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과 신재용
에디터 : 박희선
‘갓생’을 사는 게 트렌드로 자리잡은 요즘, 주변에서도 다시 학기가 시작된 후 저마다 새로운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대개 스케줄을 꽉꽉 채워 여러 일을 병행하며 시간을 빈틈없이 쓰는 이를 두고 갓생을 산다고 말한다. 맡은 일이 늘수록, 식욕과 수면욕 따위의 본능에 덜 충실할수록 성실하고 독하게 사는 것 같고 그래야 성공함 직한가 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소위 ‘갓생러’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거리에 자주 원동력을 잃기도 하고, 결국 모두 흐지부지해진 채 균형을 잃기도 한다. 그건 신재용 7A 프록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전 유도 선수, 전 총학생회장, 현 삼보 국가대표 선수, 현 서울대 유도부 코치, 행정학과 대학원생, LnL 7A반 프록터, 대화 서비스 창업자. 그를 수식하는 각종 직함이다. 그러나 그는 평형대 위에서 쉽게 미끄러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오래도록, 굵직하면서도 다양한 활동을 동시에 잘 건강하게 수행해왔다. 여러 일을 저글링하는 데 능한 신재용 프록터,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자.
“요새는 다른 일들을 줄이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특정한 것들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가진 리소스를 현명하게 분배하는 거예요. “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전공하고 있는 7A반 프록터 신재용이라고 합니다.
Q. 재용 프록터님 하면 가장 먼저 유도가 떠오르는데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 대회에서 입상하셨고, 국가대표 후보 선수셨고, 현재는 서울대 유도부 코치를 맡고 계시죠. 얼마 전에는 LnL 유도 비교과 프로그램도 진행하셨고, 저도 종종 나가서 유도의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요. 유도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일단은 유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냥 우리나라의 많은 어린이들과 같은데, 부모님께서 유도장이나 태권도장을 보통 보내시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부모님께서는 자기 몸을 지킬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저를 태권도장에 먼저 보내셨었는데, 저희 동네에 태권도장이 너무 인기가 많아서 한 수강생당 쓰는 시간이 적었어요. 부모님께서 참관 수업을 하시고 실망을 하셔서 유도로 옮기게 되었고, 그때부터 유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유도를 시작한 계기는 여느 어린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그. 그러나 초등학생 때를 시작으로 전국 대회 금메달을 휩쓸어가고 국제대회 은메달을 거머쥔 그는 마침내 국가대표 후보 선수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런 그가 돌연 유도 선수를 관둔 까닭은 무엇일까.
Q. 유도를 그만두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그만두게 된 계기는 학업이랑 연관이 있는데, 제가 2016년까지 국군 체육부대라고 운동선수들이 가는 군대에서 실업팀 유도 선수로 병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역 후에 선수 생활을 더 할 것인지 아니면 복학해서 학업을 더 이어나갈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고, 그 결과 학업을 선택했어요. 복학 후에 훈련은 많이 하기 어려우니까 자연스럽게 16년도에 사실상 은퇴를 하게 되었죠.
Q. 유도를 그만두고 나서 현재는 삼보 국가대표 선수로 뛰고 계신데, 삼보라는 종목은 무엇이고 어떻게 삼보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A. 삼보는 러시아에서 우리나라에서의 태권도만큼 위상이 있는 국민 스포츠예요. 유도랑 경기 방식이나 복장 같은 게 매우 흡사하고, 마치 옛날 유도 같은 느낌이에요. 왜냐하면 현재 유도는 다리 잡는 기술 이런 게 다 사라져 있는데, 삼보는 그런 것까지 다 허용되니까 지금 유도보다 더 허용 범위가 넓어서 좀 더 재밌는 느낌이 듭니다.
삼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가 2018년에 총학생회장으로서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진짜 운동 말고 학생 운동, 무브먼트요. (웃음) 그러다 보니까 이제 진짜 운동을 잘 못했었는데,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 유도 지인 후배 중 한 명이 ‘삼보라는 운동이 있는데 한번 와봐라’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한번 뛰어봐도 되냐’ 이야기하다가 삼보 대회에 나가봤는데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유도에서 이제는 금지된, 그런데 예전에 제 주특기였었던 기술들이 삼보에서 허용되니 제 기량을 다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깨로 메치기 기술이 그중 하나였죠. 게다가 삼보가 당시에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었어서 한 번 더 마음이 불타올랐고, 그렇게 18년도 12월부터 삼보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Q. 그러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과 복학하는 것 중에 후자를 선택하신 이유도 유도에서 다리 잡는 기술들이 금지된 게 작용한 건가요?
