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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예술의 쓸모

 Louise Bourgeois & Kusam Yayoi


AI의 등장으로 1년이 마치 10년처럼 쏜살같이 스쳐갑니다. 깨어나 보면 새 기술로 겨우겨우 알게 된 기능 하나 가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기술이 편리를 목적으로 챙겨야 할 것들을 알고도 모른 척 지나쳐오지는 않았는지? '그딴 것 필요 없어.' 하며 그 자리에 두고 오는 것들은 없는가? 싶어서요.  이럴 때일수록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 절실해 보입니다. 인간만큼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있을까 싶어서요.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관계나 연결의 부분이 과연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요즘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마치 항의라도 하듯 왕성한 활동을 하셨던 여성 예술가 두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와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1929-  )입니다.




한 분은 프랑스 파리 출신이고 다른 한 분은 일본 나가노현 출신입니다. 두 분 모두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아버지의 외도로 무너진 신뢰와 가족 간 갈등 안에서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관계의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루이스 부르주아), 신체적, 정신적 학대로 정신병(쿠사마 야요이)을 평생 친구처럼 데리고 다닙니다.  둘 다  탈출구를 '예술'에서 찾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섭렵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며, 그려내고 덜어내는 작업들을 평생 치열하게 하며 살았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라는 공간을 통해 각각 회고전을 거치며 점점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1982년 그녀의 나이 70대 즈음입니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uoi)는 1989년  'Love Foerver:Yayoi Kusam, 1958-1968)'회고전을 통해 주목받게 됩니다. 




두 분 다 베니스 비엔날레 참석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그곳에서 황금 종려상(1999년)을 수상했습니다. 반면에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는 1966년 베니스 비엔날에 초청받지 못한 작가로서 전시장 앞 잔디에 약 1500여 개의 물방울 무늬 오부제를 깔아놓고 개당 2달로 작품을 파는 퍼포먼스를 보인적이 있습니다. 이후로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로 당당하게 참가할 만큼 영향력이 커집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2010년 5월 31일 뉴욕에서 생을 마감하십니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는 루이비통과 2번의 협업을 통해 전 세계를 물방울무늬로 물들이고 계십니다. 마술처럼 그녀의 물방울 문양은 찰떡처럼 스며들어 어디에서든 생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이대로라면 정말 본인의 말처럼 우주로 까지 번져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노익장을 과시한 그들의 파워에 비법을 훔치러 가는 시간입니다. 그들의 몸으로 살아 낸 '예술'이란 이름의 꽃이 어떤 자양분을 먹고, 어떤 심리적 치유를 거치며 승화되어 가고 꽃피고 열매 맺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1. <마망 Maman>, 1999, National Gallery of Cannada,Ottawa/wikipedia 사진2. Kusama Yayoi/eyesmag.com





거미는 나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찬사입니다.
그녀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거미처럼 실을 짰고 거미처럼 매우 영리했습니다.
거미는 모기를 잡아먹는 친근한 존재다.
우리는 거미가 질병을 퍼트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거미들은 우리 엄마들처럼 도움이 되고 보호한다.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https://www.youtube.com/watch?v=UTsFuZ80OyY






<사진 1>. 140cm 정도의 키에 바짝 마른 몸, 게다가 88세(1999년)로 어른 대접받으실 나이에 현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의 작품 <마망 Maman>입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지요. 가슴 덜컥 내려앉게 하는 '엄마'라는 뜻을 지닌 <마망 Maman > 작품은 워낙 거대해 제목과 달리 위협감이 먼저 듭니다.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하던 그녀가 어머니 사망 이후  미술 쪽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늦은 나이에 그림공부를 시작한 거죠. <마망>은 그런 그녀의 후기 대표작입니다. 끝이 뽀죡한 다리를 길 게 뻗고 위태롭게 서 있는 거미 '마망'. 60세까지 철저히 무명시절을 보내다가 98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작품을 계기로 전성기를 누렸던 작가입니다.





