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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그들처럼, 자기답게

Georgia O’Keefe & Grant Wood


11월 5일. 미국 대선까지 2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마친 TV토론회 결과는 헤비급 챔피언 트럼프 후보와 맞닥뜨려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기대치 게임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검사로서의 장점을 200% 살렸다는 평가였지요.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많치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부동층을 당일 투표장으로 오게 할 수 있느냐가 모든 선거의 관건인 것 같습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코코넛 트리'밈이 SNS에서 인기라고 하지요. 박장대소하며 웃는 모습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책맞다", 혹은 "눈치 없다"라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상대 후보의 비난을 받았지요.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 후 '깜짝' 대선 후보로 지명되며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활발하다", 혹은 "재기 넘친다"라는 표현으로 갈아타고 있습니다. 손바닥 뒤집듯 비호감 이미지가 순식간에 확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녀에게는 유독 '첫-'이란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닙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첫 여성 지방 검사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역임하며 법조계 경력을 쌓았습니다.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되며, 미국 최초의 여성, 흑인, 아시아계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부통령 재임 기간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요.  오히려 주류 언론의 가십거리가 되어 비난받기 일쑤였습니다. 아무튼 두 후보 모두 선전하길 바라며  첫 여성 대통령을 이곳 자국민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정치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오늘은 미국 화가 두 분을 만나러 갑니다. 강렬한 색채의 추상적인  꽃그림과 미국 남서부의 풍경을 미니멀리즘적으로 표현한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e, 1887-1986)와 "가장 미국적인 그림"이란 찬사를 받는 그랜트 우드(Grant Wood, 1891-1942)의 작품 세계로 떠납니다. Go Go~~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e, 1887-1986)는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독자적인 기념 미술관을 가진 최초의 여성화가입니다. '매혹적'이란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그림들을 그린 화가이지요. 특히 꽃의 한 부분을 과감하게 확대하여 화면 가득 채운 화가입니다.  당시 남성 화가들이 잘 쓰지 않았던 분홍빛 계열과 같은 색채를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오묘하게 표현한 시리즈로 유명하지요.



위스콘신주(Wisconsin)/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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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맥주& Cheesehead/나무위키






1887년 미국 위스콘신(Wisconsin)의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위스콘신주(Stste of Wisconsin)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주로 북쪽으로 캐나다의 슈퍼리어호, 동쪽으로 미시간호, 남쪽으로 일리노이주, 서쪽으로 아이오와주와 미네소타주와 접해 있습니다. 초기 이민자들은 주로 유럽에서 왔고, 특히 독일계 이민자들이 많았습니다. 독일계 이민자들은 주요 산업인 양조업, 제지업, 그리고 농업에 큰 기여를 했지요. 미국의 아침식탁에 올라오는 우유나 치즈 같은 데일리 제품들의 주요 생산지입니다. 농업과 제조업 중심지로,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과 문화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주입니다. 특히 치즈 모자를 쓰고 그린색이 잔뜩 들어간 복장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이제 곧 보게 될 겁니다.  미국 프로 풋볼 팀 그린베이 패커스(Green Bay Packers)가 활동하는 곳이죠.





그녀는 아일랜드계 아버지 프랜시스 칼턴 오키프와 헝가리계 어머니이다 텐노 오키프 사이에서 7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두 살 아래 여동생 아이다 오키프(Ida Ten Eyck O'Keeffe, 1889-1961) 역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니의 유명세로 그녀의 예술 경력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요. 서로 라이벌 관계로 동생 아이다 오키프는 종종 "나에게 스티글리츠가 있었다면, 나도 유명해졌을 것"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아이다 오키프는 1961년 뇌졸중으로 사망합니다.  다행히 2018-2019년 달라스 미술관( Dallas Museum of Art)에서 열린 전시" 아이다 오키프: 조지아의 그림자에서 탈출하기 Ida O'Keeffe: Escaping Georgia's Shadow"를 통해 그녀의 작품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대칭 구도를 강조한 역동적인 추상회화로, 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시간,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지아 오키프와 동생 아이다 오키프의 그림 잠시 비교해 볼까요. 




