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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 미래 그 너머

자코모 발라 & 루이지 루솔로

1월 9-12일까지 라스베이거스(LAS VEGAS), NV(Nevada)에서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 행사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 IT업계 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이는 최첨단 장터지요. 참가 기업에게 CES보다 더 좋은 쇼는 없을 겁니다. 바이어 투자자 미디어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있으니 말입니다. 철저히 준비해 온 업체들에게 자신의 기업을 알리고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의 자리일 겁니다. 기회포착의 여우인 애플이 비전프로 광고를 때맞춰 뿌려 관심을 집중시키고, 참가한 기업들 사이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MS는 업계 Top으로 실속을 차렸습니다.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트렌드를 읽고 사업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 CES참여는 필요하다. 그보다 우선인 점은  CES가 아니라도 본인업체 성격에  맞는 행사에 꾸준히 오랫동안 눈도장을 찍고 히스토리를 만들어 업체 관계자들과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라고 합니다. 



<유레카 관> 수준 높은 한국 스타트업의 참여로 어깨가 으쓱한 면도 있지만, 깃발 들고 후루룩 관광으로 국민 세금 낭비하는 정부팀들도 있어 과연 좋은 정책으로 제대로 이어질지 의심스럽다는 눈길도 있었습니다. 




AI, LLM으로 실컷 헷갈리고  허우적 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공간컴퓨팅이라는 또 다른 미지의 것이 등장할 거라 하더군요. 사람이 조금 더 상상력 있게 한계 없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면서 말이죠. IT 밑단에서 돌아가는 세계가 아날로그에 익숙한 저 같은 사람에게 현기증이 나 돌아버릴 정도입니다. 피할 수 없으니 나에게 맞는 것 만이라도 뽑아 쓰고 적응이란 걸 하려니 가랑이 찢어집니다. 온 디바이스로 개인 맞춤 비서형 AI가 온다 합니다. 플래시 메모리에 AI추론칩 싸움이 치열해질 거라 하고요. 입에 설익은 용어를 담아내려니 제 상상력에도 쥐가 나려 합니다.





오늘은 이탈리아 <미래파>를 찾아갑니다.

19세기 유럽지도/나무위키




유럽인들 사이에 한 때 이탈리아로 가는 그랜드 튜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약 200년간 지속되었고요. 특히 영국, 독일의 왕족이나 귀족자제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산 넘고 물 넘고 바다 건너가야 할 테니 상당한 시간과 재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여행을 하다 강도를 만나거나 심할 경우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바이마르 공국 재상으로 있던 괴테 역시 38살 때 1년 9개월 정도 이탈리아에 머물렀었다고 합니다. 괴테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 역시 이곳에서 당시 얻은 경험들이 큰 몫을 했고요. 루벤스나 벨라스케스, 그리고 나폴레옹 역시 많은 영감을 얻어 돌아오지요. 당대 지성인들의 필수 유학코스 인 셈입니다.




영국의 경우 프랑스를 경유해 알프스를 넘고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방법이 있고, 플랑드르(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을 거쳐 가는 방법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쁘고 세련된 옷들 액세서리 등은 프랑스만 한 곳이 없죠.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선택을 하고 경유해 갔을 겁니다. 한 때는 서양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가 한 깃발아래 모이게 된 것은 1861년이었습니다. 





영국은 무늬만 왕이었고 실질적인 힘은 의회를 통해 나오는 입헌군주제를 시험하고 성공리에 안착시킵니다. 당시 유럽의 주변국가들 특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정치적인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영국은 경제에 온 힘을 집중하며 산업혁명을 일으킵니다. 쌓여가는 부를 축적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팔 곳을 찾아 아시아로 눈을 돌립니다. 원료를 찾아 아프리카로 뻗어나가고요. 산업혁명의 여파는 프랑스에도 영향을 미치며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정치적으로 여전히 혼란한 묘한 불협화음 속에 도시는 근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예술이란 녀석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으로 부유해질 때 융성하게 됩니다. 신문물을 통해 급속도로 변해가던 파리는 인상파라는 걸출한 미술 사조 하나를 배출해 냅니다. 고대 문화 예술 하면 떠오르는 이탈리아를 제치고 파리가 유럽 문화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반면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발달이 느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급격한 공업화를 추진하였고 이러한 점이 당시 이탈리아 젊은 층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20세기를 맞이하며 가장 열렬한 대응을 보인 미래주의 (Futurism) 시작입니다. 미래주의 사조는 속도와 역동성, 신기술 및 기계주의 등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또한 미래주의는 회화, 조각, 건축, 의복, 실내장식,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합니다. 대표적으로 미래주의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은 미술 분야에서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카를로 카라(Carlo Carra),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등이 있습니다. 음악분야에서 작곡가이자 화가였던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 건축가 안토니오 산엘리아(Antonio SantElia) 등이 있습니다. 