 1996년 부르주아는 1947년 잉크&목탄 드로잉으로 그렸던 거미에서 착안해 첫 강철 거미 조각 'Spider'를 제작합니다. 거미는 부르주아의 엄마에게 헌사하는 작품으로 '베틀을 돌리고, 짜고, 양육하고, 보호하는 모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1999년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을 위해 '마망(Maman)을 제작합니다. '마망 Maman'은 테이트 모던을 비롯, 캐나다 국립갤러리(오타와), 도쿄 모리미술관, 크리스털브리지 미술관(아칸사주 벤튼빌), 도하 카타르 국립컨벤션센터 둥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마망 Maman > 작품 속 거미는 칼처럼 뾰족한 날카로운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 거미의 몸통 부분이 실제보다 많이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미는 보통 긴 다리로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몸통을 가능한 낮게 위치시키기 때문이죠. 그런데  작품의 거미는 몸통이 굉장히 위쪽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연스러워 보이고요. 얇은 다리들이 억지로 들어 올린 몸통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Sac Containing marble eggs, at Zurichsee-Schifffahrtsgesellschaft,Zurich, 2011/wikipedia









보이시나요? 망으로 둘러쳐진 그물 안에  매끈한 하얀 대리석 구슬들 말입니다. 바로 거미 '알'들입니다. 거미가 이렇게 위태로움 모습으로 저항하듯 하늘로 몸을 잔뜩 추켜올리면서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이유입니다.  바로 이 배 아래쪽의 알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입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거미의 이 모습에서 평생 태피스피리 작업을 하신 자신의  '엄마'를 발견해 냅니다. 





거미가 매일 실을 뽑아내듯 직물을 뽑아내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엄마, 남편의 부정을 미련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부정 해 버리고 싶은  엄마, 하지만 거미가 알을 지키려 하는 것처럼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엄마,  얇은 다리로 자식들을 배 아래 숨기고 자신이 모든 고통을 감내했던 , 사랑하지만  우둔하고, 너무나 밉고, 하지만 생각할수록 눈물이 나는 , 바보 같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알게 된 겁니다.





이렇게 자신 안의 모순된 감정을 해결해 가는 처절한 삶의 과정이 바로 <마망 Maman>으로 탄생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에게 닥쳤던 가장 고통스러운 일들을 극복해 내기 위해 괴로움을 고백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작품을 '고백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소 볼품없다 싶었던 거미가 관람객들 각자의 '엄마'의 모습으로 조금 다르게 와닿지 않으신가요?'엄마'라는 단어는 힘이 셉니다. 생각할수록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묵직한 무언가가 시야를 흐릿하게 하니까요. 이 거미가 안고 있는 삶의 무게와 모성애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사진 2>. 빨간 촉수처럼 생긴 남성의 성기를 표현한 자신의 작품 앞에 아우라 장난 아닌 창작자가 서 계십니다. 물방울무늬, 빨간색 머리,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 화려한 복장입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대중을 사로잡는 법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예술가란 생각이 듭니다. 젊은 시절 자신의 전시 오프닝 때마다 기모노를 입고 등장할 정도로 자기에게 주목을 끌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예술가죠.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를 기묘하게 조합하며 우리를 새로운 세계와 차원으로 끌어당기는 내공의 소유자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1929.3.22.~ )입니다.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가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1997년 이후 그는 예술과 컬래버레이션 혹은 예술가와 콜라보레이션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팬이기도 한 마크 제이콥스가 도쿄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이었습니다. 




그녀의 에너지는 끝이 없습니다. 
고통을 짜내는 일종의 강박증이 존재합니다. 
그녀의 캔버스와 설치작품을 보면 
이 세계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란 걸 느낄 수 있어요.
이것이 제가 그녀를 존경하고 
그녀의 작품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대하게 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 마크 제이콥스-





2012년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는 쿠사마 야요이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미술관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예술작품을 볼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이처럼 예술가와 브랜드 간 콜라보레이션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작업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브랜드에 있어서는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상품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죠.