분홍 바탕의 두 송이 칼라 Two Calla Lilly On Pink, 1928/ Georgia O'Keeffe Museum Custom Prints





Ida Ten Eyck O'Keeffe, 1931, Variations on a Lighthouse Theme III/ Artsy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열 살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고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던 그녀는, 피카소가 아비뇽의 연인들을 그리던 그 해에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맨해튼에서 그림을 공부하며 꽃과 정물들을 주로 그리며 동료 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하고, 상업 미술과 미술 선생님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그림을 잠시 중단하기도 합니다. 한때, 노스 캐롤라이나와 텍사스에서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를 살펴볼까요. 유럽의 미술이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와 앙리 마티스(Henri Emile Benoit Matisse, 1869-1954)를 선두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을 무렵, 신대륙 미국의 미술은 여전히 전통적인 미술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수의 예술가들만이 새롭게 전위미술을 개척하고 있었죠. 대도시의 풍경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에이트 그룹(The Eight)'과 추상과 재현의 경계를 오가며 형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정밀주의'화가들은 미술의 현대적 해석을 시도하며 전위적인 흐름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당시 남성들의 독무대였던 미국화단에서 어떠한 사조와도 연관되지 않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했던 화가입니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미국 서부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그린 그림이 20세기 초 뉴욕 아방가르드 예술계를 이끌었던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glitz: 1864-1946)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는 단번에 오키프의 예술성을 알아봅니다. 자신이 운영하던 '291 화랑'에 전시 제안을 하게 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가까워졌고 결국 동거하게 됩니다. 문제는 '근대 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영향력과 당시 유부남이라는 점이 둘 사이의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그녀는  스티글리츠의 어린 정부, 모델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티글리츠의 두 번째 아내가 됩니다. 





1929. 오키프와 남편 스티글리츠는 서서히 각자의 길을 향해 멀어지게 됩니다. 1927년 남편 스티글리츠와 도로시 노먼(Dorothy Norman: American Photographer, Writer, 1905-1997)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말이죠. 오키프는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두 차례의 흉부 대수술을 받았고요. 이로 인해 오키프는 남편의 곁을 잠시 떠나 그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며 예술가로서의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파괴를 향한 그의 힘은 창조력만큼이나 강렬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는 법,
나는 그 둘을 모두 경험했고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야 했을 때
비로소
그를 넘어설 수  있었다.











조지아 오키프가 선택한 곳은   뉴멕시코(New Mexico)입니다.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주로,  남서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부분 메마른 고원지대로 구성되어 있지요. 영어와 스페인어, 인디언(나바호어) 등 다양한 언어가  들리는 곳입니다. 1900년대 초부터 문화적 다양성이 많은 이곳으로 예술가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문화가 예술가와 아웃도어 마니아들에게 큰 매력을 제공하는 주입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해마다 여름철엔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겨울은 뉴욕에서 지냈습니다. 오키프는 사막에서 발견한 소와 야생동물의 뼈를 모았습니다. 이러한 동물의 뼈는 사막 풍경의 자연적인 구성요소로서 그녀에게 조개, 돌, 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꽃을 그리던 그녀가 1930년대 작품에서는 고립된 동물의 뼈가 뉴멕시코의 풍경적 요소와 결합되어 장대한 사막 풍경으로 구현됩니다. 장소가 바뀌며 주제의 변화가 일어난 거죠.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기 시작한 동물의 뼈에 대해 죽음과 부활을 연관 지었지만 , 그녀에겐  다르게 다가왔나 봅니다. 오키프의 눈에는 햇빛에 바짝 마른 뼈가 죽은 물체가 아니라 강렬하게 살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 어느 것과도 비길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녀의 그림은 예상 밖의 물체를 병치함으로써 놀라운 의외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XSHq_QywTw





