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 블로그 이웃이 된 과 후배와 통화하던 중에 그녀가 그랬다. "오빠 글 읽어봤는데 좀 잘 쓰는 것 같음!!" 대충 이런 식이었다. 함부로 칭찬을 거부하지 말자는 이유 모를 결심 때문에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아마 "지금의 나에게 엄청난 칭찬인데?"라는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 그러나 글을 잘 쓴다는, 무언가를 잘 한다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녀가 글을 접하고 읽고 쓰고 바라보는 모든 시선을 폄하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어쩌면 단순히 많은 글과 만나지 못해서 편협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닐까? 세상에 산재한 이상한 글들 사이에서 나의 글이 가지는 위치는 과연 어디일지 궁금하다.
정의
- 우리는 수많은 분야에서 '잘하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은 기본 소주 2병부터 시작할 테고, 많이 먹는다는 것은 1인 1닭은 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유독 예술은 그런 기준이 천차만별인 것 같다. 평가 기준을 도무지 알기 힘든 그림과 글과 노래가 있다. 모두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이지 않을까 싶다.
- 우리는 수많은 예술을 품평한다. 그들의 최종적인 목표가 예술을 창작하는 것인지 예술을 평가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며 눈과 귀와 혀가 민감해지며 우리의 수준 역시 높아진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너무나 많은 표본을 쌓아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펜을 쥐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며 로직과 런치패드를 두드리며 지금껏 사용되지 않은(그런 것 따위는 이제 없지만) 음계를 자아내려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주관
- 그러나 세상에 쌓이는 데이터의 총량은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시야가 자연스레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린 여전히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우리의 데이터는 너무나 주관적이기 때문에 결국 어느 누구도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자격이 없다. 예술에 틀린 것이 없고 다른 것만 있을 뿐이라면, 예술에 정답과 오답이 없이 질문만 있을 뿐이라면 과연 질문에 답하고 답을 평가하고 평가를 평가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 만약 철수가 영희가 쓴 글에 공감 버튼을 누른다면 그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특정한 나이에 특정한 옷을 입고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기분을 가진 상태로 읽었기 때문에 그 글이 공감을 자아낸 것이다. 모든 평가의 대상은 두서없는 주관이 점철되어 만들어진 특별한 순간을 세공한 보석이다. 우리는 보석 주위를 돌며 턱을 괴고 팔짱을 낀 채 품평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당신의 얼굴이나 옷차림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당신의 말버릇과 웃을 때 나타나는 주름, 걸어 다니는 걸음걸이와 피곤에 찌든 코골이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성은이 망극한 일이다. 취향이란 단어를 붙이는 순간 모든 것이 아름다워진다.
- 후배의 칭찬을 '책이나 글을 별로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하는 칭찬'으로 꼬아서 듣고 싶지는 않다. 다행히 그녀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영화를 찍으며 각본을 쓰는 중이다. 이 정도면 그녀의 데이터가 충분하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취향에 속한 덕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만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다. 이번 칭찬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나의 자존감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