 2023년 루이비통이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와 다시 협업을 한 주된 이유 역시 쿠사마의 인지도와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어 더 큰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루이뷔통 입장에서 예술적 가치와 대중적 관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거죠. 게다가 젊은 시절부터 일관되게 해 오던 작업들, 정신병원과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을 하는 독특한 그녀의 이력까지 더해져 엔터테어너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갖춘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내 모든 작품은 내 삶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사진1.Deconstruction of Father  아버지의 파괴, 1974/동아일보/ 1' 출처: Pinterest


Louise Bourgeois's family/Crystal Bridges Museum of America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입니다. 태피스트리를 수선하고 판매하는 아버지 루이 부르주아(Louis Bourgeois)와 골동품 가업을 했던 어머니 조세핀 부르주아(Josephine Bourgeois)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하고 있던 테피스트리 사업은 직물 공장 같은 것으로, 당시에 상당히 큰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유복한 환경이었습니다. 한국의 강남 8 학군에 위치해 샤넬이나 쁘렝땅 백화점 옷을 입고 자랐지요. 가정교사까지 둬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걱정도 없고 부족할 것도 없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8살 때 아버지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파리 남부에 땅을 사서 옮기게 되고, 이 와중에 엄마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12년간 병석에 있게 됩니다. 부르주아는 아픈 엄마를 돌보고 태피스트리 복원 그림을 그리며 학업을 이어가죠. 





그런 그녀에게 이후의 평생을 결정짓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당시 영어를 능숙하게 하면  출세길이 보장되던 때라 좀 있는 가정에서 영어교사를 고용하는 일이 트렌드였다고 합니다. 아픈 엄마를 대신하고 아이들을 돌 봐줄  영국출신의 보모 겸 입주 가정교사와 함께 거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유년 시절  친언니처럼 따르고 사랑했던 가정교사가, 아버지와 불륜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해 왔던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그녀의 행복했던 유년 시절은 이때부터 산산조각 나게 됩니다.





그녀는 분노했습니다. 아버지를 증오했고, 가정교사를 증오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그녀가 증오하게 되었던 것은 이 모든 사실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가정을 깨지 않으려 이를 방관했던 무력한 엄마였습니다.  부정을 저질렀던 아버지와 가정교사 보다도 이러한 부당한 상황을 이어가고자 했던 바보 같은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어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이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후에 이야기합니다. 그녀가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원천은 이러한 '관계'에 대한 허무함과 고민 때문이었다고요. 그런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성장하면서 애착을 요구하는 관계에서 힘겨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부모, 형제자매,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모순적 (양가적) 감정으로 어려웠다고 호소합니다.






<사진 1>. 아버지에게 느꼈던 폭력과 분노는 방 크기의 재현작 < 아버지의 파괴 Deconstruction of Father,1974>라는 작품으로 드러납니다.  방을 설치한 후 라텍스와 석고 등을 이용하여 설치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가슴을 직접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직접  도살장에 방문하기도 하고, 토막 난 동물들의 몸체의 부분들을 식탁이자 침대이기도 한 테이블 위의 여기저기에 흩어놓아보기도 했다고 해요.  아버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부르주아(Borugeois)와 아이들이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절단하고 찢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고 먹는 연출입니다. 일종의 상상의 폭력이죠. 자신의 내면을 억압하는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을 떨쳐 내고자 몸부림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과거를 철저히 파괴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재건하고 싶었다고요.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사랑하는 남편 로버트 골드 워터(Robert Goldwater 1907-1973)의 사망 이후 만들어진 작품으로 '아버지를 부숴버리고 싶다.' 할 정도로 최고의 공격성을 보이는 작품입니다. 붉은색 색감이 주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로도  그녀의 부정적인 느낌을 충분히 전달받게 됩니다. 






"우리 집으로 온 가정교사 세이디 (Sadie)가 알고 보니 아버지의 애인이었어요. 세이디는 우리 집에 살았고, 아버지가 차를 운전하면 그녀가 조수석에 앉았죠. 엄마와 나는 뒷좌석에 앉았고, 나는 그런 엄마가 정말 싫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라도 아빠를 지켜봐야 그가 밖으로 돌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


- 폴 가드너와의 인터뷰 내용 중-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엄마의 수용,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 그 가운데서 수많은 혼란을 겪었다고 회고합니다.