그림1. From the Faraway,Nearby,1938/Wkikart 그림2. American Gothic, 1930/ wikipdeia






하늘과 대지는 너무나 광활하며, 
세부는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 있든 
거대함과 미세함 사이의 세계에서 고립되고 맙니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우리들의 위, 아래로 사라지며
시계는 오래전에 멈추었습니다. 
-앤설 애덤스(Ansel Adams)가 스티글리츠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 작품은 오키프가 1929년에 알게 된 사진작가 앤설 애덤스( Ansel Adams, 1902-1984)와 함께 1937년에 콜로라도를 여행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녀는 사막의 광활한 풍경과 사물의 거리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림은 거대한 사슴뿔이 사막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눈에 현실적이지 않은 장면을 그린 거죠. 사슴뿔이 실제와 다르게 거대한 크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녀의 추성적이고 상징적 표현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 구성은 공간적 모호성을 만들어내며, 가까운 대상과 멀리 있는 대상이 하나의 장면에서 결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키프가 뉴멕시코 사막에서 발견한 광활한 풍경과 사물의 거리감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거지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눈에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벌어집니다. 






이 작품은 오키프의 개인적 감정과 경험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의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glitz, 1864-1946)의 외도와 관련된 그녀의 감정적 고통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남편 스티글리츠는 오키프를 "멀고도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곤 했다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이러한 감정적 거리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뉴멕시코 사막에 대한 감각과 그녀의 개인적 감정을 결합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랜트 우드(Grant Wood, 1891-1942)는 아이오와 주 아나모사 근처의 농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프랜시스 메리빌 우드와 헤티 디에트 위버 우드입니다. 1901년 아버지 사망 후 가족들은 어머니와 함께 세 명의 형제자매와 더불어 시더 래피즈로 이주했습니다. 





아이오와(IOWA) 주/위키백과




Field of Dreams,New York Yankees, Chicago White Sox to Play game on 'Field do Dream'/ 6ABC & 나무위키







아이오와(Iowa) 주는 미국 중서부 지역에 속합니다. 1846년 12월 28일에 연방에 가입한 29번째 주입니다. 주도는 디모인 (Des Moines)이고요. 아이오와주는 '매의 눈'이라는 별명과 함께 '황새의 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초기 이민자들은 주로 독일, 영국, 아일랜드, 스웨덴 등 유럽국가에서 왔습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농업을 위해 이주했습니다. 




이 지역은 농업 중심지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옥수수와 계란을 생산합니다. 축산업도 발달해 있고요. 경제적으로 안정된 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근 에는 교육, 경제, 건강보험, 삶의 질 등 다양한 지표에서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t06d4dptWo



https://www.youtube.com/watch?v=ZoJJkAQV0Bg





아이오와(Iowa) 주는 99개의 카운티로 나뉘어 있습니다.  인구는 약 292만 명이고요. 주민들은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범죄율이 낮아 안전한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경관도 아름다워 관광명소가 많고요.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 보시라고 '꿈의 구장 Field of Dreams, 1989'을 추천해 드립니다. 여성분들에게 무려 37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를 추천하고요.



Sefioulsy Funny Ameican Gothic Parodies/ Cedar Rapids Museum of Art



American gothic Parody-Myrtle Beach Art-weebly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패러디물이죠? 원작은 <그림 2>. 그랜트 우드(Grant Wood, 1891-1942)의 1930년대 작품  < 아메리칸 고딕 American Gothic>입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아이오와(Iowa) 주 엘든에 있는 고딕 양식의 로 지은 집입니다. 그  집의 건축 양식을 따서 그림의 제목이 지어졌습니다. 흔히 고딕(Gothic)이라면, 12세기 중반부터 15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 주로 발전한 건축 양식을 떠올리게 됩니다. 높고 뾰족한 첨탑,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창이 특징이죠. 얼마 전 화재로 일부 소실 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쾰른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같은 곳이 대표적입니다.







 예술가는 자신이 잘 아는 땅과 사람을 그려야 한다.
자신이 태어나고 활동하는 지역에 머물며 작업할 때만
개성적인 양식을 확립할 수 있다.
-Grant Wood-








우드는 1920년대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그의 그림은 강한 인상주의적 영향을 보였습니다.  뮌헨에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  작품을 보고 난 후 다시 한번 양식의 변화를 보이고요. 중세 말기의 고딕 화풍에 담긴 본능적인 순수함에 매료됩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적인 배경에다 그 원리를 적용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미국은   1929년에 시작된 세계적 경제 위기로,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하여 1930년대까지 '대공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이 경제 위기는 주식시장의 붕괴, 대규모 실업, 은행의 파산, 그리고 전반적인 경제 침체를 초래했지요.





