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NL 사람들 Jan 17. 2024

일상의 밀도를 높이며 살기

경영학과 박희선

에디터 : 맹호


   무엇이 삶의 밀도를 결정하는가? 갤러리에 쌓인 수많은 추억의 사진들, 줄지어 완료 표시가 되어 있는 투두리스트가 그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지를 돌아보고, 삶의 빈틈을 채우기 위한 또 하나의 활동을 욱여넣는 피로사회의 우리들. 삶의 진정한 밀도는 무엇을 하는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희선은 누가 봐도 바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표면적인 분주함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이 인터뷰는 밀도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짧은 에세이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3학번 경영학과 박희선이고요. LnL에서 8A반 구성원으로 있고, 그리고 LnL에서 이것저것합니다.


경영학 전공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입시상의 이유인데요. 제가 원래 경영학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방송·언론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언론정보학과에 가고 싶었는데,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됐죠.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미디어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을 주로 다룬다는 걸요. 그건 딱히 관심이 없다고 생각도 했고 마침 또 성적이 생각보다는 잘 나와서. 하하.

   학원 선생님께서 합격할 가능성을 높이려면 경제와도 관련이 있고 모집 인원이 많은 과가 낫지 않겠냐고 말씀하셨고, 제 생기부에 경영 관련 내용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라서 경영학과로 진학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때 당시에는 제 진로보다 대학교가 중요했기 때문에, 일단 ‘경영학과로 지원하고 생각해 볼게요’라고 해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춤 연습을 일주일에 세네 번하고 거기에 더해서 새벽 연습까지 할 때도 있고, 아침 연습할 때도 있고 이렇습니다. 과외를 두 개 합니다. 더해서 대치동 조교 알바를 해요. 그리고 수업을 듣고 학자세를 준비하고요, 독서토론 동아리를 해서 2주마다 한 번씩 갑니다. 정보화본부 학생 서포터즈로서 홍보물도 만들어요. 생각보다 많은 걸 안 하는데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어요. 근데 제가 LNL에서 너무 많은 걸 하고 있기 때문에.

   LnL에서는 ‘LnL 사람들’을 하고요. 친밀성 세미나를 청강하고요. 다양성 세미나라고 하는 비교과에 참여합니다. LnL 배드민턴 동아리 부장으로 있고, LnL 클라이밍 동아리에 들어가 있는데 몇 번 나가지 않았어요. LnL 요리 소모임에 소속되어 있고 LnL 영화 비교과 운영진도 하고 있어요. LnL 플리 추천 소모임에도 들어가 있네요. LnL 피트니스 소모임도 가끔 나가고 LnL에서 연 연기 강습 비교과도 매주 토요일 아침에 나갑니다.


어떤 학생자율세미나에서 개설책임학생으로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 세미나에서는 무엇을 하나요?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했습니다. 원데이 클래스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거잖아요. 그게 공동체 의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가설을 세우고 원데이 클래스를 세 번 정도 운영을 해본 다음에 실제로 이 사람들이 LnL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인식하는 게 어떻게 변했고 얼마나 서로 더 친밀해졌는지를 탐구하는 학생자율세미나인데요. 지금까지도 원데이 클래스를 세 번 열었는데, 베이킹, 포토샵 그리고 드로잉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했어요. 운영 후에는 설문조사와 면접 결과 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베이킹 클래스와 빼빼로데이의 시기가 겹쳐서 LnL 안에 베이킹 붐이 이어서 생긴 거 같아요. 박영민 씨가 쿠키 천 개를 만들지를 않나. 꼭 이 영향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시기가 맞닿다 보니까 그 이후부터 공유 주방에서 점차 베이킹을 하는 빈도가 늘어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제까지 한 활동들을 모두 포함해서 LnL에서 어떤 게 가장 인상에 남고 추천할 만한지를 얘기해 주세요.

