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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곰 Jul 30. 2023

160만 원짜리 왕복 항공권 구매했다

효율에 미친 사람


미리 예약한 항공권 10만 원을 싸게 하려고 취소 위약금 20만 원을 물었다. 대행사 직원에게 이런 조항은 쓰여있지 않았다며 따지며 '나는 못 봤어', '어디 쓰여 있는데'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내 탓이다.


순례길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순례길 루트 중 프랑스길에 관한 모든 로드뷰를 봤었다. 심지어 구글지도로 경로를 만들이날은 여기서 쉬어야 해 이다음날은 여기까지 가야 해,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도에 크레파스로 줄을 긋듯이 쭉쭉 그어가며 하나씩 기록하고 숙소도 미리 예약하며 내가 쟁취한 쉼을 온전히 즐긴다는 목적하에 이 짓을 무려 2주나 했었다.

숙소, 맛집, 마을을 기록한 구글지도




친구들은 휴식이 필요하다면 좋은 휴양지에서 쉬지 왜 350만 원이나 주면서 순례길을 가냐고 물어봤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쉼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맞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빡빡하게 살 거면 차라리 350만 원으로 휴양지를 갈걸 그랬다. 아무리 내가 계획적이라 해도 당최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뭐 이리 효율성 있게 살아온 건지, 쉬러 간다고 말한 사람이 맞는지에 관한 의심이 들었다. 미친 듯이 남들의 순례길 여행 경험을 습득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 속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었다.


당시 나는 900km를 얼마나 빨리 완주할지 궁리했었다. 속도, 효율성, 결과에 집착했던 것 같다. 한 도시에서 며칠 머무르며, 다음 도시가 아닌, 주변 도시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또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한 번에 가지 않고, 몇 년에 걸쳐 나눠서 여행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40살이 된다면, 자녀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다. 자녀의 속도에 맞추며, 순간순간을 즐기는, 목적지에 연연하지 않는 비효율적인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만약,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한다면. 상대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순간을 즐겼으면 한다.


글을 읽은 순간 머리를  대 얻어맞은 것처럼 속도, 효율성, 결과 3 단어를 30분 내내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말하는 후회의 내용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순례길을 가고 싶지? 좋은 도피 장소라서? 생각이 많아지니 머리가 너무 아팠었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너는 거기 가서 무언가 업적을 이루고 싶은 거 아니야?"


나 이만큼 잘 걸었어, 나 이만큼 완벽하게 준비했어, 나 이만큼.. 이만큼..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포부가 큰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무엇보다 실수 없이 모든 것을 잘하고 싶었다.


그날을 끝으로 엑셀 일정 정리, 숙소, 구글 지도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순례길을 가는 순간이 임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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