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웰스 게임 (commonwealth games )에 대해 들어보셨지요? 과거 영연방 국가들의 올림픽 비슷한 경기로, 연대와 우정, 그리고 다문화 사회로서의 정체성을 담아 스포츠를 넘어 문화의 장으로 확장시킨 스포츠 축제입니다.
wikipedia
Games for Everone
글로벌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오프닝과 함께 2022년 개막된 커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 7,28-8,8,2022)의 로고를 보고 계십니다. 파란색과 노란색 그라데이션 선이 'B'형태로 결합된 이미지입니다. 이는 개최지인 버밍엄의 머릿글자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또한, 버밍엄과 웨스트 미들랜즈 지역의 열 곳( 각종 경기장과 지역사회)을 시각적으로 연결하고 여러 지역이 게임의 무대임을 상징합니다.
색상 또한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파란색과 노란색은 버밍엄이 "유럽에서 가장 젊은 도시"라는 점을 반영합니다. 활력과 역동성, 다양성을 표현한 셈이죠. 특이점은 디자인 과정에 약 4개월 간 160시간 넘는 서베이와, 1,000명이 넘는 지역 주민의 피드백이 반영되었다는 점입니다. 고유 서체 또한 웨스트 미들랜즈 지역의 손글씨에서 영감을 받아 불규칙한 높이, 각, 두께 등으로 활기차면서도 독특한 현지성을 드러냅니다.
/The Economist
'버밍엄 2022'의 공식 마스코트인 '페리( Perry)'는 다채로운 색상의 황소로, 이름은 주 경기장이 위치한 페리 바 ( Perry Barr) 지역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황소는 버밍엄의 역사적 상징물로 오랜 기간 시민에게 친숙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페리의 다채로운 색상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 귀엽고 친화적인 외형은 모두가 어울리는 열린 축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iI5jnW4JnQ&t=1s
Alamy
커먼웰스 소속 72개국 및 지역에서 약 6,600여 명의 선수 및 팀 관계자들이 참가하였습니다. 19 종목, 283개 메달 이벤트가 펼쳐졌고요. 특히 8개의 패러 스포츠( Para-sports)가 포함되어 커먼웰스 게임 사상 최대 규모의 통합 패러 스포츠 프로그램이 구현되었습니다. 또한, 사상 최초로 여성 메달 이벤트가 남성보다 더 많았던 이벤트였고요. 성 평등 및 포용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한 '게임즈 포 에브리원( Games for Everone)'이라는 슬로건에 잘 부합하였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코로나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관중 동원과 미디어 노출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1,500,000장이 넘는 입장권이 판매되었습니다. BBC스포츠의 커버리지는 5,710만 회가 넘는 스트리밍을 기록하면서 국내외 엄청난 관심을 받았고요. 전 세계 8억 3,490만 명의 TV시청자와 2억 1,500만 건의 디지털 뷰, 1억 4,100만 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의 인터랙션이 기록됐을 정도로 성대한 축제의 장이었습니다
물론, 노동력 및 공급망 문제, 악천후, 짧은 준비기간 등 여러 위기가 있었습니다. 경기장 원거리 배치 (트랙 사이클-런던 개최), 경기 중 안전사고(사이클 사고, 음향 장비 낙하, 하키 탄정 논란 등), 그리고 스포츠 외교적 긴장(예: 인도의 사격 제외 반발)과 같은 논란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는 다양성, 혁신성, 포용성, 그리고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와 의미 있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Glasgow condirmed as 2026 Commonwealth Games hosts/Paralympic.org
이 정도면 눈치채셨겠죠? 오늘은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으로 모십니다. 윌리엄 홀먼 헌트( William Holman Hunt, 1827-1910)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작품들 보러 갑니다.
두 화가는 모두 영국 라파엘 전파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헌트는 라파엘 전파( 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창립자이자 핵심 인물이고, 워터하우스는 라파엘전파의 스타일과 주제를 수용하여 발전시킨 대표적인 후속 작가입니다.
유니세프( UNICEF: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오늘날 영국인들이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대가 빅토리아 여왕 시대(Victorian Era, 1837-1901)라고 합니다. 영국 역사상 정치적, 사회적 안정과 대규모 성장, 그리고 제국주의적 팽창이 동시에 이뤄진 시기였기 때문이죠.
이 시기 영국은 왕실과 의회, 내각, 지방 엘리트들의 통치로 운영되었으며, 근대적인 의회민주주의가 자리 잡아갔습니다. 정치적으로 여러 차례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져 참정권 확대와 대중 참여의 증대, 의회 대표성의 확대가 이루어졌고요. 대외적으로는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광범위하게 제국을 확장했던 시기입니다. 인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식민지를 확대하며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던 시기이고요.
Great Britain no time to lose.(1883)
We are not interested in the possibilities of defeat; they do not exist.
