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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 모더니즘의 두 얼굴

한스 호프만 & 살바도르 달리




How the Pink Panter inspired Katherine Bernhardt's New Paintings/ Galerie Magazine






캐서린 버나드( Katherine bernhardt, 1975-)의 대형 핑크팬더 그림입니다. 두 관람객들의 머릿속에 말주머니가 하나 크게 그려질 것 같습니다.


" 에게, 이것도 그림이야?"



진중한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보면 그녀의 그림이 아이들 장난처럼 가볍게만 보입니다. 그림값으로 '억'소리 나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그녀의 작품은 예술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많지요. 2015년 연간 경매 총액이 1억 8천만 원 수준이었던 그녀의 작품은 2019년에 5억 3천만 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고, 2022년 상반기에만 30억 1천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Katherine Bernhardt/GQ





사람들이 전시에 가서 작품을 보면서
세상의 끔찍한 일들을 잠시라도 잊을 필요가 있어요.
색과 예술을 보면서
우리가 인간이며 세상에 선한 것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캐서린 버나드 -




캐서린 버나드(Katherine Bernhardt )는 1975년 미국 미주리주 클레이튼 출생의 현대미술 화가입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과 일상적인 사물을 대형 캔버스에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패턴으로 그려내는 것이 그녀 그림의 특징입니다. 시카고 예술학교(BFA)와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MFA)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현재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활동 중입니다.




핑크 팬더, ET, 심슨 가족, 나이키 운동화, 과일, 화장지 등 대중문화의 친숙한 소재와 일상적 사물을 화면에 반복적으로 패턴화해 묘사합니다. 추상과 만화적 요소가 섞인 단순하고 직설적인 색채 , 스프레이와 아크릴을 활용한 거친 붓질이 그녀의 스타일이죠. 평범한 것들을 배치의 논리 없이 강렬한 색과 리듬으로 배열해 시각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어린 시절과 소비문화를 아우른 유머와 에너지가 그녀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이고요. 미국 현대미술에서 21세기를 대표하는 에너지 넘치는 여성 화가 중 한 명입니다.




Shower Power by Katherine Bernhardt/New Art Editions



저는 예술에 유머가 있는 게 좋아요.
그래서 일부러 최대한 평범하고,
별 거 아닌 걸 그리려 해요.
예를 들면 화장지나 담배 같은 거요.
그 누구도 '저걸 그림으로 그려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한 것들인데,
그게 오히려 웃기고
재밌을 수 있잖아요.
- Katherine Brnhardt-







캐서린 번하드의 그림은 익숙한 대상을 패턴화 하여 그리는 단순함이 그녀 그림의 매력입니다. 그녀는 물감을 캔버스 바닥에 눕혀놓고 그 위를 걸어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등의 방식을 사용하여 작품에 거친 느낌을 더하기도 합니다.




/Daily Art






2000년대 초반, 뉴욕 미술계에 데뷔하면서 패션 잡지 속 슈퍼모델을 두껍고 거칠게 그린 초상화로 주목받았습니다. 이 작품들은 패션계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찍이 그녀에게 명성을 안겨주었습니다.





2007년 모로코 여행 중 카펫 딜러인 남편 유세프 지디아와 만나면서 그녀의 예술에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됩니다. 모로코 카펫의 색깔 조합, 질감, 직조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인 형태가 두드러지는 '패턴 페인팅'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패턴 페인팅은 실제 이미지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와 달리 모든 요소를 그림으로 그려 2차원 평면을 구현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번하드는 하와이 와이키키의 핑크 팰리스 호텔에서 아들과 함께 핑크 팬더 애니메이션을 본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핑크 팬더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밝은 형광 핑크부터 자두색, 자홍색 등 다양한 핑크색 스펙트럼을 만들어냈습니다. 2019년작 <핑크 팬더+ 스카치 테이프+그린 플랜테인>과 같이 서로 연관 없이 보이는 친숙한 소재들이 반복적으로 그려지며 강렬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고요.





pink panther + Scotch Tape+ Green Plantains, 2019, Acrylic& Spray paint on canvas





번하드는 자신의 그림을 지나치게 지적으로 해석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세상의 끔찍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지요. 예술을 보며 색채를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는 과도하게 개념화되고 추상화되는 현대 미술의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예술이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더 많은 대중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유머러스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그녀의 선배님 격인 두 화가 한스 호프만( Hans Hofmann, 1880-1966)과 살바도르 달리 ( Salvador Domingo Felipe Jacinto Dali i Domenech)의 작품을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간단한 개념부터 정리하고 갈까요?