   이 인터뷰 중이라서 그런 건 아닌데, LnL 사람들입니다. 왜 괜찮다고 생각하냐면, 일단 인터뷰이의 입장에서는 살면서 자기가 인터뷰를 받아 볼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하면 인터뷰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걸 평생 생각해 보지 못했다가 이제서야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기는 거잖아요.

   더해서 나의 답변을 누군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하나의 결로 완전한 글을 작성해서 플랫폼에 올려준다. 이건 진짜 솔직히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정도로 가치가 매겨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터뷰이 입장에서는 그게 좋고, 인터뷰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살면서 다른 사람 인터뷰해볼 일이 기자가 되지 않는 이상 얼마나 있겠어요. 근데 다른 사람을 인터뷰한다는 건 그 사람이 초면이든 아니든 간에 최소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또 어떤 걸 진중하게 여기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등을 탐구하고 알아야 되잖아요. 그리고 그 답변이 나왔을 때 그걸 이렇게 하나의 키워드로 엮어서 써야 되고. 그런 기회가 정말 없는 것 같아요. 1학년이니까 멋 모르고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좀 들고요. 학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여기에 이만한 열정을 투자할 여력이 안 날 것 같아요. 그래서 LnL 사람들 좋다! 그리고 LnL 사람들 하면 LnL 사람들 구성원들과 친해질 수 있어요. 왜 홍보하는 거 같지? 하하.

   그리고 인상 깊었던 건 다양성 세미나에요. 비교과로 이루어지고, 강사분들이 오셔서 강연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토론이 이루어지는 방식인데요. 다양성이 키워드니까 아무래도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 예를 들면 여성이 통계에서 어떻게 지워지는지, 나이듦과 죽음에 있어서 노인들이 어떻게 통계에서 지워지는지 - 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LnL이 다양성을 하나의 가치로 표방하는 것치고 다양성 세미나 말고 유의미한 관련 활동이 없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김초엽 작가님도 오셨기 때문에 이 세미나가 굉장히 좋았어요. 그리고 LnL에 그래도 이렇게 약자와 다양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정도 풀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고요.

   보통 연사님의 강연을 들으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잖아요. 근데 이 세미나에서는 소규모로 옹기종기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이루어지는 거라서 일대일 소통이 잘 된단 말이에요. 질문과 답변이 잘 이루어지고. 그래서 그게 가장 좋았어요.


이제 몸 담고 계신 LnL 사람들 팀에 대한 얘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처음에 공고를 봤을 때 왜 참여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셨나요?

   그 당시에 나왔던 것들 중에 가장 Humane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교에 오기 전에는 초점이 자기 자신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란 말이에요. 고3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고3도 그렇고 한국에서 보통의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이 자기였던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 LnL 사람들은 그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고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의 궤적은 어떤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이 활동을 수개월 해왔고, 팀 회의를 매주 정기적으로 하는데, 본인은 이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맞춤법 빌런이요. 저는 맞춤법에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그래서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지 않고도 원고들의 맞춤법을 다 하나하나 지적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가끔 제 성격이 조금 시니컬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종종 비판적인 얘기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떨 땐 도움이 되지 않나 싶어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의견이라는 것이요.


이제까지 어떤 분들을 인터뷰하셨나요?

   신재용 프록터님 그리고 코바야시 아오이님. 앞으로는 상호 인터뷰로 임재영님을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적어도 두 번의 인터뷰를 하셨네요. 그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 있었나요? 재용 프록터님부터 말씀해주세요.

   ‘저런 사람이 존재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인터뷰 글에서도 썼었던 얘기지만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뭔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 중심은 타고났다기보다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좀 들었고요. 그동안 거쳐왔던 그 굴곡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과정에서 물론 넘어졌겠지만 넘어져도 일어나서 지금의 본인을 만들었다는 게 대단하게 보였어요. 그리고 창업하는 것도 웬만한 믿음과 확신 없으면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되게 여러 의미로 곧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좀 많았어요.