(빅토리아 여왕, 제2차 보어 전쟁에 대해, 1899)
빅토리아 시대의 경제는 산업혁명에 근거한 제조업과 상품 생산, 대영제국의 식민지 무역 그리고 금융업의 성장 등 여러 측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증기기관, 철도, 통신 등 첨단 기술이 도입되며 기계화와 대량생산 체제가 확립되어 전 세계 공업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영국은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제조업, 철도, 면직물 등 산업 부문에서 혁신이 이루어졌으며, 183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철도망이 확장되어 물류 체계와 인구 이동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면직물산업은 인도의 고급 날염 면포(경사) 수입에서 시작해 자체적인 생산 방식과 디자인 혁신으로 영국경제를 견인하는 역할을 했고요.
무역 분야는 강력한 해군력과 자유무역 정책,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를 기반으로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산업화에 필요한 원자재를 전 세계 식민지에 확보하는 한편, 영국 제품을 세계 시장에 공급하면서 경제적 이익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19세기 후반에는 제조업의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고 미국, 독일 등 신흥 강국에 밀리면서, 영국경제는 점차 금융업 중심의 구조로 변화하였습니다. 런던은 세계 금융 및 해운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국제 은행과 투자은행이 성장하고 영국 자본의 해외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Freepik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계급 구조가 특징입니다. 상층에는 왕족, 귀족, 젠트리가 있었고, 이들은 사회와 문화를 주도하며 대토지를 기반으로 부와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농업 불황으로 귀족의 위상은 점차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사회적 특권과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중산층은 산업화와 무역의 성공에 힘입어 크게 팽창하였습니다. 전문직, 상인, 지식인, 숙련 노동자 등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뤄졌고요. 이들은 부의 축적과 사회적 상승을 이루며, 교육 및 문화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jOGs-GdEpI&t=6s
노동계급은 공장, 광산 등 산업 현장에서 장시간 낮은 임금, 열악한 조건 속에 일하는 계층으로, 사회적 억압과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도시 빈민층은 일용직에 종사하며 불규칙한 일거리와 수입으로 빈민가에서 생활했고요. 여성, 아동 노동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던 시기입니다. 이러한 계층 구분과 경제적 불평등은 각종 사회운동과 개혁입법, 노동조합의 성장, 그리고 이후 노동당 등 정치세력화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인구 폭발과 도시화 가속의 시대였습니다. 도시 인구가 급증하여 19세기말에는 전체 인구의 80%가 도시에 거주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새로운 공장과 산업지대 형성과 맞물려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을 유발하였고, 급격한 도시의 팽창은 빈민가 확산, 주거 공중보건 악화, 환경오염, 전염병 유행 등 복합적 사회문제를 야기했습니다.
Oliver Twist by Charles Dickens/Alamy
복음주의와 고전적 엄격함을 강조하는 기독교 가치관이 사회 전반에 강력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신앙 부흥과 도덕성 회복을 강조하였고요. 근면, 절제, 가족 중심적 가치, 그리고 청교도적 윤리관이 중산층 문화와 맞물려 사회적 규범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노예무역 폐지, 아동 노동 법제화, 여성의 순결과 가정 우선의 미덕 등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위선적 측면도 공존했습니다. 성적 이중잣대, 매춘의 번성, 성도덕의 엄격함과 음지문화의 발달 등이 그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은 근대적 사회의 토대를 구축하는 동시에 계급 불평등, 노동착취, 식민지 수탈, 여성 차별 등 구조적 한계도 드러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1Jo-WILkhg
라파엘 전파(Pre- Raphaelite Brotherhood)는 1848년 런던에서 결성된 영국의 대표적인 예술 개혁 그룹입니다. 윌리엄 홀먼 헌트( William Holman Hunt), 존 에버렛 밀레이( John Everett Millais),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Dante Gabriel Rossetti) 세 명의 젊은 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곧바로 제임스 콜린스( James Collinson), 프레데릭 조지 스티븐슨( Frederic George Stephens), 토머스 울너 ( Thomas Woolner),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 William Michael Rossetti) 가 합류해 7인의 형제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이들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이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극심한 사회적 변화와 계급 갈등, 그리고 전통주의의 보수화 속에서 '진정한 예술'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술계에서는 라파엘로 ( Raph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이후의 고전적 미술 양식이 절대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를 추종하는 영국 왕립 예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가 화단을 장악하고 있었고요. 그러나 라파엘 전파는 이 관례적인 '아카데미즘'과 이상화된 미술에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라파엘로 이전 (Pre-Raphaelite)의 미술, 즉 중세 후기와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미술로 돌아가자고 말입니다.
