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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얹음과 스밈

니콜라 드 스탈& 하이메 플렌자



"뒷면까지가 작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캔버스 하면  면 캔버스이지요. 아사천(린넨), 황마천, 그리고 케미컬(폴리에스테르, 나일론)로 이루어진 캔버스 천도 있습니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잘 맞는 캔버스 천 재료를 찾는 것이  50% 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특히 큰 그림 하시는 분들은 더 예민하십니다.  두루마리 천을 사용해야 해서 말이죠.  균질도가 생명이거든요. 지속적으로 담보 가능해야 작품의 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 캔버스 천이나 나무 프레임 혹은 알루미늄 프레임 같이 뒷단에 숨어서 작품을  빛나게 해 주는 숨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옷을 만들 수 있는 면 보다 질 낮은 목화로 면 캔버스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시간이 흐르며 천 값도 많이 저렴해졌습니다. 물감을 쌓아 올리는 느낌의 캔버스천을 선호하거나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어 화선지처럼 캔버스 천이면서 스미는 천을 선호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캔버스 천에 따라 깊은 곳에서 발색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겹겹이 쌓아 올려 명도와 채색에 따른 발색의 차이를 원하는 분들도 계시다는 얘기죠.




오늘 살펴볼 니콜라 드 스탈(Nicolas de Stael, 1914-1955)은 여느 서양화가들처럼  겹겹이 쌓아 올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이메 플렌자(Jaume Plensa)는 사람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 참여하게 해 스미는 예술을 지향하는 설치미술가란 생각이 들고요.(저의 개인적 느낌입니다.) 









그림1.<Le Granfd Concert>,1955/K trendy News 사진2.<Le Nomade d'Antibes>/Tripadvisor



그림 1. 핏빛 붉은 배경 색이 먼저 시선을 잡아 끕니다. 방금 연주회를 끝낸 걸까요? 아니면 연습하다 잠시 자리를 비운 걸까요? 붙박이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랜드 피아노와 덩치 큰 콘트라 베이스만 연주자 없는 공간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네요. 




니콜라 드 스탈(Nicolas de Stael, 1914-1955)의 작품 <콘서트 Le Grand Concert>입니다.  가로 6m, 세로 3.5m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실제 작품 앞에 서면 관객들은 왠지 모를 뭉클한 전율이 짜릿하게 전해진다고 합니다. 저 그림 앞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는 관객들도 계시고요. 가끔 손 끝에 상처가 나 핏방울 맺힌 모습만 봐도 사람은 흥분할 텐데. 사람키를 훌쩍 넘어서는 온통 붉은빛의 작품 앞에 서면 잡아 먹히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는 앙티브(Antibes)의 자신의 화실 11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화가입니다.  그의 나이 41세였죠. 




 




1913년 생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ourg)에서 태어났습니다. 귀족집안으로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많은 백인 러시아인들처럼 그의 가족도 강제 추방되어 폴란드에 정착합니다. 그러나 그가 6살이 되던 1919년 부모가 사망하면서 고아가 됩니다. 1922년 그의 대모로부터 말리나(Marina)와 올가(Olga) 두 자매와 함께 브뤼셀의 프리세로(Fricero)가문에 맡겨집니다. 다행히 그의 양부모 역시 부유하고 교양이 있는 사람들로 그들 남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며 사랑을 주었다고 합니다. 




나의 삶은 불학 실한 바다 위에서 계속되는 여행이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단단한 내 배를 만들기 위한 이유다. 
-니콜라 드 스탈-





브뤼셀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골동품 그림과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학업을 마친 그는 프랑스와 스페인, 네덜란드, 모로코 등 넓은 세상을 여행합니다. 세잔, 마티스, 반 고흐, 브라크 그리고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등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도 이 시기입니다. 






Antibes France map/ World Maps





사진 2. 멀리 눈 덮인 알프스 산이 보입니다. 너른 지중해를 보고 있는 뒤태의 흰 조형물은 하이메 플렌자(Jaume Plensa)의 작품 <le Nomade> 입니다. 앙티브 (Antibes) 피카소 미술관 외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 공간 선택을 잘 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같은 작가의 작품도 어느 공간에 놓이는 가에 따라 느낌이 상당히 다르거든요. 그림이나 조각의 맛을 멋스럽게 살린 전시도 있지만 왠지 남의 집 살이 하는 것 마냥 어울리지 않은 곳에 붙박이로 있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탁 트인 지중해 너른 바다가 일단 숨통을 트이게 합니다.  사연 싫고 드나드는 무수한 배들을 보며 저 자세를 하고 하루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듯싶고요. 흰 조각이라 멀리서도 이정표처럼 눈에 띄어 거인 문지기 같은 느낌도 듭니다. 




