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 당신이 글을 작성할 때 고려하는 것들의 목록을 리스트업하면 과연 어떤 항목이 나의 눈을 끌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글을 쓸 때 난이도를 따로 상정하는 편은 아니다. 말하자면 더 쉽게 혹은 더 어렵게 읽히기를 바라면서 활자를 뱉어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두서없이 뱉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사용하는 단어와 쉼표와 따옴표는 나의 입에서, 그리고 나의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들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진실되고자 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페르소나를 차마 만들 줄을 모르는 미련함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나라는 사람의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생각보다 글을 접할 기회가 잦다. 작가와 번역가와 편집자와 그 외 수많은 이해관계에 엮인 다양한 사람들의 자아와 주관이 거쳐간 글은 그래도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출간하다니, 종이가 아깝다.'라고 느끼는 것은 조금은 오만한 판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가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있는 저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을 두러싼 수많은 산업 종사자들의 노력이 한꺼번에 물거품이 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을 테다. 아니면 한 번에 그런 부류들을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모아 버리듯 손쉽게 처리할 수 있어 편할 수도 있다.
특성
- 글에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있다면 쉬운 글과 어려운 글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려운 글이 싫다. 미적분 공식이나 인지심리학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내용이 아닌 어려운 글로 내용을 포장하고 있는 조악한 글이 싫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도 싫어진다. 어떤 화가는 누구나 한눈에 봐도 이해하기 쉬운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음악가는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음악을 작곡한다. 그러나 어떤 작가는 국어사전을 샅샅이 뒤져서 나온 '일반 대중이 죽을 때까지 접하지 못할 수도 있는'단어들을 굳이 일반 대중들의 눈앞에 가져와서 자랑하듯이 윤문한다. 나는 그런 글이 싫다.
- 짧은 글이 긴 글보다 더 좋다고들 한다. 뛰어나다거나 세련되다거나 멋지다는 것이 아닌 '좋다'이다. 다른 어떤 수식어도 좋은 것보다는 좋을 수 없다. 하지만 뇌를 비우고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들기다 보면 어느새 두 줄이 넘어가는 문장을 발견하곤 한다. 그렇다고 지울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잠깐, 그러니까 지금까지 글을 못쓰거나 잘 쓰거나 짧게 쓰거나 길게 쓰거나 쉽게 쓰거나 어렵게 쓴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까. 옷장에 있는 옷의 색이 모두 무채색이라 항상 어두컴컴한 분위기밖에 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인 걸까.
선택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선택의 연장선이다. 본능적으로, 그러니까 태어나서 처음 기역과 니은을 배우고 썼을 무렵부터 아마 기이역 혹은 니이은이라고 읊었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단어를 지양하려고 노력하지만 문장의 호흡이 길어지거나 왠지 모르게 문단의 볼륨을 일정하게 맞추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욕망이 아니라 운명이고 운명이 아니라 선택일 것이다. 게임에서는 게임머니를 지불하면 직업을 바꿀 수도 있던데, 말버릇이나 걸음걸이처럼 문체 역시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바꾸고 싶지 않다.
책임
- 선택하는 사람은 선택 뒤에 딸려오는 모든 부수적인 작업을 선물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임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책임질 것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과연 나의 짐을 정리할 사람은 누구일까. 아들의 빈자리를 딸이 메꿀 수 있을까. 내가 맡은 원고를 이어받아 편집해서 책으로 출간할 사람은? 내가 남긴 글은 과연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채 인터넷 세상을 부유할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쓰는 글에 나는 떳떳할 수 있을까. 지금 쓰는 문장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