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중도'에 대한 글을 적자마자,
사단이 발생했다.
사소하다면 너무 사소하지만,
나에게 일을 '부탁'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의
강압적이고 명령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불쾌했다. (순간적으로 두통이 생길 정도로)
'저 사람은 사실상 나에게 일을 부탁하는 입장인데,
도대체 왜 저렇게 명령 어조로 말할까?
소액의 돈을 준다는 생각만으로 내가 무조건 이 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여기는 것일까? 부탁이 아닌 거래라고 여기는 것일까?'
단순한 거래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거절을 하기 힘든 처지에 있는 것은 맞다.
본질적인 미움의 대상은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같은 말을 하더라도, 선하게 하는 방법이 있고, 고압적이게 하는 방법이 있다.
저 '말투'에 대한 나의 짜증과 분노. 거부감과 저항.
이 모든 것이 내 카르마가 유출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싸인이다.
기분이 나빠지고, 간단한 두통이 일고, 격렬한 거부감과 복수심과 반발심리가 일어나는 것,
이 모두가 카르마 유출에 대한 결과이며, 어떠한 행위를 통해 카르마 회수를 하거나 지키려는 본능적 반응이다.
아 지금은 저 사람이 나에게 '카르마 뱀파이어'로 작용하고 있구나,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중도를 적용하자.
집착도 거부감도 없는 상태로.
무엇에 대한 집착이 있을까?
상대가 부드럽게 말을 해야만 한다는 나의 주관적 옳음의 기준에 대한 집착
상대가 나에게 감사를 표현해야만 한다는 나의 주관적 옳음의 기준에 대한 직착
마음이 평온해야만 한다는, 감정 통제에 대한 집착
무엇에 대한 저항이 있을까?
상대가 저렇게 말을 하면 안된다는 나의 주관적 틀림의 기준에 대한 저항
이 기분 나쁨을 복수심과 반발심으로 해소하려고 하는 부정적 감정에 대한 저항
내가 세워놓은 주관적 '옳고' '그름'의 기준을 건드려, 나를 카르마 자판기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카르마 도둑에게 카르마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중도의 관점으로 가야 한다.
집착도 없고
저항도 없는 상태
상대가 그렇게 말을 해도 괜찮고
상대가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
나의 기분이 나빠도 괜찮고
이 것이 당장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다
상대는 왜 나의 카르마를 탐할까?
상대 또한 어딘가에서 카르마 유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격렬했던 감정이 잠잠해지며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행동적 대응을 할 것인지는 이 다음의 문제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은 상황 직후보다는 훨씬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