우드는 당시 유럽 근대 미술의 추상화 경향에 반대합니다. 우드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미국 미술의 독자성을 추구하던 새로운 미술운동인 '지방주의 미술 Regionalism'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대표 화가로 성장합니다. 지방주의 미술가들은 보수성이 강한 중서부 지방에서 주로 작업하던 지역 작가들로 구성됐습니다. 지역문화와 지역적 특성을 강화해 국가적 일체감과 자부심을 드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고향인 아이오와주의 시더래피즈에 작업실을 연 우드는 중서부에서는 최초로 미술가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1930년대 우드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단순화되고 감각적으로 완성된 풍경화였습니다. 그것은 기계화 시대, 황진 시대, 대공황 사태의 궁핍한 현실로부터 거리가 있는 농업국가로서의 미국이라는 이상적 풍경이었죠.





The Dibble House, Eldon, IOWA/wikipeidia




<그림 2>.  엘든의 목조주택입니다. 별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죠. 하지만 이곳은 백악관을 제외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집입니다. 1930년 8월. 존 샤프라는 젊은 현지 화가는 우드를 데리고 아이오와 주 엘든 주변을 드라이브했습니다.  그때 다음 그림에 대한 영감을 찾고 있던 우드는 고딕 건축으로 지어진 작은 흰색의 집인 '디블 하우스(The Dibble House)'를 발견하게 됩니다. 새하얀 칠을 한 이 목조 가옥은 지붕의 경사가 가파른 데다 뾰족한 아치형 창문이 달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지요.






원래 고딕 양식은 유럽에서 성당을 지을 때 많이 쓰이는 양식이었습니다.  날카롭고 직선적인 건축 양식이라 엄숙한 종교 시설에 어울렸거든요. 하지만 미국 중부에서는 신앙심을 표현하고 멋도 낼 겸 자택을 지을 때  고딕 양식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일명 유럽 고딕 건축 양식을 모방한 미국식 짝퉁 주택이었던 거죠.






첨탑 교회로 상징되는 유럽의 고딕 건축양식을 미국에서 주택건축에 활용한 것이 목수 고딕 (Carpenter Gothic) 양식입니다. 우드는 교회 건축양식이 미국 농가의 조잡한 집창문에 엉성하게 응용된 것에 흥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저렴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데다 유럽 문화를 동경하는 지역민의 허세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어 대공황 시대를 살아가는 미국 노동계급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우드는 가지고 있던 봉투에 그 집을 쓱쓱 그리기 시작합니다.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우드는 그 집에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을 모델로 하여 그 집을 그리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화가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가옥을 보며 전형적인 미국 중부 서민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고딕 양식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수직성이 강조된 다는 점입니다. 이 그림 역시 수직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잘 보시면, 농부가 들고 있는 길쭉한 쇠스랑과 사람들 얼굴이 모두 길쭉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우드는 고딕 양식에 영감을 받아, 미국에 맞는 스타일로 재해석한 겁니다.





우드는 미국의 정신이 지역성에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지역주의가 미술의 미래라는 우드의 예술철학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과 소재가 지역성울 강하게 드러냅니다.




Nan Wood Graham & Dr. Byron Mckeeby, 1942/wikipedia






실제 그림 속 모델들이 궁금하시죠? 사실 이 그림의 실제 모델들은 그의 여동생인 낸 우드 그레이엄(30살)과 그들 가족의 치과 의사인 바이런 맥키비(62세) 박사라고 합니다. 그는 미국 중부의 보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동생에게는 미국의 영국의 식민지일 무렵 유행한 고전적인 앞치마를 입히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브로치를 매달게 했습니다. 맥키비 박사에게는  멜빵바지를 입히고, 시골 느낌이 잘 나타나도록 쇠갈퀴를 든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남자의 안경은 세상을 떠난 우드의 아버지가 쓰던  것이고요. 2층 창문을 가린 커튼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역민의 정서를 상징합니다.







