으로 살짝만 눌러도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지난번에 보여 드린 PET-CT 영상에서 오른쪽 골반에 암세포가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암세포 증식 속도가 빨라진 것 같네요. 방사선 후유증으로 인한 식도염으로 힘드신 것 알지만, 종양 표지자 수치도 조금씩 다시 올라가는 추세로 보아 두 번째 항암을 미룰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선생님, 며칠 전부터 고칼륨 혈증 약이 추가 됐던데, 혹시 칼륨이 많이 들어간 채소를 섭취해서 일까요?”

“정상인이 칼륨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칼륨수치가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혈중 칼륨농도가 올라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명확히 말씀드릴 순 없을 것 같네요.”

암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렵지만,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지난번엔 1회 차 항암에서는 허리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포독성 항암제’인 ‘옥살리플라틴’의 양을 줄여서 했었는데요, 이번 회차에는 정량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머릿속에 지난 항암 3일 차에 나타났던 후유증이 떠올랐다.

‘지난번처럼, 혹은 더 심한 합병증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 만약 위장의 출혈이 잘 멈추지 않으면 어쩌지?’

하루종일 불길한 생각이 떠올라 표정이 안 좋았나 보다.


“당신아,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하루종일 표정이 너무 안 좋은데?”

“어? 아무 일도 아니야. 좀 생각할 게 있어서. 컨디션은 어때? 속이 울렁대거나 아픈 곳은 없어?”

“응. 생각보다 이번 항암은 괜찮은 것 같은데? 몸이 적응했나?”

남편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장난기 가득한 당나귀처럼 웃었다.

“나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아. 푸드코트 도전해 보자.”

“상호씨가 먹을만한 것이 있을까?”


지하 1층 푸드코트는 이 병원에 온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지나치기만 했을 뿐 앉아서 식사할 생각을 못했다.

내가 앞장을 서고, 오렌지색 워커를 끌고 남편이 내 뒤를 따랐다.

한적한 위치의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스캔했다.

“상호씨, 난 열무김치 먹을래. 당신은… 부드럽고, 칼로리 높고, 안 매운 음식이 뭐가 있나… 만두곰탕 어때?”

“딱 좋다. 거기에 공깃밥 하나 추가해 줘.”

우드 테이블에 우드 의자, 환한 조명 아래 많은 음식점이 활기차게 돌아간다.

남편이 아프기 전 주말마다 갔던 대형마트 푸드코트에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식판이 아니라 트레이에 담긴 정갈한 음식과 반찬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남편은 만두곰탕에 밥도 몇 숟갈 말아먹고, 내 열무국수도 작은 그릇에 덜어 먹었다.

항암이 위에 있는 암세포를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있는 중인 것일까.

이번 항암은 아무 일 없이 부디 이렇게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항암이 쉽게 지나갈 리가 없었다.

방사선으로 인한 식도염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와중에 항암을 시작하자 이번엔 항암제가 식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식도의 염증은 그전보다 더욱 심해져 다시 물조차 삼키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겨우 달래서 저녁을 먹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옥씨의 얼굴이 창백해 졌다.

손을 만져보니 얼음처럼 차가웠다.



댓글을 보며 단어, 표현 하나하나 고심해서 쓰신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힘내서 글을 써 보겠습니다.

항상 부족한 글 라이킷, 댓글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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