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여름"은 좋아하는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집이다. 그중에서 "결혼"에 나오는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진주알 같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읽고 또 읽는다. 카뮈의 묘사는 들떠있지 않다. 상상력도 아니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위대한 유물에 대한 감탄이 글에 찰떡처럼 들러붙어 있다. 그의 생각을 풀어냄에 있어서는 뛰어난 연극배우의 독백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선명하고 철학적이며 지루하지 않고 감동적이다.
태양과 바람의 난폭한 시위는 나의 모든 생명력을 소진시켰다. 내 안엔 겨우 이 어렴풋한 날갯짓, 신음하는 이 생명, 정신의 이 희미한 반항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제 세게 곳곳으로 흩어져 기억을 읽고 나 자신도 망각한 나는, 저 바람이다. 바람 속에서, 나는 저 돌기둥들이고 저 아치이며, 저 뜨거운 포석이고 황량한 도시를 에워싼 빛바랜 저 산들이다. 이전까지 나는 나 자신과 거리를 둠과 동시에 실제에 현존하는 이런 기분을 결코 느껴본 적 없었다. 그렇다, 나는 현존한다.
<제밀라의 바람, "결혼.여름">
묘사가 좋은 글은 반복해서 읽게 된다. 봄을 노래하는 데 굳이 봄을 말하지 않아도 봄을 느끼게 하는, 슬픔을 토해내지만 굳이 슬프다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는 깊고 진한 표현에야말로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책에서 눈을 떼게 하지 못하는 힘이 담겨 있다.
어떤 좋은 이야기도 풀어내는 방식이 어리숙하거나 개인의 기분에 취해 거북스러운 묘사를 난발하고 있다면 대작가의 글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또 표현이 글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않을 때 전제적으로 내용이 뿌옇다고 느낀다. 나는 그 희미함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같은 글을 여러 번 다르게 써보기도 한다.
묘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독서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고 손에 잡히는 모든 책을 읽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정한 책을 거론하지 않겠지만 잘못 읽은 책은 좋지 않은 습관을 들이고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독서를 통해 배웠다.
표현의 한계를 느끼고 다시 독서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부러 신간도서를 피하고 오랫동안 좋은 글로 기억되고 있는 책을 선택해서 읽고 있다. 간간히 신간도서를 선택하지만 아직은 배움에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독서의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조만간 번역서로 읽은 책들 중에 좋은 책은 가능한 원서를 구해 다시 한번 읽어 볼 생각이다. 독서량도 좀 더 늘릴 계획이다.
근래 들어 표현에 근육을 기르기 위해 메모라도, 짧은 글이라도 많이 써보고 있다. 무엇보다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지나가는 생각을 틈나는 대로 옮겨 적는다. 때로는 한 줄의 생각이 장문이 되기도 하고 한 문장에서 끝나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글로 표현해 본다. 더디더라도 좋은 근육이 붙기를 바라면서. 지금은 목련이 한창 예쁠 시기라서 집 근처 목련에 대한 묘사를 연습해 보고 있는데 우아한 꽃이 아름다워서 그런가 연습하는 글에도 향기가 나는 듯하고 사물을 보는 시야도 깊어지는 것 같아 조금 더 글 쓸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