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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May 07. 2024

봄이라서...라고 변명했던

누군가 괜찮냐고 잘 지내냐고 물어볼까 두려울 때가 있다. 평범한 그 말 한마디에 풍선 터지듯 울음이 왈칵 쏟아질까 봐 그렇다. 봄이라서 그런 거야... 죄 없는 봄을 끌고 와 핑계를 만들어 본다. 미안하다, 봄!




봄이 시작될 무렵에 마음이 뒤숭숭했던 적이 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나지만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도 내가 아닐까. 살아오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고민을 하고 매일이 태풍의 눈 속에 있는 듯 고요한 압박과 짓눌림에 시달렸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가 모호했고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가도 되는지에 대한 판단도 되지 않았다.


흔들림이 강할수록 불안감이 커져갔고 나는 외로운 개척자처럼 새로운 길을 뚫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았고 자신감도 부족했지만 때로는 선택해야 하는 길도 있다. 그때 내가 선택했던 건 그런 길중의 하나였고 갈증이었다. 나만은 나를 온전히 이해해줘야 하는 시간의 틈에 끼어 있었다.


혼란했던 그때의 나를 지난 글 속에서 읽으면서 잠시 회상에 젖었다. 글 속에 담겨 있는 나는 참 낯설고 숨기고 싶은 비밀일기처럼 화끈거렸다. 무엇에서 길을 잃기 시작했었는지 분명히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어  '굳이?'라고 물었다.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시간이었다는 걸 그때보다 지금 더 잘 알고 있다. 돌이키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때는 그때의 마음이 진실이었고 지금은 지금의 마음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몸에 왜 그리 많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걸까. 내겐 몇 가지의 그림자가 있을까.


만일 신이 내 영혼에 주입한 명령어가 있어 한 가지 마음으로, 한 가지 사건으로 외길 인생을 살고 나서 세상을 떠나는 일정을 산다면 어떨까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본다. 나를 키운 불운(?)했던 겨울 끝, 봄의 처음은 이제 가고 없지만 어느 날 또다시 그 시절을 만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감출 수는 없다. 다만 나 또한 부서기기 쉽고 흔들리는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뜨거운 볕과 쏟아지는 비가 하루 사이에 오고 가면서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에 잠시 잠긴다. 마음이 달라서 나도 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힘겨웠던 그때처럼 나를 사랑하고 마음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 나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에 더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현재의 나이기도 하지만 과거를 지나온 나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이제는 그때의 그날들을 고이 접어 가슴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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