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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베네치아의 심장과 스페인의 영혼

틴토레토& 엘 그레코



르네상스 후기, 즉 1520년대 이후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1452-1519),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1483-1520) 같은 거장들이 인체 묘사와 원근법, 공간 구성 등에서 완벽함에 도달합니다. 일부 예술가들이 더 이상의 다른 시도를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 시기의 유럽은 종교개혁, 가톨릭 반개혁, 지리상의 대발견, 과학적 세계관의 변화, 정치 사회적 혼동 등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감과 불확실성, 그리고 전성기 르네상스 미술의 완벽한 질서로 인한 답답함이 예술가들 사이에서 새롭게 싹트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르네상스에 반기를 들고 뒷 세대인 바로크의 자양분이 되어 준 ‘매너리즘(Mannerism)'화가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1518-1894)와 엘 그레코( El Greco, 1541-1614)의 작품 세계를 살펴볼까 합니다.










매너리즘( Mannerism)은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7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예술사조입니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적 완벽함, 조화, 비례에서 벗어난 새로운 예술 경향을 의미하고요. '매너리즘'이라는 용어 자체는 이탈리아어 '마니에라 (양식 maniera)'에서 유래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술가가 개성을 갖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나친 형식적 모방을 의미하는 다소 부정적 의미도 함축하고 있는 용어입니다.




Madonna with the Long Neck by Parmigianino, 1535-40, Uffizi, Florence/Art in Context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 1503-1540)의 <목이 긴 성모 Madonna with the Long Neck>(1535-40) 작품입니다. 르네상스 회화에 비해 사지가 늘어진 모습 보이시나요. 대부분 매너리즘 회화와 조각은 인체 비례의 왜곡이 있습니다. 과장되거나 사지의 늘어짐, 부자연스러운 포즈, 그로 인한 불안정하고 비대칭적인 구도가 특징입니다. 화면의 중심추와 평형을 일부러 깨뜨려 불안감, 왜곡된 공간감, 감정의 긴장감 등이 두드러집니다. 매너리즘 작품은 르네상스 시기의 객관적 공간과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일부러 파괴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예술가의 개인적 주관성, 내면의 혼란, 영적 갈등을 드러냅니다.






오늘의 주인공 틴토레토( Jacopo Tintoretto, 1518-1594)와 엘 그레코( El Greco, 1541-1614)가 살았던 베네치아와 스페인의 분위기를 잠시 살펴봅니다.




