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처음 직장에 들어가던 해, 이맘때쯤이었을까.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옆에 앉은 선배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으니 참 답답해요"라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인프피(INFP)다. 그중에서도 극아이(돌아이 아님). 한마디로 에너지가 부족하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혼자 보내는 시간들 속에서 에너지를 끌어다 충전하는 스타일. 그러니 누군가에게 스마트폰 데이터 조르듯 "저 요즘 힘이 없어요. 기운을 불어넣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주말이면 작업 원고를 가지고 삼청동에 있는 '내서재'라는 북카페에 가곤 했다. 그때는 삼청동이 막 뜨기 시작할 즈음이라 주말이면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어느 테이블에 앉아 라떼를 주문했다. 한 모금씩 커피를 아껴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펼쳐보기도 하고, 음악에 취하기도 하고, 생각나는 단상들을 끼적이기도 했다. 쓰다가, 달다가. 어찌나 좋았던지 그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은 온몸의 세포를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했다. 그 순간의 향연 속에서 무언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풀어지기도 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둘 정돈되곤 했다. 그 시간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 리듬에 맞춰 걸어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왜 쓰는가. 특별히 자문해 본 적이 없다. 이십대의 찬란했던 시절처럼, 그저 혼자 무언가를 몰입하는 그 시간이 좋다. 그러나 누군가가 당신은 왜 그렇게 쓰는 데 진심이세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서, 라고 감히 고백하고 싶다. 쓰는 과정에서 무언가에 가 닿기를 바란다. 그것은 나 자신이기도 하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 내 주변의 누군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이기도 하다. 작가로서든 취미로든,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단어와 문장을 찾아내는 과정이 아닐까.
때론 주저하기도 하고, 빙 둘러 가기도 하지만, 오늘도 나는 그 대상을 향해, 그리고 당신을 향해 시나브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예전에 글쓰기 모임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같은 주제로 썼던 글이에요. 지금도 여전히 같은 마음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