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닭’을 아시나요?
일요일인데 초등학교 2학년 교실이 아이들로 북적인다. 잠시 뒤 짤막한 탄성을 내뱉는 꼬꼬마들, 이내 숨죽여 다시 상자 안을 응시한다. 부화기라는 작은 상자 안에서는 더 작은 생명이 세상을 향해 노크하고 있다. 가온이네 집에서 얻어온 유정란이 어느새 자라 병아리가 되었다. 계란 껍데기를 자그마한 부리로 콕콕 찍어내는 병아리가 그저 신기하다. 부화일이 임박했다는 이야기에 학교로 향하면서도, 오늘이 아닐 수 있다는 말로 만약에 대비했다. 실망할 수 있는 려환이를 미리 달래 두려 한 건데, 병아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줄지어 세상에 나와 인사를 건넸다.
병아리들 이름이 정해졌다. 수육, 무지, 뽕... 무슨 뜻인가 의아했는데, 려환이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탕수육, 단무지, 짬뽕... 병아리 털색깔에 따라 이름을 정한 거란다. 알고 보니 검은 털을 지닌 짜장이도 있더라. 그렇게 모두 7마리 병아리가 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종이 상자를 이용해 나름 보금자리를 만들고, 먹이도 꼬박꼬박 챙겼다. 안 그래도 주말에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던 아이들은 병아리를 핑계 삼아 학교를 들락거렸다. 제대로 된 수업이 가능했냐고? 글쎄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살아있는 수업'이었다.
수육이, 무지, 뽕이... 병아리 이름이야
병아리들은 이제 더는 병아리라 부르기 어려운 크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앞서 하늘나라로 간 저 수많은 굿바이 '얄리'와 달리, 이 친구들은 왜 이리도 건강한 건지. 특별히 주사를 맞히거나 약을 먹인 것도 아닌데, 그저 아이들의 사랑이 그렇게 좋았던 건 아닐까. 덕분에 이제 더는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기는 어려워졌고, 천방지축 꼬꼬마들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댄다. 회의다운 회의다. 그렇게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한 닭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횟대와 부화장은 기본, 야생동물 특히 쥐의 습격을 막을 수 있도록 튼튼함까지 갖춘 2층 집이다. 이삿짐을 모두 옮기고 입주를 마친 순간, 수육이가 '꼬끼오' 크게 외쳤다. (아마도) 행복하다고.
반려닭이다. 닭이 더 크면 잡아먹자는 농담조차 할 수 없다. 닭장은 수시로 문이 열렸다. 꼬꼬마들은 닭들과 함께 하는 산책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수학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닭장에 들어가 문제를 풀어냈다. 주말 사료 당번은 서로 하겠다고 올림픽 성화다. 특히 살아있는 모든 것과 교감을 즐기려는 려환이의 '닭사랑'은 어마무시했다. 집에 돌아오면 온통 닭 이야기뿐이니, 야식으로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자는 이야기 꺼내기가 부담스럽더라. 하지만 치킨은 치킨! 려환이가 잠든 뒤, 조용히 치킨을 주문해 빨아먹는다.
다 끝났어요. 전부 죽었어요
주말 아침 학급 단톡방에 선생님의 묵직한 메시지가 공유됐다. 다 끝났다는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의아했지만, 이어진 사진 한 장은 모두의 입을 틀어막게 했다. 무언가의 습격을 받고 닭들이 모두 죽었다... 며칠 전만 해도 첫 달걀을 낳았다고 기뻐했는데,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인가. 어느새 소식을 전해 들은 아이들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서있는 려환이가 안쓰럽다. 차라리 펑펑 울기라도 해야 할 텐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눈치다.
튼튼하게 지었다는 닭장 한쪽 아래가 뜯겨 나가 있다. 닭장 안 쪽은 우리 닭들의 여러 빛깔 깃털이 한가득이다. 이미 닭의 사체는 치워졌는데, 몇몇 친구들은 닭장 밖에서 또 저 멀리 길가에서도 발견됐더라.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몇몇 부모들은 말을 잇지 못한다. 닭장 안을 정리해야 하는데,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때다. 누군가 외쳤다. "살아있네!" 놀랍게도 닭장 구석에서 죽은 줄 알았던 수육이가 가느다란 숨을 내뱉고 있다. 고운 깃털이 거의 다 뽑힌 채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다. 무언가에 대한 공포다. 주말 아침 갑작스러운 습격에 집에서 함께 휴식을 취하던 친구들이 모두 죽었다. 수육이는 일어서지 못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수육이가 드디어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고, '꼬끼오' 우렁찬 목소리를 되찾았다. 닭을 살펴주는 동물병원은 없었고, 망가진 닭장도 복구가 어려웠다. 수육이는 결국 친구들의 집을 돌며 요양을 이어갔고, 그렇게 한 달여 만이었다.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과 다시 산책을 즐겼다. 하지만 닭장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트라우마일까. '닭대가리'라는 말이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육이는 그날의 공포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날의 CCTV를 확인해 보니 동네에 사는 목줄 풀린 개의 소행이었다. 배가 고팠던 것도 아닐 텐데 대체 무슨 이유로 몹쓸 짓을 한 걸까. 목줄은 왜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여러 의문을 뒤로하고 닭들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학교 뒤 야산에 봉분을 쌓아 올려 '닭덤'을 만들고, 기도를 전했다. 덕분에 여섯 달 동안 행복했고, 잊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수육이도 얼마 뒤 친구들을 따라갔다. 학교에서 지내지 못하고, 려환이 친구네서 살던 수육이를 어느 날 매 한 마리가 낚아채갔다더라.
학교에서는 닭장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한다. 다시 닭을 키우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까다로운(?) 조건이 내걸렸다. 모든 학년이 함께 키우는 닭으로, 닭 한 마리 한 마리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게다가 닭이 크면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어떤 의미인지 감이 온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닭으로 바라봤겠지만, 꼬꼬마들에게는 '닭 친구'였고 '닭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이별의 슬픔을 무언가로 손쉽게 틀어막을 수는 없다. 려환이는 아직도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수육이다. 이제는 바꿔보자고 제안해 볼 수도 있지만, 려환이에게 시간을 내어준다. 충분히 슬퍼해도 되는, 슬퍼해야 하는 시간이다. 눈물을 왈칵 쏟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아픈데, 어떻게 이제 그만 멈출 수 있을까. 어떻게 '노란' 병아리들을 잊을 수 있겠나. 날지 못하는 닭이지만, 하늘에서 더 행복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