베네치아는 중세 말 이후 유럽과 동방을 잇는 교역 중심지로 번성했으나, 16세기 들어 신항로 개척과 국제 무역의 변화로 경제적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 정부는 민첩한 외교력을 바탕으로 동맹과 조약을 맺어 안정적인 교역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예술가들 또한 이러한 사회 경제적 변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오늘 주인공 틴토레토(1518-1594) 역시 경쟁이 심화된 시장 속에서 많은 작품을 생산하고, 낮은 가격을 감수하는 등 불확실한 경제 현실 속에서 예술적 활동을 펼쳐야 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예술 시장이 경제 여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으며, 특정 계층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계층의 후원자에게 의존하는 구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특히 스쿠올레(교회중심의 형제회)와 같은 민간단체들이 시민사회, 예술 후원, 자선 사업, 종교 교육에서 막대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스페인은 16세기 카를 5세와 필레페 2세 시대에 대서양 무역과 신대륙의 수입으로 경제적 황금기를 누렸으나, 엘 그레코(1541-1614)가 활동하던 시기는 장기간의 해외전쟁, 내수 침체, 높은 실업률, 그리고 귀족 경제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 시점이었습니다. 더불어 16세기말 17세기 초로 접어들면서 스페인은 점점 심각한 경제 위기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러한 환경은 문화예술 활동 전반에 직접접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강력한 가톨릭 신앙과 종교 개혁의 여파, 그리고 스페인 르네상스의 영향 아래 매우 독특한 예술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엘 그레코는 톨레도라는 스페인 종교 예술 중심지에서 활동하며, 내부로는 비잔틴 전통(그리스출신)과 이탈리아 매너리즘(베네치아, 로마에서 활동)을 융합한 새로운 양식을 창출했습니다. 스페인 사회의 극진한 종교적 열기, 성찰적이고 신비로운 경향, 신체 묘사보다 영혼의 드라마를 강조하는 사조 등이 작품 양상에 깊게 반영되었습니다. 이 시기 예술은 단순한 미적 표현 수단을 넘어, 신앙심 고취와 사회적 질서 유지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두 화가 모두 대부분의 대표작이 성서의 중요한 사건이나 성인전 등 종교적 소재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신앙적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거나 영적 분위기 창출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얘기죠. 베네치아에서 활동하거나 영향을 받아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 사용, 풍부한 명암 표현, 그리고 극적인 조명의 사용이 두드러집니다. 인물들의 동작과 심리 표현, 드라마틱한 내러티브 연출이 뛰어나 보는 이로 하여금 현장감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점을 살펴보면, 틴토레토는 근육질의 신체와 극적인 동작, 현실적 구조 감각을 강조한 반면, 엘 그레코는 비현실적으로 길게 늘어진 신체와 왜곡된 구도로 영적 신비감을 더합니다. 틴토레토는 빠른 붓질( Prestezza)과 거친 필치로 현장성과 역동성을 부여한 반면, 엘 그레코는 느슨하면서도 상징적이고 섬세한 붓질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틴토레토는 극적인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 대각선 구도, 천장화 등 공간의 깊이와 극적 조명을 추구하였고, 엘 그레코는 내부에서 발산되는 듯한 신비한 빛과 초현실적 색상, 공간과 형태의 융합을 강조합니다. 틴토레토는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그 지역적 전통에 뿌리를 둔 작가입니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크레타)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베네치아, 로마), 스페인(톨레도)으로 옮겨 다니며 동서양 미술 전통을 융합한 화가입니다. 틴토레토(1518-1594)는 베네치아 내에서 대규모 공공 주문을 받거나, 성당이나 공회당에 작품을 남기며 바로크 미술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엘 그레코(1541-1614)는 생전에는 스페인 톨레도에서만 인정받다 오랜 시간 평가절하되었습니다. 그러다 19세기 낭만주의 , 20세기 모더니즘에 의해 재발견되어 현대적 영감의 원천으로 부상했고요. 대부분의 주요 작가들이 그의 왜곡 미학과 강렬한 색채, 정신적 신비주의 속에 현대적 미술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모양입니다.







나무위키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1518-1594) 본명은 Jacopo Robusti입니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르네상스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이지요. 그의 아버지는 염색공( tintore)이었기 때문에 'Tintoretto'(작은 염색공)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 이름으로 예술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로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며 평생을 거의 그 도시에서만 보냈습니다.




'Michelangelo ed il colorito di Tiziano'
-미켈란젤로의 드로잉, 티치아노의 색채-



틴토레토의 화풍은 대담함과 역동성, 그리고 혁신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힘찬 인체 드로잉과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 1576)의 화려한 색채를 결합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작업실 벽에 'Michelangelo ed il colorito di Tiziano'라는 좌우명이 붙어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근육질의 역동적 인물, 극적인 포즈와 강렬한 색채, 과장된 원근법,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비(키아로스쿠로)가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입니다.



il Furioso(격정적인 자)



캔버스에 두껍게 물감을 올리는 임파스토 기법과 , 펜 대신 붓으로 그리듯 빠르고 자유분방한 붓놀림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로 인해 그의 그림은 종종 미완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현장감이 느껴지고요. 그는 종교적, 신화적, 인물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300여 점의 대작을 남겼습니다.






