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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pr 24. 2024

황사가 끝났다

좋았다. 맞바람이 불어 집안에 신선한 바람이 넘실거렸다. 갑갑한 공기를 벗어던지고 벌러덩 침대에 누워 쉬는 들숨 날숨이 맑고 시원했다. 황사가 기승을 부린 사나흘동안 먼지도 갇히고 나도 갇혔었다. 잠시만 외출을 다녀와도 겉옷과 머리카락에 묻어온 모래바람이 후드둑 떨어지는 느낌에 조심스레 스타일러에 옷을 넣어 먼지를 털어내고 샤워를 마치고 나서야 살 것 같은 시간이었다. 원해서 밖을 나가지 않을 때는 답답한 줄 모르고 잘도 시간을 보냈는데 황사에 갇히니 몸이 죄는 듯 갑갑했다.


공기가 없어 숨을 못 쉬는 사람처럼 몇 번씩 숨을 몰아쉬기도 하고 티셔츠 네크라인을 가지껏 늘려 보기도 하고 산책을 하듯 침실부터 거실을 지나 끝방까지 투덜대듯 걸어 보기도 했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도 황사 탓을 하고 글이 써지지 않아도 황사 탓을 했다. 갇혀 있는 마음까지 다 황사 잘못이 되었다.


며칠 만에 황사가 걷히고 나니 하늘빛이 더 푸르고 바람냄새에 오염이 없었다. 어느새 짙어진 나뭇잎들이 파닥거리고 어제는 비까지 내려 씻긴 세상이 해맑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뱉어내는 비명 같은 말소리도 울음소리도 노랫소리처럼 들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로 나는 솟구쳐 오르고 싶어졌다. 꽃이 되고 싶기도 나무가 되고 싶기도 하였다.


내 속에는 이제 더러움이 없는 듯 기분 좋은, 풋내가 나는 소녀처럼 방실방실 웃으면서 밀린 빨래 몇 가지를 세탁기에 넣고 청소기를 돌렸다. 로봇청소기가 거실을 돌기 시작할 때쯤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누가 훔쳐가기라도 할 듯한 날처럼 이 세상 마지막이 될 날처럼 조바심이 나고 부산스럽지만 신중하게 움직여 탈출을 시도하는 빠삐용이 되어 자유를 갈망했다.


스스로 갇혀 있었던 건지도 모를 며칠에 대해 황사가 오명을 쓴 건지도 모르지만 무슨 상관일까. 아무에게도 해가 가지 않았고 나는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을 먹었고 세상은 열렸으니 다 좋았다.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분초를 세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갈 곳을 정하지 않았다. 폰을 뒤적이다 가능한 멀리 목적지를 찍는다. 그래, 양양으로 향하자. 어쩌면 춘천쯤에 머물러 소나무숲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길 위에만 있어도 좋을 새 하늘이 열린 날을 만끽하고 돌아올 기쁨이 머리와 가슴에서 이미 요동치고 있었다. 빨래를 널자마자 잰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가림막 없는 푸른 하늘이 더없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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