여기에 나를 위해 집으로 온 영어 선생님이 왜 내가 아닌 아버지에게 집중하는지, 그에 대한 질투와 배신감을 느꼈다고 해요. 그러면서 때때로 세이디(Sadie)나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녀의 2006년 80대 후반에 만든 작품 중에 얼굴이 드러나 않고 돌돌돌 꽈배기 모양에 말려 다리만 대롱대롱한 작품이 있습니다. 브르주아는 그녀를 태피스트로 돌돌 말아 이불을 짜듯이 짜서 죽이고 싶었다고 얘기합니다. 이런 살인마적 마음으로 인해 정신분석도 오랫동안 받으며 작품활동을 이어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vYvqxHejY










 더 이상 어린 소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느꼈던 암울한 전쟁의 시기,
제가 살던 집 뒤에는 수백만 개의 흰돌이 놓인 강이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태양아래 '존재' 하나하나를 각인시키던 돌의 모습은 
제가 빠져버린 환상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자연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계시 외에도, 
저는 마음속 욕망의 이미지와 함께 
정신의 신비한 세계에 사로잡혔습니다. 

-쿠사마 야요이-








그림1.  한국경제 /      그림 2. <Image of Human Being>, 1987, Acrylic on Canvas/Pinterest








<그림 1>. 검은색 바탕 위에 흰색으로 그린 미세한 고리는 그물 패턴처럼 캔버스를 균일하게 덮고 있습니다. 그 위에 흰색으로 얇게 칠한 터라 멀리서 보면 빈 캔버스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미묘한 인상을 줍니다. '그물망' 사이사이 빈 곳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검은색 배경이 점처럼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엎치락뒤치락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물망과 점의 관계는 쿠사마가 생각하는 무한한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캔버스 전체를 망으로 뒤덮다 못해 점차 그걸 책상에도 그리고 바닥에도 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몸 위에도 그렸습니다.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망이 무한으로 증식하더라고 쿠사마는 회고합니다. 당시 미국은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30-1970)의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이 대세이던 때입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남성중심의 화단이었고, 동양인이라서 느꼈을 차별 등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1959년 브라타 갤러리 (Brata Gallery)에서 이 작품들을 선보이며 뉴욕 화단에 성공적으로 입성합니다.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소화해 내던 작업량으로 인해  조현병 증세는 더 심해집니다.







저는 제 위치로부터 무한한 우주를 가늠해 보고 싶었습니다. 
입자들의 축적을 그리며 저의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인생은 

이런 수백 만개의 입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쿠사마 야요이-










<그림 2> 1987년 작 <인간의 이미지 (Inagery of Humam Beings)>(1987)에는 물방물무의 철학의 연장선으로 서로 연결된 존재에 대한 쿠사마의 관점이 녹아 있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동그란 흰색 점이 보라색 면을 뒤덮었습니다. 대부분의 점에는 작은 꼬리가 달려 있고, 때로는 다른 점과 연결됩니다. 올챙이를 닮은 점은 마치 남성의 정자를 연상시킵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은하계의 장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보는 거리와 방법에 따라 작품 속 점의 밀도와 간격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 보고 있으면 점들이 흩어지며 움직이는 듯하고요. 이는 에너지의 변화,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해 재생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우주의 먼지이면서도 저마다 고유한 존재인 인간을 바라보는 그녀의 예술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입니다. 




<무제>, 1939/ ARTART





쿠사마 야요이의 <무제, 1939> 작품입니다. 10살 때 그린 어머니 그림인데 쿠사마의 특징적인 점 패턴이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고통과 불안정한 가정환경에 노출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쿠사마의 예술 세계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고요. 후에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점 패턴과 반복적 모티프의 기원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쿠사마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가족관계, 특히 어머니와의 복잡한 관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예술적 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작품입니다. 