그랜트 우드( Grant Wood, 1891-1942)는 이 그림을 캔버스에 그리지 않고 건축재료인 섬유판 비버보드(Beaver Board)를 썼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콘테스트에 출품합니다. 심사위원 한 명이 '코믹한 밸런타인 카드'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이 작품에 매료된 뮤지엄의 파워풀한 후원자가 심사위원단을 설득해서 동메달과 상금 300달러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원자들은 뮤지엄 측에 회화를 구입하도록 설득해서 <아메리칸 고딕>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Art Instutute of Chicago)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메리칸 고딕>은 그랜트 우드가 의도했건, 아니 건간에 미국인들에겐 자신들의 자화상처럼 보입니다. 중서부의 시골 노인들에겐 부인하고 싶은 초상이며, 여성들에겐 가부장제에 억압된 모습이기도 하고, 그리고 공황기 미국인들에겐 불굴의 의지를 부추기는 포스터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 그림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처음으로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과 런던의 영국왕립미술원에 전시되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k2GvyNmYD0&t=5s














The Birthplace of Herbert Hoover, 1931,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Collection





그랜트 우드 (Grant Wood, 1891-1942)의 작품 < The Birthplace of Herbert Hoover, West Branch, Iowa>는 1931년에 제작된 그림입니다. 미국의 시골과 소도시의 현실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지역주의 (Regionalism) 스타일로 그려졌습니다. 이 작품은 목판에 유화로 , 현재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미니애폴리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아이오와(Iowa)의 사업가들이 미국의 31대 대통령으로 ,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재직했던 하버트 후버 대통령(Herbert Clark Hoover, 1874-1964)에게 선물하기 위해 의뢰한 작품입니다. 아이오와주  웨스트브랜치 태생으로 일찍 부모를 잃어 사실 자라기는 오레곤에서 자랐습니다. 1895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며 국제적으로 활동한 광산 엔지니어로 명성을 얻었지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벨기에 난민 구제 위원회를 설립해 수백만 명의 유럽인을 구호하기도 했고요. 192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 캘빈 쿨리지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된 인물입니다.





그림은 후버가 태어난 소박한 하얀색 목조 오두막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의 겸손한 출신 배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공황 시기에 그의 대통령직과 관련된 "후버빌"(Hoovervilles, 빈민촌)과 대조를 이루고 있고요. 후버빌 (Hoovervilles)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전국적으로 세워진 임시 막사들을 의미합니다. 이 막사들은 대공황으로 인해 집을 잃은 수많은 노숙자들이 거주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임시 거주지는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지요. 이로 인해 후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대공황을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의 상징이 되었고요.





1935년 사진/ 위키백과


더스트 볼/ 나무위키



66번 국도/나무위키





"후버빌'은 196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 1902-1968)의 소설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arth> 작품 속에도 등장합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더스트볼(Dust Bowl)을 피해 오클라호마의 농민 가문인 조드 가족이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지요. 낡은 차에 가족을 싣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난민처럼 '66번 '국도로 쏟아져 나옵니다. 이 길은 시카고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끝납니다.  저 먼 길을 가족이 이동했으니 노약자들은 도중에 사망하기도 하고, 희망을 안고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착취와 차별에 직면하게 됩니다. 스타인 벡은 소설을 통해 1930년대 미국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대공황과 더스트볼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과 노동자들의 착취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소설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투쟁과 인간의 단결을 강조합니다. 스타인벡은 자본가와 은행가들의 이익추구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을 비판하며,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통해 변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고 여러 가지를 연상합니다. 
...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꽃을 보지 않아요. 
제대로
꽃은 너무 작고 우리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본 것을 그리겠다.
내가 느끼는 꽃을 그리겠지만
꽃을 크게 그려서
사람들이 놀라서 한참 동안 꽃을 바라보게 하겠다고

