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day 처음 보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중도 포기할뻔한지 10시간이 지난 지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저녁식사를 하러 바에 들어왔었다. 따로 메뉴를 시킬 수 없지만 처음으로 순례자 메뉴를 먹을 수 있던 기회였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면서 만났던 외국인들과 같이 저녁밥을 먹었었는데 삼인방(제이미, 블로, 알렉스)과 프랑스에서 교사를 하고 있다는 오굴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메뉴로는 파스타가 나왔는데 다음 메뉴가 있기도 하고 배도 불러서 반 조금 남겼는데 직원이 "왜 본인의 음식을 남겼냐며 맛이 없었냐"라고 물어봤었다.
"맛이 없던 게 아니야 배가 불러서 먹기 힘들었어"
하지만 그는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을 보여주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포크를 다시 가져다주면 내가 다 먹는 걸 보여주겠다"라고 말했었다. 그러자 직원은 식기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음식을 마무리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아마도 첫날 피레네를 넘어왔는데 음식을 남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순례자가 되어 첫 손빨래를 하고 첫 사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오늘 있었던 피레네 산맥의 일이 상상이 안되었고 이곳을 혼자 왔구나 실감하게 되었다. 내 앞침대에는 한국인 모녀가 왔는데 이번이 3번째 까미노라고 하였다. 20대 초 처음 순례길을 왔을 때 20kg을 챙겨 와서 다친 어깨를 아직까지도 재활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기서 다치면 나만 손해겠구나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조심히 걸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도 밤 10시가 되면 잠잘 준비를 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야 하고 어디까지 가야 할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잠을 청했다.
순례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출발한 날이었다. 7시에 전날 저녁을 먹었던 바에서 아침을 제공했는데 피레네를 넘어올 때 생겨버린 트라우마 때문에 다람쥐에 빙의한 것처럼 챙겨갈 수 있는 음식(과일)은 가방에 챙겨서 출발했었다.
한국에 살아오면서 보지 못했던 자연풍경을 한껏 구경하며 마음에 여유를 얻고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지? 처음 고민했던 걱정도 매 순간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면서 사라졌었다.
생장(순레길 첫 번째 마을) 이후 후 다섯 마을까지는 숙박난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믿어서 5일 치 숙소를 다 예약해 두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은 수비리에서 숙박하는데 혼자 4km를 더 걸어가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4km를 더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손해 보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은 걷는 것도 요령이 생기지 않았고 스틱도 사실은 틱틱 소리를 내는 보조품에 불가했었다.
툴툴거리며 목적지로 이동하는 중 징검다리가 있는 물살이 강한 냇가를 지나고 있었는데 그곳이 내리막이라 자전거를 타고 있다면 한 번쯤 속도를 받아서 물을 통과하는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진짜 자전거 한대가 순식간에 내 옆을 쑥 지나가더니 그대로 물을 통과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냇가의 80%를 통과하다 결국 물살의 마찰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지면서 그대로 낭떠러지로 이끌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떠밀려가지 않으려고 손으로는 나뭇가지를 잡고 다리로는 자전거를 잡으면서 도와달라는 소리도 못 지르고 있었다.
그 순간 피레네에서 포기하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던 기억이 스쳐가면서 저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본능이 순식간에 상기되면서 들고 있던 모든 것들을 집어던지고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서 물살로부터 그녀를 끄집어내었다.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에게 “당신 왜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했냐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냐”, “넘어지면서 다친 곳은 없냐?”는 둥 잔소리를 영어로 했었다. 그녀는 “이 정도 내리막 경사와 자전거 속도면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었고 본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었다.
오늘 최종목적지인 우르다니즈 마을 하나를 0.6km를 남겨두고 일야라츠 마을 한쪽 구석에서 마지막 남은 물을 마시면서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혹시 물을 나눠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방금 물을 다 마신참이라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옆에 있는 것이 식수대인 것을 알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물을 2통이나 원샷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해외여행 중 물갈이를 필수적으로 한다고 하던데 그는 정보도 없는 수돗물을 마시는 것에 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피레네 이후 생존본능이 생겨서 그런지 수돗물을 아무리 마셔도 탈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빅터, 그도 외국인들이 본인 이름을 기억하기 힘들어서 그런지 영어 이름을 사용했었다.