날개를 단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보다
경주용 자동차가 더 아름답다.




<Futurisme>, Luigi Russolo, Carlo Carra, Filippo Tommaso Marinetti(중앙) Umberto Boccioni, Gino Severi





다소 반항기 어리고 영화 <대부>를 연상시키는 이분들이 미래주의자들입니다. 

1909년 2월 20일, 20세기 문명에 기대를 걸었던 괴짜 시인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중앙)가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에'미래파의 창설과 선언문 '을 발표합니다. 이렇게 미래파는 언론에 대문짝만 하게 광고를 내고 시작된 미술사조입니다. 




그는 혁명적이고 도발적인 선언문에서 세상을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전쟁뿐이라고 말합니다. 예술 또한 폭력적인 비행을 저질러도 된다고 주장하고요. 이게 무슨 예술이야 싶습니다만 다소 과격한 듯한 미래파의 예술은 일상생활에까지 영역을 넓히려는 아방가르드(avant-garde:전위) 운동의 신호탄이 됩니다. 원래 아방가르드는 군대의 선두에서 적군의 상황을 알아보거나 장애물을 제거하는 부대를 의미하는 군사용어입니다. 영화 무용 연극 등 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요리 심지어 장난감 등 일상의 모든 부문에서 미래파 선언이 이루어집니다. 




이들은 사회 변혁에 방해가 되는 전통을 부수기 위해 매우 도발적인 작품을 세상에 던졌습니다. 몇 세기 전만 해도 유럽인들은 로마제국의 영화를 그리워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르네상스를 동경해 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젊은 예술가층은  이탈리아 미술의 과거지향주의에 환멸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미래주의자들은 파리 미술계에 이탈리아식 미술 혁명을 일으켜  미술계 패권을 다시 가져오고 싶었나 봅니다. 





기술 선언문에서 구체적인 행동 강령을 담았는데 엑스레이로 투시한 것 같은 해체, 모방에 대한 거부, 누드화 금지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미래파 제1세대는 주로 힘과 속도로 대표되는 역동성, 즉 다이너미즘과 아방가르드  예술을 최종 목표로 추구하며 움직임과 빛으로 현대사회를 해부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자~이제 '미래주의 선언'에 서명했던 미술의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와 음악 부문의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를 살펴봅니다.






그림 (왼)<Street Light>,1909/wikipedia 그림(오) <두개골이 있는 자화상>,1909/wikipedia




그림(왼), 주로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한 자코모 발라는 1895년 토리노에서 로마로 이사하여 초상화가 겸 삽화가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1900년 그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게 됩니다. 로마로 돌아오자, 발라는 신인상주의의 점묘법과 유사한 표현 기법을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가로등(1909-1910)>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표현법은 그가 계속해서 실험해 오던 빛과 대기, 그리고 움직임에 관한 묘사에 적합했던 거죠. 





당시 유럽은  가스등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신문물인 전기가 들어오며 인공의 빛으로 자연의 빛을 한 번 눌러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호롱불에서 전기불로 번지점프를 했으니  당시 유럽인들이 느꼈을 놀라움 또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전기의 등장으로 일상생활이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겪습니다. 외부에 떠있는 태양의 길이에 더 이상  길들여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고요. <가로등>이라는 제목을 가렸다면 저는 나비의 움직임으로 봤을 것 같아요. 나저나 당연한 듯 고마운 줄 모르고 바라보던 전등에 저런 아름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빛 주변으로 알록달록한 꺾새 모양이 참 화려하고 예쁩니다. 





그가 색을 화면에 옮기려는 이론적인 노력은 색점으로 표현하는 점묘화로 전개됩니다. 색에 몰두했던 화가들의 실험은 형태로 재현하는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즉 자연광을 넘어서 전기로 발생되는 인공적인 빛의 과학의 힘과 미래의 발전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비중 있게 다루어집니다. 