목장드림뉴스(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Hk6Mvx6uCYo





동아일보



엘 그레코(El Greco, 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Domenikos Thotokopoulos)는 1541년 그리스 크레타 섬( 당시 베네치아령 칸디아, 현 이라클리오)에서 태어나 1614년 스페인 톨레도에서 사망한 천재적인 화가, 조각가, 건축가입니다. 그는 비잔틴 미술 전통에서 회화에 입문해, 20대 중후반에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미술을 체득했습니다. 1577년에는 스페인 톨레도로 이주하여 대부분의 예술 인생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작품은 비잔틴, 베네치아 르네상스, 그리고 매너리즘의 세 가지 요소가 독창적으로 융합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는 인체의 비례를 의도적으로 길게 늘이고 왜곡하여 초현실적인 긴장감과 영적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이는 천상과 지상의 경계, 영혼의 고양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노력이었습니다. 톨레도의 영적 환경과 스페인의 강렬한 종교성이 엘 그레코 화풍의 중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색채는 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베네치아에서 익힌 강렬하고 대담한 색 사용, 조화롭거나 때로는 의도적으로 불협화음을 내는 색조의 배치가 두드러집니다. 그는 명암의 극적인 대비, 드라마틱한 조명 효과, 평면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공간 구성 등 혁신적인 기법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단순한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과 종교적 신비를 강조하는 데 목표가 있습니다.








Toledo/wikipedia





https://www.youtube.com/watch?v=q2_EHAeGdGM




View of Toledo, 1596-1600/wikipedia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View of Toledo> 작품입니다.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소장되어 있고요. 주제는 화가 스스로 평생을 보낸 스페인 톨레도(옛 수도)의 전경을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은 16세기말, 유럽이 세기말적 불안과 종말론적 분위기 속에 있던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톨레도는 수도 지위를 마드리드에 빼앗기고 영광을 상실한 , 종말론적 분위기가 강하게 감돌았던 도시입니다. 엘 그레코는 이 도시에서 깊은 애정과 동시에 시대적 불안, 인간 영혼에 대한 사유를 담아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작품은 도시의 실제 모습을 단순히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 본질과 시대적 정서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도시의 건물을 일부 실제와 다르게 재배치하면서 더욱 또렷해집니다. 화가는 풍경을 통해 톨레도 자체가 운명과 시련의 시험대 위에 있는 듯한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그림의 중앙 아래에는 언덕 위에 자리한 톨레도 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주요 건축물인 대성당과 알카사르(왕궁), 알칸타라 다리 등의 상징적 건물들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들 중 일부(특히 대성당)는 실제 지형과 달리 예술가의 의도에 따라 위치가 변경되어 그려졌습니다. 도시와 자연 풍경의 비중을 비교할 때, 전체 화면의 상당 부분이 하늘과 구름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그림 전체를 지배하며 긴장감과 신비로운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형성합니다.






하늘은 폭풍이 몰아치는 듯 어둡고 무겁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어두운 하늘은 밝고 생동감 넘치는 녹색 언덕, 그리고 비교적 명료한 도시와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도시는 밝고 차가운 회색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강렬한 명암의 대조 속에서 종말론적 절망과 구원에 대한 희망까지 복합적으로 전달합니다.





엘 그레코는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 사용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하늘과 구름 부분에서는 녹색, 파란색, 회색 등 여러 가지 색조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밝고 어두운 빛이 충돌하면서 신비롭고 영적인 효과를 자아내고요. 빛과 그림자가 강조된 명암 대비는 형태와 공간감을 극대화시킵니다. 이로 인해 그림 전체에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고요. 이처럼 극명한 색채와 명암의 활용은 일상적 풍경의 사실성이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적 감정과 종교적 신비주의를 반영합니다. 더불어 엘 그레코 특유의 왜곡된 형태와 길게 뻗은 선 처리, 자유로운 구성이 전체 분위기에 긴장과 에너지를 더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r-J6a635UM






https://www.youtube.com/watch?v=xpr5mjLTyvE





Crucifixion,1565, Scuola Grande di San Rocco, Venice/wikipedia

The Resurrection, 1577-1579/wikimedia commons(우측)





