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엉뚱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만났다. 처음 그녀를 본 건 산속 길이었다. 작은 체구에 발을 절뚝거리면서도 헤드셋을 끼고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녀는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했고, 내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그녀를 앞지를 수 없었다. 그러다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고민하는 그녀에게 나는 마침내 말을 걸었다. “일로 가야 해요.”
그녀의 이름은 사라, 영국에서 온 순례자였다. 원래 걷는 속도가 지금보다 두 배는 빨랐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럭비 선수”라고 불렀다고. 하지만 발목을 삐는 바람에 지금은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하는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마치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30초에 한 번씩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당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매번 같은 숙소에서 묵지는 않았지만,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려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 투우소를 만나다?
어느 날 소떼가 있는 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사라는 소를 보자마자 눈이 커지더니, 갑자기 속삭였다.
“저건 투우소야! 빨리 도망쳐야 해!”
내가 아무리 “그냥 평범한 소”라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사라는 소의 눈을 절대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덩달아 뛰었다. 사라는 얼마 뒤 숨을 고르며 말했다.
“다행히 빨간색 옷을 안 입었어.”
그녀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두 번째 에피소드: 노래하며 걷는 사람들
어느 날, 그녀가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그들은 일렬로 서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길을 가고 있었다. 특히나 차들이 다니는 길이라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일자로 걷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그들을 따라 노래를 부르며 걷게 되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종종 도로를 걸어가야 할 상황이 놓입니다. 다르게 걸어갈 수 있는 방도가 없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 10대 수탉의 아침
아침 10시쯤, 동네를 지나던 중 멀리서 수탉이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라가 정색하며 말했다.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 울어? 이건 분명 10대 수탉이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수탉 평균 수명은 10년이니까, 저건 1살 수탉이 맞겠네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박수를 치며 외쳤다.
“맞아! 1살짜리 수탉 같아. 이제 빨리 일어나라고!”
네 번째 에피소드: 가방 속의 혼돈
순례길에서는 가방의 무게와 균형이 정말 중요한데, 사라의 가방은 언제나 어수선했다. 어느 날은 심지어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왼발에 물집이 생겨서 신을 수 없다고 했다.
“이게 더 편해. 나름 괜찮아! 통풍도 되고!”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슬리퍼가 너무 이뻐서 구매했다고 자랑을 했다.
한 번은 가방에서 물건을 찾는다고 뒤지기 시작했는데, 정리 되지 않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가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침엔 앞이 안 보여서 그냥 막 넣고 나왔더니 이러네.”
정말 엉뚱한 대답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 파스타 사건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 나는 지쳐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들었다. 아마도 그날은 모두가 힘들었을 거라 예상하는데 더군다나 마을에 음식점이 없어서 모두가 같은 숙소에서 해결해야 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모두가 모였을 때, 갑자기 사라의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나중에 무슨 일인가 싶어 사라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그날따라 파스타를 돌려 먹을 힘도 없어 칼로 썰어서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광경을 본 이탈리아인 6명이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고.
“파스타를 자르다니!”
그녀는 온갖 이 세상의 욕을 다 먹었다며, 앞으로는 절대 파스타를 칼로 썰어서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후문이다. 왠지 이탈리아 형들이 맘마미아를 외치면서 많이 화가 나보이더라. 마치 잘린 김밥을 칼로 썰어서 내용물을 하나하나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사라의 엉뚱함은 그녀의 매력 그 자체였다. 아쉽게 그녀는 400km만 걷고 영국으로 돌아가서 더 이상의 에피소드는 없지만 그녀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그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하해주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