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Nov 26. 2023

우리 밥은 먹고 갈까?

‘끼익-탁! 슥. 끼익-탁! 슥.’

새벽 3시 잠결에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

‘아직이구나.’

다시 잠이 들었다 알람소리에 일어났다.

새벽 6시 거실로 나오자 암막 커튼 때문에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어둡다. 

최대한 커튼레일 소리가 나지 않도록 커튼 천을 위아래로 잡고 커튼을 열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어두웠다. 어느새 계절은 겨울에 접어들었다.

까치발을 하고 남편 방 앞으로 가서 섰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잡이를 잡아 몸 쪽으로 끌어당기며 돌렸다.

남편이 벽을 보고 모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검은 목티를 입은 남편의 등은 갈비뼈 결대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역순으로 문을 닫고 거실에 있는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목이 말랐지만 정수기 소리에 남편이 깰까 참기로 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이 또한 참기로 했다.


8시 희미하게 앓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남편 방의 문을 열었다.

“일어났어?”

“진아야, 나 좀 일으켜줘, 못 일어나겠어.”

신속하게 한 손으로 남편의 어깨에 손을 집어넣고, 한 손으로 목을 받쳐 일으켰다.

“당신 허리 다치지 않게 조심해요.”

“난 다 계획이 있지. 무게 중심을 재빠르게 무릎으로 이동시켜서 들어 올렸어. 허리엔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라고. 내가 이때 써먹으려고 1년 전에 미리 PT를 받아뒀나 봐.”

“당신아, 정말 미안해. 그런데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그런 날이 있을 수 있지.”

남편은 또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마엔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남편의 뼈통증은 점점 심해져 한시도 남편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하루종일 마치 거인이 온몸의 뼈를 꽉 쥐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와 별개로 세 시간에 한 번씩 혹은 그 보다 더 자주 칼로 뼈를 긁어내는 듯한 돌발 통증이 왔고 정신을 잃을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 돌발 통증이 올 때마다 30분 이상 지속됐다.

“몸아 제발 부탁해, 한 번만 기회를 줘. 내가 정말 너한테 잘할게. 미안해. 아버지, 할아버지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

돌발 통증이 올 때면 쉼 없이 손으로 몸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했다.

모르핀의 100배가 달하는 펜타닐 패치도, 다른 마약성 경구약도 소용이 없었다.

돌발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다리를 끌며 자신에게, 먼저 떠난 부모님께 기도를 했다.

그 기도는 밤낮없이 계속됐다.

“진아야, 미안해.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입원해서 모르핀이라도 맞아야 할 것 같아.”

“당신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자. 난 언제든지 갈 준비가 됐어.”

“그리고, 항암도 다시 시작할까 봐. 항암 부작용 때문에 숨 쉬는 게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고통은 며칠간 잠잠해지잖아.”

“그래, 필요하면 항암도 하자.”


9월 중순 그간 받아온 아홉 차례 항암제에 대한 반응 평가를 했었다.

CT, PET-CT, BORN-SCAN 이 세 가지로 장기와 뼈에 얼마나 암세포가 분포하는지 검사를 한다.

기존 뼈에 있던 암세포는 거의 변화가 없었고, 그 근처에 새로 생긴 암세포가 몇 군데 보였다.

“암세포가 전이된 양이 적긴 하지만, 몇 군데 새로운 암세포가 보여요. 검토를 많이 했는데 기존 항암제에 내성이 생겼다고 판단됩니다. 항암제를 교체해서 항암을 하는 것으로 하죠. 이 항암제는 독성항암제인 탁솔과 표적항암제인 사이람자로 구성됩니다. 총 한 달이 1 사이클이고, 1, 2, 3주 1-2시간 항암제 투여하고, 나머지 한 주는 쉽니다. 두 사이클 후 다시 항암 반응평가를 할 거고요. 다음 주 바로 시작하죠. 그동안 단백질 섭취 많이 하시고요”


항암제에 대해 알아보면서 변경될 항암제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

독성이 강한 약으로 다양한 항암 부작용이 있고,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예외이길 바랐지만, 부작용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첫 항암 후, 잠을 잘 수 없는 전신 근육통을 시작으로 달리기를 막 끝낸 사람처럼 가슴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리고, 5일째가 되던 날 남편은 혈변을 봤다. 혈변은 멈추지 않고 여러 차례 계속됐다. 