- 책 <조지아 오키프>, 리사 민츠 메싱어, 이미정 옮김, 시공아트-













그림1. Red Canna, 1924/Georgia O'Keeffe.net  그림2.Appraisal, 1931/WikiArt 





<그림 1>. 36인치의 거대한 캔버스에서 개화한 <Red Canna>입니다. 그녀가 24세 연상의 사진작가 스티글리츠와 오랜 연애 끝에 법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 1924년에 그려졌습니다.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되니, 사랑의 주체인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마음껏 표현한 거지요. 그림의 초보자도 이 꽃은 만개한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캔버스에 투영된 것은 칸나의 본질인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오키프 자신의 본질이기도 하고요. 꽃으로 표현된 그녀의 자아상은 그녀의 절대 지지자이자 남편이 된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 Alfred Stiglitz, 1864-1946)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여인으로서의 활짝 핀 꽃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예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한 화가로서의 화려한 시작이기도 했고요. 오키프의 꽃 그림들은 대형 캔버스에 그려져 있어 꽃의 형태와 색채를 강조함과 동시에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대형 꽃그림들이 때때로 여성의 생식기와 닮았다고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오키프는 이러한 해석을 거부했고요. 






Jimson Weed, 1936/wikipedia.  Oriental Poppies, 1927/wikipedia









<그림 2>. 그랜트 우드(Grant Wood)의 <Appraisal>(1931) 작품입니다. 도시와 농촌의 대조를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1931년 아이오와(Iowa) 주 박람회 미술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입니다. 도시 여성과 농촌 여성이 서로 마주하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림 속 도시 여성은 유행에 맞춘 옷을 입고 비즈로 장식된 가방을 들고 있습니다. 농촌 여성은 자신이 소중히 기른 닭을 마치 애완견 다루듯 하며 흥정을 하고  있네요. 도시 여성은 그녀의 미래 식사를 싸게 구입하고 싶어 요모조모 따지는 듯합니다. 상대방 농촌 여성도 많많치 않아 보입니다.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고  정성껏 기른 자신의 닭을 제값 받고 팔고 싶은 모양입니다. 사뭇 당당해 보입니다. 이는 농촌 여성이 자신의 농장에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합니다.













그림 1. New York Skyscraper of Gerorgia O'Keefe , Radiator Building-Night, New York,1927/wikipedia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 <Radiator Building-Night, New York>(1920)는 1920년대 뉴욕의 도시 풍경을 묘사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뉴욕의 미드타운에 위치한 Radiator Building을 묘사한 것으로 , 1924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Art Deco 양식의 랜드마크입니다. 오키프는 1925년부터 1930년까지 뉴욕의 도시 풍경을 묘사한 시리즈의 일부로 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작품은 건물의 강렬한 윤곽과 빛의 패턴을 강조합니다. 건물의 하부 장식들을 제거하고 간단한 그리드를 형성하여 도시의 현대성을 강조하고요. 건물은 내부와 외부에 비추는 다양한 전등들로 인해 빛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건물묘사한 것뿐만 아니라, 오키프와 그녀의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도 해석됩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와의 결혼 생활이 어려워지던 1927년에 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작품은 추상적 패턴과 기하학적 형태를 결합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건물의 직사각형 창문과 거리등의 원형 등이 조각적으로 표현되어 있고요. 또한 건물의 중앙에 위치하고, 관람자는 공간에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7EMVU2eRnM&t=7s







1.Georgia O'Keeffe 1956 by Yousuf Karsh/Pinterest 2.Alfred Stieglitz,and Georgia O'keeffe,1936,Alamy




조지아 오키프의 예술적 성장에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작품을 홍보하고 전시회를 조직하며 그녀의 예술적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덕분에 오키프는 미국 현대미술계의 주요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사진과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비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예술이란 공통 분야에서만큼은 상대에게 강력한 후원자였습니다.





3. Ansel Adams, Alfred Stieglitz, An American Place, New York, 1939/MoMA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glitz, 1864-1946)는 미국의 사진가, 미술 딜러, 출판자, 그리고 현대 미술 운동의 중요한 지지자로, 20세기 초 미국 사진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스티글리츠는 1864년  뉴저지 주 호보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계 유대인이었고요.  