틴토레토(본명:자코포 로부스티)가 1565년에 완성한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 Crucifixion> 작품입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로코 스쿠올라 ( Scuola Grande di San Rocco) 대연회실( Sala Dell'Algergo)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대작입니다. 이 작품은 크기가 약 5.18미터(세로)* 12.24미터(가로)로, 압도적인 스케일의 캔버스 유화입니다. 매체는 당시 베네치아 화단에서 널리 사용된 유화(오일 페인팅)로 , 틴토레토 특유의 빠르고 힘찬 붓 터치와 마니에리스모 양식이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San Rocco Venice Tintoretto Crucifixion/ Visit Venice Italy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골고다 언덕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파노라마처럼 담아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약 70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이 배치되어 있고요. 이는 르세상스 후기 베네치아 회화 중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입니다. 중앙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초자연적 빛을 머금은 채 어둠과 혼돈의 한가운데 힘 있게 우뚝 서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른쪽 대각선에는 '선한 죄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이 연출되고, 그의 참회의 시선과 예수님과의 교감이 성경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합니다.





예수 주변의 혼잡한 군상은 다양한 사회계층과 개성적인 인물들로, 십자가에 못 박는 병졸들,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는 무리,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와 여인들, 병사들, 사도 요한, 구경꾼, 로마 백 부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인물들은 과장된 동작과 다양한 표정, 극적인 몸짓을 통해 각기 다른 감정과 정신세계를 드러냅니다. 양쪽에는 두 강도를 십자가에 세우려는 인부들이 격렬한 힘을 보이며, 병졸들은 예수님의 옷을 세속적으로 나누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무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San Roco Venice Tintoretto Crucifixion Jacopo Robusti/ Visit Venice Italy




틴토레토는 극적인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 역동적인 사선 구도, 과장된 원근법을 사용하여 작품에 강한 시각적 에너지를 불어넣었습니다. 어둡게 처리된 배경 위에 예수님은 초자연적 빛을 발하며, 이 빛이 주변 인물들의 극적 표정과 몸짓을 강조합니다. 전체적으로 화면은 암흑에 휩싸여 있으나, 예수의 얼굴과 몸에서 나오는 빛은 종교적 희망과 부활, 초월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인물들의 색채는 베네치아 회화 고유의 깊고 풍부한 색감과 더불어, 신성성을 상징하는 청색과 붉은색, 그리고 당대 베네치아 시민의 복식 등 현실적인 측면도 함께 묘사되었습니다. 인물들의 동작과 움직임을 유도하는 사선과 구성은 화면에 긴장감과 리듬을 부여하며, 중앙의 예수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모아지게 합니다.







San Rocco Venice Tintoretto Crucifixion /Visit Venice Italy




십자가 아래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 요한, 여인들의 모습은 고통과 사랑, 충실함을 보여줍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드라마틱한 분위기 속에 , 틴토레토는 정통 가톨릭 신앙의 교리(자비, 희망, 부활신앙)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여 보여줍니다. 당대 종교개혁과 가톨릭 반종교 개혁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 그림은 근본적인 희망, 신앙의 영속성, 인간 내면의 변화와 구원을 기념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jKWjndslzs





엘 그레코( El Greco, 1541-1614)의 <The Resurrection>(1577-1579) 작품입니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적 승리와 그 신비에 놀라는 인간 군상의 극적인 감정을 빛, 색채, 구도, 그리고 인체의 왜곡을 통해 시각적으로 승화시킨 종교 회화의 걸작입니다.




엘 그레코(1541-1614)가 1577년에서 1579년 사이에 제작한 < 부활 The Resurrection > 작품입니다. 스페인 톨레도에 위치한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 교회의 측면 제단을 위해 그려진 대형 종교화입니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진 것으로 크기는 약 210Cm(세로)* 128cm(가로)에 달합니다. 현재 이 그림은 최초 제작 장소인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 교회의 측면 제단에 그대로 소장되어 있습니다.