추상표현주의(한스 호프만)와 초현실주의(살바도르 달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과 절망,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실존적 고민이라는 유사한 역사적 배경과 이론적 기반을 공유합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이 두 사조에 큰 영향을 미쳤고요.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요소를 예술에 도입했다는 점 등이 두 사조의 공통점입니다.




차이점이라면 추상표현주의가 사물이나 인간의 형태를 해체시키는 작업을 했다면, 초 현실주의는 현실적인 대상을 왜곡하거나 변형하여 마치 꿈에서만 볼 수 있는 기묘한 광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한스 호프만(Hans Hofmann, 1880-1966)은 독일 태생의 미국 화가이자 교사로, 추상 표현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그는 활기찬 색채로 가득 찬 캔버스 작업으로 유명합니다. 전후 미국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고요.





그는 1880년 바이에른주 바이센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1966년 뉴욕시에서 85세의 나이로 사망했고요. 그의 경력은 두 세대와 두 대륙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추상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호프만은 1886년 가족과 함께 뮌헨으로 이주합니다. 어릴 때부터 과학과 수학에 소질을 보였고요. 16세에 바이에른 정부의 공공사업국 국장 보조로 공직에 입문합니다. 18세가 되면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을 먹고 뮌헨의 모리츠 헤이만 미술 학교에 등록하여 인상주의와 점묘법 같은 스타일을 접하게 됩니다.





1904년에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파리로 이주하여 10년 동안 거주했습니다. 파리에서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 Academie de la Grande Chaumiere)와 아카데미 콜라로시 ( Academie Colarossi)에서 공부했습니다. 마티스,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로베르 들로네, 소니아 들로네 등과 교류하며 파리의 아방가르드 미술계에 깊이 빠져듭니다. 그의 초기 회화는 입체주의 와 세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형식 면에서는 칸딘스키, 마티스, 반 고흐의 색채 영향도 받았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독일에 강제 귀국한 그는 호흡기 질환으로 군복무에서 제외되었고, 1915년 뮌헨에 자신의 미술 학교를 열어 진보적인 강사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학교는 세잔, 입체파, 칸딘스키의 사상과 작업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며,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이 학교가 최초의 현대 미술 학교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1930년, 호프만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여름 학기 강사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1933년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34년에는 뉴욕과 매사추세츠주 프로빈스타운에 자신의 미술 학교를 다시 열어 프로빈스타운과 미국 미술사에 전환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의 가르침을 통해 유럽 모더니즘을 미국 미술에 접목시켰습니다. 전통과 아카데미즘의 제약에서 벗어나도록 많은 예술가들을 고무시키는 역할도 했지요. 그는 큐비즘의 구조와 마티스의 색채를 결합하여 미국 예술가들이 재현 예술의 제약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의 독특한 교육방식 중 하나는 학생들의 그림에 직접 표시를 하거나 수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직관을 중요시하고 자연에서 본 것을 단순화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Hans Hofmann Friday Night Critique,1948



Provincetown Landscape,1942/Reproduction Gallery





그의 교육은 형태, 색채, 그리고 공간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저서 <현실에 대한 탐구와 다른 에세이( Search for the Real and Other Essays)>(1948)에는 그의 "밀고 당기기" 공간이론, 예술의 원천으로서 자연에 대한 존경, 예술의 영적 가치에 대한 신념 등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또한 드립핑 기법에 관심이 있었으며, 물감을 화면에 붓는 기법을 처음 시도한 화가 중 한 명입니다. 잭슨 폴록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기교를 누가 먼저 사용했는가가 학자들 사이에 뜨거운 쟁점이 된 적도 있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은 표현주의 양식의 풍경화와 정물화가 특징이었으나,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는 추상 표현주의 스타일로 전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화가들이 추상 표현주의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미술/알라딘서재