쿠사마 야요이 /뉴욕 식물원 특별전(4,21, 2021)/NYCulture Beat









"뉴욕에서 어느 날 캔버스 전체를 아무런 구성없이 무한한 망고 점으로 그리고 있었는데 내 붓이 거의 무의 식적으로 캔버스를 넘어 식탁, 바닥, 방 전체를 망과 점으로 뒤덮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내 손을 봤을 때, 빨간 점이 손을 뒤덮기 시작했고 내 손에서부터 점이 손을 뒤덮기 시작했고 나는 글 점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점들은 계속 번져가면서 나의 손, 몸 등 모든 것을 무섭게 뒤덮기 시작했다. 의사가 진단하기를 몸에는 별 다른 이상이 없고 정신이상과 심장 수축 이상에 대한 진단이 나왔다. 이러한 사건 이후에 나는 조각과 퍼포먼스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내 작업의 방향 변화는 언제나 내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결과다. "


                 -쿠사마 야요이-






<소멸의 방>, 점으로 사라 진 세상/Artlecture Contemporay Art Platform






<소멸의 방>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관람객들이 물방울 모양을 원하는 곳에 붙이고 나면 그곳은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공간으로 재 탄생하게 됩니다. 스티커를 붙여나가는 과정에서 도트가 채워지며 최초의 방의 모습은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일본 나가노현/위키백과



Kusama Yayoi's Family/ 한국경제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4인 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종묘업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꽃과 나무를 스케치하는 것에 익숙했다고 해요. 그러나 그녀는 소녀 시절부터 조현병을 앎이며 반복해 환각이나 환청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쿠사마의 자서전에 따르면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가한 사람이라고 해요. 어머니는 어린 쿠사마에게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아버지를 미행하고 자신에게 보고하게 시켰다는데 이것이 마음의 큰 상처를 남겼다고 적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동기 학대는 만성적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 일찍부터 양극성 장애로 넘어가기 쉽다고 합니다. 또한 장기간 혹은 심한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동의 경우 영구적으로 뇌구조와 기능 상의 변화가 생기고요. 게다가 면역체계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  신체 및 정신 이상에 걸리기 쉽다고 합니다. 






7살부터 제비꽃, 호박, 게 등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환청과 꽃에 사람 같은 얼굴이 있거나 주변 사물에 환하게 불이 켜지는 등의 환시를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는 조현병 (Schizophrenia)의 증상으로 의심되는 지점입니다. 쿠사마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내가 본 것을 그렸다. 본 것을 기록하는 것은 발생한 에피소드의 쇼크와 공포를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이것이 내 회화의 근본이다."라고 밝힙니다.




 보고 들은 기묘한 것을 기록하고자 낙서에 몰두하는 어린 쿠사마를 위해 아버지가 물감, 붓 등 재료를 사주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어머니는 여성은 얌전히 커서 결혼하고 가정주부가 되어야지 화가가 돼서 안된다고 꾸짖으며 쿠사마의 그림을 찢어버리곤 했고요. 






그럼에도 쿠사마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낙하산 공장에 차출되어 일했는데 낮에 고된 노동을 해도 집에 돌아오면 밤에도 늘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죠. 1948년 전쟁이 종료되고 쿠사마는 교토 시립예술대학에 진학하지만 전통적 교습 방식과 니 혼가(일본화)만을 고집하는 커리큘럼에 강한 반감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편 부모가 자신을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정략결혼을 시키려 하여 심한 불안감에 시달리고요. 쿠사마는 자신의 20대를 회고하며 신경쇠약증에 수없이 시달린 시기였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작품활동에 몰두하여 1952년 첫 전시회를 열게 됩니다. 이 전시가 마츠모토시의 신슈대학 의학대학 정신과 교수인 니시마루 시호의 관심을 끌게 되고요. 다른 한편 니시마루는 쿠사마에게 신경증이 악화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가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 조언했다고 쿠사마는 적고 있습니다.






