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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전남 Oct 08. 2023

판도라의 상자 '스마트폰'이 열리다

스마트폰은 죄가 있다? 없다!

선생님, 스마트폰은 언제쯤 사주면 될까요?


환브로가 자라면서 학부모가 되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학부모들이 선생님이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더라.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언제쯤 쥐어주면 좋을까요?"  아마 지금도 어디에서든 비슷한 질문이 오가고 있을 텐데, 질문을 받은 선생님들이라고 명쾌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결국, 선생님을 향한 학부모의 시선은 주변 다른 학부모에게 돌아가고 만다. "지환이네는 스마트폰 언제 사줄 거예요?  아직은 좀 이르겠죠?"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환이가 생일 선물로 새로운 아이템 '스마트폰'을 획득했다. 이전에도 엄마 아빠 휴대폰을 종종 만지작거렸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공식적으로 자기 명의의 소유물이 생겼다는 건 상당한 특별함이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스마트폰을 조물대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꽤 부러웠을 지환은 좀처럼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우선 '카카오톡'을 설치하더라. 그러고는 친구들에게 자랑 섞인 메시지를 전파한다. 이모티콘도 척척 날린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영상통화까지, 어려움이란 걸 모르겠다. 이 물고기는 그동안 물 없이 어떻게 살아온 걸까.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하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우선 뛰쳐 나온 요물은 게임이다. '카톡질'이 식상해질 무렵 지환은 자연스럽게 게임을 찾기 시작했다. 아직 스마트폰이 없는 세 살 터울 려환이도 엄마 스마트패드를 빌려 가세한다.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다. 웬만해서는 작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 좋아하는 '엄마표 저녁식사'도 스마트폰 앞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한다. "알겠어요", "잠깐만요", "거의 다 끝났어요"라는 영혼 없는 답변조차 없을 정도라니...  엄마는 스마트폰을 왜 이렇게 일찍 줬냐며 아빠를 타박하고, 아빠는 고개를 숙인다.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게임에 빠져 있는지 살펴본다. 사실 스마트폰을 건네받기 전부터, 아이들은 '엄마패드'로 게임을 종종 즐겼다. '앵그리버드', '마인크래프트' 같은 클래식한 게임이 대부분이었는데, 스마트폰을 쥐고 나서는 아이들의 게임이 달라졌더라. '브롤스타즈', '냥코대전쟁'에 이어 '피파모마일'...  수많은 게임들 중에 환브로가 새로 선택한 게임은 공통점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학교 친구들이 많이 하고 있고, 그래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최우선이었다. 아이들에게 게임은 소통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참아야 하느니라




4,400을 결제했다. FC모바일(피파모바일) 아이템이 필요했다. 게임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사는 이른바 '현질'이다. 지환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때쯤, 처음으로 지환이에게 게임에서 패하고 말았다. 봐주기가 아닌 진심 전력을 다해 상대했지만, 역부족이더라.  어쩔 수 있나, 같이 게임하면서 비비려면 '현질'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이 녀석도 슬슬 봐주기를 시전하다가 지쳐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소통을 위해 꼬마 지환과 게임을 같이 시작하던 그때 아빠 마음이 그랬던 것도 같다. 한 손으로 해도 이길 것 같은데, 억지로 봐주면서 질 것 같이 이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 싶었는데...  혹시 꼬마 지환도 아빠와가 계속 게임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현질'을 고민했으려나.