뉴스핌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omingo Felipe Jacinto Dali i Domenech, 1904-1989)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몽환적이고 기괴한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달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루냐 피게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산층 변호사이자 공증인이었으며, 어머니는 그의 예술적 지지자였고요. 달리는 5세 때 부모님으로부터 일찍 사망한 형의 환생이라고 들으며 자랐습니다. 1916년 여름 카다케스에서 라몬 피쇼의 가족과 함께 현대 회화를 접했고, 1917년에는 아버지의 주최로 가족 집에서 목탄 드로잉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1919년에는 피게레스 시립극장에서 첫 공개 전시회를 가졌고요. 1921년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했으며 , 달리는 이를 "인생에서 겪었던 가장 큰 타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922년, 달리는 마드리드의 레시덴시아 데 에스투디안테스(학생 기숙사)로 이사하여 산 페르난도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입체주의를 실험했지만, 이 시기에는 입체주의 운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같습니다. 그는 다다이즘도 실험했는데, 이는 그의 평생 작품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926년, 달리는 "교수진 중 누구도 자신을 심사할 만큼 유능하지 않다"라고 주장하여 졸업 시험을 앞두고 학교에서 퇴학당했습니다. 같은 해 파리를 방문하여 파블로 피카소를 만났고, 피카소와 호안 미로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벨라스케스와 달리




달리는 17세기 스페인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콧수염을 길렀는데, 이는 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특이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비평가들 모두를 때때로 짜증 나게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추구한 악명은 대중의 광범위한 인정을 가져왔고 다양한 계층의 작품 구매로 이어졌습니다.





달리는 "편집광적 비평 방법( Paranoiac-method)"을 구축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방법은 정신 착란 현상을 연상시키는 비이성적 인식의 즉흥적인 방법입니다. 그는 이 방법을 사용하여 환각적인 형태, 이중 이미지,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편집증적으로 사물을 집요하게 바라보거나 지속적으로 응시할 때 사물이 왜곡되거나 변형되는 순간을 표현합니다. 무의식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달리는 미국에서 영화, 사진, 연극,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했습니다. 특히 월트 디즈니와 알프레드 히치콕과의 협업을 통해 슈퍼스타 대우를 받았습니다. 1948년 스페인으로 돌아간 후에는 가톨릭으로 복귀를 선언하고 고전주의, 신비주의, 당시의 과학 발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핵 신비주의 (Nuclear Mysticism) 스타일을 개발했습니다. 이 이론은 양자 물리학과 의식적 마음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론으로 달리 자신이 정립한 예술 사조입니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사건에서 받은 충격 이후 달리가 몰두하게 된 과학적 진보와 가톨릭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발전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예수가 십자가의 못 박힌 채 푸른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묘사한 작품이 있습니다. (아래쪽 작품설명 있습니다.) 예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신비감을 더하고, 어둡고 조용한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이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self-portrait,1902/Reproduction Gallery




한스 호프만의 <Self-Portrait>(1902)은 그의 초기 유화 작품으로, 그가 당시 유행하던 예술 사조인 점묘법( Piontillism)에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자화상에서 호프만은 밀짚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모자 그림자가 그의 눈썹과 눈을 살짝 가리고 있고요. 그의 시선은 사색적이거나 내성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듯 관람객 쪽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점묘 기법으로 다양한 색상의 점들이 역동적으로 어우러져 깊이와 질감을 표현합니다. 살짝 추상적인 모습을 띠고 있고요. 색상 선택은 다양하면서도 조화로워, 작가의 기분과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이 작품은 빛과 색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로, 점묘법의 본질적인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호프만이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묘사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가 당시의 아방가르드 미학 원칙에 의식적으로 참여했음을 드러냅니다. 모더니스트적 시각으로 전통적인 초상화에 도전했음을 말하죠. 일부 비평가들은 호프만의 초기 작품에서 인물 머리의 위치가 캔버스 중앙에 배치되는 '평범한 구성 습관'을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1930년대 이후 그의 초상화에 조금씩 변화가 보입니다.




self , 1932/wikiart. org






https://www.youtube.com/watch?v=_gapcBqmqig




Madrid Spain/Alamy





The Great Masturbator,1929/wikipedia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의 <위대한 자위자 The Great Masturbator>(1929)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달리의 성적인 강박, 걱정, 두려움을 표현한 자전적인 작품입니다. 달리의 자전적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당시 25세였던 달리의 정신적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달리는 연인 갈라가 파리에 갔을 때 느꼈던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환상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캔버스에 유화로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NYCultureBeat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 양식( Surrealism)으로 분류됩니다. 1929-1940년까지의 달리의 초현실주의 시기에 해당하고요. 달리는 1929년에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하여 이 상징적인 그림을 제작했습니다. 그는 꿈과 현실의 영역을 결합하는 능력을 통해 관람객을 사로잡았으며,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무의식을 탐구했습니다.