화가 자코모 발라는 이사를 간 로마의 광장에서 밝게 빛나는 불빛을 보고 영감을 받아  <가로등>을 그렸다고 합니다. 하늘의 초승달이 떠 있지만, 그 빛의 힘은 가로등 불빛에 훨씬 못 미치게 보입니다. 마치 초승달이 장식 같은 느낌으로 존재감이 작아 보입니다. 인공의 전깃불이 자연의 달빛을 능가하기 때문이지요. 



그림 속 가로등 하나가 발산하는 불빛이 큰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일상의 사소한 재료가 화가의 예민한 눈을 거치니 저렇게 독특한 형태로 작품화되어 놀랍습니다. 노랑과 흰색이 섞인 별 모양의 중심에서 밝은 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나옵니다.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 정도로 말이죠. 자코모 발라는 빛을 다채로운 색으로 분할하고 색들을 중첩시켜 빛의 강약과 변화를 묘사했습니다. 갈고리처럼 뾰족뾰족한 터치가 특이하지요. 갈고리 터치감이 색의 분할과 시각적 혼합을 유도할 뿐 아니라 불빛이 퍼지는 방향과 빛에너지의 역동적 힘까지 보여줍니다. 




발라는 전등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묘사해 과학기술의 위대함을 칭송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 전원적 낭만적 예술은 끝나고 현대의 기계 문명에 부합하는 도시적, 역동적 예술이 도래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기술로 탄생한 속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음이지요. 기계의 미학을 추구하는 미래주의 예술의 탄생을 알리는 팡파르 이기도 하고요. 또한 도시의 가로등과 달의 대립을 통해 과학과 자연의 병치를 시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림(오),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의 <두 개골이 있는 자화상>입니다. 충격받은 표정의 이 남자 어디서 많이 본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바로크 시대 활동했던 천재적이지만 악당에 가까웠던 카라바조의 <메두사>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뒷 배경으로 7개 정도 보이는 해골이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옛날 로마에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인가요? 아마도 그림 속 남자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볼지도 모르죠. 내면의 거울 속 자신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두개골이 있는 자화상 (1909-1910)에서 루이스 루솔로는 우리를 인간의 영원한 숙명인 죽음 앞에 던져 놓습니다. 평생 동안 우리는 위해함, 명성, 권력, 부, 인간 영혼에 호소하는 모든 것을 찾아 나서기 바쁩니다. 모든 사람은 몸, 마음, 감정, 생각, 신념, 관점 등을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요. 하지만 우리는 결코 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때가 더 많지요. 허무함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요.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사라지게 되어 있고, 잊히게 되어 있습니다. 저 놀란 토끼 눈과 벌어진 입이 어제는 그들이었으나 오늘은 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림(왼)<Velocity of an Automobile>,1913/wikiart 그림(오) <Dynamism of a Car>,1913/wikipedia




우리(미래주의 화가들)는
 역동적인 디자인을 발명해야 하고,
그와 함께 역동적인
-삼각형, 원뿔, 나선형, 타원, 원 등-
형태로 표현해야 한다. 







그림(왼), 자코모 발라는 새 시대 미술이 기계나 자동차의 활력적인 힘이나 속도, 역동적인 운동성 자체를 나태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관적인 표현이나 전통적인 공간구성법을 피하고, 그림 속 형태들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나타내는 표현 방식을 찾으려 했습니다.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의 물체가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형식이었지요.





 그에게 기계와 속도가 기계의 움직임만으로 표상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마치 자연계의 영원한 반복의 프랙털적 디자인에서 가져온 듯한 리드미컬한 흐름인 듯합니다. 때로는 높은 음자리표 같은 음표의 연속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기계와 자연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이질 적인 것들이 생각보다 조화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와 자연은 조화롭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확장은 곧 자연의 위축이고 축소를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마치 인간의 욕심이 기후위기를 불러와 요즘 들어 부쩍 자연에게 호되게 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림(오), 루솔로의 <자동차의 역학>이라는 작품입니다. 이탈리아의 미래파는 (Futurism:1909-1944) 전통과의 단절을 원했습니다. 기계문명과 속도를 찬양하는 이데올로기, 유럽 아방가르드 문화운동의 하나로 시작되었고요. 그는 이 그림에서 달리는 자동차 앞에서 벌어지는 음파의 압축현상을 그려냈는데 놀랍게도 음향학 교재에서 도플러 효과를 설명할 때 나오는 그림과 흡사합니다. 도플러 효과는 어떤 파동의 파동원과 관찰자의 상대 속도에 따라 진동수와 파장이 바뀌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루솔로는 질주하는 자동차의 속도와 굉음을 시각화하고자 했습니다. 뾰족한 뭔가가 뚫고 가는 느낌을 받는 걸 보면 그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기계문명이 가져다 줄 이상사회를 꿈꾸던 미래주의 자에게 달리는 자동차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을 겁니다. 