A. 많이 작용했죠. 제가 2015~16년에 군 생활을 할 때 이제 사실상 금지된 상황이긴 했는데, 그때 기술이 있었다면 제가 더 선수 생활을 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기술이 있었으면 제 기량도 좀 더 좋았을 거고 성적도 냈을 테니까요. 제가 그때 기준을 정한 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성적을 못 내면, 태릉 선수촌에 못 들어가면 유도는 이제 그만하고, 들어갈 수 있는 기량이 나오면 좀 더 운동을 계속하자는 거였어요. 왜냐면 젊을 때밖에 못 하는 거니까요. 근데 제가 국가대표 성적을 못 냈거든요. 다만 실업팀 성적은 냈는데 그것도 1등이 아니라 2등, 3등 이러다 보니까, 실업팀 가서 선수 생활하며 당장 돈을 벌기보다 미래를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데에 더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아요.
국가대표를 향한 그의 못다 이룬 꿈은 삼보에서 펼쳐졌다. 2019년 삼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는 당해 삼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유일 메달을 땄고, 현재는 대한민국 삼보 대표팀 주장으로 자리매김해 전지훈련, 국제대회 등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Q. 그래도 결국에는 돌고 돌아 삼보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하고 계시네요. 8월에는 러시아 전지훈련을 다녀오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훈련을 하셨나요?
A. 이번 전지훈련 일정이 원래부터 정해진 건 아니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메칠 때 쓰는 다리 잡는 기술은 잘하는데 다리를 꺾는 기술은 못해요. 예를 들어 누워서 그라운드 기술로 다리를 꺾고, 앵클락이나 니바처럼 발목이나 무릎을 꺾는 그런 기술들을 못하는 게 매우 고질적인 취약점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2주 정도 러시아에서 좋은 기회로 우리 한국 대표 선수단을 밀착 코칭을 해준다고 해서 하체 관절기를 중점적으로 배우고 왔고, 또 그 중간에 있었던 국제대회 2개에도 참여하고 왔습니다.
학부생 때는 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 체육교육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삼보 선수로 훈련하면서도 행정대학원에 진학하여 목표를 위한 준비에 정진하고 있는 신재용 프록터. 그의 시선이 향하는 끝에는 어떤 꿈이 놓여 있을까.
Q. 지금부터는 학업에 관한 질문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학부생 때 체육교육학과로 입학해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꿈을 물어보는 질문에, 훗날 스포츠 행정 쪽에서 일하면서 정책이나 체육 정책에 관한 일들을 하고 싶다는 등의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학을 한 이유는 첫째로 우리 학교 학부에 행정학이 없는데, 행정학을 배울 수 있는 게 사실상 사회과학대학 안에 있는 정치학과의 과목들로 배울 수 있기에 정치학과를 복수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정치라는 게 결국에는 인간 생활에서의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을 이루는 것이라, 어떤 활동을 하든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게 되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점도 정치학을 선택한 이유가 됐습니다.
Q. 스포츠 행정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중고등학교 때 학교 운동부별로 좀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보통은 한 4교시까지 하고 쉬다가 3시에 운동을 하는 시스템을 많이 따랐고 수업 시간에도 굳이 그냥 자도 별말 없으시고 시험 기간에도 똑같이 그냥 운동하는 루틴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학교 감독님께서는 지금으로 생각하면 생각이 많이 트여 있는 분이셨어요. 첫째, 운동 시작이 늦춰지더라도 일단 그냥 수업은 다 듣고 와라. 둘째, 수업 시간에 웬만하면 자지 마라. 셋째, 시험 기간에 운동 쉬고 공부해라. 이런 식으로 감독님께서 지침을 내려주셨거든요. 결국에는 우리 학교에만 적용됐던 거지만, 이런 식의 절차가 전국적으로 확장된다면 더욱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걸 할 수 있는 게 행정 영역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행정이라는 게 결국에는 어느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이 이루어지면서 거기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어떻게 활동을 할 수 있는가를 정의하고 조직의 틀을 갖추는 일이니까요.