그림 중앙의 큰 머리 형상은 콜레로의 바위와 닮았는데, 달리는 이를 코를 땅에 댄 머리에 비유했습니다. 이 형상은 달리의 자화상으로 묘사되며, 그의 열정과 내재된 공포, 그리고 갈라가 그에게 미친 성적인 영향을 인격화한 것입니다. 그림은 달리의 환상과 불안을 생생하고 다채로운 매체로 표현하며, 그의 과거로부터 미래까지의 변화, 두려움, 환상을 나타냅니다.





메뚜기는 달리가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공포를 느꼈던 곤충입니다. 당연히 그림 속 메뚜기는 달리의 어릴 적 두려움 (아크리디도포비아)을 상징합니다. 메뚜기의 배는 부패되어 개미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달리가 경험했던 기생충 망상( Delusional parasitosis)과 연결됩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눈을 감은 여인은 연인 갈라를 의미합니다. 그녀의 등장은 꿈이 사라지는 순간을 나타내기도 하지요. 갈라와의 만남은 달리의 성적 환상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개념과 그의 따른 두려움, 불안이 결합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림에 있는 돌과 자갈은 달리의 어린 시절 기억과 연결된 카다케스 반도의 풍경을 나타냅니다.









St. Tropez, 1928/Artchive




색들이 노래하게 하고,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나타내라.
- 한스 호프만-





한스 호프만의 < St. Tropez>(1928)는 활기찬 도시 풍경을 표현주의 양식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대담하고 역동적인 선을 사용하여 움직임을 전달합니다. 표현주의 스타일로 그려진 번화한 도시 풍경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선들은 대담하고 역동적이며, 움직이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St. Tropez (seen from St. Raphael Mountains)/THE MET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MoMA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1931) 작품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초현실주의 그림 중 하나이지요. 흘러내리는 듯한 회중시계의 모습이 유명하여 '녹아내리는 시계' 또는 '늘어진 시계'로도 불립니다. 이 작품은 시간, 꿈, 현실의 본질을 탐구하며 작가의 무의식으로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유화 작품으로 관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녹아내리는 시계, 바위에 앉아 있는 시계, 나무에 걸쳐진 늘어진 시계, 그리고 알 수 없는 형태의 살색 인물 형상이 특징입니다. 그림 속 배경에는 달리의 고향인 스페인 카탈루냐의 해안 절벽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20세기 예술 운동으로, 현실과 논리의 제약에 반발하여 등장했습니다. 달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영향을 받아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했습니다. <기억의 지속>에서 꿈의 세계를 통해 시간의 유동성과 현실의 덧없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특히, 그는 '편집광적 비판 방법'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창작 방식을 사용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습니다.




Camembert Cheese/Insanely Good Recipes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내표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가장 유명한 요소인 흘러내리는 시계는 시간의 유동성과 상대성을 상징합니다. 달리는 시간을 고정된 실체가 아닌 주관적이고 유연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시간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한 거지요. 그는 이 시계를 '시간의 카망베르 치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회중시계 위를 기어가는 개미 떼는 부패와 죽음을 암시합니다. 시간의 흐름과 제한된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그림 중앙에 있는 살색의 형태는 달리의 자화상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 형상은 자고 있거나 죽은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수면 중이거나 죽음 이후 시간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는 상태를 나타낼 수 있고요.




앙상한 올리브 나무는 고대 지혜의 소멸이나 평화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두 차례 세계 대전 사이의 정치적 분위기와 스페인 내전 전의 불안을 반영합니다. 오른쪽의 황금색 절벽은 달리의 모국인 스페인을 상징합니다.





작품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시간의 왜곡을 묘사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딱딱하고 기계적인 시계를 흐물흐물하게 그림으로써, 현실을 지배하는 시간이 꿈속이나 기억 속에서는 유연하게 변형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1931년 피에르 콜리 갤러리에 처음 전시되었고, 1932년 뉴욕의 갤러리스트 줄리엔 레비가 2,500달러에 구입했습니다. 1933년에는 스텐리 비 레소르 부인에게 팔렸으며, 그녀는 1934년에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익명으로 기증하여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습니다.





