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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26. 2023

상호씨가 내일까지 견딜 수 있을까

‘상호씨가 내일까지 견딜 수 있을까? 내일이라고 해서  병실이 나오긴 하는 걸까?’

고민하는 사이 상호씨의 얼굴은 눈에 띄게 쇠약해져 갔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나는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하고 계속 집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어제 외래 암센터 대기실에 있던 수많은 환자들이 입원 대기 중인 것일까.’

방사능 후유증으로 심해진 식도염으로 인해 밥도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한 지 열흘이 다 되어간다.

오후 5시,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어제 찍어뒀던 129 구급차의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재빠르게 뒷좌석에서 뛰어내렸다.

자동차 유리에 반사된 햇살에 눈이 부셔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고, 하얀색 바닥재가 햇빛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반짝였다.

응급요원이 남편이 누워있는 이동식 배드를 차에서 내리는 동안 나는 재빠르게 응급실 입구로 들어가 접수를 마쳤다. 지난 병원 응급실에서의 악몽이 떠올라 불안했지만 다행히 바로 배드를 배정받아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자동문 버튼을 누르고 통로를 지나 다시 통유리 문으로 된 병실로 들어가자 병상 4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벽도 병상을 구분하는 커튼도 모두 새것처럼 깨끗하고 완벽한 흰색이었다.

하얀색 응급실 배드에는 파란색 일회용 시트가 깔려 있었는데, 가운데 부분은 도톰한 부직포 재질, 바깥쪽은 튼튼한 플라스틱 소재로 양쪽에서 잡아당기기 쉬운 손잡이가 달려있었다.

소모품 하나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남편이 침대에 눕자 간호사가 혈관을 신속하게 잡아 채혈을 했고, 6개의 유리관에 채혈된 피를 나눠 담았다.

수액을 연결한 후 바퀴 달린 링거대 대신 천정에 걸린 고리에 수액을 걸었다. 모든 것이 의료진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상호씨, 이번엔 대기 없이 무사히 잘 들어왔다, 그렇지?”

“정말. 사실 너무 불안했는데 이제 마음이 놓여. 당신아 혹시 내 베개 챙겼어?”

“짜자잔~ 당연하지.”

하얀색 부직포 이불 가방에서 서울에서 급하게 구매했던 베개를 꺼냈다.

그 위에 설이의 매쉬 베개를 얹은 후 남편의 목을 천천히 들어 올려 생겨난 공간 틈으로 밀어 넣었다.

“당신아, 너무 완벽해. 나 병원에 온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편해. 이제 살 것 같아.”

헝클어진 남편의 앞머리를 쓸어 올리자 하얀 이마가 드러났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피수치 결과 헤모글로빈 수치가 6.5이고, 혈소판과 적혈구 수치도 많이 떨어져서 혈장 2팩과 혈액 2팩을 수혈할 거예요. 차트를 보니 다른 병원에서 위암 진단받고 어제 저희 병원 혈액종양내과 외래를 보셨더군요.”

“네, 어제 외래 왔었고, 원래 오늘 입원하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는데 입원실이 없어서 입원을 못했어요. 지난주에 항암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혈액수치가 낮아진 걸까요?”

“아마 그랬을 확률이 크죠. 일단 수혈 진행하고 위에 병실이 준비되면 올라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방사선 후유증으로 인한 식도염 때문에 잘 먹지 못했어요.”

“그럼, TPN 영양제 추가로 처방해 드릴게요. 뼈전이라고 되어있는데, 통증은 어떠세요?”

“온몸의 뼈를 손으로 꽉 쥐고 있는 것처럼 아픕니다.”

“모르핀도 추가로 처방하겠습니다. 일단 경과를 좀 보는 것으로 하죠.”

모든 것이 막힘없이 착착 진행됐다.


서울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떨어진 혈액 수치를 혈장, 혈액, 철분주사로 혈액 수치를 끌어올린 후 퇴원 했지만, 골수기능이 저하된 상태로는 그 수치를 유지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처음 항암하고 셋째 날 복도 화장실 앞에서 쓰러졌었잖아? 그때와 몸 상태가 비슷한 것 같아.”

“그때 헤모글로빈 수치가 5.6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 응급실 빨리 오길 너무 잘했다.”

잠시 후 남편은 모르핀을 맞고 잠이 들었다.

