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또 들어도 줄곧 가슴을 뒤흔드는, 그런 노래가 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선인장'과 같은. 그중에서도 심규선 보컬 버전이 나는, 좋다.
오래된 영화로 예를 들면, '굿 윌 헌팅'이나 '패치 아담스'와 같은 영화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어느 수업시간에 '굿 윌 헌팅'을 보여주셨는데, 영화가 끝난 뒤 선생님은 촌평을 하는 중에 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는 준호 같아."
그날 이후로 나는 로빈 윌리엄스가 나오는 영화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사실 그 시절 나는 숀 맥과이어보다 윌 헌팅(맷 데이먼)이, 헤세의 작품에서는 지성(이성)과 정착을 나타내는 나르치스보다 감정(사랑)과 방랑을 나타내는 골드문트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조연보다 주연이 되고 싶은 심리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니 십대의 그 문학소년은 무언가에 매여 있지 않으면서도 구도자의 길을 걷는, 그러면서도 당시의 나의 모습과는 철저히 다른 안갯속 존재를 갈망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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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십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 대상이 되기를 갈망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다른 대상 위에 나를 투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그것들과) 조화롭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아무튼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복선인지도 모른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을 나를 어색하지 않게 조우하게 하는.
위의 사진은 몇 년 전 가을 퇴근길에 찍은 카페 모습이에요. 두 남녀가 마주 앉아 소개팅을 하고 있는 것 같은,가을 감성이 물씬 느껴져서 제가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