Modern Painers Volume 2/Amazon.com
진실성
자연의 충실한 관찰
중세적 영성과 상징성 추구
-Modern Painters Vol.2,1846-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초기 강령에 나타나듯"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진정한 생각(아이디어)의 표현"이 예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비평가인 존 러스킨의(John Ruskin, 1819-1900) 'Moden Painters'(1846)의 이론이 이들에게 결정적인 사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작가들은 자연 현장에서 직접 스케치를 하며 세부사항을 낱낱이 기록했고요. 이는 라파엘전파의 당대 미술계의 형식성과 관습을 거부하고자 했던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창립 멤버들에게 영감을 준 이 사상은 세밀한 자연 묘사와 사실주의적 접근, 그리고 상징성을 결합한 회화를 만들도록 이끌었습니다. 특히 상징적 리얼리즘은 사실적 묘사와 동시에 종교적, 도덕적 깊이를 전달하고 싶었던 헌트 등 여러 멤버들에게 해법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The Stone of Venice/Da Capo
러스킨의 또 다른 책 < 베니스의 돌 The Stones of Venice>( 1851-1853)은 3부작으로 중세 및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고딕 양식 건축을 미술, 사회, 도덕의 측면에서 재평가한 책입니다. 산업혁명기 기계적 예술과 대비하여 "장인정신"과 "진정성"의 가치를 찬양하는 책이죠. 이 책은 라파엘전파의 중세적 주제 선호, 장인 정신, 예술과 생활의 융합이라는 이상에 이론적 배경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London,England/Pinterest
윌리엄 홀먼 헌트( William Holman Hunt, 1827-1910)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입니다. 1827년 런던에서 태어나 상점 관리자 집안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초기에는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왕립 아카데미 미술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848년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와 함께 라파엘 전파를 창설하여 영국 미술의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예술가는 기호와 사실의 일치를 드러내야 한다"
-윌리엄 홀머 헌트-
헌트는 기존 미술계의 관습적이고 인위적인 표현방식에 반발하여, 르네상스 대가 라파엘로 이전의 순수한 예술적 가치와 자연 관찰의 중요성, 그리고 도덕적 책임을 예술의 핵심 이념으로 추구했습니다. 그는 예술가가 세상을 단순한 재현이 아닌, 기호와 상징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사상은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과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의 영향 아래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그는 실제 자연과 사회, 종교적 현실을 정확히 관찰하고 이를 충실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와, 그 이면의 깊은 상징성 모두를 중시했습니다.
헌트의 작품은 세밀한 묘사,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 그리고 정교한 상징주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주로 성경, 종교적 주제와 개인의 도덕적 각성, 사회문제, 그리고 문학적 소재를 다루며, 관찰력에 기반한 현실적 묘사와 심오한 상징의 결합이 큰 특징입니다.
Rome,Italy/Pinterest
South Kensignton/Away to the city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한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영국인 화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을 고대 유적과 르네상스 예술이 풍부한 이탈리아에서 보내며 예술적 감수성을 익혔습니다. 1854년 가족과 함께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후, 그는 사우스 켄싱턴에서 성장합니다. 청소년기부터 부친의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도왔고요. 1870년 영국 왕립미술학교( Royal Academy of Arts)에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조각을 전공했으나 곧 회화로 전향하여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워터하우스(Waterhouse)는 화풍의 측면에서 초기에는 고전주의적 아카데미즘( academic classicism)에 기반한 작품을 주로 발표했습니다. 1880년대부터는 라파엘 전파( Pre-Raphaelite Brotherhood) 화풍과 주제에 경도되었고요. 라파엘 전파는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출현한 미술 운동으로, 르네상스 이전의 순수하고 자연주의적인 미술로의 복귀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워터하우스는 이들의 빛, 색채, 세부 표현,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학과 신화 속 인물을 탁월하게 시각화하는 방식을 수용했습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신화, 아서왕 전설, 셰익스피어, 테니슨, 키츠 등 유명 문학작품의 주제를 여성 중심으로, 드라마틱하거나 비극적인 순간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여성은 때로 유혹적(femme fatale)이거나 비극의 희생자로 그려지며, 작품에 시적 상징성과 심도 있는 내러티브를 부여합니다. 또한 어두운 운명을 암시하는 촛불, 물결 속의 여성, 거울이나 직조물처럼 여러 알레고리가 자주 활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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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dy of Shalott, 1888-1905, Wadsworth Atheneun; Manchester Art Gallery/wikipedia The Lady of Shalott, 1888, 1894.1915, Tate Britain 외 다수 소장/wikipedia (우)
두 화가 모두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 Alfred Lord Tennyson)의 1832년 동명 시 < The Lady of Shalott>에서 모티프를 얻었습니다. 아서 왕 전설(Arthurian Legend)의 한 에피소드인 '엘레인 오브 아스토랏( Elaine of Astolat)'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재구성한 이 시는 , 현실로부터 단절되고 저주를 받아 탑에 갇힌 여인이 자신에게 금지된 세계로 나아가면서 맞는 운명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샬롯의 여인은 오직 거울을 통해서만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본 것을 태피스트리로 짜며 고립 속에 살아갑니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기사 랜슬롯( Sir Lancelot)에 매혹되어 결국 금기를 깨고 창문 밖을 직접 바라보게 됩니다. 이 계기로 저주가 발동되고, 그녀는 죽음을 예감하며 배를 띄워 카멜롯으로 향하다 강물 위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윌리엄 홀먼 헌트( William Holman Hunt, 1827-1910)의 작품은 테니슨 시의 극적 분기점인 샬롯의 여인이 금기로 여겨졌던 창밖을 직접 바라보아 저주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을 정교하게 표현했습니다. 시에서 샬롯의 여인은 카멜롯 인근의 탑에 유폐되어 거울에 비친 세상만을 보며 태피스트리를 짜도록 저주받은 존재입니다. 어느 날 화려하게 무장한 기사 랜슬롯의 모습에 매료됩니다. 견딜 수 없는 갈망에 처음으로 창밖을 직접 바라보자마자 거울이 깨지고, 저주가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이후 여인은 스스로 이름을 배에 새기고 강을 따라 카멜롯으로 떠나 최후를 맞이합니다.
