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있으면서 아쉬운 건 아들이 하는 모든 공연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공연을 하는지에 대한 여부도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일이니 지역축제에서 아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졸업을 앞두고 아들은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자세한 것은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알려주지 않아 알려줄 때까지 기다린 경우도 있다. 행여 연습에 방해가 되고 기대감으로 마음에 부담을 줄까 봐 모른 척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거의 1년 만에 아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퇴근길에 전화한 날이었다.
"아들! 바쁘지. 연습실이야?"
"네. 연습할 게 많아서 정신이 없네요."
"공연 준비에 졸업 준비 때문에 그렇지?"
"그런 셈이죠. 그런데 엄마! 나 편입도 준비할까 해요. 교수님께서 너는 졸업 후에 뚜렷한 계획이 없는 걸로 보이니 서울예대 편입시험을 보는 게 좋겠다고 하시면서 연습할 곡을 8개나 주셨어요."
"어? 서울예대 편입?"
아들의 말에 멍해졌다. 얼마 전까지 대학 진학보다 음악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새똥을 맞은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멍해지며 집으로 가는 동안 마음이 이상했다. 분명 아들이 서울예대에 가는 것은 나의 바람 중에 하나였다. 가문의 영광이라며 그곳에서 음악을 배우는 아들의 모습을 그려왔지만 원치 않던 아들의 말에 마음을 접고 있었다. 아니 안심했었다. 내년에 대학을 가는 작은 아들과 경제적으로 겹치지 않아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교수님께서 신경을 써 주신다는 것은 아이의 실력을 인정해 주시는 것이며 성장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설레기도 하고 기뻐해야 하는 소식이지만 나는 왜 차분해지는 걸까? 부모로서 해주어야 할 경제적 지원에 대해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닐 수도 있으니 불안했던 것일까? 아들이 편입시험을 본다고 무조건 합격하는 것도 아닌데 웬 걱정이냐 싶겠지만 아들이 시험에서 불합격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반대로 아들이 편입에 성공하면 기분은 좋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따른다.
두 아들의 대학 뒷바라지를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게다가 서울예대라니. 한마디로 두려웠다.
그렇게 생각 많던 전날을 보내고 다음 날을 맞이하니 마음이 깨끗해졌다.오지도 않은 상황에 미리 겁먹을 필요가없고 이쪽저쪽생각해 봐도 대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모르겠다. 그냥 가자. 때가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나중에 생각하고 응원이나 하자.'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새똥 맞은 그날의 기분은 잊히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의 편입소식을 듣고도 기뻐하기보다 침울했던 나. 두 손을 마주 잡고 '아~'라는 탄식과 몸과 무릎이 굽혀지는 실망의 리액션이 저절로 나오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을 가겠다고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대학 진학을 선택했던 20대의 내가 겹쳐졌다. 그때 부모님 심정이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떨어져도 고민 붙어도 고민일 자식의 대학진학은그 당시부모님의멍한 마음을 입어 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