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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곰 Feb 06. 2024

이봐요 물건 흘리셨어요

4 day 헨젤과 그레텔

운명은 존재하는가?





아직 짐 싸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아침에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한국에 살면서 맨날 방 치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38L 배낭 안에 34일 치 물건을 매번 풀고 싸고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심지어 다른 순례자들은 잠들어 있어 방에 불을 킬 수도 없었다.


입삐쭉 내밀고 조심스럽게 짐을 챙기는 와중 내 윗침대에서 잠들었던 닉은 벌써 새벽에 떠났나 보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침대 위에 자그마한 무언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는데 불빛이 없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어 일단 들고 나왔다.


아뿔싸! 충전기와 보조배터리다


어쩌다가 이걸 빼먹고 갔을까 현대의 순례자들에게는 핸드폰이 꺼진다는 것은 원시문명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름없는데 심지어 4일 차에 이것들을 잃어버리다니.. 아마도 새벽에 나가면서 사람들에게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이다가 챙기는 것을 잊어 먹은 거겠지


그의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와 로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닉을 보지 못했냐고 사방팔방 물어보고 다녔다 하지만 4일 차인데 누가 닉을 알겠는가.. 서로가 초면일 텐데..


마침 보조배터리에 이메일이 적혀 있길래 연락을 취했지만 누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이메일을 확인하겠는가 30분 내내 한자리를 빙빙 돌며 방황하다가 결국 이것들을 위해 한마을을 뒤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 판단하고 물건들을 챙겼다. 하지만 그가 오늘 어디까지 걸어갈지 어떤 숙소를 묵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운에 맡기자"

그의 물건과 짐을 챙기느라 분주한 사람들




그렇게 마을 하나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그의 모습이 보이는지 확인하면서 이동하였는데 그의 모습이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다 결국은 언젠가 만나겠지


용기에 언덕에 올라가 조형물들과 사진을 찍고 싶은데 주위에 한국인이 없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부탁을 했는데 인물 중심의 사진이 무엇인지 한 번에 알아버렸다. 조형물은 중요하지 않고 내가 정중앙에 들어간 아주 알찬 사진이 찍혀 있었다 그래도 만족한다 그가 안 찍어주었으면 누가 찍어주었겠는가

용서의 언덕




오늘 목적지인 푸엔타 레이나는 세로로 긴 마을인데 숙소와 중심가의 거리가 멀어서 시에스타(14시~16/17시까지 낮잠과 휴식을 하는 시간)가 시작되기 전에 먹을거리를 사려고 시장바구니와 혹여나 그를 마주칠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그의 물건도 챙겼다. 바구니를 신나게 흔들면서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저기 멀리서 흰 수염을 하고 있는 낯익은 얼굴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Sten, is that you?"


"Nick?? Nick!!!!!"


이산가족 상봉하듯 서로 도로 양끝에서 뛰어와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그를 찾아다닌 이유를 말해주면서 왜 메일을 보냈는데 받지 않았냐고 말했더니 그는 폰이 죽었기 때문에 받을 방법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의 물건을 챙겨 온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생장에서 그는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진을 찍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당시에는 거부했었다. 그래서 물건을 찾아준 기념으로  나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는 놀라면서


"내가 사진 찍는 것을 거부했다고?? 맙소사 내가 그때 정신이 없었나 봐 미안해 그럴의도는 없었어 혹시 먹고 싶은 게 있어? 내 물건을 찾아준 감사함으로 내가 다 사 줄 테니 골라봐"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여기 진열대에 있는 것들을 다 사줘!!" 나는 팔 벌려 진열장을 안는 모습을 보이며 장난을 쳤는데 그는 1초의 망설임 없이 카드를 꺼내며


"좋아 네가 원한다면!"


그 순간 미안한 감정과 고마운 감정 모든 것들이 밀려왔고 그에게 장난을 쳤다고 말하며 나는 목이 너무 말라서 물한병이랑 콜라 하나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와의 짧은 산책을 즐기며 우리가 만난 것이 얼마나 운명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추상적인 토론을 하다 다리 위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오니 야외 테이블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길래 합석했는데 전부 외국인이지만 어눌한 영어 실력으로도 그들이 충분히 알아듣기에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는데 나랑 같은 방을 쓰는 에쉴리가 맥주를 하나 시키면서 앉았다. 그러면서 스텐은 코를 골며 잔다고 장난치고 나는 무슨 소리냐 너의 코 고는 소리가 더 시끄럽다 말하며 저녁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고 나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저녁에 애들과 술을 마실 건데 너도 참여하고 싶으면 중심가 쪽으로 오라며 말했지만


나는 또 거절했다. 아마도 나는 순례자고 놀러 온 것이 아니라고 느꼈는지 모르지.


홀로 방에 들어오니 조용했다 22시가 넘었지만 아무도 안 들어오길래 먼저 잠에 들었다.

나만 빼고 다들 순례길을 제대로 즐기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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