Q. 굉장히 흥미로운 계기네요. 동시에 한편으로는 지금 창업을 하신 계시는 걸로 아는데, 어떤 분야인가요?
A. 지금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건 ‘샤방(Shabang)’이라고, 서울대 구성원들이 익명으로 랜덤하게 상대방과 매칭되어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요즘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가까워 보이지만 오히려 더 소외되고 혼자 외톨이처럼 지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까운 사이여도 속마음을 깊게 털어놓기에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익명으로 그런 속마음을 털어놓고 학교생활의 고민이나 인생의 팁을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판단해서 론칭을 준비 중입니다. (*2023년 10월 ‘샤방’은 론칭되었고,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다. 12월 중 캠퍼스레터로 서비스 이름을 변경한 뒤 앱으로 론칭하여 모든 대학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장할 예정이다.)
학업과 선수 생활, 창업을 포함해 각종 일을 동시에 병행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신재용 프록터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도무지 한계가 없는 것 같은 그가 이토록 성실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1) 선택과 집중을 하며 리소스를 현명하게 분배하는 것
Q. 그런데 지금 대학원을 다니시면서 선수로서 대회에도 출전하시고 창업도 준비하시고 LnL 프록터로서의 일도 하고 계시잖아요.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일을 균형 있게 병행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요?
A. 요즘 고민이 많이 되는 지점 중 하나인데, 어떻게 보면 실속이 없달까요? 하나에 집중해서 에너지를 올인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여러 개로 리소스가 나뉜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효율이 발생하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새는 다른 일들을 줄이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특정한 것들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요.
일단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당장에 끝내야 할 과업이 있는 반면 긴 호흡으로 꾸준히 해야 할 게 있으니, 카테고리를 잘 나눠서 계획을 짜곤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운동은 평소에 시간이 날 때 꾸준히 해야 하는 거예요. 대학원 공부는 수업 시간에 열심히 다 듣고, 시험 기간 2~3주 전에 모아놓은 자료들을 빡세게 공부하는 정도고요. 창업의 경우에는 미팅을 정기적으로 잡아서 그 시간에 다 수행하도록 하고 있어요. 그러면 어느 정도 효율도 챙기고 성과도 나는 것 같습니다.
이 계획을 짜가는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는 거죠.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거나, 쳐내도 될 일의 경우에는 과감하게 쳐냅니다. 예전에는 제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이어서 쉴 시간 없이 다 하는 느낌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체력이 예전보다 떨어지니 꼭 해야 하는 것 위주로 하자고 정했어요. 중요한 건 내가 가진 리소스를 현명하게 분배하는 거예요.
Q. 그러면 그 선택과 집중을 하시는 데 있어서, 선택하는 것들에 대한 기준이 있으세요?
A. 우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이 아니면 못 하는 일이라면 지금 해야죠. 선수의 경우에는 사실 지금 은퇴해도 무방하고, 길어야 3~4년일 것 같아요. 운동선수로서의 신체 나이가 끝나가는 걸 느끼고 있어서,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다른 것보다도 내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마음이 가는가가 가장 커요. LnL을 예로 들자면, RC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에게 실험 적용을 하는 것인데 저는 이게 되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저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많이 사랑하고,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잘되는 것이 대한민국 국가 발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맡은 몫, 신입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것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LnL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창업의 경우에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사회에 광범위하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서 그리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죠.
