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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준호 Sep 01. 2021

[영감의 단어들 #001] 스며들다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하늘 위를 걸었다. 태양은 헤어짐이 아쉬운지 하늘과 나무들과 마지막 포옹을 나눈다. 오랜만에 아빠와 밖에 나와서일까, 아니면 이번 산책의 중간 행선지가 놀이터여서일까. 아이가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어느새 저만치 달려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태양이 시간 속으로 스.며.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신비를 동경했다. 바람, 빛, 마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끈들이 연결되어 나를 형성한다고 믿었다.

     종일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상 탈출법'을 검색하다 보면 어느새 해와 달이 근무교대를 하고 있었다.

     가끔 카페에 혼자 앉아 라떼를 마시는 상상을 한다. 사람들과는 인연이 닿으면 닿는 대로, 마음이 맞으면 맞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면 특별한 시간ㅡ그 안의 사람과 사물들ㅡ과 그렇지 않은 시간이 구분되었고, 후자의 시간은 스치듯 사라져 버렸다.

     시간은 실로 우사인 볼트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달력이 한번에 두세 장씩 뜯겨져 나갔고, 뽀로로 자동차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걸음마하던 아이는 어느새 책상 앞에 웅크린 채 레고 조립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달리는 시간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What to Do' 목록을 빼곡히 작성하고, 밤을 지새우며 시험을 준비하고, 각종 단기 완성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시간의 마디에 몸뚱이를 가두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긴 경주에서 낙오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과 나는 깊은 정을 나누지도, 그렇다고 등을 지지도 않은 채 평행선을 타고 있었다.


시간 속에 스며들고 싶다.

     그것은 일 년 내내 눈앞에 해변이 펼쳐진 카페에 앉아 브런치를 먹는 삶, 일요일 저녁에 내일 출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빼곡히 쌓인 업무용 메일에서 벗어난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걷고, 커피와 쿠키를 나누고,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 그렇게 선물로 주어진 존재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가운데 시간 속에 깃든 참된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다. 그 안에서 우리의 말과 언어가ㅡ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이ㅡ완전히 어우러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가을바람의 숨소리에, 나뭇가지에 움튼 새순에,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존재의 근원을 떠올린다. 우리의 시간들은 그 근원 안에서 수렴된다.

     나는 오늘도 기대한다. 시간에 깃든 신비를, 그 토대 위에 일어나는 꿈틀거림을.





나를 키우고 나를 형성하는 단어, 창조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을 하나씩 찾아서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아, 그런데 '게으른' 인프피여서 꾸준히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ㅎㅎ.


* insta_@__editor.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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