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같은 속도로 자라지 못해도.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어린이집은커녕 유치원도 한번 못 다니고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아이들도 제법 있었다. 미취학 아동일 때를 제외하고는 보통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의 교육은 그때도 어지간해선 누구나 받았다. 다수의 사람이 걸어가는 최소한의 평범한 경로를 벗어난다는 건 지금도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다. 더군다나 20년도 더 전에는 극히 소수의 (극악 난이도의 사람들로, 좋게 포장해서) 말썽꾸러기들이나 겪을만한 일이었다. 정말 심각하게 학업에 결격사유가 있어야지만 ‘자퇴’라는 이름을 쓰고 ‘퇴학’을 당할까 말까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크게 구분 짓지 않았고,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와 함께 정학 처분을 받았다. 학폭위원회 같은 건 없었고, 얻어맞다가 무서워서 파출소로 도망갔을 때 황당해하며 학교에 전화했던 경찰 아저씨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뭘 이런 거로 다?’하는 표정이었고, 심지어 학교에서는 ‘학교 명예 실추’라는 명목으로 교내 봉사를 명령받았으니 말이다.
‘애들이 크다 보면 싸울 수도 있지.’라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만연했다. 친구에게 맞은 몰매로 정신적 충격이 커서 학교를 못 나간다면 그건 가해자의 공격 강도가 세서라기보단 내가 물러터진 인간인 거로 취급당하기 쉬운 시대였다. (PTSD는 당연히 낯설고,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이제 막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오르내리던 시대였다.)
막다른 길에 몰려 어쩔 수 없었지만 선택은 스스로 했다. 그럼에도 “자퇴아”라는 딱지까지 짊어져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청소년증’이 있어서 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가 쳐둔 담을 훌쩍 뛰어넘은 청소년에게 사회가 보내는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중졸로 학력이 끝났으니, 검정고시를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시작해야지.’ 마음먹는 것도 쉽지 않았고, 팍팍했던 살림에 검정고시 학원비를 선뜻 지원받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와 똑같은 출발 선상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나만 골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탈한 것 같았다. 모두와 똑같이 학교라는 땅에 심어졌는데 나만 자라지 못하는 나무 같았다. 심어진 땅이 척박하였나. 나는 유독 약한 묘목이었을까? 내가 서 있는 곳만 그늘져 있나.
<두려워하지 마, 나무야>에는 자기 주변의 모든 나무가 사계절을 맞이하며 성장해 가지만 두려움에 성장을 기피하는 작은 나무가 등장한다. 그의 모습은 방안에 처박혀 흘러가는 시간을 애써 외면하고, 다른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직시하지 않고 나만 제자리인 것을 도외시하는 내가 보였다.
마침내 작은 나무는 용기를 낸다. 남들이 볼 때는 참 별것도 아닌 일인데, 남들은 상상도 못 할 많은 용기가 그에게는 필요하다.
<두려워하지 마, 나무야>는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용기 없는 나의 부족함을 정성스럽게 어루만져준다. 낮고 단단한 목소리의 어른이 그때의 나에게 읽어준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이겨낸 뒤에는 어떻게 될까? 내가 지체한 만큼 여전히 뒤처져있는 것 아닐까?
우리의 삶이란, 작은 나무가 용기 내 걸어간 길과 같다.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두려워하지 마, 나무야>는 한두 해, 늦어진 거로 세상이 끝나지 않음을.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고 정해진 코스가 없음을 보여준다.
너는 너의 시간표대로 살아가면 그뿐이다. 네 시간표는 오직 너만이 정할 수 있다. 세상이 짜둔 시간표 앞에 쪼그라들지 않아도 좋아. 오들오들 찬바람에 떨고 있을 너에게 이 책이 희망으로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