‘곧다’라는 점에 대해서 조금만 더 얘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곧다라는 게 당연히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이런 건 아니에요. 의외로 저는 갈대가 곧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흔들려도 원래대로 돌아오잖아요. 어쨌든 그 점에서 저는 갈대가 가장 곧다고 생각하거든요. 대나무는 부러지니까 곧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신재용 프록터 님께서는 대나무보다는 갈대 같은 사람이 아닌가. 뭔가 시련이 있어도 끝내는 굴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감상이 있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셨나요?

   대단하긴 대단한데, 전에는 대단한 사람들을 보면 ‘진짜 대단하다, 나랑 되게 다르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가 끝이었거든요. 근데 요즘은 달라요. 재용 프록터님 대단하시지만 저희랑 자주 어울리시잖아요. 그런 점에서 내가 지금까지 대단하다고 여겨왔던 사람들이 나와 그렇게 먼 존재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떤 점을 본받을지를 골라서 본받고 그렇게 그 방향대로 되려고 노력을 한다면 나도 충분히 다다를 수 있는 지점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단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라고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하나의 지향점, 손 뻗고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닿을 수 있는 상태라는 생각을 했어요. LnL 사람들은 특히나 LnL 구성원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보니까 인터뷰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여기서 만나고 사는 모습을 보고 흐트러진 모습도 보고 재밌게 놀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좀 더 한 사람의 인간됨과 인간다움을 더불어서 볼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코바야시 아오이님을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아오이 님은 느낌이 어떻게 다르냐면, 아무 연고가 없는 곳에서 자기 자신을 잘 정돈하고 인간관계도 넓히면서 사는 것이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삶을 잘 영위해 나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게 갓 성인이 된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그 단단함의 근간에 무엇이 있냐면, 긍정이 있어요. 그 분은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힘든 일이 있어도 “아니야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인터뷰 내용을 조금 이야기하자면, 1학기 때는 한국어가 조금 어려워서 스스로의 활동에 제약을 거는 게 많았대요. 그런데 방학 때 한국인들하고 더 어울려보니까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하면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걸 보면서 되게 부딪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인터뷰 및 그 전후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본인이 변화했다고 생각했거나, 적어도 기억에 남는다고 느꼈던 점이 있나요?

   변했다까지는 모르겠는데 최소한 내가 하는 고민이 나 혼자만의 특수성 때문에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새내기로서 하는 고민들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이 인터뷰에 담겼었어요.

   인간관계와 공부의 균형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었고, 사람들이 정말로 이 전공 관련해서 진로를 설정해야 될지 아니면 거기에서 묶이지 않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죠. 다들 장기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자기 방향성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이것에 적합한가 아닌가, 아니면 내 삶에서 이것과 저것을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면서 가져가는 게 좋으냐, 이런 얘기들이 나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게 오가는 건 아니지만 항상 참고가 돼요.

대학 입학하고 나면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시야가 넓어지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대학 가야 되는데’ 생각하고 있다가 대학 입학하면 ‘대체 뭐 해먹고 살지?’ 라는 질문으로 옮겨가게 되니까 시야가 넓어졌고, 그 과정에서 겪는 혼란들을 나만 겪는 건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랬을 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 고민을 가져가고 있는가, 이 생각의 흐름을 가져가고 있는가를 보면 참고가 돼요.


그렇군요. 크게 보면 비슷하긴 한데 고민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대응 방식은 또 각자 다르다고 느낀 거죠.

   오히려 그래서 도움이 됐어요. 왜냐하면 나랑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똑같은 고민을 하고 그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만약에 인터뷰에 나왔다면 은연중에 ‘이게 정답인가?’라는 생각을 좀 했을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사고해야만 하는 건가?’라고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니까 오히려 나랑은 좀 거리를 한 뼘은 둔 채로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그 사고를 배워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희선 님 본인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볼게요. 지금 관심 있는 것들을 쭉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으셔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제가 또 할 말이 많은데… 다양한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그거예요. ‘내가 특별하게 관심 있는 분야가 없구나.’ 춤도 그래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제가 춤에 쏟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절 아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진짜 열심히 하네’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 공연을 본 친구 중에 한 명이 ‘네가 좋아하는 일을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 보인다’라는 말도 했는데 막상 저는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아요. 딱 적당한 정도의 관심만을 가지고 있어요. 모든 게 지금 그런 상태거든요. 그래서 불호는 강한데 호는 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깨달았어요.