통유리 너머 응급실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반듯한 정사각형 구조로 바깥쪽을 따라 통유리 자동문으로 된  4인실, 2인실, 격리실이 있었고, 환자의 상태에 맞게 구분되어 있었다. 그 앞 복도는 침대가 드나들기에 충분했고, 중앙 정사각 구역에는  병실의 담당간호사 자리가, 다시 그 안 사각형에는 담당의 자리가 있었다.

벽도 천정도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하얀색에, 조명도 깔끔하게 매립되어 있었다.

‘이 병원이 원래 이렇게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었나?’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례 본인 지역의 새로 짓는 아파트의 분양가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던가, 서울 빅 5 병원과 비교하며 병원에 대한 불만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런 얘기만 듣고 조금은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 다음날이 되었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새벽 4시 30분 병실이 준비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편 침대를 끄는 중년 남자분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본관과 연결된 통로를 지나갔다.

본관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12층으로 올라오자 통창으로 안산 시내가 한눈에 펼쳐졌다.

병원은 관공서가 모여있는 평지에 13층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높지 않은 관공서 건물들 사이로 신도시답게 쭉 뻗은 도로가 있었고, 넓은 공원이 큰 도로를 따라 끊임없이 펼쳐졌다.

통유리로 된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 후 오른쪽 응급병동 방향으로 침대를 틀었다.

환한 23 병동 간호스테이션을 지나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깜깜하게 불이 꺼져 있었다.

왼쪽 창가 자리에 남편을 눕히고, 보호자용 접이식 침대에 앉았다.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같은 병실 환자분들이 깨지 않도록 천천히 검은 봉투에서 빵을 꺼낸 후 손 끝으로 비닐을 잡아당겼다.

창가에 서서 반짝이는 야경을 보며 측면에 노란색 선이 둘러 있는 정사각형의 치즈맛 빵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 기절한 듯 잠이 들어 버렸다.



한 시간 후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 병원도 어김없이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5시 반 담당 간호사가 체중 및 혈압, 체온을 재고 가자 잠시 후 청소 아주머니가 바닥을 청소했고,

그다음엔 아침식사를 배달하는 카트 소리가 이어졌다.

남편은 아침식사로 나온 흰 죽을 반도 먹지 못한 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우리 병원 구경 가자.”

남편 몸에 보조기를 채우고, 목 보호대를 착용시킨 후 영양제가 연결된 링거대를 끌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투명한 문을 열고 병동을 나서자 맞은편 복도 끝에 121 병동 출입문이 보이고, 그 사이에 면회실과 탕비실이 있었다.

우리는 면회실로 들어갔다.

출입구와 같은 벽면 위에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었고, 나머지 3면에 의자가 넉넉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출입문 맞은편 창은 통장으로 초록색 넓은 공원이 유리 벽 가득 펼쳐졌다.

그 공원 중앙에 있는 돔 형태의 스타디움 건물에 시선이 멈췄다. 


“상호 씨, 저 건물 생각 나?”

7년 전 설이의 돌잔치가 있던 해 저 건물의 지하 1층에 프리미엄 뷔페가 오픈했었다.

차량을 이용해서 올 동료들과 가족들을 위해 넓은 주차장이 있고, 주말 귀한 시간을 내서 참석해 주시는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특히 음식의 질에 신경을 썼다.

설이의 돌잔치 날 예약했던 룸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고, 홀에 있는 일반 테이블을 부랴부랴 추가로 예약했었다.

남편과 나, 설이는 민트색과 하얀색 레이스가 적절히 섞인 개량한복을 맞춰 입었고, 우리 딸은 행사 내내 울지 않았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편이 매일 출근하던 공단으로 연결된 도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벌써부터 도로에는 출근하려는 차량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마 상호 씨도 저 도로에 서 있었으리라.


늦은 밤 예약된 MRI를 찍기 위해 2층으로 내려갔다.

외래 진료시간이 끝나고 텅 빈 병원 복도를 걸어가자 슬리퍼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촬영 시간은 1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남편이 허리가 아파서 한 자세로 오래 있기 힘들 수도 있어요.”

“안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불편하시면 손을 드시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남편이 MRI실로 들어가고 나는 문 앞 대기실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간 지 10분쯤 지났을까?

MRI실 문이 열리고, 누워있는 남편을 촬영기사님이 부축해서 일으키고 있었다.

남편은 비틀대며 임시로 마련된 침대 위에 누웠다.



진심으로 저희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긍정적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삭바삭한 햇살이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이네요.

가족, 연인 혹은 혼자도 좋으니 오늘을 마음껏 누려보세요.


댓글, 라이킷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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