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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빠뇽금영 Nov 06. 2023

사악한 고양이가 되어가고 있어

불면증이 있어 한 주에 4~5일을 새벽녘이 돼서야 간신히 잠이 들곤 한다. 그래서 난,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참 쉽지 않다. 몇 시간 안 잤는데 벌써 해가 뜨고 있다. '이불속에서 뒹굴거릴까?' 하는 고민을 잠시 할 때도 있지만 용납할 수 없기에 얼른 이불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하루의 시작은 개운하지도 상쾌하지도 않다. 그저 몸과 맘이 예전스럽지 않게 무겁고 힘들다. 아무래도 갱년기까지 온 듯하다.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호르몬 변화라고 인정하고 넘어가기에는 아직 내 맘이 젊은 건지, 네 속이 좁아지고 있는 건지 이 상황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몸도 너무 아프고, 점점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지며, 별 일 아닌 것에 욱 할 때가 많아진다. 나도 내가 싫어지고 미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하나씩 내 속에 들어와 채워지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남편과의 다툼이 시작된다. 남편의 작은 실수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왜 그리 화를 내는지 내가 생각해 봐도 그게 그럴 것이 아닐 때가 많다. 그저 순간의 욱!이다. 그래 놓고는 참다 참다 터진 거니 듣기 싫어도 들으라며 남편에게 도망갈 틈도 주지 않고 코너로 모는 사악한 고양이로 변하고 만다.


그렇게 도망갈 틈도 주지 않는 고양이와 쥐의 전쟁을 치르고 나면 속이라도 후련해져야 할 텐데 1도 그렇지 않다는 게 나를 또 괴롭힌다. 물론 남편의 실수가 터무니없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에 반응해 화를 내는 나의 정도가 서서히 도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결혼 전에 나의 바람은 현모양처가 되는 거였다. 늙어도 그저 온순하고 고상하게 내조 잘하고 살림 잘하고... 그런데 오늘의 나는 내가 아니다.


남편이 냉장고 문을 너무 세게 열어 냉장고 문 쪽에 세워두었던 커피병이 떨어졌다. 당연히 뚜껑이 깨지고 사방팔방으로 커피는 흐트러졌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주저앉아 정리도 했지만 난 남편의 그런 모습보다는 사고를 친 까닭만 가지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실수였으니 봐 달라고 하는 남편에게

"당신의 문제는 실수가 아니고 늘 조심하지 않는 태도야" 하며 매섭게 쏘아댔다.

그냥 같이 닦아주며 "괜~~ 찮아!" 해도 될 일인데 말이다.


진짜 문제는 누굴까?

사실 난, 나의 화냄을 보며 ' 어~ 이게, 이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본질에서  벗어난 일들을 들춰내며 지금의 상황 맞지 않는 화를 더 낼 때가 간혹 있다.  다행히, 남편은 나보다 더 큰 화를 내지 않고 상황을 넘긴다. 그래서  아주 심각한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으나  난, 몇 번의 깐쭉거림을 더해 남편을 좀 더 자극시킨 후 큰 인심이라도 쓴 듯 상황을 마무리한다.


남편은 잠들고, 나는 지금부터 아프다.

모두가 잠든 밤. 외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좋게 말하면 반성의 시간이지만 나는, 나를 자학하기 시작한다. 나의 행동, 나의 말과 말투, 나의 표정까지 이전의 모습은 다 지우고 싶다. 그런데 지울 수가 없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지? 하며 고민에 빠진다. 이쁘게 살고 싶었는데, 고상하게 나이 먹고 싶었는데, 난 이제 안 되는 건가? 늦은 건가? 너무 멀리 왔나? 하는 생각에 속상하고 괴로워 가슴이 찌릿찌릿 저려온다. 그러다 잠자는 남편을 보니 안쓰럽다. 그래서, 미안하다. 아~~~ 내 속은 언제부터 꼬인 걸까?


앞으로 더더 내 말이 바늘이 되고, 내 모습이 마녀로 바뀌어가면 어찌해야 하지? 나도 내가 무섭다. 갱년기의 여성이라고 나처럼 다 이렇게 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오늘 밤도 잠 자기는 틀린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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