The Lady of Sholott/Smarthistory
헌트의 그림에서는 샬롯의 여인이 원형 베틀(직조틀) 안에 선채, 그녀의 무릎에는 아직도 실타래가 걸려 있으며 이제 막 고개를 돌려 창을 응시한 역동적인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태피스트리는 해체되고 엉켜 그녀의 몸을 얽매며, 그녀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강렬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방 안에는 깨진 거울이 존재해, 바로 지금 저주가 발동된 순간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거울에는 무심히 지나가는 랜슬롯 경의 모습도 보입니다.
작품에는 헌트 특유의 라파엘전파( Pre-Raphaelite)적 상징과 정교한 세부묘사가 가득합니다. 방에는 두 개의 원형 부조(라운델)가 장식되어 있으며, 한쪽에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겸손), 반대편에는 사과를 훔치는 헤라클레스(용기)가 표현되어 있어 기독교적, 도덕적 함의를 강조합니다. 헤라클레스가 잠든 뱀을 이긴 장면은 샬롯의 여인이 자신의 의무를 등졌다는 암시적 대비로도 읽힙니다.
여성 형상의 별과 행성, 우주를 인도하는 모습을 담는데, 이는 '인내와 조화'를 상징합니다. 헌트가 샬롯의 여인에게 필요하다고 본 가치입니다. 바닥에는 붓꽃이 떨어져 있는데, 이는 빅토리아 시대 꽃의 언어에서 순결이나 희망, 신앙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그 순결성이 오염됨을 시사합니다. 방 한 편의 비둘기는 혼란 속에서 날아오르거나 도망가는 모습으로 평화의 상실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이전 미술의 세밀 묘사와 정직한 색채, 극단적인 자연주의를 중시합니다. 헌트는 거의 20년 가까이 이 작품을 준비, 구상, 제작하며 방 안 장식, 벽화, 세부 사항들까지 극도의 정교함을 추구했습니다. 르네상스와 고딕, 중세적 도상학은 물론, 본인이 소장했던 이탈리아 조각, 플로렌스 르세상스 예술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usTwS2tw3Y
워터하우스(Waterhouse)의 회화는 비극적 절정인 탑을 탈출하여 배에 올라타고 최후의 여정을 시작하는 장면을 표현합니다. 같은 주제로 1894년, 1915년 각기 다른 버전의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그림 중앙에는 인물 샬롯의 여인이 흰 드레스를 입고 강가의 작은 배에 앉아 있습니다. 오른손으로는 배를 묶고 있던 사슬을 느슨하게 풀고 있고요. 그녀의 표정에서는 체념과 슬픔, 그리고 죽음에 대한 덤덤한 받아들임이 읽힙니다. 약간 열린 입술은 죽음을 향한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순간을 암시합니다.
Tate
배 안에는 그녀가 탑 안에서 짜온 화려한 태피스트리가 깔려 있습니다. 여기에 묘사된 기사, 성, 강 등이 바로 그녀가 꿈꿔왔던 외부 세상을 상징합니다. 작품 왼쪽에는 탑에서 내려오는 곡선 계단이 보이고, 오른편 배경은 밝은 빛, 왼편은 어두운 그림자로 나뉘어 샬롯의 희망과 죽음 사이의 경계, 운명의 극적인 대비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에는 다양한 상징과 디테일한 소품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배 뱃머리에는 십자가와 묵주가 놓여 있어 그녀의 희생과 곧 닥칠 죽음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옆에는 세 개의 양초가 있는데, 두 개는 이미 꺼졌고 하나만 남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는 그녀의 삶이 거의 다했음을 암시합니다. 세 양초는 탄생, 삶, 죽음의 세 단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흰색 드레스는 순수함과 결백함의 상징이고, 샬롯의 무릎 위에 놓인 낙엽 한 장은 '떨어진 인생', 곧 삶의 끝을 암시합니다.
