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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pr 26. 2024

봄날에

분홍비가 나리고

초록비가 나리고

회색구름 걷히면

청명한 봄바람이 불고

생명력이 돋는다.


봄은 새로운 시작과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다. 어머니들의 굽은 등을 더 구부리게 하고 조아리게 만드는 냉이와 쑥이 짙은 향을 자랑하기 시작하면 분홍빛 꽃비가 내리고 노랗고 빨간 튤립이 꽃을 피우고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한다. 봄은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 부지런히 생명을 튀운다. 지는가 싶으면 다시 피고 피는가 싶으면 다시 지면서 생명의 환희를 온 세상으로 흩뿌린다.


우리는 너나 나나 봄이 된다. 웃는 얼굴에 봄빛이 쏟아져 꽃같이 환해지고 집 앞에 꽃이 보여도 꽃구경을 가고 사랑이 있어도 사랑을 찾아 헤매고 시린 가슴이 몽글거린다. 카페의 테라스가 열리면 실내에서 웅크리고 마시던 커피를 들고 우르르 봄햇살 쫓아 8월의 해바라기처럼 몰려 나가 반짝인다. 봄날에는 모든 것이 봄을 닮아간다. 봄에 살랑거리는 여우꼬리라도 달려있나 보다.


봄은 아날로그 감성이다. 가로수를 걷고 싶고 누군가에게 엽서 한 장을 보내고 싶고 공원 한 구석 아무도 찾지 않는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를 걸어보고 싶어 진다. 꽃 한 다발을 사서 모르는 이에게 고백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신비한 계절이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나는 봄을 그리워한다. 매일이 봄이면 기쁘겠다. 일 년을 시작하는 계절이니 매일이 봄이면 나이도 먹지 않을 테고 항상 따스한 볕을 맛볼 수 있을 테고 목련, 벚꽃, 프리지어, 진달래, 개나리 난만히 핀 봄꽃들과 한 철만 보고 이별하는 일도 없을 테니 봄을 남기겠다고 서둘러 사진을 찍어대는 일도 없을 거다. 지그시 눈을 감고 오랫동안 서서히 향을 음미하면서 내내 봄 속에 살 수 있다면 내 마음도 늘 봄빛이지 않을까.


요사이 가끔 여름이 서둘러 오는가 싶은 날들을 지나면서 조바심이 난다. 하루라도 더 내 봄날이 무성하기를 바라면서 작은 풀꽃 하나 소홀히 보지 못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 집에 있으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부지런히 밖을 나간다. 봄에 물들어 나는 지금 들꽃이 되고 짙은 초록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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