Japanese Girl,1935/wikiart.org







한스 호프만의 < Japanese Girl>(1935) 작품입니다. 야수파( Fauvism) 양식으로 그려진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은 합판에 카세인과 유채로 그려졌습니다. 특히 이 그림은 두 개의 패널이 결합되어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는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미술관 및 태평양 필름 아카이브의 소장품으로, 호프만의 1930년대와 1940년대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마티스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1935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구상적인 인물화로 분류되며, 모던 아트 추상화와 추상 표현주의의 특징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Sleep,1937/Artchive



"현실의 목발에 의해 지탱되는 무거운 괴물 같은 머리"




살바도르 달리의 <Sleep >(1937)은 초현실주의 운동의 핵심 주제인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깊이 탐구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대형의 분리된 머리가 여러 개의 목발에 의해 지탱된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을 통해 인간 정신의 취약성과 무의식의 깊이를 표현합니다.





달리는 이 그림을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달리의 후원자였던 영국 백만장자 에드워드 제임스를 위해 그렸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과 무의식 이론에 대한 깊은 매료에서 영감을 받았고요.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의 자유를 신뢰하며 꿈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목발은 달리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특징적인 요소로, '현실'을 지탱하는 지지대의 연약함을 암시합니다. 그림 속에서는 코와 턱 등 얼굴의 여러 부분뿐만 아니라 심지어 옆에 있는 개마저도 목발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달리는 목발을 통해 수면 상태의 취약성을 표현하며, 만약 목발 중 하나라도 부러지거나 무너지면 꿈을 꾸는 사람은 깨어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 달리는 목발을 20세기 사회에서 의존성이 가지는 함의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 잠자는 머리를 제외한 모든 요소는 옆은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어, 낮의 세계와 합리성으로부터의 소외감을 나타냅니다. 황량하고 고요한 풍경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으며, 몇몇 희미한 구름과 멀리 떨어진 성채 같은 구조물이 그림의 꿈같은 분위기를 더합니다.









Lobster telephone,1938/Tate




살바도르 달리의 <랍스터 전화 Lobster Telephone>(1938)는 전화기와 랍스터를 결합하여 무의식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고자 한 초현실주의 오브제입니다. 이 작품은 달리와 후원자 에드워드 제임스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며, 달리의 독특한 상상력과 자기 PR이 더해져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세기 가장 잘 알려진 아이콘 중 하나이자 초현실주의의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평범한 전화기와 석고로 만든 랍스터를 결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장난스러우면서도 위협적인 느낌을 동시에 줍니다. 달리는 연관성이 없는 물체들을 결합함으로써 무의식의 비밀스러운 욕망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랍스터와 전화는 달리에게 강한 성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전화는 1930년대 후반 달리의 여러 회화 작품에 등장합니다. 랍스터는 대개 에로틱한 쾌락 및 고통과 관련된 그림이나 디자인에 나타납니다. 특히 '랍스터 전화'에서는 랍스터의 성기가 위치한 꼬리 부분이 수화기의 송화기 위에 직접적으로 놓여 있어, 욕망의 본질에 대한 달리의 풍자적인 시각을 보여줍니다. 달리는 음식과 성을 밀접하게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를 위해 신선한 해산물로 누드모델의 '의상'을 만들고 랍스터로 여성의 성기를 가린 적도 있습니다.




Lobster Telephone and Surrealism/Art UK





혼합 매체로 수지, 고무, 종이 강철, 석고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달리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1935년 미국 잡지 '아메리칸 위클리American Weekly'에 의뢰받은 그림에서 처음 구상했습니다. 이 그림은 "뉴욕의 꿈-남자가 전화 대신 랍스터를 발견하다"라는 제목으로 뉴욕에 대한 달리의 인상을 담고 있었습니다. 달리는 총 11개의 '랍스터 전화'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색상에 따라 4개의 붉은색 랍스터와 검은색 전화기 조합, 그리고 7개의 흰색 랍스터와 흰색 전화기 조합으로 나뉩니다. 이 작품들은 현재 런던의 테이트 모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통신 박물관, 호주 국립 미술관 등 전 세계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lo__-vl8RY