   내가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 불호를 경험하고 배제해서 좋아할 수 있는 후보군을 남기는 방법으로 가야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비슷비슷한 선호들 사이에서 갑자기 압도적인 선호가 등장하는 걸 기다릴까, 하는 것도 지금 고민 중이에요. 결국 그만큼 다 관심이 고만고만하다는 이야기고 굳이 어디에 관심을 두는지 따지자면 아직까지 저는 제 세계에서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나 자신이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잘 모르잖아요.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나 자신과 친해지는 것이 최근의 관심사에요.


자신과 친해지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나요?

   끊임없는 대화가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긴 한데, 문제는 대화를 해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데 제가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하게 되면 우울의 구렁텅이로 슝 빠지곤 해요. 그래서 이걸 경계해야 돼요. 학기 중에 여러 일을 처리하면서 나 자신의 대화를 진중하게 하기로 결심하면 금방 우울해져요. 학기를 마치고 여유가 조금 생겼을 때 나 자신의 대화를 하게 되면, 그냥 방 안에 혼자 앉아서 사색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어떠한 선을 못 넘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외부 자극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지금은 거의 하지 않고 있는 문화생활들 - 전시를 본다든지 연극을 보러 간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아니면 여행을 간다든지 - 해서 다양한 외부 자극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저랑 좀 대화를 하고 싶네요.


그런 사례가 있나요?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열심히 살아야 되지?’라는 생각을 아주 깊게 한 적이 있었어요. 무슨 작품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간에게 한계가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취지의 대사를 담은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그걸 보고 나와의 대화에 그 대목을 인용해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 했죠. 그런 방식으로 좀 끌어오려고 외부 자극을 추구하는 겁니다.


그 대화는 사색 말고 글쓰기로 이어지나요?

   너무 잘 이어집니다. 사실 사색하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 거의 글쓰기로 이어지기는 해요. 빠른 템포로 생각이 들었을 때는 그냥 생각만 오롯이 하고 기록할 여유가 있을 정도의 템포면 글쓰기를 하죠.


이야기를 듣다보니,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죠.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할 때, 먼 미래를 많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언젠가 친구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나는 한 달 후에 내 모습도 잘 못 그리는 사람이다.”라고요. 그 대신에 저는 과거에 대한 기억력이 좋아서 약과거를 곱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그래서 당장 오늘 몇 시간 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혹은 어제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를 다시 리마인드 하거나, 작년에 이맘때쯤에 낙엽이 떨어졌을 때 내가 무슨 상황에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회상하기도 해요. 결국 스스로를 자기 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억의 연속성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걸 잃지 않으려고 자아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해요.

   하지만 과거에 잘 얽매여서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냥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저에겐 제 일상의 바쁨에 대응하는 방법이에요. 바쁘게 살 당시에는 제가 하는 것들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내면화할 시간이 없으니, 시간이 흐르고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으로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단순히 잊히지 않고 유의미하게 저에게 남게끔 하는 거죠.

   그게 아니라면 사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죠. 주변인에 대한 생각. 주변인과 내가 어떤 관계고 이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도 하고요. 온갖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정의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 간의 괴리를 좀 생각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사회에서는 연애를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얘기하죠. 그런데 왜 내 인생은 연애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나, 생각도 많이 하고요. 그런 식입니다.


이런 여러 생각들을 해보신 희선 님께서 생각하기에 좋은 삶은 뭔가요?

   일단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대답할 수 없지만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무언가를 정의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우리는 친구 사이냐 연인 사이냐’ 뭐 이런 얘기들 하잖아요. 근데 그걸 딱 가를 수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관계에서든 이 사람과의 고유한 감정이 있죠. 어떤 느낌들이 있는 것. 그런 걸 정의하는 순간 감정들이 납작해진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정의를 싫어하고요. 좋은 삶도 마찬가지에요.