또한 그녀가 풀고 있는 사슬은 운명(스스로가 감금됐던 현실)에서 최소한의 해방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곧 다가올 죽음이라는 숙명적 굴레를 시사합니다. 배에 펼쳐진 태피스트리는 감금 생활의 산물이자, 그녀의 예술적 세계와 현실 벽의 상징입니다. 샬롯 주변의 자연풍경, 갈대와 물풀, 강 표면의 잔잔한 물결, 배 앞의 등불과 두 마리의 새 등은 당시 영국 자연의 디테일, 그리고 분리의 상징(새는 자유와 동경을 , 등불은 길잡이 없는 삶의 마지막 희망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Ul28M_kcL0
The Light of the World1851-1853, Keble College Oxford/wikipedia The Light of the World, 1853-1856, Manchester version(우)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윌리엄 홀먼 헌트( William Holman Hunt)의 <The Light of the World>는 1851년부터 1853년 사아에 제작된 대표적인 종교회화입니다.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핵심적인 미술적, 신학적 이념을 집약한 명작이고요. 이 작품은 신약성서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가 밤중에 등불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또한 가장 성공적으로 대중성과 신앙성을 결합한 사례로 꼽힙니다. 영국 성공회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형태로 복제되어, 프로테스탄티즘 시각문화의 대표작가, '영국적 종교화의 상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중심에는 전신을 담아 그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는 한 손에 밝게 빛나는 등불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낡고 잡초가 무성한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 문은 손잡이가 없고, 오랫동안 닫혀 있었음을 암시하는 녹슨 못과 경첩, 그리고 무성한 담쟁이와 잡초로 덮여 있습니다. 주변은 달빛이 비치는 밤의 정원으로, 사과나무와 다양한 식물 등 자연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이는 라파에 전파(PRB) 특유의 세밀한 관찰과 생생한 색채 사용이 잘 드러나는 예입니다.
/Pre Rapawelite Influenced Art
예수의 머리에는 금빛 오라와 가시관이 나타나 있는데, 이는 신성함과 동시에 예수의 희생, 고난을 상징합니다. 등불 광채와 금빛 오라는 신성한 빛, 영적 인도를 상징하며, 배경의 어둠과 강렬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문은 인간의 마음 혹은 영혼을 상징합니다. 외부에는 손잡이가 없어 오직 내부에서만 열 수 있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내면의 문을 두드리지만, 그 문을 여는 결단은 오직 각 개인에게 달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잡초와 낡은 흔적은 오랜 영적 무관심과 소외, 죄로 얼룩진 인간의 상태를 암시합니다. 예수의 등불은 구원의 빛, 진리, 영적 각성을 의미하고요.
예수의 모습은 기존의 교회 미술에 흔하지 않은 새로운 도상( Icon)으로, 단순한 인간 예수가 아니라 부활 후 영광스러운 천상적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는 헌트가 자신의 신앙 고백과 종교개혁적 의지를 담아 형식주의적 요소와 복음주의적 메시지를 융합한 결과입니다.
이 그림은 옥스퍼드 케이블 칼리지(1851-1853, 원본, 59.8*125.5cm) 버전이 있고, 맨체스터 시립미술관(1853-1856, 소형 버전), 그리고 런던 세이트 폴 대성당(1900-1904, 대형 버전)까지 세 가지가 주요하게 남아 있습니다. 세 번째 대형 버전은 1905-1907년 전 세계 투어를 거쳐 1908년 세인트 폴 대성당에 기증되어 오늘날까지 공개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9mZ4EWbl3o
The Light of the World, 1851-1854, 1900-64, St Paul's Cathedral version,London/wikipedia
St.Paul's Cathedral
https://www.youtube.com/watch?v=Yq1VntoIVuw
The Awakening Conscience, 1853,Tate Britain, London/wikipedia
방 안의 모든 오브제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존 러스킨-
윌리엄 홀먼 헌트( William Holman Hunt)의 < The Awakening Conscience>(1853) 작품입니다. 유화 작품으로 영국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에 소장되어 있으며, 라파엘 전파( Pre- Raphaelite Brotherhood)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그는 라파엘 전파의 창립 멤버로서, 자연에 대한 충실한 묘사와 문학, 도덕적 주제를 결합한 화풍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젊은 여성이 남성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영적 각성'의 순간을 맞이하여 일어서는 바로 그 찰나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여성은 팔을 앞으로 내밀고, 넋이 나간 듯 창밖을 바라보는 데, 바로 이 순간 과거의 순수함과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자기 삶의 도덕적 공허함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죠. 남성은 그녀의 반응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피아노를 치고 있고, 그 곁에는 급하게 벗어놓은 장갑과 상류층 남성의 상징인 모자가 놓여 있습니다.
detail/Artlex
방의 뒷면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어 창밖의 봄빛 정원이 반사되어 비춥니다. 이 빛과 자연이 여성이 새롭게 눈뜨는 구원의 가능성, 영적 재생, 탈출의 희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빛의 연출은 여성 뒤에서부터 드라마틱하게 비쳐, 그녀를 후광처럼 감싸며 성스러운 변화의 순간임을 부각합니다.