Dallas Texas USA/Tour Texas


Yellow Table on Green,1936/Hyperallergic





한스 호프만의 < Yellow Table on Green>(1936) 작품입니다. 야수파( Fauvism) 스타일로 그려진 정물화이고요. 이 작품은 야수파 스타일로 분류되며, 호프만이 독일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한 시점 이후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현재 달라스 미술관( Dallas Museum of Art)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호프만의 1930년대 후반 작품은 종종 초상화와 풍경화의 특성을 지니는 동시에 기하학적 형태와 대담한 색상의 사용을 통해 추상적 표현주의의 핵심적인 개념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형태와 색채를 강조하여 공간을 창조하는 자신의 예술적 개념인 '밀고 당기기 Push and pull' 이론을 적용했습니다. 그의 정물화는 정교한 구성을 통해 형태와 색채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탐구합니다. 감각과 지각이 영적인 통합을 이룰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고 보았 던 화가입니다.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89)의 < Mae West Lips Sofa>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현대 가구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소파는 달리의 예술적 비전과 그의 영국인 후원자인 에드웨드 제임스( Edward James, 1907-84))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달리는 1935년에 당시 가장 유명한 초현실주의 예술가 중 한 명이었고, 제임스는 영국의 가장 저명한 초현실주의 운동 지지자였습니다 . 제임스의 도움 덕분에 달리의 창의적인 작품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도 등장한 그 남자입니다.)








1936년 달리가 제임스의 런던 집에 머물면서 초현실주의 오브제와 가구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습니다. 소파를 제작하자는 제안은 제임스에게서 나왔는데, 이는 달리의 작품인 'Mae West's Face which May be Used as a Surrealist Apartment(1934-35)'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 메이 웨스트( Mae West)의 진홍색 입술을 환상적인 방의 좌석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소파는 원래 봉투 뒷면에 스케치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37에서 1938년 사이에 원래 다섯 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제임스는 자신의 시골집인 몽크턴 하우스( Monkton House)를 '완전한 초현실주의 주택'으로 만들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달리의 기발한 소파 디자인을 두 점 의뢰했습니다. 몽크턴 하우스의 식당을 위해 두 개의 밝은 빨간색 소파가 특별히 제작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YMAxMil_iI





Monkton House, Sussex/Maphill




이소파는 기능적인 용도로 의도되지 않았으며, 달리는 디자인의 일부가 카다케스( Cadaques)와 포르틀리가트( Portlligat) 근처의 바위 더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초현실주의 소파는 폴리우레탄 품에 빨간색 폴리두어 코팅을 입힌 형태입니다.




Inside the Bizarre Surrealist House of Edward James/ Ellie & Co
Inside the Bizarre Srrrealist House of Edward James / DailyArt Magazine






현재 오리지널 'Mae West Lips Sofa'다섯 점은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언 박물관(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피게레스의 달리 극장 박물관( Dali Theatre and Museum),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 브라이튼 박물관( Brighton Museum), 그리고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Victoria)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특히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V&A)에 소장된 소파는 국립 유산 기념 기금( National Heritage Memorial Fund)과 아트 펀드( Art Fund), V&A 회원들의 지원을 받아 영구 소장품으로 인수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3bWOwY46lw



Glasgow Scottland/ Alamy



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1951/Flickr





살바도르 달리의 <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1951) 작품입니다.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인 그가 젊은 시절의 반종교적 무신론에서 벗어나 가톨릭 신앙을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에 그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와 영성을 매혹적으로 융합하여 관습에 도전하고 관람자들을 평범함과 신성이 수렴하는 영역으로 초대합니다.





유화로 제작한 종교 예술 작품입니다. 현재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켈빈그로브 미술관 및 박물관( 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 Glasgow Scottland)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달리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젊은 시절의 강력한 반종교적 무신론에서 벗어나 가톨릭 신앙을 다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달리의 성숙기 작품의 원형으로 , 종교적 주제를 원자와 극사실주의적 요소와 통합했습니다.





이 작품의 영감은 16세기 스페인의 카르멜회 신비주의자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 그린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스케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달리는 이 스케치에서 그리스도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담한 아이디어를 가져왔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관찰하는 듯한 비범하고 무한한 공간감을 연출합니다. 대신 고통받는 신체나 큰 못, 땀 등은 생략했습니다