(2) 휴식의 범위를 확실히 정해놓고 꾸준히 하는 것
Q. 답변을 들으며 저도 감화되는 부분이 많네요. 이렇게 프록터님도 정말 열심히 사시는데, LnL 구성원 중에도 진짜 열심히 사시는 분들 많죠. 소위 요새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갓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종종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잖아요. 프록터님은 이런 여러 일을 하시면서 번아웃이 오시는지, 그리고 만약 그럴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우선 저는 갓생을 살아야만 뒤처지지 않을 것 같은 지금 세대가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갓생이라는 게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진짜 모든 일을 다 완벽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를 돌아봤을 때도 그렇고. 사실 보통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면서 시간을 빽빽하게 쓰면 갓생이라고 표현을 하는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는 갓생은 그렇게 하더라도 성과를 다 내는 거예요. 여러 일만 벌여놓고 흐지부지되게 하면 그건 갓생이 아니라 하나를 진득하게 열심히 하는 일보다 못한 행동이라고도 생각해요. 물론 신입생 때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동시에 수행하고 성과까지 다 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만 저는 아까 말했던 리소스 분배의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한두 개 정도 정하고 그것부터 잘 성과를 이루어내고 곁다리 활동들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너무 일을 벌이면 수습이 안 되고 오히려 다 그르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번아웃이 오고요. 번아웃이 가장 크게 오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열심히 했는데 기대만큼 결과물이 안 나오거나 그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아서 현타가 오기 때문이니까요.
저도 예전에 총학생회장으로 있을 때 번아웃이 많이 왔죠. 그 극복을 잘했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제가 무조건 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는 일의 그런 범위를 정해놓고 그것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없다면 다람쥐가 쳇바퀴 굴리듯이 기계적으로 사는 느낌이 들 테니까요. 그런 순간에서 우울감이 오고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딱 오는 게 번아웃이고요.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러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어느 정도 확보해둡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며 재충전하는 날을 만들어둔다든지 하는 거죠.
Q. 그러면 프록터님은 휴식 시간에 어떤 일을 하시나요?
A. 스케줄이 잡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주말에는 그냥 쉽니다. 그때 하는 건 첫째로는 취침이에요. 한번 잘 때 푹 자려고 하고요. 그리고 뭔가 이상할 수 있는데, 오히려 주말에 운동을 해요. 제가 (유도부 등에서) 유도를 알려줄 때는 ‘이거 해야 됩니다’, ‘낙법은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계속 교감과 소통을 해야 하니까 되려 힘들어요. 그런데 제가 운동을 직접 선수들이랑 가서 할 때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하니까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그리고 달리기를 할 때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 정리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좀비트립이나 DP2처럼 평소에 못 봤던 콘텐츠를 몰아보곤 해요. 기숙사에 혼자 있으면 달걀볶음밥, 파스타, 된장찌개 등등 요리를 또 자주 해 먹기도 하고요. 이런 일들을 하면서 쉽니다.
(3) 여러 일을 병행하더라도 각각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사유하는 것
Q. 그렇군요. 그런데 많은 일을 하시다 보면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갈 것 같은데, 기록은 하시는 편인가요?
A. 예전에는 일기를 썼는데 요새는 못 쓰고, 생각날 때 네이버 메모나 블로그 씁니다. 비공개로 쓰는 것도 있어요, 하하. 여러 일을 병행하는 건 좋지만, 그 일 각각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은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목표가 없이 항해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번아웃 현상도 힘듦의 한계치에 도달했기에 오는 것이지만, 자기가 하는 일들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면 그 역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진행할 때 왜 그걸 하고 싶은지, 자신에게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지치지 않고 자신의 계획들을 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Q. 그럼 이제 LnL 얘기를 해볼게요. LnL에서 지내면서 겪었던 일 중 인상 깊은 일은 무엇인가요? 프록터 입장에서 재학생들과 어떤 교류를 하셨는지 궁금해요.
A. 13반이 다 다르겠지만, 우리 반의 경우에는 막 개별적으로 번개 모임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다같이 모이자고 하면 웬만하면 다 모이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좀 꼰대 같은 마인드이긴 한데 반 활동이나 공식행사 하면서 학생들이 속썩인 적은 없었어서 너무 고마워요.