The Resurrection,1577-1579/Gettyimages








작품은 세로로 길게 뻗은 캔버스를 활용한 극적인 구도가 특징입니다. 정중앙에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가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 하얀 승리의 깃발을 들고 하늘로 떠오르는 듯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고요. 예수의 몸은 현실적인 비례를 벗어나 길게 늘어나 있으며, 주변에는 영광을 상징하는 강렬한 빛이 둘러져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감싸는 붉은 망토는 사랑과 자애, 하얀 깃발은 순결과 진실, 죽음을 넘어선 승리를 의미합니다.




detail/Alamy





예수 발아래에는 무덤을 지키던 여러 명의 로마 병사들이 혼돈스럽게 흩어지거나 두려움에 잠긴 표정으로 등장합니다. 병사들의 극적인 자세와 감정적 표정으로 부활의 초자연적 사건에 놀라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일부 병사는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겁에 질려 달아나는 등 각기 다른 동작을 보여줍니다. 노랗게 빛나는 갑옷을 입은 병사와 초록색 복장의 병사 등 생생하면서도 동적인 묘사가 돋보입니다. 이러한 병사들의 자세와 배열은 화면에 역동성과 긴박감을 불어넣습니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비잔틴 이콘 양식, 이탈리아 르네상스(특히 틴토레토와 미켈란젤로), 그리고 스페인 신비주의적 종교 미술을 융합해 독보적 작품세계를 구축한 대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엘 그레코는 인물의 왜곡, 극대화된 빛과 색채, 격정적인 붓놀림 등을 통해, 당시의 고전적 조화와 사실주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적 회화양식을 개척했습니다. 이 작품은 이후 표현주의, 추상주의, 모더니즘 미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피카소와 세잔, 독일 표현주의 자들에게까지 영감을 준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qJFu3-XyoM









https://www.youtube.com/watch?v=ozg5aF3gZAM






The Miracle of the Slave,1548/ Gallerie dell'Accademia in Venice





틴토레토가 1548(30살)년에 완성한 < 노예의 기적 The Miracle of the Slave>(1548) 작품입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대형 유화로, 베네치아의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평신도 단체인 산마르코 대형 회합소( Scuola Grande di San Marco)의 의뢰로 그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가로 416cm, 세로 544cm에 이르는 거대한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로 그려졌으며, 현재 베네치아의 Gallerie dell'Accademia에 소장 및 전시되어 있습니다. 1797년 프랑스 점령기에 프랑스에 압수되었으나, 1815년 반환되어 현재의 장소에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그림은 베네치아의 수호성인 성 마르코가 한 기독교 노예를 고문에서 구해내는 극적인 순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중심에는 벌거벗은 상태로 바닥에 누워 고문에 처해질 위기에 놓인 노예가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그를 벌주려는 부유한 프로방스 옷차림의 주인과 그 하수인들이 있고요. 성 마르코는 하늘 위에서 밝은 붉은색과 오렌지색 망토를 휘날리며 거침없이 하강하는 자세로 그려져, 신성한 구원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인물들은 여러 계층 (군중, 하인, 귀족, 형벌 집행자 등 )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모두가 각기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기적의 순간을 바라보며 놀라고 경외로운 모습입니다.




작품은 중세 성인전 'Legenda Aurea'(황금전설)에 나오는 성마르코의 기적담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침묵과 포기의 표정을 띤 노예, 그리고 허망하게 부서진 고문 도구들 (망치, 도끼 등)은 인간의 고통과 신성한 개입의 대비를 강하게 부각시킵니다. 고문을 지시한 주인은 화면 오른쪽 위 높은 왕좌에 앉아 있어, 세속 권력과 신성의 대립이 화면 구조로도 잘 드러납니다.