detail /Fat Cat Art
이 방은 새로 꾸며진 화려하고 값비싼 인테리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중산층 가정과 명백히 구분됩니다. 벽에는 당대 유행하던 프린트와 미완성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고, 바닥에는 풀린 실타래와 버려진 장갑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탁자 아래의 고양이가 부상당한 새를 가지고 노는 모습은 여성의 위태로운 처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고양이 =남성, 새 =여성)
detail/Artlex
이 그림은 라파엘 전파의 미술에서 가장 전형적인 특징인 세밀한 묘사, 선명한 색채, 상징적 구성 등을 잘 드러냅니다. 헌트 특유의 극사실적이고, 관찰에 기반한 묘사로 탄생한 인물, 가구, 직물, 금속의 질감을 또렷하게 그려냈습니다. 빛과 반사의 효과, 카펫과 의상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교하게 표현했고요. 공간은 좁고 꽉 차게 배치되어 여성을 둘러싼 심리적 압박감과 고립감을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벽지, 거울, 가구의 번쩍이는 질감도' 새로움'이 가진 위선과 공허함을 비판적으로 보여주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9gnM72T4D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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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ntine Rescuing Sylvia from Proteus, 1851, Birmingham Museums Trust 셰익스피어 '폭풍우'의 미란다 Miranda-The Tempest, 1916(우)
윌리엄 홀먼 헌트의 < Valentine Rescuing Sylvia from Proteus>(1851) 작품입니다. 영국 라파엘 전파 예술의 정수로, 셰익스피어 문학의 복합적 인간관계와 도덕적 긴장을 섬세한 사실주의 화풍, 선명한 색채, 상징적 구도로 구현해 낸 명작입니다. 사랑과 배신, 용서, 구원의 내러티브를 생생한 시각언어로 전달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두 신사 이야기 The Two Gentlemen of Verona>의 마지막 (5막 4장) 부분으로, 극적 결말에 해당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 밸런타인이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프로티우스로부터 연인 실비아를 구하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림의 좌우 상단에는 이 장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셰익스피어 대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문학과 시각예술의 결합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작품에는 총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합니다. 왼쪽부터 남장을 한 줄리아( Julia, 페이지로 변장), 실비아( Sylvia), 밸런타인 ( Valentine), 그리고 사죄하는 포즈의 프로티우스( Proteus)입니다. 줄리아는 변장한 채 프로티우스, 즉 사랑하는 이의 변절을 지켜보고 있으며, 실비아는 구출의 순간 충격과 혼란의 감정을 내비칩니다. 밸런타인은 단호하고 결의에 차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영웅적 존재로, 프로티우스는 죄책감과 갈등, 후회의 감정을 드러내며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배경에는 실비아의 아버지인 밀라노 공작 ( Duke of Milan)과 그를 따르는 일행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극적 긴장감을 더합니다.
이 작품은 라파엘 전파의 이상, 즉 '진실에의 충실함( truth to nature)'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헌트는 야외에서 실제 자연광 속에서 인물의 의상과 표정을 관찰하며 그렸고, 자연환경의 색채와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려 했습니다. 인물의 세밀한 옷 주름, 꽃과 잎사귀, 햇빛의 반사 등이 치밀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색상은 선명하고 대비가 뛰어나며, 인물의 감정 상태에 따라 따뜻하고 극적이고, 때론 차갑게 변화합니다.
존 윌리엄 워터 하우스( 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 Miranda- The Tempest>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 템페스트 The Tempest>를 시각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템페스트"는 1610-1611년에 창작된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 중 하나로, 마법사 프로스페로와 그의 딸 미란다가 권력 분쟁 끝에 섬에 유배된 후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룹니다. 미란다는 극 중에서 유일하게 무대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로, 세상의 사악함을 모르는 순수함, 연민, 인간적인 동정심을 지닌 인물입니다. 이 희곡의 첫 장면, 즉 미란다의 아버지가 일으킨 폭풍우에 휩쓸려 난파하는 배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마음 아파하는 장면이 워터하우스의 그림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집니다.
Miranda-The Tempest/wikipedia
그림의 전경에는 금발 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미란다가 해안 절벽 가까이 서서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우와 난파하는 배를 응시합니다. 미란다는 얼굴이 관람자와 반대 방향에 있어 표정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녀의 자세와 행동만으로도 내면의 슬픔과 절망이 강하게 표현됩니다. 미란다는 한 손을 가슴에 얹어 두려움, 동정심, 슬픔 등 복합적인 감정을 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배경에는 거친 파도와 광란의 하늘이 극적으로 그려져 있고, 거대한 암석들과 부서지는 난파선이 위기와 죽음의 분위기를 더합니다. 전체적인 색감은 차가운 회색, 파랑, 녹색 계열이 주를 이루어, 비극적이면서도 절제된 분위기를 극대화합니다.