알파벳 문자들로 이루어진 8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입니다. 웅크린 익명의 인체 형상으로, 라틴 알파벳 문자들로 이루어진 피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별 문자들은 의미가 없지만, 조합되어 단어와 언어, 문화를 이룹니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은유합니다. 작가는 "우리의 피부가 경험으로 이루어진 문자들로 새겨져 있다."라고 말합니다. 관람객들이 작품 내부로 들어가 열린 구조물 밖을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바람도 지나가고 지중해 주변 풍경도 뚫린 구조물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멋진 바깥 풍경을 빌려와 또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선물하는 거죠.





나의 꿈은 내 작품 안에서
 연인과 아이들, 가족들이 하나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2007년 여름 안티브 피카소 미술관 전시를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2010년 영구 설치되었고요. 안티브(Antibes)시와 피카소 미술관의 위탁으로 제작되어 바스티옹 생자크 요새 위에 설치되었습니다. 작품 주변의 고대 유적과 지중해를 향해 열린 공간이 작품의 의미를 강화합니다.  문자와 언어, 개인과 사회에 대한 플렌자의 철학이 담긴 대표작입니다. 






그림1.<Composition>,1947/K trendy News 2. <The Dream>,2009, Sutton Manor, Liverpool,U.K./Jaume Plens






그림 1. 그의 초기 작품입니다. 이 시기 그의 그림들은 어둡고 우울한 색상을 띱니다. 유년의 암울한 경험 탓일까요. 어두운 톤이 지배하는 작품에서 그는 구상적인 형태를 보이다가 비 구상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합니다. 


Jeannine Guillou/ W Sztuce




 알제리를 여행하다 만난 첫 번째 아내  자닌 기유 (Jeannine Guillou)와  1941년 프랑스로 이사하여 화가로서의 기반을 닦기 시작합니다. 지독한 가난과 고통 속에 밑도 끝도 없이 희망 없는 그림을 그리던 무명시절입니다. 아내 자닌(Jeannie)은 나치가 점령해 있던 파리에서 딸을 낳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1946년 2월 영양실조로 사망하게 됩니다. 시기는 어려웠고 성공은 너무 멀리 있었던 시지죠.




스탈은 1945년 파리에서 처음 그룹전과 개인전을 갖게 됩니다. 결과는 생각하신 대로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습니다. 급기야 파리를 떠나게 되지요. 아내도 잃고 아이들은 셋 딸린 가난에 찌든 그에게 두 번째 아내 프랑수아즈 샤프통과의 만남은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이후 푸랑수아즈와 결혼을 하고 다시금 재개를 꿈꾸며 창작 활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스탈의 마음가짐과 새 아내 프랑수아즈의 노력으로 이후 니콜라의 작품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많은 아트딜러들이 그에게 찾아와 작품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드 스탈은 서서히 선과 색을 이용하여 '구상회화'의 틀을 깨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완전 추상으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공공미술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모두의 것이 된다.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가 2009년 영국 리버풀 인근 서턴 매너 (Shtton Manor)에 설치한 공공 조각 작품입니다(사진 2). 높이 20m의 거대한 여성 머리 형상으로, 눈을 감고 있는 명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와 스페인산 자갈로 제작되었으며, 무려 373톤의 무게라고 합니다.







과거 석탄 광산 부지에 설치되어 지역의 산업 유산을 상징합니다. 영국 리버풀 폐광지역 전직 광부들과 함께 조각한 작품이지요. 1,888만 파운드 (약 280억 원)의 제작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The Dream>은 영국 최고 조각상인 마시 조각상(2009)등을 수상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생기 잃은 도시에 지역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qHuEnPjo6Rk






1.<정오풍경 paysage du midi>,1953/Artnet  2. <Crown Fontain>,2004/Artlecture Contemporary Art




좌충우돌하며 자신만의 미술의 갈 길을 찾던 스탈의 그림이 바뀝니다(그림 1).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미술 방식을 찾기 시작한 것은 , 임파스토(impasto)방식의 그림이었죠. 유화물감을 팔레트 나이프나 또는 손가락으로 두껍게 반죽처럼 칠해 강한 질감을 표현하는 거친 방식입니다. 이 표현기법은 형태가 무시된 비정형의 앵포르멜(informel)추상 미술의 표현 방식입니다. 


