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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공존

제임스 티소( James Tissot )

다운튼 아비(Downton Abbey)라는 TV시리즈를 본 적이 있습니다. 1912부터 1925 사이 영국 요크셔의 저택 다운튼 아비가 배경입니다. 그랜섬 백작 부부와 세 딸로 대표되는 귀족들의 삶과 아래층 하인들의 삶 그리고 중산층에 속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잘 그려낸 작품이지요. 전쟁 전후로 급변하는 사회상도 볼 수 있었고, 세 딸들의 의상, 머리 스타일이 때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 또한 쏠쏠한 재미였습니다. 전기나 전화 등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고 신분제나 여성들의 지위에도 큰 변동이 생기는 혼란스러웠던 시대였지요. 개인적으로 벽에 설치한 종의 울림으로 귀족들이 자신의 방에서 하인들을 부리는 모습이 무척 신기한 부분이었고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하인 부리는 모습과 유사한 점이 있어 더 그랬나 봅니다.  






제임스 티소라는 낯선 이름 하나를 소개합니다. 제임스 티소(James Tissot)는  '모호한 근대성을 지닌 화가, 패션 화가, 그리고 돌아온 탕자 화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닙니다. 19세기 당시 전통적인 아카데미 화가로 분류하기에는 그가 다루었던 소재들이 지극히 동시대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인상주의 혹은 모던 화가로 분류하기에 그의 스타일은 너무 고전적이었고요.



전통적인 초상화나 역사화에 어울립법한 테크닉으로 그가 그려 낸 대상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취미생화, 신흥 부르주아들의 일상, 그리고 집안의 여인 초상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인상파 화가 마네와 드가식의 스타일이 예술계의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때입니다. 당시 파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었거든요. 화가들은 근대화로 급변하는 삶의 속도를 포착하기 바빴습니다. 이런 유행 속에서 티소의 그림은 낡고 보수적인 느낌을 주기 충분했죠. 그의 완벽한 회화적 테크닉은 감탄을 불러일으켰지만 말입니다.









그림(왼)FranceGeo/Nantes 그림(오)1897 영국 런던 시내/iStock





제임스 티소(James Tissot/1836-1902)는 1836년 프랑스 낭트 출생입니다. 1871년 보불 전쟁이 끝나고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파리코뮌 정권이 들어 서자 바로 정부군의 역습으로 정권이 무너집니다. 그로 인해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합니다. 파리 코뮌이 지원자로 의심을 받은 제임스 티소는 체포를 피해 영국 런던행 배에 몸을 싣습니다.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7.19-1871.5.10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프로이센과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 제2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7.19-1871.5.10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프로이센과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 제2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

파리 코뮌(Paris Commune/1871,3,18~5,28):

 파리 시민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 

노동자 계급이 세운 세계 최초의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자치 정부

조속기간 2개월,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에 옮김





<The Thames>,1867/wikipedia




런던으로 이주한 티소는 화가로서 새로운 경력을 쌓기 시작합니다. 영국 사회 상류층 여인들의 초상화 작업을 하면서 말이죠.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시대로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강에 정박된 화물선들, 산업사회를 상징하는 뿌연 매연, 그 강가에서 뱃놀이를 하는 잘 차려입은 브르주아 계층과 여인들 모습을 일상으로 볼 수 있었죠. 어린 시절 낳고 자란 프랑스 낭트의 항구의 풍경을 영국 템즈강가를 자주 찾으며 소재 발굴을 했던  모양입니다. 외국인이었던 그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런던 사회가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습니다.




그림 속 배경은 템즈강을 따라가는 보트 여행입니다. 강 옆에 정박 중인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 보이시죠.  하늘을 덮은  스모그로 회색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ESG (Environmental,Social, Goverance) 경영으로 단속 대상이 될 텐데 말입니다. 짐을 올리고 내리는 인부들의 바쁜  발걸음과 고함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 있게  보트 여행을 하는 걸 보면 브르주아 이거나 상류층 귀족들인가 봅니다. 시가를 물고 양복점을 방금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잘 차려입은  정장 차림의 남성은  뻐기는 듯한 자세로 여유로워 보입니다. 우산도 귀족이나 쓸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던데 빅토리아 풍으로 온몸을 가린  여성들 또한 특별 관광을 하는 듯 보이고요. 검정 뭉치인 줄 알았더니 발 모양으로 보아 보더콜리 정도 돼 보이는 개도 이 여행에 함께 하고 있네요.







