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나는 항상 길을 걸을 때 목적지를 향해서만 걸었다. 잠시 멈춰 골목길을 구경하거나 호수를 보며 여유를 즐기는 건 내게 불필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은 목적지와 멀어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손해를 보기 싫었고, 가야 할 길은 명확했다. 그래서 앞만 보고 빠르게 걸었다.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은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순례길에서도 나는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30km를 걸어야 나오는 마을로 가야 했기에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아직 어둠이 짙은 시간, 천천히 눈이 어둠에 적응하길 기다리며 흐릿하게 보이는 물체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침낭을 개고 짐을 챙기며 길을 나섰다. 어제 함께 묵었던 딘과 미쉘은 이미 한 시간 전에 출발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내 걸음 속도라면 4시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스페인의 뜨거운 오후 태양 아래 걷는 건 너무 힘들었고, 값이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는 선착순으로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늦어서 자리가 없다면 비싼 사립 알베르게에 묵거나, 더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재미있는 건, 한국인들이 순례길에서 가장 먼저 숙소에 도착하는 사람들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성격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빠르게 직면하고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효율성은 우리의 DNA에 각인된 특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비행기가 연착되어 문제가 생기면 한국인을 따라가라는 말이 있다. 분명 그들은 방법을 찾았을 테니 말이다.
길을 걷는 동안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외국인들이 벌써 10명 넘게 내 옆을 지나쳤다. 내가 가려는 숙소는 선착순으로 20명만 받을 수 있었는데, 벌써 절반이나 지나갔다니 마음속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그 불안감은 곧 초조함으로 변했고, 나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스틱 속도를 높였다. 꼭 네 발로 달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딘과 미쉘을 마주쳤다. 딘은 항상 밝은 얼굴로 나를 반기며 "오늘 기분은 어때?" "어느 마을까지 갈 거야?"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내가 해준 한국 음식을 자랑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어 보이곤 했다. 길에서 딘을 만나는 건 언제나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긴 여정을 위해 짧게 인사를 나누고 빠르게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딘이 내게 한마디를 던졌다.
"xx아 걱정 마. 코코넛은 떨어질 거야."
순간 멈칫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오늘 어디로 가는지, 기분은 어떤지 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왜 갑자기 코코넛 얘기를 꺼낸 걸까? 궁금증에 걸음을 멈추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며 물어보았다. 딘은 웃으며 설명했다. "코코넛을 먹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첫 번째는 4~6m 높이의 나무를 기어 올라가 열매를 따는 거고, 두 번째는 코코넛이 익어서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그는 이어서 말했다. "내 말은, 지금 네 표정이 조급해 보인다는 거야. 굳이 나무를 타고 올라갈 필요 없어. 기다리면 코코넛은 자연스럽게 떨어질 테니까 그러니 걱정 마 잘될 거야."
딘의 말은 정확했다. 나는 조급했다. 공립 알베르게에 먼저 도착하고 싶었고, 돈을 아끼고 싶었으며,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성급한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만약 딘이 "너무 조급해 보인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했다면 나는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것이다. '왜 날 판단하려 하지?'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딘은 '코코넛은 떨어질 거야'라는 비유를 통해 내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게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내 모습이 꼭 나무 꼭대기에 달린 코코넛을 따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웃음이 났다.
나는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길가의 풍경을 천천히 즐기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길 위에서의 여유가 느껴졌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걸 서둘러 이룰 필요는 없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기다려도 된다. 코코넛은 언젠가 스스로 떨어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분명 더 달콤할 것이다.
- 이후 이야기 -
막상 천천히 마을에 도착하니 웬걸 선착순 20명이었던 숙소는 10명 밖에 도착하지 않아서 널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