틴토레토는 매우 비대칭적이고 역동적인 구도를 활용했습니다. 성 마르코와 노예 사이에 강렬한 시각적 축을 형성하고, 그 중심을 기준으로 주변 인물들은 소용돌이치듯 배치되어 마치 사건의 한가운데 직접 들어와 있는 듯한 몰입감을 줍니다. 군중과 인물들은 원형 또는 반원형으로 겹겹이 배치되어, 관람자의 시선을 중심 사건에 집중시키는 동시에 연극적 장면 효과를 배가시킵니다. 천장이 매우 높아 보이도록 배경의 건축적 요소를 과장하고, 원근법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드라마틱한 공간감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성 마르코의 하강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41Wh7jhoxc






Judith and Holofernes by Tintoretto, 1577/wikipedia





틴토레토의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유화로, 캔버스에 그려진 대형 작품입니다.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8세기 중엽 스페인 왕실 컬렉션에 들어온 뒤 프라도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한때 틴토레토 본인의 젊은 시절 작품으로 간주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의 작업실에서 그려진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구약성서 외경인 '유딧서'(Book of Judith)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주제로 합니다. 주인공 유디트는 이스라엘 도시 베툴리아의 미망인으로, 적장 홀로페르네스가 이끄는 아시리아 군대에 대항해 용기와 지혜를 발휘합니다. 유디트는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술에 취하게 만든 뒤 그가 잠이 들었을 때 그의 목을 잘라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는 영웅적인 행동을 펼칩니다. 작품에는 흔히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그리고 때로는 유디트의 시녀가 등장하지만, 틴토레토의 이 그림은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두 인물의 강렬한 대립과 극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유디트는 '정숙'과 '겸손'의 미덕을 , 홀로페르네스는 '무절제'와 '욕심' '교만'을 상징합니다.







틴토레토 특유의 강렬한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는 인물의 심리적 긴장감은 물론 서사의 깊이를 동시에 살려냅니다. 유화 특유의 깊은 색감과 틴토레토 특유의 진한 인디고와 금빛채색이 어우러져 화면 전체에 묵직한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그는 별명처럼 빠른 붓놀림, 에너지 넘치는 인물 묘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기법들은 단순한 사실적 재현을 넘어,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의 서사와 인물의 감정에 동화되도록 만듭니다. 또한 틴토레토의 스타일은 베네치아의 화려한 색채(티치아노의 영향)와 미켈란젤로의 근육질 인체 표현의 결합이라는 베네치아 매너리즘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같은 주제의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1571-1610)와 자신을 가르치던 스승으로부터 직접 성폭력을 당했던, 그러나 화가라는 정체성으로 삶을 승화시킨 아르테미시아 젠틀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의 작품도 함께 감상해 보세요.





Judith Beheading Holofernes by Caravaggio, 1598-1599 or1602/wikiepdia




Judith slaying Holofernes by Artemisia Gentileschi, 1620, Uffizi, Florence/wikipedia