남근형상의 오브제 (soft-sculpture)/ NYCulture Beat





1961년의 쿠사마는 전위적인 무브먼트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합니다. 1960년대의 그녀의 대표적인 스타일은 '축적(accumulation)과 '강박관념(Obsession)으로 무한망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입니다. 의자나, 소파, 부엌용품 등 온갖 사물에 남근 형상의 오브제(soft-sculpture)를 축적해 붙인 것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남근들판 Phalli-Field/Washington DC






결혼 전 방종을 막기 위해 야요이의 어머니는 성이 더럽고 부끄러운 것이라 가르쳤습니다. 아버지의 바람의 현장을 목격해 와 어머니에게 보고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과정을 겪으며 성을 터브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된 쿠사마는 이 오랜 공포증을 물리치기 위해 공포의 대상을 작고 다루기 쉬운 사물로 치환하고 그것을 반복 생산 및 설치합니다. 일종의 의식처럼 미술관 혹은 갤러리 공간 한가득 남성 생식기모양 조각을 채워 넣다 보면 어느덧 성은 두려울 것도 없고 오히려 재밌고 즐거운 것으로  바뀌게 되지요. 이런 점에서 쿠사마에게 예술은 발산의 기회이면서 정신적 문제에 대한 치유의 방편이 됩니다. 













사진1. Jerry Gorovoy , Assistant for 30Years: Life with Louise Bourgeois/ Vulture

                               사진 2. Kusama Yayoi & Joseph Cornell







<사진 1>. 1980년 부르주아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와 후안 해밀턴의 관계처럼 여생의 우정을 지속할 젊은 조수 제리 고로보이 (Jerry Gorovoy)를 만납니다. 해밀턴은 오키프의 26세 연하 조수로 서로를 존중하고 우정을 나누는 파트너와 같은 관계였지요. 해밀턴은 오키프의 폭넓은 경험을 공유받은 유일한 조수였고요. 그녀의 전시회 준비를 돕는 등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었던 사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해밀턴이 오키프의 재산을 노리고 그녀 곁에 머문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실제로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관계였다고 합니다. 




 당시 큐레이터였던 고로보이와의 만남에 대해 부르주아(Bourgeois)는 말합니다.


 


당신이 우물의 바닥에 있을 때 주변을 살펴본다.
 누가 나를 밖으로 이끌어낼까?
 이 경우 제리가 다가와 밧줄을 던져주고,
 나를 끼워서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라고 밝혔다.



고로보이는 현재 루이스 부르주아 재단의 대표입니다.














조지아 오키프(Geprgoa O'Keeffe)/yes24




" 너의 그림을 당장 가져와 홍보해 봐."


쿠사마에게 해준 조지아 오키프의 한 마디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실행력 좋게 짐 싸들고 뉴욕으로 간 젊은 아가씨 쿠사마 야요이. 그녀 덕분에 미국 비자를 받고 시애틀에서 1년 정도 머물다 뉴욕으로 옮겨가게 되고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쿠사마에게 작은 고리 역할을 해 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주요 화가로, 독특하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주로 꽃을 대형 캔버스에 확대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일상적인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지요. 




미국 남서부의 사막 풍경을 단순화하고 본질적인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강렬하고 대담한 색채 사용으로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순수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자연의 본질적 형태를 탐구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독창적인 접근으로 미국 현대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Joseph Cornell/ Sotheby's







<사진 2>. 상처만 받던 야요이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로 알려진 조셉 코넬(Joseph Cornell)이죠. 코넬은 야요이를 진심으로 아껴주며 연인 사이로 발전합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상처받던 야요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납니다. 둘은 26살의 나이 차이에도 열정적으로 사랑합니다. 야요이가 육체관계를 싫어해 둘은 플라토닉 한 사랑은 나눴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1973년 조셉 코넬이 세상을 떠나면서 끝납니다.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와 조셉 코넬(Joseph Cornell 1903-1972)은 예술적 관계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쿠사마는 코넬의 콜라주 기법을 존경하며 자신의 작품에 이를 도입했습니다. 코넬은 주로 콜라주와 상자 작품으로 유명하며, 다양한 사진과 오브제를 사용해 독특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쿠사마는 소프트 조각과 반복적인 패턴을 사용해 설치 미술로 잘 알려져 있고요. 코넬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적 요소가 강하며, 일상적인 오브제를 통해 꿈같은 세계를 표현합니다. 쿠사마는 강박적 반복과 무한을 주제로 하여, 점과 거울을 사용해 무한한 공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요. 코넬의 작업 방식은 쿠사마의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그의 기법을 통해 추상에서 벗어나 형상을 나타내는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gSBtXNJjhs