검은 유선형 물체인 자동차가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이를 둘러싼 공기가 날카롭게 갈라지며 파도치듯 퍼져 나가 소음을 일으킵니다. 자동차의 엔진이 뿜어내는 열기는 불꽃처럼 뜨거운 에너지가 되어 주위를 새빨갗게 달구고요. 루솔로가 이 그림을 완성하던 1913년에 '소음의 예술'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온갖 소음을 일으키는 '악기'를 개발하여 연주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물론 루솔로가 예상했던 대로 객석의 반응은 '뭐 저딴 걸 음악이라고 연주해'하며 분노 일색이었지만요. 그러나 '소음의 예술'이라는 그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눈은 쉽게 감을 수 있어도 , 귀를 닫고 들려오는 소음 소리를 제거할 수 없을 테니까요. 온갖 기계와 전자제품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루솔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4t3lLMq7c7g






모든 것은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
움직이는 형상들은 끊임없이 여러 개로 보인다.
 즉 달리는 말은
 4개의 발만 있는 게 아니라 20개의 발이 있다.
- 자코모 발라-





그림(왼)<Dynamisim of a Dog on a Leash>,1912/wikipedia그림(오)<Music>,1911-12/wikipedia





그림(왼), 자코모 발라의 1912년 작품인 <끈에 묶인 개의 역동성>은 회화에 속도감을 표현한 대표 작품입니다. 보이는 개의 다리에 오토 바이가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만화에서 이런 장면들 많이 본 것 같고요. 발과 꼬리를 우당탕 휘젓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합니다. 아마도 강아지가 주인보다 앞장서서 빨리 어딘가로 달려가고 싶은 가 봅니다. 아니면 좋아하는 간식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걸까요? 혹시 맞은편 강아지가 맘에 들었나? 은색의 목줄까지 신나게 움직입니다. 줄넘기를 하듯 말이죠. 아니면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목줄에 매여 제자리걸음인 강아지의 상황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아지 옆에 레이스 차림의 견주가 있습니다. 강아지의 움직임만큼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작가 자코모 발라는 강아지와 주인의 그저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한 게 아니라, 여러 개의 반복적인 형상을 그렸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떤 예술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소유한  사진 스튜디오에서 기적에 가까운 뭔가를 알게 됩니다. 그가 움직임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되고요. 사진의 여러 단계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초기 기술 <크로노 사진(Chronophotography)을 알았었나 봐요. 수십 개의 다리, 꼬리, 가죽끈을 그림으로써 그는 주인을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짧은 다리의 생물의 열광적인 움직임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속도감을 더 느낄 수 있도록 바닥의 줄무늬를 대각선으로 그린 세심함 또한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발라는 눈으로 볼 수 없었던 비가시적 세계를 가시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을 그림에 도입했습니다. 점묘법을 유용하게 사용한 거지요. 점묘법은 형태를 점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선과 색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흔들거리는 물체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거죠. 작품 <달리는 개의 역동성>은 움직임이 있는 물체의 시간차를 점묘법으로 그려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동시성을 보여줌으로써 미래주의의 특징인 역동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지한 사물과 사진 속 움직이는 대상이 만나 활동사진이라 하는 영화에 모티프를 제공했듯이 속도감 있는 움직임으로 평면 속에 담아냈습니다. 









소리와 음색을
선과 색채로 실감 나게 옮겨놓았다.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1919)-





그림(오), 팔이 다섯 개입니다. 열 손가락도 모자라 모두 스물다섯 개의 손가락이 넓은 음역에 걸쳐 꽉 찬 화음을 빚어냅니다. 솔직히 말하면 검정색의로 표현된 주인공의 모습과 손가락만 쳐다보면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파랑, 노랑, 빨강 띠가 피아니스트의 머리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켜 허공을 가득 메웁니다. 피아노 음이 S자 곡선으로 폭을 넓히며 공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고요. 