달리의 그림은 못과 피가 없이 전통적인 십자가 처형의 고통 묘사를 피하고, 대신 희생과 구원에 중점을 둡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영광이 이미 죽음 속에 드러났다는 성 요한 복음서의 강조를 반영합니다 . 그림 하단의 보트와 어부들은 사도들이나 기독교 신앙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얼굴을 포함하지 않은 달리의 결정은 특정 개인보다는 그리스도 형상의 보편적인 본질을 관람자들이 숙고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림 속 인물은 중력에 의해 몸이 쳐진 듯한 모습으로 , 고통보다는 평화로운 평온함을 나타냅니다. 달리는 과학적 경향을 신학적 주제와 미묘하게 엮어 현대 과학과 고대 영성의 조화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색상은 절제되어 어둡고 차가운 톤이 강조되어 그림의 엄숙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빛은 그리스도의 형상에서 발산되어 신성한 빛의 느낌을 부여하고요. 십자가는 배경의 땅이나 바다와 교차하지 않고 어두워진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평선이 없어 비현실적이고 무한한 공간을 만듭니다. 달리는 또한 황금비율과 오각형과 같은 기하학적 원리를 이 작품의 구성에 활용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논쟁적인 구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래스고 시가 8,200파운드에 인수하여 선견지명 있는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Artnet News



https://www.youtube.com/watch?v=rfN67C9XLCM








Shapes in Black, 1944/ Artchive



'단순화하는 능력은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여
필요한 것이 말하게 하는 것'
-한스 호프만-






한스 호프만(Hans Hofmann,1880-1966)의 < Shapes in Black>(1944)은 추상 표현주의 양식으로 그려진 유화 작품입니다. 1944년은 호프만에게 있어 여러 단체전과 두 차례의 개인전에 작품이 소개되는 중요한 해였습니다. 호프만의 1940년대 작품에서 보이는 초기 양식적 실험을 보여주며, 다양한 형태와 색상이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밀고 당기기 pusth and pull)'이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 호프만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암시적이고 구불구불한 형태는 호안 미로의 생동감 있고 연상시키는 추상 이미지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또한, 초기 호프만 작품은 피카소의 넓은 곡선과 이빨 모양의 형태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1940년대 작품에서는 인물 형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두꺼운 선과 밝은 색상으로 표현되어 마치 만화 같은 모습이나 전쟁 선전물에서 나올 법한 인물들을 연상시킵니다.






'밀고 당기기'는 호프만의 가장 잘 알려진 이론 중 하나로, 단순히 선과 점에 기반한 단일 시점에 의존하지 않고, 색상, 형태, 배치를 통해 평평한 표면 안에 깊이를 만들어내는 상호 작용을 의미합니다. 호프만은 캔버스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색, 형태, 질감의 대비를 통해 그림에 깊이와 움직임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그의 작품에서 복잡한 구조가 혼잡해지지 않도록 색조, 명도, 페인트 질감의 차이를 활용하여 구현됩니다.







Sin titulo(Serie Renate)1965/ Museo Thyssen



한스 호프만의 < Sin titulo(Serie Renate)>는 1965년에 제작된 유화 작품입니다. 그의 두 번째 부인인 레나테 슈미츠에게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스 호프만이 제작한 '레나테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추상화 형태를 띠며 다양한 색상과 모양을 특징으로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HbJN5T05SI




플로리다주/ iStock



Nature Morte Vivante,1956/Reddit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1956)의 <살아있는 정물 Nature Morte Vivante>(1956) 작품입니다. 그의 '핵 신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이고요. 정물의 전통적인 의미에 역설을 부여하여, 그림 속 어떤 것도 '정지'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화 작품으로 현재는 미국 세인트피터스버그(St. Petersburg, Dali Museum, Florida USA)에 위치한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달리는 이 작품이 "과일 접시의 분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달리의 '핵 신비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예술, 물리학, 과학 요소를 결합합니다. 달리는 기존의 초현실주의를 벗어나, 물리학 및 분자 생물학의 이론들이 종교적 신비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달리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이 영적으로 결핍되었다고 생각하여, 예술에 다시 영성을 불어넣고자 했습니다. 그는 물리학과 분자 생물학의 새로운 이론들이 종교의 신비를 밝혀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림 속 칼과 같은 정지 해 있지 않은 물체들을 통해 인간의 뇌가 움직임을 추론하는 방식을 표현합니다. 달리는 모든 일상적인 물체가 단순히 공중에 떠 있을 수 없으며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기에, 칼 또한 낙하하는 움직임 속에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는 '정물'이라는 전통적인 장르에 '움직임'이라는 역설적인 요소를 더한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Q-AgQZBqoQ




https://www.youtube.com/watch?v=O0cnqAEKRK0


https://m.youtube.com/watch?v=61TrkPOQEHc

How Drawing Provincetown shaped Hans Hof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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