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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 Aug 01. 2023

캐나다 이민 에세이 : 나는 황금고블린

두 번째 이야기:  나 사기당한 거야?

    장마가 한창이었다. 처음으로 실연에 마음 아파했고, 전 남자친구와 지냈던 모든 공간이 사무치게 미웠다. 뻥 뚫린 공간이 좋아서 무리해서 이사, 아직도 꿈에 아른거리는 그 작은 오피스텔. 큰 유리창 너머 4차선을 질주하는 차들과, 등하교하는 학생들. 그리고 사색에 잠길 때마다 나를 반겼던 남산타워. 그 안에서 온종일 천장만 보고 지냈다. 그렇게 천장이 유난히 높아 보였다. 이렇게 살다 간 나에게 정말 못된 짓 하는 것 같아서, 무작정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래, 가보자. 장기 해외여행을.


    내 여행에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신촌만 아니면 되었다. 동창이 마침 캐나다에 있었고, 동기 몇몇이 캐나다와 연이 닿아서 나도 한 번 캐나다에 가볼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유명 유학원 체인점의 문을 두들겼고, 재빠르게 계약하고 왔다. 비행기표, 어학원 그리고 홈스테이까지. 말 그대로 돈만 내주면 어련히 잘할 거라는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하늘이 도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유학원에서 나에게 맞는 숙소와 비행기를 찾아주지 않았다. 직원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숙소와 비행기 목록을 나열하며, 이게 자기네들이 아는 모든 곳이라고 재차 설명했지만, 어느 곳도 나와 내 고양이를 받지 않았다. 이미 오피스텔은 계약 해지했고, 출국 날은 다가오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서 그런가 실연의 아픔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캐나다에서 이 비루한 몸뚱어리를 눕힐 숙소를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모 유학원. 정말 참 고맙다. 덕분에 실연의 아픔 따위 싹 잊었으니까.


    우선, 고양이를 태울 방법을 찾아봤다. 첫째, 화물칸에 고양이만 따로 보낸다. 그러기엔 너무 불안했다. 승객이 타는 기내와 다르게 화물칸은 소음도 심하고, 냉난방도 잘 안되고, 무엇보다도 가끔 동물이 폐사한다는 뉴스를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둘째, 이코노미석 가장 앞자리에 고양이랑 같이 탄다. 그 당시 기내에 탑승할 수 있는 동물은, 운송장과 동물의 무게 합이 5kg가 넘으면 안 되었다. 이 녀석 무게만 해도 4.5kg였고, 일반적인 철제 운송장은 보통 2kg 언저리였다. 그래서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운동 다이어트에 들어갔고, 나는 독일에서 비닐로 된 운송장을 직구해 왔다. 무게는 얼추 맞췄고, 만약 고양이가 기압 때문에 울면 어떻게 하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안 되겠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묘안이, 셋째, 비즈니스석 가장 구석에서 숨어가기. 고양이가 우는 불상사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40명의 승객의 눈총을 받는 것보다 두세 명의 승객의 눈총을 받는 게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렇게 편도 300만 원 비행기표를 끊게 되다. 


       그다음은 대망의 숙소. 여기서 처음으로 '신용'에 대해서 배우게 된 것 같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인간 간 관계의 연결고리를 정말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에 있었을 땐, 애완동물이 원칙상 안 되어도 계약금 얼마를 더 얹는다면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단순히 돈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내가 얼마나 충실한 세입자인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전 집주인, 전 룸메이트 혹은 신용정보회사에 연락해서 내가 월세를 밀린 적이 있는지, 애완동물로 인해 이웃이나 부동산이 피해를 본 적이 있는지 등을 물어본다. 하지만 나는 그 도시에 발도 들여보지 못한 사람이다. 즉, 나의 신용도는 없다 못해 땅으로 추락해 있는 상황. 누가 연고도 없는 외국인을 신뢰할 수 있을까? 정상적인 집은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한인 사회에 기대거나, sub lease(세입자가 세입자를 들이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사는 서부 지역은 애완동물을 키우기 정말 힘든 도시다. 계약할 때마다 붙는 조건은 no pet(s). 동부 지역에 비해 터무니없이 pet friendly 숙소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외국 나가는 건데 한인 사회에 기대기 싫어서, craiglist와 kijiji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에서 방 보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기꾼들이 엄청나게 꼬였다. 이들은 주로 선량한 척, 바쁜 척하는 게 주특기다. 가장 뻔한 예시는, 자기는 선교사로 먼 타국에서 일하고 있으니 집을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항상 말끝마다 God bless you를 외치는, 종교인의 탈을 쓴 사기꾼이다. 혹은, 자기가 너무 바쁜 전문직이라서 자기 집을 부동산 업자가 관리해 준다. 그러니 해외에 있는(주로 아프리카) 사기꾼에게 돈을 보내면 현지에 있는 부동산 관리업체게 나에게 키를 주겠다는 내용. 과연 속는 사람이 있나, 싶기도 한데. 누가 속으니까 저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지 않나 싶다. 