<The Garden Bench>,1882/wikipedia



<정원의 벤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행복해 보입니다. 특히 아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다정해 보여 눈길 한 번 더 가고요. 그녀의 이름은 캐틀린 뉴턴입니다. 꼬마 신사 아들,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있는 딸, 그리고 잠깐 다니러 온 그녀의 조카입니다. 뒷 배경이 온통 꽃밭이고 자연 풍경이라 이보다 더 행복할 수없을 것 같은 가족의 한 나절 풍경 같습니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과 여인의 드레스 색상도 세련되고 우아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티소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작품이죠.




영국에 도착한 티소는 자크 조셉 티소라는 프랑스 이름을 제임스 티소라는 영국식 이름으로 바꿉니다. 영국 사람들 기호에 맞는 초상화를 그려 인기가 치솟지요. 그리고 그의 인생을 바꾸게 만드는 이혼녀 캐틀린 뉴튼을 만나게 됩니다. 캐틀린은 어린 나이에 이혼녀가 되었어요. 캐틀린 집안의 결정에 따라 17살 되던 해, 인도에 있는 군의관과 결혼을 하기 위해 인도로 먼 여행을 하게 됩니다. 미성년자인데 보호자 없이 인도까지 혼자 긴 여행을 한다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배 안에서 만난 팰리서 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집니다.  인도에 도착한 캐틀린은 뉴턴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결혼식 직후 팰리서와의 관계에 대해 남편에게 고백해 버립니다. 남편에게 돌아온 답은 즉시 이혼이었고요. 그녀는 다시 영국행 배에 올라야 했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후 팰리서의 아이를 낳았고 그 무렵 티소를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의 할머니'로 불리며 슬하의 9자녀를 유럽 각지에 시집 장가 보냈 던 빅토리아 여왕시대는 보수적이었습니다.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중시했어요. 여왕 부부가 솔선수범하여 그렇게 살았으니 밑단에 있는 민간인들에게까지 암묵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겠죠. ' 피아노에 다리가 보인다.'라는 말이 외설스러운 말로 비쳤다니 어느 정도 인지 짐작이 가시죠. 꾹꾹 누리기만 하니 답답한 사회적 분위기는 반감을 갖는 누군가의  딴짓을 불러오죠. 그것도 몰래 말입니다. 그래서 '빅토리안 같다.'라는 말은 '위선적이다.'라는 말과 동급으로 취급됩니다.




제임스 티소는 빅토리아 시대 그런 상류층의 화가로 찬사를 받으며 영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결혼에 실패하고 사생아 둘을 키우는 캐틀린과 동거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엄청난 스캔들 었습니다. 가십거리가 되어 세간의 시선은 두 사람의 사랑을 곱게 봐주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스스럼없고 소탈한 성격의 캐슬린은 당시 귀부인들 사이에서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뻔뻔스러운 부도덕한 여인의 극치로 받아들여집니다.  티소가 캐틀린을 모델로 남긴 수많은 작품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요. 이혼당한 여자 따위를 그리는 화가에 대해 초상화 제작의뢰는 점점 줄어들어 경제적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사교계 출입까지 제한되어 작품 전시도 어렵게 되었고요.




그래도 티소는 캐틀린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가 봅니다. 외부의 시선은 따가웠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으니까요. 그의 예술적 감성 또한 무르익어갑니다. 쭉 이어질 것 같던  그들의 사랑은 캐틀린이 28살이란 나이에 폐결핵에 걸리고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10여 년의 영국생활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6년여의 시간이 티소에게 허락된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거죠. 이 작품은 그녀가 사망하기 전 구상되어 사후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오랫동안 티소 곁에 머물러있었던 작품이고요.






산업혁명으로 인해 농촌이 붕괴되고 너무 빤한 미래를 살고 싶지 안 던 농촌 처녀들은 대 도시 파리로 몰려와 빠른 속도로 도시 노동자가 됩니다. 그나마 배운 여자들은 가정교사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지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지금보다 제한적이었기에 드레스나 식탁보에 수놓은 일을 하거나, 가게 점원이 되거나, 바의 웨이트리스로 이중생활을 하거나 , 센 강에서 빨래를 하는 세탁부가 되거나 등등 커져가는 도시 파리는 그녀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에밀 졸라 (Emile Zola)의 자연주의 소설'목로주점(L'Assommoir,1877)'의 주인공 세탁부 제르베즈의 소원을 통해 당시 그녀들이 품었을 희망가를 공감해 봅니다.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지니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남자한테 맞지 않고 살면서
마지막에 
자신의 침대에서 죽는 것


제임스 티소와 동시대를 살았던 다른 동료화가들은 서민의 삶을 보이는 그대로 그려내려 했습니다. 잘 나가는 한쪽을 위해 밑바탕을 지탱해 주던 기억 해 주지 않는 그들의 삶을 잠깐 엿보고 갑니다. 