게임을 함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구들 이야기가 따라온다. 태검이가 제일 게임을 잘하는데 오늘은 한 번 이겼다고 의기양양한다. 호기롭게 아빠도 도전해 보지만, 스마트폰 저 멀리 태검이는 킥킥대며 연신 승리의 세리머니를 쏟아낸다. 그럼 어떠하리. 그 어렵다는 꼬마들의 세계에 아빠가 스르르 녹아들어 갈 수 있다는 건 이만저만 특권이 아니다. 몸뚱이가 따라주면 함께 공이라도 열심히 찰 텐데, 아쉽게도 아빠의 저질 체력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어쩌면 스마트폰이라는 신세계는 아들과 함께 소통하려는 아빠를 위한 구원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형만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부러운 동생의 자체제작 스마트폰


다 좋다. 스마트폰 자체의 문제는 애초에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적정하게 필요에 따라 활용하느냐가 중요했다. 종일 스마트폰 게임만 하는 걸 지켜볼 수는 없지 않나. 꼬마들이 알아서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조절하면 참 좋겠는데, 성인들도 못하는 걸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수다. 실제로 어느 정도가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스마트폰 이용 시간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스마트폰을 언제 쥐어주느냐도 마찬가지일 테다. 환브로에게는 선택적 자율이 주어졌다. 그 선택적 자율에 대한 교육이 가능한 시점이 지환이는 초등학교 4학년, 려환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엄마, 15분 게임 더 해도 될까요?


여러 회사 스마트폰이 있겠지만, 어쩌다 환브로는 '아이폰'을 사용한다.  성인이 되면 '성인폰'을 쓸지는 모르겠다. 하하... 아이폰에는 '스크린타임 관리' 기능이 있고, '삼성폰' 등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을 거)다. 스마트폰 앱에 따라 사용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요일마다 시간을 달리할 수도 있고, 게임 등 비슷한 앱을 묶어서 시간을 관리할 수도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난 야간에는 아예 '벽돌'로 바꿔버리는 것도 가능한데, 그렇더라도 긴급상황을 위한 전화 기능 등은 살려둘 수 있다. 아, 그리고 아무 앱이나 동의 없이 설치를 할 수 없다는 매우 유용한 기능도 담겨있다. 


지환, 려환에게 주어진 게임 시간은 그렇게 각각 20분과 15분으로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짧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에 꼬마들은 툴툴댔다. 하지만 알고 보면 어마무시한 단서조항이 포함돼 있다. 게임은 엄마나 아빠가 우선 즐겨보고 설치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게임을 더 하고 싶으면 언제든 추가 시간을 요청할 수 있고, 게임 시간을 15분 추가해 준다는 내용이다. 그래도 더 하고 싶다면 다시 15분을 추가해 준다. 사실상 무제한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설명에 환브로는 쾌재를 불렀다


바로 옆에 앉아서도 영상통화를 즐기는 꼬마들


신기방기하게도 게임 추가 요청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자주 접수되지 않는다. "게임 시간 조금 연장해 주면 안 될까요?"라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래, 필요하면 연장해 줄게"라는 답과 함께 흔쾌히 연장을 허락한다. 어떤 게임이길래 그렇게 재밌는지도 물어보고, 이왕이면 함께 하자며 어울려도 본다. 게임을 그만하라는 이야기 대신 다른 해야 할 일, 또는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제안해 본다. "이따가 중앙시장 구경 가려는데, 너무 늦지 않게 정리해 보자"라는 이야기에 "그럼 연장하지 말고, 지금 가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무턱대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 인지한다는 건 중독에 빠지지 않는 특효약이다. 사방이 막힌 백화점 벽에 창을 내고 밝은 빛을 맞아들인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근사한 식당을 예약한 어떤 엄마는 우아한 칼질을 위해 꼬마들에게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를 건넨다. 만화영화를 틀어주고, 이름 모를 게임에 몰두하게 한다. 한 테이블에 앉아있지만 엄마 아빠와 아이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흔한 요즘 대한민국 이야기이다. 그러고는 그 어떤 부모는 또 물을 거다. "선생님, 게임도 게임이지만, '유튜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엄마 뱃속부터 '유튜브 태교'를 받은 꼬마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게임이든 유튜브든, 사실 스마트폰은 억울하지 않을까. 중학생이 된 지환이는 종종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스마트폰에 담아, 자신의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조용히 '좋아요'를 눌러 마음의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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