   좋은 삶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가?’라고 했을 때 바로 그 대답을 하게 되면 너무 납작하게 삶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아서 정의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성취하고 싶은 거라든지 지키고 싶은 걸 말해보자면, 모든 걸 다 차치하고 제 인생에 제일 중요한 자유에요. 자유 의지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의도 많지만, 있든 없든 추구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외압을 받지 않고 최소한 내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나쁜 결과를 낳든, 좋은 결과를 낳든 간에 그걸 가장 지키고 싶어요.

    두 번째는 그게 지켜졌을 때 ‘내가 성공하고 봐야 되지 않겠나, 내 자신의 부가 있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자유가 보장되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게 경제적 자립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용돈 안 받고 벌어서 쓰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부가 확보가 돼야 내가 뭔가를 하고 싶을 때 내 자유를 내가 주창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까지 했던 이야기와는 별개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약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거나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약자와 관련된 책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면서 부가적인 환상을 많이 품고 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삶에서 무얼 기대하고 사나요?

   그것에 대해서도 재밌는 할 얘기가 많아요. 그게 어떤 정도의 기대냐면, 이렇습니다. 지금처럼 당신과 나 둘이 있으면 당신이 나한테 물리적, 정신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기대예요. 한마디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현대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의 기대도 하지 않는 게 내가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대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칼부림이나 비슷한 무언가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 너무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게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도 그런 것 같아요. 세상이나 삶에 있어서도 내가 그 속에서 성공할 거란 기대는 당연히 안 해요. 이렇게 실패할 거란 기대를 하면서 하는 거죠. 제가 말하는 기대는 예상이에요. Hope이 아니라 Expectation. 그렇게 최소한의 기대치를 한없이 낮춰서 살면 생각보다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뜻밖의 일이 되고, 뜻밖의 성취가 되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성공할 거라 믿었어도 저에게는 ‘이게 되네?!’ 싶은 거니까 그런 점에서 누군가는 부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이게 제가 저의 낙관을 지키는 방법이에요. 이렇게 살면 잘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삶의 방식은 그렇습니다.


그러면 본인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지 않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스스로에 대한 기대는 의식적으로 높게 가져가려고 합니다. 주변과 비교하여 자존감이 깎일 때 나 이외에는 내 능력과 가능성을 믿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앞서 도전을 두려워하고 꺼린 전적들이 있기에, 처음부터 '아냐 할 수 있어, 일단 좀 해봐' 하는 근거 없는 기대와 믿음을 자기 자신에게는 하려고 합니다. 세상이나 타인에겐 가장 최소한의 기대를 하려 하지만요. 제 자신에 대한 기대는 나만이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흐르는 시간 속의 기억들은 퇴적되어 우리 삶을 쌓아간다. 퇴적의 기회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지지만, 퇴적된 형태는 제각각이다. 무엇을 잡아 담았는지, 얼마나 눌러 담았는지에 따라 퇴적물의 단면은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희선은 최대한 다채로운 경험들을 담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그가 진정 강조하는 바는 그 경험을 꾹꾹 눌러 내 것으로 만드는 자세다. 내 손으로 누르지 않는다면, 기억들이 나의 대지 아래 자리잡기도 전에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지 않겠는가? 맞춤법에 대한 집착에는 희선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부분들을 잘 정리하여 전체를 꼼꼼히 완성해 나가는 사람. 자기 삶의 경영자로서 밀도있게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다.




박희선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한빛반 23학번이자 LnL 8A반의 구성원.

서울대학교 중앙 스트릿 댄스 동아리 H.I.S.의 락킹 댄서 지망생, 그리고 LnL 사람들의 에디터.

LnL 학생자율세미나 '원데이클래스: 취미와 공동체' 개설책임학생이자 LnL cine club 운영진이다.



작가의 이전글 종착지 없는 갈래길을 사뿐사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