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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Oct 28. 2024

손이 시리다. 이 아들놈아. (코인 빨래방에서)

코인 빨래방의 추억

큰아들 자취방으로 향했다. PC방비를 아끼려 집에 있는 컴퓨터를 가져가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작은 아들과 대전으로 출발했다. 어차피 다음날 있을 공연 때문에 아들은 거제를 와야 지만 아들을 모시러 간다는 핑계로 자취방 상태를 보고 싶었다. 


오후 2시 30분에 도착한 아들의 자취방. 문을 니 밖에 있어야 할 빈 상자들이 나를 향해 깍꿍하고 인사한다. 

이쿠야. 문을 열자마자 허리와 무릎이 굽어지며 방바닥을 기어 다니게 되니 눈에 보이는 건 치워야 할 것들 투성이었다. 다행히 휴게소에서 든든한 점심을 먹었기에 몸은 가뿐했다.


화장실 청소를 남겨두고 방을 스캔하니 이불이 걸렸다. 깨끗한 잠자리를 위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빨아야 할 이불일 텐데 이불의 청결상태가 의심스러웠다. 당장 빨래방으로 달려가야 했다.


처음 가보는 코인 빨래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담한 매장 왼편으로 늘어선 세탁기 3. 번쩍거리는 은빛 세탁조가 깊고 넓은 것이 많은 양의 빨래도 한 번에 소화할 수 있는 크기였다. 뒤로도 보이는 건조기 4대, 운동화 관련 세탁기 2대는 여기가 빨래방이라는 것을 실하게 알려줬다. 빨랫감을 담아갈 수 있는 바퀴형 트레이와 큰 식탁판 옆으로 보이는 의자까지 크진 않았지만 깔끔한 느낌의 빨래방이었다.


빨래시간 30분, 건조시간 30분. 총 1시간이면 빨래와 건조가 가능했다. 빨래 5,000원, 건조 4,500원 총 9,500원이면 옷과 이불이 깨끗해지고 뽀송해진다는 거였다. 특히 건조를 포함한 빨래시간이 1시간이라니. 시간이 절약되고 다른 일도 볼 수 있어 편리했다.  정도면 집에 있는 이불빨래도 여기서 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신문물을 접하고 자취방 화장실청소까지 마친 뒤 침대에 쉬고 있을 때였다. 아들의 고양이 인형과 눈을 마주하니 이번에는 인형눈알이 나를 향해 깍꿍 했다. 아들이 고양이 인형을 씻겨줄리는 없었을 테고 이 녀석들의 묵은 때는 나에게 인사를 하니 깨끗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코인 빨래방을 가기로 했다. 운전을 위한 쪽잠을 방해하지 않으려 두 아들은 PC방에 간 상태라 별 수 없었다. 낮에 코인 빨래방에서 빨래를 돌려봤기 때문에 혼자서도 자신 있었다. 


코인 빨래방에서 인형들을 세탁기에 넣고 기다리는 30분 동안 주변을 산책했다. 기분 좋게 산책을 마치고 코인 빨래방의 세탁기를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어수선한 상태의 세탁물들이 나에게 깍꿍하고 있었다. 

아뿔싸. 인형솜이 터진 것이다. 당시 코인 빨래방에는 나 외에도 외국인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터진 솜으로 엉망이 된 인형들이 메롱하고 있었지만 우선 세탁기와 빨랫감부터 정리해야 했다. 나를 쳐다보는 외국인의 시선이 느껴지니 부끄러웠다.


세탁기 안을 파고드는 손놀림과 바닥의 빗자루질로 잽싸게 치운 뒤 건조기에 빨랫감을 넣었다. 털어도 털어도 나오는 인형솜과 수건에 묻은 솜까지 아주 엉망이었다. 솜이 촘촘히 박혀 회복할 수 없는 수건은 미련 없이 버리고 건조기 문을 닫고 동전을 넣었다. 여전히 나를 주시하는 외국인들의 시선을 느끼며 건조기의 시작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엉뚱한 건조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뿔싸. 돈을 잘 못 넣은 것이다. 혼자 코인 빨래방에 온 게 잘못된 것이었을까. 어째 이런 일이. 오늘은 빨래로 부끄러운 날이 버렸.


중간에 문을 열기도 애매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동전을 바꿔 다시 돌렸다. 고양이 인형 세탁과 건조로만 14,000원을 썼고 두대의 건조기를 돌리고 있는 셈이었으니 오늘 빨래비용만도 3만 원(교환 후 남은 동전은 아들에게 줬다)가까웠다.


이 사실을 아들에게 카톡으로 알렸다. 바보같이 빈 건조기를 돌리고 있고 너의 인형이 속살을 내 보였으니 그 녀석들은 버리자고. 그랬더니 안된다고 부탁하지도 않은 일로 쓸데없는 고생을 하고 있다며 움직이지 말고 빨리 라고 다그쳤다. 그러면서 터져버린 고양이 인형은 꼭 챙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말하지 않고 인형을 세탁한 점이 미안하여 일하고도 사과를 하는 상황이 일어났지만 억울했다. 하루종일 하녀모드로 일하고 먹는 것도 지들 좋아하는 햄버거로 때웠는데 말이다.


일을 두고 쉴 수 없는 성격에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깨끗하게 해 주고 싶었다. 조그만 자취방이 내 집보다 청소할 게 많다는 것도 의외였다. 구석구석 쓸고 닦고 물건을 재배치하며 화장실 청소까지. 아들의 자취방에 온 뒤 쉴 새 없이 움직였는데 고양이 인형의 터져버린 솜이 나의 수고를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들에게 인정받으려 했던 청소가 아니라 자발적인 수고였으니 깨끗해진 자취방에 만족하는 수밖에.


그래도 날씨가 선선해서 움직이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움직여도 피곤하지 않아 끊김 없이 움직였다. 물론 눈이 시리고 충혈되기는 했지만 괜찮았다. 아직도 내 손이 필요한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또 다른 활력이었다. 녀석들에게 아직도 엄마의 손길은 필요하니 건강관리 잘하고 살야겠다는 다짐까지 했는데. 우째 마무리가 아쉽다.


아들이 부탁한 터져버린 고양이 인형과 다른 인형들도 차에 넣었다. 향긋한 냄새가 가득한 차에서 자취방으로 출발하기 전 아들에게 잔소리 카톡을 날렸다. 나의 수고를 알리고 네 어미의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손이 시리다. 이 아들놈아. 집 좀 치우고 살아라."


"손이 아리다. 이 아들놈아. 정리 좀 하고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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