    사기꾼들이 너무 지겨워서 한인 커뮤니티에도 가 봤다. 그런데 이들 사는 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이랑은 정반대였다. 욕실이 딸린 큰 침실 하나, 작은 침실 하나, 그리고 아주 작은 창고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갈 줄을 상상도 못 했다. 흔히 말하는 닭장이 그것이었다. 심지어 집 규율도 굉장히 군대식이라 나는 죽어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쯤 포기하고 호텔에서 지낼 각오를 하고 있던 찰나, 홈스테이 중계 웹 사이트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시세보다 조금 더 비싸게 받고 애완동물 보증금을 따로 받겠다는 것. 홈스테이라고 광고했지만, 사실상 그냥 평범한 룸 렌트였다. 식사 빨래 청소, 그 어느 것도 포함이 된 것은 없었다. 그저 국제 학생들이 살긴 했을 뿐. 위치도 주택가였고,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급하게 게약 하고, 내 물건을 그 주소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첫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주로 현찰로 무언갈 사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되려 여기곤 했다. 안일하게도 나는 중개 웹사이트가 내 모든 권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고ㅡ참고로 그 웹사이트는 굉장히 큰 기업이다ㅡ첫 달 이후로 현찰로 매 달 방세를 내기로 한 것이다. 따로 계약서는 쓰지 않았으며, 홈페이지에서 '계약을 체결'한 게 전부였다. 오산이었다. 어느 날 밤에 집에 들어가는데, 퇴거 명령 경고장이 붙어있었다. 그 내용인즉슨 집주인이 사실상 집주인이 아니라 sub lease를 한 상태였으며(남의 집을 빌려서 학생들에게 방을 빌려주는 형태), 지하실과 침실을 불법 개조해 침실을 더 많이 늘렸다는 것. 소문에 의하면 집주인과 문제가 생겼던 학생이 신고했다는 것이다. 아뿔싸.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그래서 계약서를 안 쓴 거구나. 결국 내가 퇴실할 때 문제가 생겼다. 내가 있는 주는 퇴실하겠다고 1달 전에 말을 해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하여 1달 전에 구두로 말하고, 퇴실 3주 전에 문자를 한 통 넣었다. 곧 퇴실이라고. 하지만 계약서 한 통 없었기에, 사실상 나의 공식적 퇴실 요청은 퇴실 3주 전이었다.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달라고 애원해 보고, 분쟁 조정위원회에 넘긴다고도 이야기해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너는 이미 알고 온 것 아니냐며 되레 큰소리치던 그 아줌마. 현금박치기가 이래서 무섭고, 모든 걸 문서화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너무 억울해서 분쟁 조정위원회에 따로 연락을 취했다. 나는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고, 계약서 없이 집에서 살았다. 이 집주인은 법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노려서 폭리를 취하는 사람이고, sub lease를 불법 개조까지 해서 세입자가 화재나 재난 등에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장문의 이메일을 분노에 휘갈겼다. 하지만, 역시나 그렇듯이, 나는 계약서가 없어서 실 거주자였는지도 불분명한 사람이 된 것이다. 돈을 얼마나 뜯겼는지도 확인해 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너무 많은 사람을 한 집에 넣었다는 것만 접수했다는 것. 이제 내 방을 쓰게 될 새로운 사람이 정확히 내가 빠진 늪에 발을 담그게 될 것이다. 입주해 보니 검문 및 퇴거명령 안내문이 있고, 어떤 질 나쁜(?) 학생이 신고해서 그러니, 공무원들이 오면 여기 사는 척하지 말라고 요구받겠지.


     온라인 게임에서 '황금 고블린'이라는 몬스터가 있다. 잡는 노력에 비해 보상이 큰 몬스터 혹은 상대 유저를 칭하는 말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제 막 입국한 내가 '황금 고블린'이 아니었을까? 연고는 없는데 어수룩한, 사기 치기 참 좋은 외국인. 그래도 내 황금 보따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기에, 지금 여기서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   


    항상 촉을 믿는 게 맞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게 맞다. 누군가 그랬듯이, 촉은 내 인생 경험에서 오는 무언의 경고다. 빠져나올 수 있을 때 빠져나오자. 내 촉을 무시하고 문제가 있던 집에 계속 살았으면, 더 큰 문제에 휘말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엔 어디에 신고해야 할지 잘 몰랐지만, 사기를 당했을 땐 local non-emergency police line에 전화하는 게 좋다. 혹시라도 캐나다 내에서 사기를 당했다면, 구글에 자기 지역 non emergency line에 전화하도록 하자. 


참조: How do I report a scam or a fraud? 

https://www.cic.gc.ca/english/helpcentre/answer.asp?qnum=1207&to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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