화가 겸 음악가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의 대표작 <음악>입니다. 음악이 느껴지시나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퍼지는 느낌이 드시나요? 피아니스트의 머리에서 후광, 아우라, 더 나아가서 소리가 빚어내는 파형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원색의 향연으로 수놓은 막대에 매달린 가면들은 안동 하회탈 같기도 하고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주인공의 한쪽 가면 같기도 합니다. 객석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관객들의 다양한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흥분한 듯, 웃는 듯, 무표정한 듯 무수한 표정들이 말입니다. <음악>이라는 표제에 드러나 듯 화가는 그림을 통해 음악적 음향과 특정 요소의 반복, 메아리의 반복 등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미래파 동료 화가인 카를로 카라는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얼굴의 가면에서 과거 위대한 작곡가들의 혼백이 나타난 것 같다."라고 아부를 떨기도 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 오감으로 전해오는 느낌은 다 다를 테니까요. 건반에서 멀어질수록 동심원 사이의 간격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림 속의 등장하는 선과 곡선은 그가  훌륭한 피아니스트였고 음향학을 제대로 공부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OfqlWphI3TM

<자코모 발라의 Casa Balla 아파트>



 모든 것은 움직이고,
모든 것은 달리고,
모든 것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림(왼) <계단을 내려오는 소녀>,1912/wikipedia 그림(오)<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나무위키




그림(왼), <발코니를 뛰어가는 소녀>는 신인상주의 점묘법에 속도를 입힌 작품입니다. 소녀가 신고 있는 신발 보이시나요? 소녀의 중첩된 신발표현이 없었다면 속도감보다는 단순히 색의 분할을 시도한 작품으로 인식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동작이 더 분할되어 있고 형태가 면으로 추상화되어 있습니다. 속도란 움직임과 동급이죠. 움직이는 물체는 흔들리고 있으므로 형태와 윤곽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그 흔들림의 상태를 반복된 형식으로 효과적으로 그리는 데에는 입체파와 같이 형태를 면으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말인 거죠. 한편 움직이는 물체는 그 흔들림으로 인해 색채가 선명하지 않습니다. 떨리는 색채의 표현에는 점묘파의 채색법이 효과적이었던 거지요. 움직임이 더 커지면 형태와 색채는 더욱더 분해되어 추상화됩니다. 다다(Dada) 이즘과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르셀 뒤샹의 <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화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기계적으로 분해되고 조합된 인물의 표현이 기계적인 운동의 모습과 결합되었던 점이 당시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던 부분입니다.










자코모 발라의 <Pessimism and Optimisim,1923/wikiart>은 기계와 속도의 뉘앙스와는 약간 다르게 느껴집니다. 1910년대의 미래파의 유행이 끝난 영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관주의는 흑백의 뾰족함으로 나타나고, 낙관주의는 청색 계약의 둥그스름한 포용으로 나타납니다. 마치 낙관주의는 비관주의를 감싸 안으며 다독거리는 모양새입니다. 비관주의는 낙관주의를 예리하게 공격하는 창날을 가지고 있고요. 콕콕 찌르며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세상은 어느 한쪽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한쪽을 배제시킬 수 없지요. 이 두 가지 모두의 관점에 의해 만들어져야 좀 더 살만할 테니까요.  






 

파시즘과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미래파는 유럽 미술사, 특히 아방가르드의 초석을 제공한 문화 운동이었습니다. 미래파가 없었다면 다다(Dada), 키네틱 아트, 옵아트 등은 태동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aqt3ebqGtvk

#테오얀센의 키네틱 아트



오버 아트(Optical Art)/wikipedia






자코모 발라가 살았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사의 흐름은 과학기술의 역동성과 전쟁의 공포, 자본주의 팽창에 따른 식민지화로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강물처럼 흐르던 시대였습니다.  미래주의 화가들이 살았던 그 시대보다 몇 배의 빠른  속도감과 위기감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IT 관련 업계들의 패권을 잡기 위한 물밑 작업들도 드라마틱하고요.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말은 무성하지만 아무도 '이거다' 하고 꼭 집어서 내놓는 사람도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썰만 무성할 뿐이죠.



 미래주의자들은  그들이 급하게 서두르다 '파시즘'이란 복병에 낚여 미술사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너무 서두르다 혹여 디지털 문명이 더 큰 재앙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점을 잡는 노력 또한 필요하단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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