The Burial ot the count of Orgaz, 1586-1588






엘 그레코( Domenikos Theotokopoulos)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1586-1588) 작품입니다. 대형 유화로, 스페인 톨레도 ( Toldeo) 산토 토메( Santo Tome) 교회의 부속 예배당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회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힙니다. 그 엄청난 크기( 약 480*360cm)에 걸맞게 유럽 미술사에서 걸작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스페인 톨레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중세의 종교적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14세기 초, 오르사스 백작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 Gonzalo Ruiz de Toledo)는 교회의 열렬한 후원자로 죽은 뒤 산토 토메 교회에 매장되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천국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스테파노가 직접 내려와 그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했다고 전해집니다. 16세기에 백작의 기부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일이 발생했고, 교회 주임신부였던 안드레스 누녜스 드 마드리드가 소송을 통해 권리를 되찾은 후, 이 전설의 기적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엘 그레코에게 의뢰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화면이 상하, 즉 천상과 지상으로 뚜렷하게 분할되어 있습니다. 하단(현세)을 보면, 성 스테파노(왼쪽)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오른쪽)가 화려한 황금색, 붉은색 성의를 입고 백작의 시신을 정중하게 들어 무덤에 안치하고 있습니다. 백작은 16세기 당시의 정교한 갑옷을 입고 있고요. 둘러싼 군중은 대부분 실제 당대 톨레도의 귀족, 성직자, 명사 등으로 그려졌습니다. 이 중에는 의뢰자인 누녜스 신부(오른쪽 독서하는 인물>, 엘 그레코 자신의 자화상( 성 스테파노 위쪽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인물), 그리고 작가의 어린 아들 호르헤 마누엘(왼쪽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장면을 지시하는 소년)도 그려져 있습니다. 군중의 복장, 표정, 제스처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며,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상단 (천계)는 완전히 대비되는 영적 세계로, 구름이 휘몰아치는 공간 안에 영롱하게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세례 요한, 천사와 성인들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좌우에는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전통적인 데에시스( deesis, 간절한 기도) 구도로 배치되어 있으며, 한가운데에서는 천사가 백작의 영혼(아기의 형상)을 들고 예수께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09QNm3XKW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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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Supper, 1592-1594/wikipedia The Disrobing of Christ, 1577-1579/wikipedia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1592-1594)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조르조 마조레 대성당( Basilica di San Giorgio Maggiore)에 소장되어 있는 대형 유화 작품입니다. 크기는 약 365*568cm에 달합니다. 이 작품은 그가 생애 마지막 시기에 완성한 대표작 중 하나이며, 이후 바로크의 태동을 예고하는 드라마성과 상징성, 그리고 종교적 열정을 담은 만년의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교회 자체의 의뢰로 제작됐으며, 당시 가톨릭 교회의 반종교개혁( Count-Reformation)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작품은 유럽 종교개혁(프로테스탄트 운동)에 맞서 신앙의 신비와 성체 성사(성찬례, Eucharist) 교리를 강조하려 했던 가톨릭 교회의 예술 전체에 잘 부응하는 예로, 신앙의 감동과 교리를 동시에 전달하려는 목적이 잘 녹아 있습니다.





The Last Supper by Leonardo da Vinci, 1495-1498/wikipedia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은 전통적인 구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있습니다. 고전적이고 대칭적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달리, 테이블은 화면을 대각선으로 깊게 뻗으며 공간의 원근법이 극적으로 강조됩니다. 방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이질적으로 깊고 넓어 보이며 경사진 테이블 위에 사도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은 모습은 긴장감과 역동성을 줍니다. 이런 비대칭적인 구도는 당시 매너리즘( Mannerism)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작품 전체에서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조(키아로스쿠로 효과)가 두드러집니다. 밝은 성광(holo)을 내뿜는 예수는 장면의 중심이자 주요 광원이며, 천정의 램프에서도 강한 빛이 쏘아져 나갑니다. 두 빛은 방을 신비롭게 밝혀주며, 특히 이 두 광원에서 퍼져 나오는 빛이 예수와 사도들의 머리에 작게 확산되고, 그 신성함을 강조합니다.







The Last Supper by Tintoretto,1594/Catechetical Review








장면 상단에는 투명하게 떠오르는 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환상적 형상들은 성령과도 연결되며, 성체 성사의 신비와 현장에 함께하는 하늘의 증인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현실적인 하인, 음식을 준비하는 여성, 개와 고양이 등 일상적인 존재들도 등장해 화면에 현실감을 더하고, 성스러운 현장과 일상의 혼재를 더욱 강조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단순히 최후의 만찬 장면 재현을 넘어, 천상과 지상을 동시에 보여주며 성체성사의 신비를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배반자 유다의 반응이나 사도들의 다양하고 긴장된 표정에 집중했던 고전적 <최후의 만찬>과 달리, 틴토레토는 예수가 빵을 직접 사도에게 입에 넣어주는 의식(성체성사)을 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성찬의 실체와 그 신비를 시각화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hsjS5CtCTE