워터하우스는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은 후기(neo-Pre- Raphaelite) 화가로 ,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 섬세한 색채 운용, 극적인 상징성을 바탕으로 문학적 주제를 깊이 파고든 화가입니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낮은 채도의 차가운 색상, 매끄러운 붓질, 자연광의 극적 효과, 그리고 감정 표출에 집중한 인물 묘사 등 후기 라파엘 전파의 전형적인 특징이 드러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vznOeSyESU
The Finding of the Saviour in the Temple, 1860, Birmingham Museums Trust /wikipedia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까?"
(루카복음 2:49)
윌리엄 홀먼 헌트의 < The Findig of the Saviour in the Temple>(1860) 작품입니다. 신약성서 루카복음 제2장 41-52절의 "예수의 성전 논쟁"장면을 묘사한 대표적인 종교 회화입니다. 헌트는 철저한 사실주의 와 원시적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당시 종교적 주제에 새로운 해석을 불어넣는 예술관을 실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작품으로, 예루살렘 현지 조사와 중동 지역의 인물, 복장, 건축연구를 기반으로 고고학적, 민족적 정확성을 추구한 점에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의 서사는 <루카복음 2장 41-52절>을 충실하게 재현합니다. 매년 유월절마다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열두 살 예수가 본문 주인공입니다. 유월절을 마치고 귀향길에 예수가 행렬에서 빠져나온 것을 모른 채 하루를 보낸 마리아와 요셉은 뒤늦게 예수를 찾아 예루살렘을 돌아가 성전에서 랍비들과 깊은 토론에 몰두한 예수를 발견합니다.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까?"(루카복음 2:49)라는 상징적 답변으로 자신의 신적 정체성과 사명을 자각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전면 중앙에는 어린 예수와 그를 감싸는 어머니 마리아, 뒤편에 선 요셉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예수는 푸른빛이 감도는 옷차림에 빛나는 후광이 드리워져 신성함을 드러냅니다. 냉철하고 지혜로운 표정으로 성전의 랍비들과 토론 중인 자세를 취하고 있고요. 마리아는 안도와 염려가 뒤섞인 표정으로 예수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반면 요셉은 곁에서 근심스러운 얼굴로 두 모자를 바라봅니다. 둘러싼 랍비들은 각기 호기심, 회의, 분노, 냉소 등 다양한 감정과 반응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의 신적 메시지를 앞에 두고서도 인류가 보이는 다양한 영적 태도를 상징합니다.
배경은 고대 예루살렘 성전의 실내로, 중동 지역 특유의 건축양식, 장식, 의복 세부까지 정밀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내 외부 공간이 동시에 묘사되어 있으며, 멀리 성전 밖으로는 올리브 산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성전 오른편에서는 인부들이 건축을 계속하고 있는 장면도 보이고요.
헌트 특유의 밝고 선명한 원색 사용과 극명한 명암 대비는 작품 전체에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푸른빛과 금색, 흰색이 주조를 이루며, 인물의 표정과 손짓, 복식과 성전 내부의 장식, 희생제물로 바쳐질 양, 날아오르는 비둘기 등 수많은 세부사항들은 실제성, 상징성, 화려함이 절묘하게 결합된 양식을 보여줍니다.
인물들의 표정을 한 번 볼까요. 예수는 고요하면서도 단호하고, 신비로운 표정과 당당한 자세를 통해 열두 살의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신적 사명 의식을 드러냅니다. 그의 허리띠에는 십자가 장식이 있어, 훗날 희생과 구원의 상징을 암시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인간적 연민과 고민, 자식에 대한 사랑과 경외, 신성한 사명을 앞에 둔 분열된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율법학자들은 각기 다른 얼굴 표정과 제스처로 종교적 권위, 전통, 회의, 반발, 무지, 호기심 등 인간 영혼의 복합성을 보여주며, 그 속에는 거만함, 신앙의 경직성 등이 담겨 있습니다. 성전 밖의 눈먼 거지는 예수 사역의 대표적 기적으로 시각의 회복과 영적 깨달음의 상징입니다.
헌트는 직접 현지 모델을 섭외하고, 중동에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 얇은 유화 층을 연속적으로 쌓아 올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당시 영국 종교화에 새로운 리얼리티와 심리적 깊이, 생생한 질감을 더한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되었습니다.
작품 완성 직후부터 평단의 뜨거운 관심과 대중적 호응을 받았습니다. 찰스 디킨스가 높은 가격 (5,500파운드)에 구입할 만큼 화제였으며, 순회 전시와 판화를 통한 대중적 유통으로 폭넓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예수를 노동 계급 출신 유대인 소년처럼 묘사한 점, 과도한 사실주의로 인해 종교적 엄숙함이 악화된 점을 문제 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기독교 미술의 새로운 형태의 구현으로 칭송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U1TWL7oQwI
Tristan and Isolde with the potion,1916/wikipedia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 Tristan and Isolde with the Potion>(1916) 작품입니다. 중세 유럽의 대표적 로맨스이자 비극인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을 주제로 한 유화 작품입니다. 개인 소장 컬렉션에 속해 있어 일반 미술관, 박물관 관람이 어렵습니다. 이 그림은 워터하우스 말년의 대표적 걸작으로, 라파엘전파(PRB)적 세밀함과 색채감, 그리고 상징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켈트계 중세 유럽 전설이자, 아서 왕 전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트리스탄은 콘월의 마크 왕의 충성스러운 기사로, 삼촌을 위한 정치적 결혼 목적으로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를 맞이하러 떠납니다. 귀환 도중 두 사람은 실수 혹은 운명의 장난처럼 사랑의 묘약을 함께 마시게 되는데, 이 사건이 두 인물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시작이자, 중세 로맨스 비극의 원형을 이룹니다. 이 비극적 삼각관계는 훗날 아서 -기네비어-랜슬롯 서사의 모티프가 됩니다.