기억에 남는 건 5월 8일 제 생일인데, 솔직히 말해서 별로 기대를 안 했거든요. 살아가면서 그냥 1년에 한 번은 오는 날인데 학생들이 챙겨줄 거라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 5월 9일 자정이 되기 직전에 제가 외출하려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갑자기 연락이 오는 거예요. 지금 와야 된대요. 그래서 갔죠. 그랬더니 우리 반 친구들이 멘토랑 신입생 모두 모여서 생일 파티를 이렇게 준비해줘서 너무 감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생일에 그렇게 큰 의미를 안 두고 있었는데 엄청 울컥하고 감동적이더라고요. 사과 케이크도 해줬고, 편지는 없었던 것 같고. 근데 다 모였다는 게 감동이잖아요. 솔직히 시간 맞추기 어려울 텐데.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게 될 우리 LnL 신입생들한테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A. 오글거릴 수도 있는데, 앞으로 서울대학교 구성원을 두 파트로 나눈다면 LnL을 경험했냐 경험하지 않았냐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LnL에 오신 우리 신입생 여러분들은 너무 행운이고 축복이고 정말 좋은 기회에 함께 LnL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1년차 시범 사업이라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좀 양해해 주시고 여기서 얻어갈 수 있는 걸 많이 얻어가셨으면 해요. 비교과 프로그램을 많이 한다든지, 주도적으로 뭔가를 이끌어간다든지 하며 구성원들과 함께 공동체로서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은 방향으로 큰 기억과 경험으로 남을 거예요. 별거 아닌 활동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사실은 그게 아니니 LnL 구성원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신입생에 걸맞게 다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거기서 많이 좌절도 해보고 성취도 해보고 울어도 보고 웃어도 보고 화도 내고 다 하면서 모든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로써 인생에서 한층 더 성장하는 데 있어 LnL이 큰 도움이 되는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근데 너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보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추려서 선택과 집중을 해서 거기에 올인을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건 맞는 말이거든요. 하지만 또 신입생 입장에서는 지금껏 못해본 일들을 하는 기회일 수 있잖아요. 앞으로도 그렇지만 어릴 때의 시간이 유한한데, 하고픈 걸 경험해보지 못하면 항상 생각날걸요. ‘예전에 그거 했었어야 됐는데’ 하고. 근데 막상 여러 개를 하면 잘 못 챙겨서 나중에 후회하겠죠?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건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던 걸 대충 던져버릴 시기는 아직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입생에 걸맞게 다양한 걸 경험하라는 얘기와 선택과 집중하라는 얘기가 상충하지 않는 것 같아요. 결국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선택할 일을 알고, 집중하는 법을 알 테니까요. 그러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하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입시를 하며 정말 힘든 길을 달려오셨겠지만, 아직 인생이 끝난 게 아니잖아요. 조금 더 노력해서 스스로가 맡고 있는 것에는 진실성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비단 공부뿐만이 아니라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이때 기억이 진짜 평생 가거든요. 1학년 때 있던 열정과 순수함 이런 것들이 저는 아직도 많이 기억나기도 하고, 요즘 10년 만에 만난 동기들이 청첩 모임을 하는 단계까지 왔어요. 저번 주에만 3일 연속으로 갔는데, 그렇게 만나서 하는 얘기가 ‘재용이 너는 그때 어떻게 살았었는데 지금도 변한 게 하나도 없네’, ‘너는 그때 이랬는데 지금 이렇게 됐네’ 이런 식이에요. 학부생 시절 모습이 많이 기억된단 말이에요. 그러니 인간관계에 투자해서 다양한 인연들을 잘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도 사람이 더 많이 남아요.
아, 이건 꼭 넣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제가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잖아요. 그중에서 LnL이 1순위예요. 가식 아니에요, 진짜. (웃음)
그의 삶은 헬스와 닮았다. 언뜻 보기엔 엄두도 안 나는 무게의 아령이 헬스를 오래 해온 사람에게는 적당히 운동이 되는 것처럼, 하나도 하기 버거워 보이는 일을 대여섯 개 하는 데에서 그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능숙했던 건 아닐 것이다. 그 역시도 균형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다면 멋모르고 처음 헬스장에 발을 디뎠을 때가 무색하게 날을 거듭할수록 근육이 늘고 더 무거운 아령을 들 수 있듯, 불균형의 역치를 높이다 보면 그처럼 각 분야에서 더 나은 결실을 거둘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는 무작정 할 일을 벌이고 보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여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할 일을 선별한 후 몰입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더하여 그 일들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함으로써 내면에 교훈을 새기는 것. 성심성의를 다하면서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며 여유를 즐기는 것. 이것이 신재용 프록터가 평형대 위에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며 갓생을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신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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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과정
LnL 7A반의 프록터이자 대표 프록터
대한민국의 삼보 국가대표
서울대학교 유도부 코치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캠퍼스레터(구. 샤방) 대표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