항암 환자에게 혈변이 위험한 이유는 항암으로 인해 백혈구와 혈액 응고수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곧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중환자실이 없어 간호스테이션 옆 경과관찰실로 옮겨졌고 긴급 위 내시경으로 간신히 위출혈 부위를 지혈하고서야 끝이 났다.

그 외에도 110이었던 남편의 혈압은 두 번의 항암 이후 140 가까이 됐으며, 심박수 역시 눈에 띄게 높아졌다.

부작용은 끝이 없었다.

이빨 전체가 아파 치과 진료를 받았는데 입 안 전체에 구내염이 생겼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내염처럼 점막이 살짝 벗겨진 정도가 아니라 잇몸 전체가 퉁퉁 붓고, 엄지손톱만 한 출혈부위가 잇몸 여기저기 깊게 파여있었다. 죽도 겨우 먹던 남편은 눈이 띄게 야위어갔다.

“당신아, 나 항암을 다시 받기가 너무 겁나네.”

“우리 항암 처음 시작할 때 했던 얘기 기억하지? 항암제 부작용으로 몸이 망가지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자고.”


위암 4기 5년 생존율 5%.

남편은 암선고를 받던 날 항암을 안 하면 3개월, 항암을 하면 10개월이란 말을 들었다.

지금처럼 암이 줄지 않은 상태에서는 위 절제술을 할 수 없다.

위암의 경우 항암약이 잘 들어 전이된 부위의 암세포가 사라지면 위 제거 수술을 하는데, 원발암 부위를 제거하지 않은 위암 환자의 경우 5년 생존율은 0%다.

남편은 병원에서 말한 여명 10개월의 스케줄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현대의학분야에서는 항암 이외에 다른 암 치료 자료가 없지만, 분명히 남편과 같은 상태의 암환자들이 암세포가 완전관해 된 사례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통합의학, 자연치유와 관련된 서적들을 읽으며 항암이 효과 없을 때를 대비해 자료를 정리해 왔다.

세 번째 항암 스케줄이 있던 날 외래에서 담당 교수님에게 항암 부작용이 너무 고통스러워 잠시 쉬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물론, 선생님은 항암을 권하셨지만 우리는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몸 상태일 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항암을 받지 않았고, 선생님의 권유로 다음 주 다시 외래를 보기로 되어있었다.


외래를 다녀온 지 이틀 후부터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 통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남편은 뼈를 갈아내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펜타닐 패치를 15mg 올렸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고, 속효성 마약 진통제도 전혀 듣지 않았다. 

하루종일 지팡이에 의지해 다리를 끌며 거실을 걸어 다녔다. 누우면 더욱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몸부림치는 남편의 등을 쓸어주거나, 긍정적인 말을 하며 같이 걸었다.

5일째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오늘 아침 남편이 창백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나 도저히 못 버티겠어. 응급실 가자.”

병원에 입원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저 돌발통증이 왔을 때 모르핀을 샷으로 맞기 위해 가는 것이다. 

진통제 중 그나마 모르핀이 잘 듣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30분 정도 유지될 뿐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 담당 교수님이 회진을 도시면 펜타닐 용량을 많이 올리자고 할 것이다. 

남편이 통증완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 두 가지가 전부다.


“그래, 당신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면 돼. 난 이미 다 준비해 뒀어.”

“그럼, 병실이 새로 세팅되는 3시쯤 집에서 출발하자.”

“그러자.”

남편은 아픈 다리를 끌며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봤다.

“나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을까.”

“… 당신 많이 힘들지? 너무 고통스러우면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 우리가 좋아하는 암환우 유튜브에서 본 적 있지? 당신 힘들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당연히 돌아올 수 있지.”

“우리 밥은 먹고 출발할까? 당신 아침에 내가 좋아하는 우엉조림, 메추리알 장조림 했는데 맛도 못 봤잖아.”

“그래. 밥 먹고 가자.”






어느새 겨울이 되었네요. 


남편이 고통을 많이 느낄수록 혼자 있기 두려워했고, 그런 남편 곁을 지키느라 글 쓰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힘든 순간들이 많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를 응원해 주시는 구독자분들께 힘을 얻어갑니다.

남편에게 댓글을 읽어주면서, 당신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으니 힘내자고, 당신은 그래도 복 받는 사람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신체적 고통은 점점 심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진 않았습니다.

희망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독자분들 면역력 잘 챙기시고,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며 오늘하루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머물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