기계공학을 공부하던 그가 1883년부터  사진을 시작합니다. 그는 영국의 Amateur Photographer 잡지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1890년 스티글리츠는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의 카메라 클럽에 가입하고,   Camera Notes의 편집장이 되어 사진이 예술 형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1902년. 그는 Photo-Secession을 설립합니다.  이 단체는 Camera Work라는 잡지를 발행하며 사진의 예술적 가치를 홍보했습니다.  스티글리츠는 또한  여러 갤러리를 운영했습니다. '291', The Intimate Gallery, An American Place' 등에서 현대 미술을 소개했고요.  그는 유럽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작품을 미국에 소개하며 미국의 현대 미술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 대한 동영상입니다.( 1시간이 훌쩍 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j2N1Bdh830






그림 2. Dinner for Threshers, 1934/WikiArt.org




<그림 2>. 이 작품은 미국 중서부 농촌 사회의 중요한 경제적, 사회적 행사인 탈곡 날의 점심 식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아이오와 농장에서의 어린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느 농촌사회에서 볼 수 있듯  남성들이 들판에서 일한 후 여성들이 준비한 푸짐하고 맛있는 식사를 즐기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우드가 자신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그들의 일상적인 물건들을 포함하여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구성은 초기 르네상스 그림을 연상시킵니다. 농부들을 성경의 제자들과 같은 존엄성을 가진 인물로 표현합니다. 이는 대공황시기의 그림에서만큼은 풍요로웠던 예전 시절을 기억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런 행사는 단순히 일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식사, 이야기, 뉴스를 공유하는 중요한 행사로서의 기능도 했겠지요. 아무튼 < Dinner for Threshers>는 미술사적으로 중서부 농업 사회의 문화를 기념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는 우드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NZIGDsvsg





https://www.youtube.com/watch?v=aN8bCaPBooY








Georgia O'Keeffe's Abuquiu Home /Pam Penick






그림1. Ladder to the Moon,1958/Georgia O'Keeffe.net 그림2. Daughters of Revolution,1932/wikipedia



<그림 1>. 오키프(O'Keeffe) 후기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미니멀리즘적인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그림 속의 사다리는 날개라도 달린 듯 검은 능선을 벗어나 달을 향해 올라가는 중입니다.  땅에 놓인 평범한 사다리가 아니라 우주공간을 향해 날아가는 로켓 사다리 같습니다. 순식간에 분리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하늘사다리가 되었네요. 




조지아 오키프가 71세가 되는 1958년, 미국의 뉴멕시코 주 아비 키우(Abiquiu)에 있는 자신의 낡은 벽돌집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사다리는 상상의 산물의 아니라 집의 마당 건물 외벽에 항상 기대 놓은 실제 사다리고요. 아마도 오키프는 하늘사다리를 타고 우주와 소통하고 싶었나 봅니다. 예로부터 사다리는 정신적, 도덕적 차원에서 더 놓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자기 완성일 수도, 깨달음을 의미할 수도 있고요.



Cerro Pedernal , viewed from Ghost Ranch near Abiquiu, New Mexico/wikipedia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낮게 깔린 검은색의 패 더 널(Pedernal)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치 달빛의 주술에 사로 잡힌 것 같은 환상적인 소재의 배치가 화면에 초현실적인 모습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뉴멕시코 인디언의 삶에서 사다리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지붕에서 일출과 오후의 석양을 바라보며 자연종교의 핵심을 이루는 우주적 힘과 직접적으로 소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다리는 이러한 지붕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로 여겨지고요. 오키프는 원주민들의 환경에서 사다리를 분리해 땅 위로 들어 올림으로써 자연과 우주의 연결을 상징할 뿐 아니라 뉴 멕시코 초기 거주민들의 우주적 의식과 맏닿아 잇는 보편적 상징을 화면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강조합니다. 










<그림 2>. 풍자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927년부터 시작된 사건으로 인해 제작되었습니다. 그랜트 우드는 아이오와 주 시더 래피즈의 베테랑 기념 콜리세움( Veterans Memorial Coliseum)에서 스테인드 글라스 창을 제작하기 위해 위촉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드는 미국 내에서 생산된 유리의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독일에서 제작된 유리를 사용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혁명 딸들(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 DAR)의 지역 지부가 항의하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 미국의 적국이었기 때문에 독일산 유리를 사용한 것에 대한 반대의 견을 제시했습니다.