1. The Family, 2007, Digiral print in fabric/MoMA 2. The Couple , 2007-2009 Cast& Polished/Ocula






1. <The Family,2007>는 작가의 오랜 경력 동안 탐구해 온 주제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1점의 선명한 붉은색 종이 작품으로 구성된 이 연작은 성적 친밀감의 순간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Bourgeois는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고통, 갈등, 정체성 문제, 의존성 등을 솔직하게 다룹니다. 작품의 붉은색은 신체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고요. 또한 습식 기법으로 그려져 우연한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여성의 형태는 여러 개의 늘어진 가슴이 목에 달린 추상화된 다산의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부르주아는 가족의 불안정한 본질을 본능적으로 조명하며, 신체를 추상적으로 변형시켜 부부간, 그리고 모자간의 미묘한 상황들을 탐구합니다. 이 작품은 부르주아(Bourgeois)의 개인적 경험,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와 모성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반영한 작품입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 성장과 쇠퇴, 분리와 결합 등 삶의 순환을 다루며, 작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식도 담겨 있습니다.






예술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카타르시스(정화)다.
내가 경험한 상처, 증오, 연민을 표현하고자 한다."


-루이스 부르주아 인터뷰 )






2. 루이스 브르주아(Loise Bourgeois)의 작품 <The Couple(2007-209)>은 재료가 주조 및 연마된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매달린 조각 작품이고요. 후기 작품 중 하나로, 인간관계, 특히 부부 관계를 나타냅니다. 차가운 금속성과 동시에 반짝이는 표면은  매달린 형태로  관계의 불안정성이나 취약성을 암시합니다. 크기는 실제 인체와 비슷해 관람객에게 직접적인 체험을 제공합니다. 







Do Not Abandon Me, 1999/Artnet Magazine






<Do Not Abandon me>는 정체성, 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버림받는 것에 대한 불안을 솔직하게 다룬 작품입니다. 브르주아( Bourgeois)는 이 작품을 통해 "버림받음의 트라우마"를 표현하며, 가족생활 중에  느꼈던 고립감을 드러냅니다. 특히

출산 이후 부적절한 감정에 사로잡힌 루이즈 부르주아는 가족에 대해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탯줄이 잘리지 않은 채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아기와 여성을 표현한 작품으로 드러납니다.







Pumpkin/나무위키




야요이를 대중들에게 알린 호박무늬는 1990년부터 등장합니다. 점무늬가 노랑 호박과 참 잘 어울리죠.  야요이는 1993년 일본 대표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가 '거울 방(호박)'을 선보입니다. 그동안 야요이가 활용한 여러 요소들이 포함된 작품으로 세계 미술인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쿠사마 야요이가 호박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어린 시절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녀는 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인해 정신적인 혼란과 불안감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박이 가득 찬 창고에 숨곤 했다고 합니다. 호박의 안정감 있고 유머러스한 형태는 그녀에게 위로와 안정을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야요이가 만든 호박이 부풀어 신데렐라가 타고 갔던 황금마차로 변하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해봅니다. 호박은 이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예술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자리 잡았고요.






 1993년 제45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일본관 /단비뉴스




뉴욕을 떠난 후로 예술계에서는 잊히는 듯했던 쿠사마가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부터 시작된 회고전으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1993년에는 과거 초대받지 못해 게릴라로 참가했던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정식으로 일본 대표로서 초청장이 주어집니다. 








