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숙소 주방에서 요리를 해 먹는 이탈리아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프랑스 길을 넘어온 순례자들이었다. 3개월 동안 2000km가 넘는 길을 걸으며 아내와 함께 여정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돈을 아끼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숙소가 없다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고, 음식은 항상 직접 해 먹었다.
스페인에서 외식을 하면 1인당 20유로(약 28,000원)가 들지만, 파스타, 양파, 베이컨, 토마토 같은 재료를 사서 2인분을 만들면 8유로도 채 들지 않았다. 나 역시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음식을 해 먹는 편이었다. 하지만 매일 20~30km를 걷고 나서 요리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샤워하고 빨래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4시가 넘고, 5시가 되어서야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하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곤 했다.
그날도 요리가 귀찮아 파스타 키트를 꺼내 물에 모두 넣고 끓이려는데, 프란체스카(남편)가 나타났다. "저녁을 해 먹는 거야? 뭐 먹는데?"라며 물었다. 나는 웃으며 냄비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는 "오우..."라며 하늘을 쳐다보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탈리아인 앞에서 파스타 키트를 사용하는 내 모습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마도 외국인이 한국인 앞에서 불닭볶음면에 뜨거운 물을 잔뜩 넣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요리가 끝나자 화구를 프란체스카에게 넘겼다. 그는 흥얼거리며 재료를 꺼내고, 씻고, 자르며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밥을 먹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왜 항상 남편만 요리를 하는 걸까? 그래서 "왜 너만 요리하는 거야? 같이 하진 않아?"라고 물었다.
그는 1초 정도 생각하더니 무슨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긴, 내가 로맨틱 가이라 그렇지."
그는 요리를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음식을 해주는 것이 좋고, 아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내가 이런 질문을 했을까? 혹시 무례하지 않았을까?
내 질문의 진짜 의도는 단순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왜 아내는 옆에서 안 도와주지? 아내는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요리를 즐기는 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 숨은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질문이 나에게 아무런 이득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란체스카는 이어 말했다.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엔 아내에게 나가서 좀 쉬고 있으라고 해. 이 길을 걷는 건 여자가 더 힘드니까." 그는 테라스에서 쉬고 있는 아내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내는 손을 흔들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이탈리아식 파스타 만드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살아가면서 서로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좋아하고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프란체스카의 태도는 이런 단순하고 건강한 마음가짐을 보여주었다.
오늘도 나는 그들에게서 마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