그림(왼)<무도회   The Ball>,1878/wikipedia  그림(오)<세탁부  The Laundress>,1863/오마이 뉴스


Bustle/wikipedia



그림(왼), 티소의 <무도회>는 파티에 참석하는 여자의 야망과 그것을 적당히 즐기고 있는 남자를 날카롭게 비평한 작품입니다. 모델은 캐틀린 뉴튼이고요. 화면 가득한 화려한 노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주인공입니다. 백발의 신사와 팔짱을 끼고 등장을 했네요. 첫 사교계 입문 같아 보입니다. 딸인지 후원자인지 알 길은 없으나  함께 온 신사와 달리  여인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네요. 누군가를 눈으로 훑고 찾는 것처럼 말이죠. 



그녀의 드레스 밑자락 좀 보세요. 허리는 더 가늘게 엉덩이는 더 볼륨 있게 보이기 위해 당시 착용했던 'Bustle'이라는 여성용품입니다. 이 정도 디테일이면 기록물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죠. 이런 연유로 제임스 티소의 작품은 복식사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그림 속 스타일을 통해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충분히 읽어 낼 수 있었으니까요. 상업적이라는 한계 때문에 여전히 주류 미술사 시각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그림이 1960년대 이후 영화, 디자인, 패션사가 연구되면서 조금씩 알려지게 됩니다.




그나저나 검은 바탕의 그려진 물고기가 마치 화려한 레이스를 거슬러 올라갈 것 같지 않나요? 바닥을 쓸고 다닐 정도의 길이와 레이스 양이 상당했을 것 같습니다. 저 시대에 안 태어 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름답긴 한데 보고 있자니 마치 여성이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이 남성을 유혹하는 일처럼 표현되어 불편하고 씁쓸해집니다.







그림(오), 사실주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1808-1879)의 작품

 <세탁부>입니다. 한 보퉁이 빨래를 옆에 끼고 하루 종일 지쳤을 몸뚱이는 그래도 아이 손만은 놓지 않고  꼭 쥔 채 계단을 오릅니다. 산동네 몽마르트르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보이네요. 당시 돈 없는 예술가들, 서민층들이 많이 살았던 동네거든요. 낑낑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아이가 저 여인에게 유일한  희망이겠구나 싶고요.



 어쩐지 낯설지 않습니다. 엄마, 혹은 할머니 세대에 봤음직한 이 장면은 제 기억 속에도 짧게나마 지나갑니다. 주어진 조건이 넉넉지 않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럽게 살아 남았 던 원더우먼 원조쯤 돼 보이는 옛 여인들의 삶도 겹쳐지고요. 담담하고 거친 붓질로 연민이 아닌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서민층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한 때 국왕, 정치인들 같은 상류층의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화가입니다. 체포도 당하고 감옥에서 6개월간 추운 겨울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캐리커쳐의 미켈란젤로'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의 부정부패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닌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림(왼)<Ball on Shipboard>,1874/wikipedia 그림(오)<다림질 하는 여인들>/SlidePlayer





<선상 무도회>

그림(왼),1874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제임스 티소의 <선상 무도회> 작품입니다. 아래층에서 선상 무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갑판 위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화려한 야외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성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작품은 갑판 위 남녀의 모습을 담고 있고요. 신사는 적고 귀부인, 숙녀들만 잔뜩 갑판 위에 모여 있습니다. 아마도 갑판 아래에서 펼쳐지는 무도회에 참석했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온 모양입니다.  아니면 댄스 파트너를 찾기 위해 갑판 위로 올라왔을지도 모르죠. 마땅한 남성 파트너가 잘 보이지 않아 몇몇 여인들은 벌써 선상 무도회가 싫증이 났나 봐요.'와 보니 별 것 없네. 괜히 왔잖아'뭐 이런 속내를 품었는지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두 숙녀 앞에 노신사가 난간에 기대어 있네요. 두 숙녀는 1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저쪽에 있는 남성은 이야기꾼인가 봐요. 몸이 앞쪽으로 기울인 채 함께 있는 여성들이 관심 있게 듣는 걸 보면 말입니다. 걸려 있는 만국기가 한창 뻗어 나가는 영국의 국력을 넌지시 얘기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림(오), 에드가 드가의 <다림질하는 여인들> 작품입니다. 극장 혹은 발레리나 그림으로 유명하지요. 잘못 찍은 그림사진 같은 그림으로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고자 했던 화가이기도 합니다. 냉랭한 드가의 시선이 세탁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꽂혔네요. 