워터하우스는 선상 갑판을 배경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마주 선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두 인물은 그림 중앙에 비슷한 높이로 배치되어, 나란히 혹은 약간 마주 보듯 서 있습니다. 이졸데는 양손으로 황금빛 잔을 움켜쥐고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트리스탄을 바라봅니다. 트리스탄 역시 이를 받아들이는 듯 체념과 숙명을 암시하는 동작을 취하고요. 트리스탄의 곁에는 기사로서의 신분을 상징하는 갑옷, 헬멧, 검이 놓여 있고, 이졸데 쪽 배경에는 왕좌가 어렴풋이 드러나 있어 그녀가 마크 왕과의 결혼을 앞두었음을 암시합니다.
캔버스 전체에는 분명한 색채 대조와 조화가 돋보입니다. 이졸데의 붉은빛이 도는 진홍색의 드레스,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망토와 머리카락, 금빛 잔의 눈길을 끄는 반사광 등은 내러티브의 긴장감을 고조합니다. 뒤편에는 거친 바다와 절벽, 성채(혹은 항구)가 희미하게 보이며, 두 연인의 운명과 장애, 그리고 금지된 사랑의 격렬함까지 시각적으로 암시합니다. 색채 면에서는 따뜻한 붉은색, 금색, 녹색이 주를 이루어 강렬한 감정, 에로스적 힘, 생명력, 그리고 슬픔과 갈등의 분위기를 모두 전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gifhh4pQ10
The Birthday, 1868 Toledo Museum of Art /wikimedia commons Boreas,1903/wikipedia.
아카데미에 속해 있지만, 그 밖에 있는 작가
윌리엄 홀먼 헌트의 <The Birthday>(1868) 작품입니다.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미학과 빅토리아 시대의 복합적 감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은 헌트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에디스 워( Edith Waugh)-그의 첫 아내이자 이미 세상을 떠난 패니의 여동생-의 21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그 표제와 달리 환희보다는 깊은 슬픔과 묵직한 상념,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의 내면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화가 나 관람자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얼굴을 돌린 채 서 있고요. 이는 그녀가 여전히 가족의 최근 상실(특히 언니 패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에디스( Edith)의 손에는 산호와 호박 구슬, 장식된 부채, 황금 액세서리, 고급 망토 등 값비싼 선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고 다소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질적 즐거움이 그녀의 슬픔을 덮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죠.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Boreas>(1903)는 라파엘전파의 (Pre-Rahaelite) 양식을 따르는 유화 작품입니다. 신화, 자연, 인간의 감정이 조화롭게 녹아있는 20세기 초 영국 미술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라파엘 전파가 추구하던 세밀한 자연 관찰, 생생한 색채, 시적이고 상징적인 인물 표현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의 후기 작품으로 제목인 < Boreas>는 그리스 신화의 북풍의 신을 의미합니다. 1903년 영국 왕립 아카데미( Royal Academy)에서 초연되었으며, 이후 약 90년간 사라졌다가 1990년대 중반에 경매 시장에 재등장해 큰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pinterest
이 작품의 크기는 68.8*94cm로 유화 작품입니다. 현재는 개인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와 사진, 출판물을 통해 꾸준히 미술 팬들과 연구자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의 중심에는 강풍에 드라마틱하게 휘날리는 슬레이트색, 연보라 색, 그리고 푸른색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과 망토가 역동적으로 날리면서, 두 손으로 헝클어진 의복을 부여잡거나 억지로 누그러뜨리려는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화면 오른쪽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은 고요함과 불안, 우스와 강인함이 교차되는 심리 상태를 암시합니다.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는 그녀의 오른쪽 귀 뒤에 꽂힌 노란 수선화입니다. 수선화는 주변의 분홍빛 봄꽃들과 더불어 여성성과 부드러운 삶의 힘, 그리고 봄의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이 밝은 디테일은 배경의 푸른색과 차가운 바람이 주는 분위기와 대비되어 더욱 인상적입니다. 이전 작가들의 남성적 북풍(Boreas)의 이미지와 상당히 다른 면도 눈에 띄고요.
Boreas abducting Oreithyia by Sebastiano Conca(1680-1764)/wikimedia Commons
https://www.youtube.com/watch?v=r18wQZMH9G8
https://www.youtube.com/watch?v=hIi3A9l9M1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