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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슈아 Aug 21. 2023

마스크맨 1~2단계

마스크를 안 써도 당당했던 때가 있었지

주말 배달하는 틈틈이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마스크걸'이라는 콘텐츠를 3화까지 봤다.

아직 다 보진 못했지만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여자가 마스크를 쓰고 BJ를 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배달할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름 동네 구역 안에서는 네비 없이 착착 찾아가는 "우리 동네 배달 여포"인 나지만 아직 나도 내 얼굴이 안 팔리게 마스크를 쓰고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마스크 진화는 총 4단계였다.


1단계, 코로나 Mask 

처음 도보 배달로 이 일에 입문하고 약 3개월 동안 도보로 배달을 할 때 약 1개월 정도 내가 쓰던 마스크다. 

당당했다. 처음 1개월 동안은 배달을 갈 때 흡사 소개팅이라도 가듯 한껏 멋을 부리고 배달을 다녔다. 내가 아끼는 명품 옷과 신발, 심지어 향수까지 뿌렸다.

'아 저는 원래 이 본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주말에 잠시 마실 겸 나왔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봐주길 원했고 여자 손님들한테도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혹시나 썸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므흣한 망상도 하면서...

그러나 말 그대로 망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1개월이면 족했다. 도보에서는 2~3번만 연속으로 콜이 들어오면 시간이 타이트하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게 된다. 자연스레 땀이 나고 어느 순간 잔뜩 힘을 준 머리는 가라앉아 버리고 내 얼굴과 몸에서는 육수를 뿜어내게 된다.

옷이 땀으로 샤워를 하게 될 때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므흣한 상상조차 대다수 배달은 비대면이기에 나를 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간혹 가게 사장님들이 알아봐 주는 게 전부였다. "주말 아르바이트 하시나 봐요?"

이 말을 들으면 내심 좋았다. 

'역시 날 알아봐 주시는군. 난 떳떳한 본업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처음 꿈꿨던 배달 망상은 거기까지였다.


2단계, 코로나+모자 Mask 

첫 1개월 만에 나의 배달 망상이 깨지고 도보 3개월 중 남은 2개월은 1단계에 모자를 덧댄 Mask를 꼈다.

그리고 배달앱 5개를 켜면 점심 저녁 피크 시간에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콜을 나도 모르게 욕심내서 잡게 되고 그러면 우샤인볼트보단 못하지만 여기저기 뛰어다니게 된다. 늦지 않기 위해서...

선크림을 바른 얼굴과 옷들이 모두 나의 땀들로 젖어버리기에 이제는 옷도 모두 출근 때는 안 입는 막 입는 후진 옷들로만 입고 다녔다. 1단계에 비해 행색이 말이 아니게 초라해졌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처음 1개월을 겪어보니 배달 로맨스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런데 세상은 참 좁았다.

등에 배달 가방을 메고 배달 수행을 위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서 "김 과장?"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평일엔 내 이름보다도 더 많이 불리는 그 김 과장이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속한 부문의 부문장, 소위 전무님이었다.

"엇... 전무님..."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내가 주말이면 배달하는 것을 회사 사람들은 모른다.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회사 전무님을 만난 것이다.

"김 과장, 이 동네 사나 봐?"

"넵... 전무님도... 이 동네 사세요?"

"어, 우리 집은 저기야. 가깝네 우리 집이랑. 주말에 자주 마주치겠네. 근데 운동 좋아한다더니 운동 가나 보네. 큰 백팩 메고 있는 거보니 헬스 용품들도 챙겨 다니나 보네"

"네? 아... 넵 운동 가는 중입니다."

"그래, 동네 주민인데 앞으로 길에서 자주 보겠는데 인사 또 하자고!" 그렇게 전무님은 신호등이 바뀌자 건너갔다.

'또 보자고? 들키기 싫은데... 동네 주민이면 앞으로 배달하다가 자주 마주치거나 심지어 전무님 집 배달 꽂히는 거 아니야?'

'회사 사람들이 내가 배달한다고 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열심히 산다? 왜 굳이 배달을? 빚졌나?'

이런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스쳤고 이 자체가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지금까지는 얼굴 가릴 목적으로 마스크와 모자를 덧댄 것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이 날 이후로 얼굴을 가려야겠다는 필요성을 크게 느꼈다. 전무님을 길에서 마주치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일찍 결혼한 내 동기도 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무조건 얼굴 가려야겠구나.

이때부터 배달 픽업을 위해 동네 식당에 가면 고개를 푹 숙인 채 곁눈질로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있나 없나를 우선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배달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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