피곤한 지 하품을 하는 여인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금요일, 토요일 저녁쯤일까요? 상류층 혹은 브르주아 계층의 사람들이 바빠지는 때가 주말일 테니까요. 밀린 옷들 수선하고 다림질하려니 바쁘겠지요. 피곤할 때 한두 잔씩 마시려고 포도주도 한 병 있네요.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졸음이 몰려와 눈이 먼저 감깁니다. 물그릇은 분무기 대용일까요?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을 그때는 어찌 감당했을지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 이 옷 주인이 찾으러 오기라도 하는 듯 두 손까지 모아 힘을 쓰지만 무겁고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노련해 보이는 그녀의 몸놀림은 낑낑거리면서도 일을 마무리 지었을 듯합니다.




 그 당시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광경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순간을  담아냈습니다. 사진기의 발명은 풍경화가나 초상화가들에게  어느 정도 치명적이었죠.  근심에 찬 화가도 있었지만 산업발전이 가져온 신 문물을 자신의 작품에 잘 녹여내고자 하는 젊은 화가들도 많았습니다. 드가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요. 그 덕분에 우리는 힘들게 다림질하는 세탁부의 긴장된 몸동작과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다른 세탁부의  풀어진 몸동작을 비교해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연하고 자연스러운 순간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장의 스케치와 세심한 구성으로 탄생한 작품이란 것 기억해 주시면 좋겠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6vgmHxd1UZA




그림(왼)<L.L.의 초상>/Artlecture Contemporary Art그림(오)<세탁부  La Blanchisseuse>,1885-86/NYculture Beat





 그림(왼),1864년 티소는 살롱에서 초상화를 선보입니다.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동시대 신흥 부르주아 집안의 소녀입니다. 흰색, 빨간색, 검은색이라는 파격적인 색상대비와 옷 장식, 화려한 벽지의 패턴과 의자의 디자인까지 눈을 뗄 수가 없네요. 고개를 쭉 빼고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선 채 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세련된 벽지 디자인이 지금 사용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이고요. 작가의 섬세한 데생과 대조적인 색상의 사용, 치밀한 관찰력은 20대 후반에 이미 완성했다 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이런 질감에 대한 섬세한 표현의 시작은 모자가게와 직물상을 운용했던 부모밑에서 자란 영향일 겁니다. 당대 유행하는 복식과 취미, 집안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재현해 내 보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림(오), 툴루즈 로트렉(Toulouse-lautrec)의 <세탁부> 작품입니다. 몽마르트르 카바레'물랑 루주(Moulin Rouge)'의 화가로 더 유명하죠. 프랑스 남부 명문 백작 가문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가문의 혈통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근친결혼을 고수하다 유전병이 집안에 내려오고 있었어요. 뼈가 잘 부서지고, 키가 자라지 않는 병이랍니다. 13살에 의자에서 떨어져 이후로 하반기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어른의 얼굴, 아이의 몸으로 평생 살 수밖에 없었죠. 물랑루주의 포스터를 그려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 무용수나 성매매 여성들을 그리면서 소외받은 아픔과 신체장애에 대한 한을 달랬던 화가입니다. 




'몽마르트르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던 그가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친구 앙리 라슈(Henri Rachou)와 식사 중에 빨간 머리의 카르망 고댕(Carmen Gaudin)을 만나게 됩니다. 빨간 머리에 꽂혔지요. 당시 고댕은 23살 세탁부였고요. 그림 속 젊은 그녀는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응시하는 눈빛, 다부진 옆모습, 테이블을 잡고 있는 거친 손이 마치 항변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 이 생활을 때려치울 수 있을까? 내 꿈은 저 밖에 있는데... 언제 저 문을 열고 당당하게 나갈 수 있을까?'뭐 이런 불만 어리고 답답한 느낌이 그녀의 뒷모습에 읽히는 듯합니다. 녀는 후에 로트렉의 모델이 되고 13점 회화와 드로잉 몇 점이 나오게 됩니다.







제임스 티소의 화려한 상류층의 여인들과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왔지만 도시 노동자층으로 전락하고 만 또 다른 여인들의 삶도 함께 보았습니다. 시대와 공간을 달리 할 뿐 지금도 그 상황은 되풀이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느 삶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좋은 것들은 천천히 걸어오는 듯싶고, 나쁜 것들은 비행기를 타고 달려오는 것 같습니다. 촘촘히 칸을 메우고 있는 뚜벅이들이 있어 '공존'의 불균형을 맞춰주는 듯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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