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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JI May 30. 2024

내면 아이에게 보내는 그림책 <도둑맞은 이름>

어른들은 나한테도 문제가 있대.

도둑맞은 이름 / 호세 안토니오 타시에스 글, 그림 / 성초림 옮김 / 푸른숲 주니


같은 학교, 같은 교복, 같은 교칙, 같은 학년, 같은 반. '같음' 안에 묶인 학교라는 집단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이나 사랑스러움을 일일이 발현시키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파서 조퇴하려고 해도 꾀병부터 의심하고 들었고, 아이들은 모두 사고뭉치를 전제로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은 따스함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 안에서 이미 ‘학교 명예 실추’까지 시켰던 내가 또 학교폭력에 연루가 되니, 자연스레 이것은 ‘나’라는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학교엔 하나도 없어.

첫 폭력이 일어났을 때 선생님들은 무작정 가해자와 묶어서 나를 비난했다. 


나에게 집단 폭행하던 일진 아이들이 차례로 30cm 자로 뺨을 맞는다. 제일 끝. 같이 줄을 서 있을 뿐. 나는 피해자니까 30cm 자는 나와는 무관한 일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자로 얻어맞고 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시간 동안 얻어맞은 것보다 더 날카롭게 꽂혔고 훨씬 더 억울했다.    

 

아이들에게 얻어맞을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아픈 줄도 몰랐다. 얘들이 나를 때리는 이유가 뭔지 몰라서 머릿속에서 합당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뭔가 오해가 있다면 오해를 풀어주고 이 무자비한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미 뇌가 공포에 질려서 어두운 미로를 하염없이 헤매는 거 같았다.     


한 교실에 10~15명 내외의 그 아이들 무리가 있었고, 두 명에서 나를 주도적으로 때렸다. 옆에서 더 세게 때리라든가 머리를 휘어잡으라던가 깔깔거리며 조언을 하기도 하고. 언제 끝나? 노래방이나 가자.라는 말도 들렸다. 어쨌거나 그중에서 내가 얻어맞는 게 불합리한 일이다. 옳지 않다. 느끼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어 보였다.      


제법 긴 시간이 흘렀고, 자리를 옮겨서 폭력을 지속하기로 그들은 결정했다. 학교를 나와 학교 뒤편에 있는 으슥하고 불량한 에피소드가 흘러넘치던 공원으로 나를 몰아서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파출소가 있었다. 눈알을 굴리며 도망칠 타이밍만 노리다가 빨간불이 초록 불로 바뀌자마자 파출소로 뛰어 들어가서 경찰 아저씨에게 말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경찰아저씨가 나를 도와주는 그런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주도적으로 나를 때리던 아이 2명과 같이 교내봉사를 했다. 첫날 첫 시간은 한 교실에서 함께 반성문도 썼다. 쓸 내용이 없는데 억지로 한 장을 채워내느라 애썼다. 그 이후의 시간은 교내 청소를 했다. 2박 3 일가량 했던 걸로 기억난다. 마지막 시간 복도의 난간을 닦는 와중에 둘 중에서도 나를 더 집요하게 때리던 아이와 마주쳤다.


계단에 털썩 주저앉더니 말을 걸었다. 약간 경계하며 대화를 받았다. 여전히 내가 왜 그렇게 곤죽 되게 얻어맞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름 하나를 대며 그 오빠를 아냐고 묻더라. 그게 누군가 싶어서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 아이 말로 그 오빠는 나랑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했다. 몇 초 생각하다가 번뜩 생각이 났다.     



초등 졸업 이후 본 적도 없는. 그래서 이름조차 낯설었던 한 얼굴이 떠올랐다. 주동자는 그 오빠랑 같은 교회를 다닌다고 했다. 자기가 OO 여고를 다닌다고 하니, 그 학교에 내가 있다고, 걔 아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열일곱. 멍청했던 나조차 알 수 있었다. '아 얘는 그 오빠를 좋아하는구나. 다른 여자애 이름이 튀어나와서 짜증이 났구나.' 


수십 년이 지났는데 그 이름을 잊지 못하겠다

나를 때렸던 네 이름은 이제 까마득해졌는데, 네가 물었던 그 이름말이야.



   

나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빨간 사과인데, 그 아이의 짜증이 나를 초록색 배로 색칠해 버린 거였다. 

학교에 있어서 이 첫 폭력 사건은 나란 학생은 언제고 ‘초록색 배’로 바뀔 수 있는 위험인자로 인식되게 했다.


그러니 두 번째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말의 숙고도 없이 ‘초록색 배’가 되어버렸다. 어른들의 세계는 자비가 없다. 무작정 나를 비난했다. 내가 학교에 이의 제기를 하는 것보단 조용히 등교 거부 후 자신의 의지로 학업을 중단하는 것을 더 반기는 기색이었다. 자기 경력에 하자가 생기지 않는 최대한 깔끔한 방식들을 선호한 것 아닐까?


비슷한 아픔을 겪는 주인공이 <도둑맞은 이름>에 나온다. 마음이 아프다. 주인공이 감당해야 할 아픔들이 속상했다. 나라도 주인공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싶어서 책을 읽고 또 읽어본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들어줬으면 좋겠다.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다. 잘잘못을 따져주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저 이야기 들어주고 그를 조용히 지지해 주면 좋겠다. 


그가 이름을 묻는다면 이름 정도는 답해줘도 좋을. 그런 따스한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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