엘 그레코( El Greco, 1541-1614)의 < The Disrobing of Christ>)(El Expolio)는 1577년부터 1579년 사이에 제작된 대표적인 종교화로, 스페인 톨레도 대성당의 제의실(사제 의복을 보관하고 미사 준비를 하는 공간)을 위해 의뢰되어 완성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처음 도착한 이후 받은 대규모 공식 주문 중 하나로, 그의 매너리즘적 화풍이 스페인 종교미술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The Disrobing of Christ by El Greco, The Toledo Catherdral/Flickr





톨레도 대성당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으나, 당시 주문자들과는 가격 및 여러 도상적 요소(예: 세 마리아 등장 등)를 두고 상당한 논란과 법정 분쟁까지 겪기도 했습니다. 작품 가격을 둘러싼 갈등에도 불구하고 결국 교섭과 타협을 통해 마무리되었으며, 이후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이름을 스페인 미술계에 확고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옷이 벗겨지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합니다. 화면 정중앙에는 붉은 옷을 입고 굳건히 서 있는 예수가 자리하며, 그 시선은 비스듬히 위쪽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예수의 얼굴은 담담하며 초월적인 평온함이 느껴지는 반면, 그 주변을 둘러싼 병사와 군중들은 혼란, 조롱, 폭력성 등의 다양하고 거친 표정과 몸짓을 보입니다.



detail/Nice Art Gallery





예수의 왼쪽에는 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가 예수의 손에 묶인 밧줄을 잡고 있습니다. 곧 예수의 옷을 벗기려 하나 봅니다. 오른쪽 하단에는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허리를 굽혀 십자가에 구멍을 뚫는 모습으로, 곧 이루어질 십자가 처형을 암시합니다. 배경에는 갑옷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는 병사의 모습도 등장하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이 인물을 시대의 독특한 초상이나 특정 인물의 반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오른쪽에는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병사(성 롱기누스)도 묘사되었고요. 왼쪽 하단에는 세 명의 마리아 (성모 마리아와 다른 두 마리아)가 등장하여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는 가톨릭 미술 전통에 얼밀히 부합하지 않으나, 엘 그레코는 신심서적" 성 프란치스코의 명상록"등에서 영감을 받아 이들을 추가했습니다.






색채는 엘 그레코가 작품에서 핵심적 표현수단입니다. 이 그림에서 예수의 붉은 옷은 유달리 도드라지며 신적 희생과 부활의 영광, 순교의 의미를 상징합니다. 붉은색은 곧 신성한 열정과 피의 희생을 암시하며, 이 위에 펼쳐지는 보라색은 성스러운 열정과 부활을 , 황색과 청색은 어지러운 세속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구도는 수직적으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많은 인물들이 전경에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어 극도의 긴장감과 함께 군중으로부터 예수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이 방식은 16세기말 매너리즘 시대에 흔히 쓰인 공간 압축 기법으로, 비잔틴 회화의 머리들을 층층이 배열하는 전통적 방식과 연결됩니다. 한편 인물의 왜곡된 신체 비례는 엘 그레고 미술의 대표적 특징으로, 영적 고양과 극적인 감정을 뚜렷이 부각합니다.







이 작품은 또한 당시 톨레도의 종교적 자부심과 도시의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림은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개념아래, 스페인 교회의 중심지 톨레도가 전 세계 이교도 및 이단에 맞선 마음가짐과 신앙의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전통적으로 성화에서 크게 조명받지 못한 '옷 벗김'이라는 수난 장면을 선택하여, 예수의 희생정신과 동시에 사제직의 신비, 그리고 톨레도 신앙공동체의 자부심까지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J9DY6lJ1YI








https://www.youtube.com/watch?v=FZFj6e5QFlA

참고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2MkdE39gMz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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