앵포르멜이란? 독일 표현주의의 와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아 '피에트 몬드리안으로 대표되는 차가운 추상에 대응하여 서정적 측면을 강조, 색채에 중점을 두며 보다 격정적이고 주관적인 호소력을 갖는 표현주의적 추상예술을 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iT4NOCH_Umg






시카고 지도 맵 시카고




사진 2. <크라운 분수대 Crown Fontain>(2004)입니다.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를 찾는 많은 시민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제공하며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이메 플렌자(Jaume Plensa)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나게 됩니다. 플렌자에 의해 디자인되고 시카고 주민들의 아이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이 분수는 LED 스크린에 시민 1000명 얼굴이 13분마다 번갈아 나타나는 참여형 예술 작품입니다.  '공동체'에 주목하고 '공공성의 실현'에 목적을 두는 방향에서 완성되는 '미술적 가치의 실현'을 이룬 작업이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라운 분수대Crown Fontain>의 초기 작업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현재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시계이자, 분수가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 봄이 시작된다는 내용을 신문에 발표할 만큼 명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4년 6개월간 정부를 설득해야 했습니다. 분수대를 설치하는 건축 작업과 정밀한 기술팀과의 오랜 협업도 필요했습니다. 물론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없었다면 실현되지 못할 공공미술이었죠. 





야외 조각엔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이 
늘 따라붙어요.
그 뒤에 생략된 게 무언지 아세요?
쓰다듬어 달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처럼 애정을 갖고 대하란 말이죠. 
그게 공공 미술을 대하는 제 태도입니다. 

-하이메 플렌자(Jaume Plensa)-








예술계에서 권위 있는 상 중의 하나인 '세계 미술상(Grand Fine Art)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예술 분야에 권위 있는 상으로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Prize), 터너 판화상(Turner Prize: 영국 작가),휴고 보스 상 (Hugo Boss Prize: 구겐 하임 미술관에서 수여)등이 있습니다. 수상혜택으로 상금 (휴고 보스상의 경우 10만 달러)은 기본이죠. 더불어 전시기회, 작품 구매, 그리고 후원 및  지원을 제공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GYTvFFgBAQ








그림1.와인잔이 있는 정물Narure morte au verre,1954/Artnet 2.Ogijima's Soul, 2010,Japan/Jaume Plensa




1950년에서 1955년은 니콜라 드 스탈(Nicolas de Stael), 그가 남다른 화가라고 인정받게 된 결정적인 시기들로 10년을 좌충우돌 방황하던 스탈에게 작품이 활화산처럼 용솟음치기 시작하던 시기입니다.  이 기간 5년 동안 제작된 작품들이 죽은 후에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미술 형식인 '서정적 추상'을 추구합니다. 그만의 굵고 과감한 에너지와 캔버스를 터트릴 듯 과감한 터치들로 자신의 내적 심리상태와 감정을 표현합니다. 계획적인 구성을 거부하고 주관적인 표현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주걱까지 사용해서 문지르고 깎아내고 회 칠하듯이 캔버스를 밀어붙이던 거친 방식에서 얌전한 임파스토(Impasto)방식으로 정돈되어 갑니다. 색상 팔레트와 구조적 배열이 고요한 침잠의 분위기를 전달합니다(그림 1). 정물 앞에 눈감고 조용히  명상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가와현/해시넷위키





사진 2. <Ogijima's Soul>은 하우메 플렌자가 2010년 제작한 대규모 공공 조각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 가가와현 세토나이카이 해협의 오기지마 섬에 영구 설치되어 있습니다.  오기지마 섬의 정체성과 역사를 상징합니다. 섬 주민들의 모임 장소 역할도 하고요. 거대한 두상 형상의 조각상 내부에는 계단식 좌석이 있어 공연이나 행사 등을 열 수 있습니다. 플렌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영혼과 정신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물에 일렁이는 하이메 플렌자의 작품이 밤이 되면 또 다른 작품이 되어 주변을 운치 있게 만듭니다. 오고 가는 주민들도 작품의 일부분이 되어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가 추구해 온 공공의 예술 뒤에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in)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실수를 신경 쓰지 않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험하고, 계속 무엇인가 탐구하여 끝없이 노력했다는 부분이 작가에겐 실천력과 아이디어의 원천이었던 셈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zKCb7fjNsM







드 스탈( de Stael)은 1950년대 초반부터 서정적이고 자유로운 추상화 기법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에서 얻은 색채 풍부하고 역동적인 추상 풍경화들이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그림3.<아그리젠토 Agrigente>,1954/나무위키





타고난 색감각과 천재적인 화면 구성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이 시기에 작업했던 그의 작품은 대중들에게 아주 큰 환영을 받습니다. 당시 뉴욕은 물론 워싱턴 필립스 컬렉션에서도 앞다퉈 그의 작품 구매에 나서게 됩니다. 그간의 노력 끝에 그의 작품들이 주목받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죠. 





그는 직접 야외 풍경을 보고 그리기 위해 작업실 밖을 나갔습니다. 그만큼 그의 시각적 영역은 더욱 확장되었죠. 240점이라는 풍경화로 고스란히 남았으니까요. 대부분 작거나 중간 크기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지방과 각각의 장소들에서 그리는 방식과 서로 다른 독특한 인상이 생성되어 있습니다. 