1. Crochet V, 1998/Mutual Art 2. Seven in bed, 2001, Fabric Stainless Steel,Glass and Wood/WikiArt


Heart,2004/ Artnet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가 천을 덧대고 실로 꿰매어 만들어냈던 너덜너덜 형상의 작품들입니다. 실의 역할은 망가지고 낡은 것들을 다시 새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할 때 쓰이죠. 루이스 부르주아는 자신의 갈기갈기 찢어진 몸과 마음을 꿰매고 또 꿰매어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도 꿰매어 줍니다.  한 땀 한 땀 꿰매며 사랑하면서도 부정했던 엄마와 화해하는 시간을 갖고요. 복수심과 증오로 가득 찼던 소녀가 엄마가 되고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딸들을 어루만지는 가족을 생각하는 더 큰 존재가 되어갑니다. 






내가 찾는 것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디어도 아니에요.
내가 재창조하고자 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그것은 원하면서 주고 싶기도 하고,
파괴하고 싶기도 한 감정이에요.
그러한 힘에 대한 확인(Identification)입니다.







브르주아는 "내 작품 세계에는 외로움과 잔인함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술은 그런 삶의 어려움을 풀어나가는 치유의 방법이었다고 강조하고요.




그녀는 결국 예술을 통해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몸을 끌어안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임을 묵묵히 작품으로 보여주었고요.  그 솔직한 이야기는 공감을 무기로 진정성 있게 다가가 관객에게 울림을 줍니다. 그녀의 작품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유일테지요.





무한거울방 Infinity Mirror Rooms, 2020/ los Angeles  현대미술관 The Broad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은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혁신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거울로 둘러싸인 방 안에 수많은 LED조명을 설치하여 무한한 공간감을 연출합니다. 






무한 거울방의 대표작 중 하나는 '수 백만 광년 떨어진 곳의 영혼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와 같은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쿠사마는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무한'이라는 개념과 인간의 존재와 우주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체험을 넘어서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VwJMw_fLvI







성공? 그게 뭔지 난 모르겠어요.
 다만 우리 모두는 나이 들수록 더 멋진 사람이 되죠.
 마치 프랑스 와인처럼요.
요즘 나는 아주 부유한 여인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내가 성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라
 진정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루이스 브르주아-









사진 1. Louise Bourgeois, 꽃 Les Fleurs/ 여성신문






꽃에 대해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이렇게 말합니다.




 



꽃은 보내지 못한 편지와도 같다.
아버지의 부정, 어머니의 무심을 용서해 준다.
꽃은 내게 사과의 편지이자 부활과 보상의 이야기이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드로잉 전, Les Fleurs, 2009/MoMA





거칠었 던 이전 작업들에 비해 꽃을 그리는 그녀의 모습이 많이 편안해진 느낌입니다. 빨강은 섹시함을 상징합니다. 붉은색 꽃을 들여다보면 5개의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가족을 표현한 것으로 자신과 남편, 세 아들(입양한 아들, 출산한 아들 2명)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뿌리는 하나지만 거리를 두고 각자 존재하는 모습을 통해 핏줄의 애잔함과 관계에서 빚어지는 잔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 꽃은 인간의 희로애락이 깃든 삶과 사랑을 표현합니다. 붉은색은 관계와 열정, 욕망을 드러내고요. 인간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을 단순한 선을 통해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ijPyKo3hOg











주제에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부르주아의 예술은  삶 그 자체였습니다.  평생 여성과 가족을 작품의 테마로 잡아왔지요. 그녀의 예술은 그녀의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던 트라우마가 의식의 표면으로 올라와 예술작품으로 표출되는 일련의 과정들입니다.  트라우마와 화해하기 위해 분투했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한 만큼 그리움의 깊이도 크고 깊었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완벽한 가족을 꿈꾸면서 말이죠. 





센 언니, 예민함, 죽을 때까지 성실했던 예술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열정과 성실함을 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것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100년 전 그녀에게 "잘 살아 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존경심을 담아 보내드립니다.  "나도 잘 살아야지." 하는 섣부른 다짐과 함께 말이죠.





 일관되게 반복되는 물방울무늬와 시각적으로 밝은 색감 그리고 정신병력까지 개인에 대한 드라마성을 덧붙이며 쿠사마 야요이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 물방울무늬를 그리며 무한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뜨끈한 여름! 물방울무늬 셔츠라도 찾아 입고  기분전환 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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