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즈민 Oct 11. 2024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는

그러면서도 빠른 세상에 적응하는 것을 당황스러워하는 이중적 갈등을 하고 있다.

 남편은 LG 스마트폰을 거의 5년? 아니 그 이상을 사용해 온 것 같다. 둘째 딸이 사준 인조 가죽 커버도 덮개를 잇는 끈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사용했다.


“뭐야? 곧 떨어지겠다.” “아니야, 이 고리 떨어지면 바꿀 거야.”

“아니, 바로 나가면 사거리에 통신사가 있는데 가서 바꿔.” “괜찮아! 충분히 사용 가능해.”


 나는 속이 터지는 것 같았다. 한 번씩 가는 여행지에서 사진이라도 찍으면 깨진 액정으로 인해 사진 일부는 나오지도 않고 셀카는 되지도 않는다. 오래 사용해서 배터리도 수명도 짧다. 수시로 충전을 하고 있는 남편. 너무도 답답하다. 무엇보다 끝까지 남편이 고수하는 말은 ‘편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 휴대전화기는 회사가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고 단종 상태이다. 남편은 휴대전화기를 바꾼다면 새로운 제품을 구입해야 하므로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귀찮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 안에 많은 사진이며 정보를 다시 샛팅하는 것이 싫다고 한다. 그 말을 하소연처럼 구시렁구시렁.


  그 말을 계속 듣고 있던 나는 어이가 없다. 무엇이 귀찮아서 더 귀찮은 일을 사서 하는 것인지. 예를 들면 충전을 한 번만 해도 신형 폰은 긴 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남편 핸드폰은 2시간 후면 한자리 숫자가 되어 어디를 가도 충전하기 바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는 음식점 키오스크에 자기 핸드폰을 충전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불편을 사서 하는 남편이 답답하다 못해 짜증이 났다.


“이렇게 불편하게 자주 충전하지 말고 2시간 투자해서 핸드폰을 바꿔. 신형이 아니면 가격도 저렴하고 특히 폰 충전도 오래되고 자기 깨진 카메라도 멋진 것으로 사용할 수 있어.”

“괜찮은데? 멀쩡해.”


‘어휴, 또 저런다. 내가 똑같은 말을 몇 번을 하고 있는 거야. 몰라. 알아서 하겠지.’


 며칠 전

“자기 여기 와봐. 이거 핸드폰이 안 켜져. 충전이 안 돼.” “그러면 폰 바꿔.” “아니다. 충전 부분이 헐렁했나 보다.” “아휴, 또 시작이다. ” 이 이상한 대화를 1주일에 두어 번은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날 오후 1시쯤 남편은 “잠깐 나갔다 올게.” 하더니 핸드폰을 바꿔 왔다. 바꾼 새 핸드폰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뭐냐? 참 어이없음.’ 새 핸드폰을 하면서 모바일 쿠폰 40,000원도 줬다며 카톡으로 보내왔다. “거봐, 핸드폰도 바꾸고 모바일 상품권도 받고 좋은데? 더 일찍 했으면 편하게 사용할 것을 참 오래도 견뎠다. 상 줘야겠군.”


 사실 이런 남편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참 빠른 세상이다. 음식점도 키오스크에서 주문과 결제를 하고 핸드폰도 신상이 즐비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모바일 상품권 사용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세대이다. 받은 상품권 사용은 *마트와 *브랜드였다. 집 가까운 곳에서 사용하려니 큰 *마트에 있는 *브랜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짜라 좋다고 결제하려다 다시 내 카드로 사용하고 나니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럴 거면 왜 모바일이야. 귀찮게 큰 곳까지 가려면 차로 이동해야 하고 사람 많아서 불편한데.


 그 이후 그때 받은 모바일 상품권에 대해 까먹고 있었다.

하루는 톡을 보다가 그 상품권이 생각났다. 유효기간이 며칠 남지 않아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상황이었다. 마트를 싫어하는 남편을 대동하고 남구에 있는 큰 마트로 갔다. 사람들은 주말도 아닌데 인산인해였다. 특별히 사고 싶은 것은 없었기에 쿠폰 가격에 맞추어 필수용품만 샀다. 결제도 키오스크.


 요즘 작은 동네 마트 외에는 대형 마트는 대부분이 셀프 계산대를 사용하고 있다.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웬만한 결제는 무인이다. 남편이 핸드폰을 오랫동안 사용하고 바꾸는 것을 귀찮아하듯 요즘 사회 무인에 자동화가 되는 것이 나도 많이 불편하다.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하고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하려면 여러 번 경험과 실수가 필요하다. 내가 불편한 일이 생기 않으면 담당자를 만날 일도 없다. 코로나 이후로 바뀐 세상. 점점 혼자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혼밥도 익숙해지고 음식을 결제 구매도 남들에 의지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 세대는 빠른 것에 익숙해져 있다. 지금 나도 이런 변화에 빨리 적응하려 하지만 귀찮고 불편하다. 그리고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휴대전화기가 새 폰이 되었을 때 빨라진 성능처럼 우리 세상은 계속 정확하고 새롭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나 또한 오래되고 느린 폰을 사용하는 남편을 답답해했던 것처럼 내가 하는 것은 귀찮아도 늦은 변화는 빨랐으면 한다. 그러면서도 빠른 세상에 적응하는 것을 당황스러워하는 이중적 갈등을 하고 있다.


무엇이 정답일까?

변화에 적응하느냐! 자기만의 삶에 남 눈치 보지 않고 알아서 살아가느냐!

본인만이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부터 쫌 게을러 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