나는 모든 바다를 수영하면서 몇몇 크로키 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니콜라 드 스탈-






Agrigente:focus sur un chef-d'oeuvre/ Connaissance des Arts




Sicily Map and Travel Guide/Wandring Italy





1953년 8월 그는 가족들과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여행하게 됩니다. 시칠리아 여행하는 동안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아그리젠토와 시라쿠사의 고대 유적을 방문하여 펠트펜으로 스케치를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프로방스 작업실로 돌아왔을 때 그의 그림은 시칠리아의 영향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몇 달 동안 강렬한 빛으로 눈부신 섬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시칠리아 여행은 그의 색채가 좀 더 진화하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멀리서 봐도 노랑과 주황의 밝고 빛나는 색채가 눈에 띄게 다름을 느낍니다.(그림 3) 







pinterest










뉴욕 메디슨 스퀘어 공원에 위치한 14m의 대형 거대한 두상 조각 <ECHO>(2011)입니다. 이 작품은 기술적으로 도저히 설치 불가능 할 것으로 보였지만 조각을 분리해 이동시켜 조립하는 방식으로 성공한 프로젝트로 손꼽힙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1년 5월 5일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한 면에 <기념시: 꿈의 시(Monuments: The Poetry of Dreams>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는데, 당시 그는 "작품을 구상할 때 기술적인 해결 방법도 함께 확인하는가?"라는 카롤 키노(Carol Kino) 기자의 질문에 '사전에 기술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문제가 생긴다. 꿈을 꾸고 난 후, 구현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라고 대답해 자신의 예술적 가치관의 목적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일 뿐임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이는 달리 말해 공공성을 기본으로 한 조각이란 태도의 문제이지 형식이 아님을 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J98Yv00Gss



<Water's Soul>,2020, Newport, Jersey city,NJ.USA/Jaume Plensa






google map



<Water's Soul>은 2020년 작품으로 높이 약 24m (80ft)로 플렌자가 제작한 공공조각 작품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뉴저지 저지시티 허드슨 강 워터프론트에 영구 설치된 대형 조각상입니다. 젊은 여성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고,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 침묵할 것을 권하는 상징물입니다. 




주민들의 접근성이 좋고, 작품 주제와 의미를 잘 드러낼 수 있으며, 사회성과 예술성을 갖춘 공공미술 작품입니다.  허드슨강 워터프런트가 적절한 설치 장소로 선정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물과 인간의 관계를 형상화하여 인류의 연대와 평화를 상징합니다. 플렌사는 이 작품이 뉴포트 지역의 상징적 조형물이 되기를 희망하며, 인류의 미래와 평화로운 공존을 기원한다고 밝혔습니다. 








<Nu bleu Couche>,1955/WiKiArt




1954년 가을, 그는 가족과 함께 앙티브(Antibes)로 이사합니다. 그해 9월 , 앙티브로 이사를 하여 바다를 마주한 작업장에서 수많은 정물화와 풍경화를 제작했습니다. 1955년 6월과 7월에 예정된 앙티브의 전시회를 위해서였지요. 그 누구도 그가 자살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성공이 시작되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심약한 그는 피로와 불면증 및 우울증으로 고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의 죽음, 첫 번째 아내의 죽음으로 유달리 섬세하고 유약한 성격을 가졌던 그는 비평가들과 예술평론가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일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림으로 불태우며 자신의 가진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습니다. 




1955년 3월 16일 그는 자살하고 맙니다. 보상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이죠. 한창 꽃 피울 나이에 소진한  불꽃이 되어 영원히 붓과 이별하게 됩니다. 




누워있는 푸른 누드(Nu couche blea>는 그의 누드 시리즈의 마지막이며 연작 중에 가장 큰 그림입니다. 1953년부터 1955년 사이에 남프랑스의 라네(Lagnes), 메네르브(Menerbes),및 앙티브(Antibes)에서 오렌지와 블루 등 네 가지 버전을 그렸고 이 작품'푸른 누드' 작품은 2011년 12월 6일  파리의 경매에서 700만 유로(한화 100억)가 넘는 가격에 미국 국적의 수집가에게 낙찰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3BJTPqrxfU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니콜라 드 스탈(Nicolas de Stael)의 작품을 '서정 추상(Lyrical Abstraction)이라고요. 스탈은  바다를 마주하든, 축구 경기를 바라보든, 탁자 위에 놓인 과일 조각을 바라보든 세상의 광경과 그 다양한 빛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이 관객에게도 전달되었지요. 그의 작품은 공간과 색채를 탐구하며 추상과 구상적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차가운 추상'이라 불리는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과 비교되며 스탈의 작품이 미술계에 새롭게 재 평가되고 있습니다. 


 




도시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고 도시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미술.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공공미술 작가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도 그 중심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의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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