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곰 Aug 02. 2023

목적지는 파리인데 저는 왜 아프리카에 있죠?

매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


어디 항공사가 좋더라, 어디 항공사가 진상이더라 이런 것을 따지기 전에 내게 당장 중요한 것은 싼 값이었다. 당장 산티아고에서 쓰는 식비, 숙박비만 계산해도 벌써 17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비행티켓 비용을 아껴야 밥이라도 더 맛있는 걸 사 먹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래는 왕복 모두 핀에어 항공사를 이용할 예정이었지만 파리까지 가는 비행기 중 에티오피아 항공이 가장 싸길래 취소하고 다시 예약하니 오히려 위약금을 물어 10만 원을 손해 봤었다. 비행시간도 18시간에서 35시간으로 올라갔었는데 무려 17시간을 공항에서 대기를 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왕복 경유지인 아디스아바바 공항이 대체 어디 있는지 구글지도 검색하니 웬걸 아프리카로 안내하는 게 아닌가? 내가 선택한 삶이니 받아들여야지.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공항에서 8시간 이상 대기를 할 경우 항공사 측에서 호텔을 잡아준다고 했었다. 호텔 바우처는 인천 공항에서 받으면 된다고 했다.


23년 5월 14일 인천 공항에 22시에 도착해 새벽 1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바우처를 받기 위해 대기를 하는 도중 순례길에 갈 것 같은 여성분을 만났었다. 순례길에 가냐고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오지랖 같아서 참았었다.


한국에서 에티오피아까지 가는 건 한국인 승무원들이 있어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내리니 완벽한 타지인이 되었다. 내가 가진 건 호텔 바우처 종이와 완충된 휴대폰 하지만 30분이 넘어서도록 공항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아 휴대폰은 쓸모가 없었고 나의 조잡한 영어 실력도 그들에겐 이상한 언어로 들릴 뿐이었다. 1시간이 넘어 드디어 공항라운지를 빠져나왔다. 속으로는 너무 울고 싶었는데 항공사가 제공해 주는 호텔에 못 가지 않을까 하는 긴박함, 순례길 땅 밟지도 못했는데 벌써부터 닥쳐오는 시련들 어느 것 하나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으며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었다.


보이는 항공사 직원들마다 호텔 바우처 종이를 흔들어대니 드디어 그것에 관해 아는 사람이 나타났었다. 그는 로비의 한구석으로 안내했고 거기서 가만히 있으라는 제스처를 했었다. 하지만 여기는 타지가 아닌가? 나를 속이려드는게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선택의 도리도 없어 불안에 떨며 있었는데 한국인 한 명을 만남으로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인천 공항에서 만났던 여성분이었다.


항공사에서 제공한다는 버스를 타는 와중에도 이놈들이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끊임없이 의심했었다. 와이파이도 없어서 휴대폰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뭐가 그리 두려웠건 것일까? 항상 치열하게 성취와 성과만을 바라보며 빡빡한 인생을 살아온 내 인생에서 이런 계획 없는 여행을 온 것이 문제였던 것일까? 산티아고 가겠다고 당당히 떠났는데 국제미아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나는 그 당시의 상황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버스는 중간중간 친구들을 태웠지만 우리를 무사히 호텔에 내려주었다. 그제야 안심되는  마음.. 너무 남을 못 믿고 살아온 건가 자기반성도 하며 호텔 체크인을 하였다. 미리 찾아본 정보로는 랜덤으로 숙소를 제공한다고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최고급 호텔인 Skylight을 배정받았었다. 지정받은 방에 들어가니 이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방 이곳저곳 구경 다니기 시작했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좋은 호텔을 배정 받았다고 기분이 좋아졌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60만 원짜리 왕복 항공권 구매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