순례길은 34일이 평균 일정이지만 가끔 28일 만에 완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빅터도 그런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계획을 하고 온 케이스인데 내 가방무게가 8~10kg인 것을 비교하면 빅터의 가방 무게는 2.4kg이었다 게다가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오늘 팜플로나까지 45km를 걷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14 시인 지금 25km밖에 못 걸어왔다고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조금 더 쉬고 간다는 그에게 나는 오늘 0.6km 더 걸어서 나오는 우르다니즈 마을에서 숙박한다고 귀띔하고 걸어 나왔다.
우르다니즈 마을은 한국의 고속도로를 지나가다 옆으로 보이는 작은 마을 같이 생겼는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도 1시간 내로 관광할 수 있었고 작은 슈퍼조차 없었다. 한국은 시골 어디를 가던 편의점, 스타벅스가 골목마다 있는데 너무 편한 인생을 살아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고 어버버 하고 있었는데 호스트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안내해 주었다. 그는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하기에 소통에 문제가 없었는데 본인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하길래 에?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번역기를 사용하여 모든 걸 설명해 주는데 그 장면이 너무 웃긴 거다 그래 완벽하게 구사하긴 했다 번역에 오역이 없을 정도니까 ㅋㅋㅋㅋ
짐을 풀고 시원하게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니 팜플로나까지 간다던 빅터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아니 팜플로나까지 가신다면서요 어떻게 된 거죠? “
“너무 힘들더라고요. 조곰님이 여기서 묵으신다길래 찾아보니까 여기 평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됐습니다ㅎ“
그럴 수 있지 ㅋㅋㅋㅋ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2~3일 연속으로 20~30km를 걸은 경험은 많이 없을 텐데 갑자기 다들 이런 경험을 하려니 몸들이 지치는 게 이해가 되었다. 나조차 회사와 집을 반복하면서 하루 3km도 안 걷는 사람이었는데 이 짓을 30일 내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몸이 아팠다.
이 마을에는 슈퍼가 없어서 무조건적으로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먹어야 식사가 가능했는데 순례길을 걸으면서 먹었던 순례자메뉴 중 여기를 능가하는 곳이 없었다. 그만큼 음식의 퀄과 같이 먹는 사람들의 분위기 모든 것이 완벽했다.
외국인들이 스몰토크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나요? 나는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처음 해보았는데 주제는 채소에는 여러 가지 맛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샐러드에 후추, 소금, 설탕을 넣는 것은 그것들의 본연의 맛을 해친다는 채식주의자의 의견을 시작으로 후추에 관한 역사이야기와 전쟁, 문화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거다. 영어로 말해서 모든 것을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고등과정에서 배웠던 역사이야기들이 나름 도움이 되었다. 중간중간 그들은 내가 소외되고 있는지, 이야기를 못 따라고 있다고 느껴지면 나에게 물어봤었다.
“만약 네가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있다면 나에게 말해줘 내가 쉬운 문장으로 풀어서 설명해 줄게”
나는 그냥 하는 말인가 싶어서 ”알겠다 “고 했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것에 관해 ”다시 말해달라 “고 이야기했을 때 그는 초등영어 수준으로 문장을 풀어서 말해주었고 단어들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단어로 대체하며 나를 배려해 주었다. 나는 이렇게 알차고 인간미 넘치는 저녁 시간을 보낸 지 너무 오래되었는데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는 식사시간은 배를 채운다는 느낌이 강했지 이렇게 소통이 강하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렇게 알베르게 내에서 파는 과자와 와인을 사서 한참을 떠들다가 10시가 되니 귀신같이 잠에 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후 단 한 명도 순례길 중간에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서로의 일정이 달랐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