이 작품의 세 명의 노인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그들 뒷 배경으로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미국 혁명 시대의 조지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장면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 배경은 에마누엘 르츠(Emanuel Leutze)의 1851년 작품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장면"을 재현한 것입니다.  우드는 이 세 명의 여성들을 미국 혁명 시대의 영웅적인 이미지를 배경으로 하여, 그들의 보수적이고 편협한 태도를 비판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우드는 이 작품을 통해 DAR( 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의 보수적이고 편협한 태도를 풍자적으로 비판했던 거죠. 이 세 명의 여성들은 낡은 옷을 입고 있으며, 그들의 표정은 자만심과 편협함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드는 DAR의 태도를 비판하며, 그들의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성향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들의 표정과 자세로 말이죠. 












그림 1. Black Rock With Blue Sky and White Clouds, 1972/ The Art Institute of Chicago,Chicago

그림 2. <Februaery >, Berkshire Museum, 1940/ Google Arts & Culture





<그림 1>.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후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 파란 하늘과 구름들이 있는 검은 바위 Black Rock With Blue Sky And White Clouds>(1972, 85세). 이 작품은 오키프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기 직전에 그린 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1971년부터 오키프의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세계가 점차 희미해져 갔죠. 

 




 검은 바위와 하늘, 구름을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오키프는 자연의 형태를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군더더기를 빼고 작품의 심플함과 강렬함을 더 강조했죠. 그녀의 후기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미니멀리즘적인 스타일입니다. 





 자연의 본질과 영원성을 표현했습니다. 오키프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검은 바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연의 상징으로, 하늘과 구름은 변하 무쌍한 자연의 일부로 말이죠.  오키프의 예술적 철학과 자연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오키프의 후기 작품들의 특징은 이전의 꽃이나 동물의 초상화와는 달리, 더 단순하고 추상적인 형태를 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그녀의 예술적 스타일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녀는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본질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From the River-Pale, 1959, Georgia O'Keeffe Museum, Santa Fe, New Mexico/ Top of Art




Geprgoa O'keeffe-Untitled(Abstraction Red Wave with Circle), 1979/ Artur.io












<그림 2>. Grant Wood의 <February>는 1940년에 제작된 석판화입니다. 그의 지역주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지요. 이 작품은 눈 덮인 목초지에서 철조망 울타리 뒤에 서 있는 세 마리의 말을 묘사한 겨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련의 석판화 중 하나로, 눈으로 덮인 중서부의  그림 같은 구릉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석판화는 겨울철 미국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부드러운 흰 눈과 대조를 이루는 말들의 어두운 형상이 특징입니다. 철조망 울타리는 미국 농부들이 험난한 땅을 길들이고 경작하려는 노력을 상징합니다. 이 작품은 대공황과 더스트 볼의 어려움에서 벗어난 이상적인 농업 낙원을 묘사하려는 Wood의 스타일화된 미학과 시적인 비전을 보여줍니다. 




<February>는 Associated American Artists에 의해 출판되었으며, 우드(Wood)가 1937년부터 1941년 사이에 제작한 19개의 석판화 중 하나입니다. 농촌 생활과 그 거주자들의 회복력을 묘사하려는 Wood의 헌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7tclGaHfeA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1887-1986)는 생의 초기 10년과 시력을 상실했던 말기의 15년을 제외하고는 일평생 그림을 그렸던 화가입니다.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여성 화가이기도 하고요.  늘 주변부에 머물렀지만 한 세기가 지나도 시들지 않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화가입니다. 




그랜트 우드(Grant Wood, 1891-1942)는 고향에서만 활동하던 시골뜨기 화가였죠. 국제무대에 나온 경험도, 대도시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경력도 없는 지역 작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동네화가라는 약점을 보완하려 노력하는 대신 강점인 지역성을 더 부각해 '지방주의 미술'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대표 화가로 성장했습니다. 그 덕분에 얻게 된 <American Gothic> 작품은 지금도 어디선가 패러디되며 다른 형태의 창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겠죠. 이렇게 대박을 칠 줄 그 역시 몰랐을 겁니다.. "가장 미국적인 그림"이란 찬사를 받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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