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밥도 맛있었고, 비 오는 날의 구름이 드리운 몽환적인 산책길도 새로웠어요
덥지도 않았고 아이고 이렇게 감자랑 호박까지 선물로 받고 정말 좋다
10년 지기 직장동료들과 주말에 그렇게 우중 산책을 마치고 헤어진 뒤 집으로 가려고 차를 돌리는데 차에 기름이 없다고 경고등이 징징거린다.
누가 그랬다.
경고들이 울려도 50킬로는 더 갈 수 있다고
내일 새벽에 교회를 다녀 올 일 말고는 출근 전까지는 차를 쓸 일이 없기에 아침에 좀 더 서둘러 나간다면 출근길 주유를 해도 괜찮을 듯했다.
놀고 온 거라 피곤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집에 빨리 가서 따뜻한 미온수로 샤워 후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들어 누워
탱자탱자 오늘의 수다를 복기하고 싶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우중충했다.
장마철이니 늘 꿉꿉한 날들의 연속이다.
비가 오면 우울도가 평상시 보다 높다고 하니
오늘은 빨간색 카디건으로 눈에 띄게 화사하고 싶었다.
지나친 센치멘탈은 최소한 오늘 같은 월요일은 아니고 싶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호기롭게 1~2분 워밍업을 했다.
여름이라도 약간의 워밍업은 차의 컨디션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걸 들은 뒤부터 그랬던 거 같다.
근대 희한하게 조금 불안해졌다.
혹시...
주유소까지 가다가 차가 멈춘다면 어쩌지??
순식간에 뒷목부터 등까지 축축해졌다.
주유소에 도착하자마자 주유를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에 미리 카드도 꺼내두고 매일 무심히 지나쳤던 주유소 위치를 기억해 내느라 눈을 몇 번 올렸다 내렸다 치켜떴다 굴렸다를 반복했다.
비가 줄기차게도 내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10분 정도 살짝 늦게 나왔다. 아 이러면 계획했던 시간에서 조금 틀어지는데...
주유소에 들어가기 위해 3차선 도로로 빠졌다.
그
때
였
다..
차가 갑자기 부릉부릉 두세 번 호들갑스럽게 떨더니
아...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
아... 안돼!!
오 마이갓!!
사실 차가 이런 이유로 멈춰 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 고속도로에서도 그랬다.
그때도 코앞에 주유소가 있었다.
순간 핸들을 잡고 있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비상등을 켰다.
나를 따르던 뒷 차들이 빵빵 몇 번의 클랙슨을 울리더니 이내 차가 멈춰 버린 걸 알고는 알아서들 나를 피해 갔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며칠 전,
자동차 보험 갱신을 앞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도 받지 않았던
그래서 익숙해져 버렸던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난 교통체증의 주범이 되어 버렸다.
화사하려고 입고 나온 카디건 색 마냥 얼굴이 달아올랐다.
by 한국도로공사
갑자기 고속도로에 걸려있던
<비트밖스>를 생각해 냈다.
비상등 켜고
트렁크 열고
밖으로 대피
스마트폰 신고
운전하면서 유심 있게 보며 눈도장 찍어 두었던 내용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왔다.
비상등을 켜고 트렁크 열고 밖으로 나온 나는 우산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곧 울 것처럼
아이고 이 민폐를 어찌할꼬...
나의 부주의로 인해 누구는 직장에 늦었을 거고, 누구는 중요한 약속이 펑크 났을 수도 있고,
누구는 기차를 놓쳤을 수도 있었겠다.
눈에 띄는 카디건을 벗어던지고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었다.
남편이 꾸역꾸역 차에 넣어둔 큰 우산이 나의 얼굴을 가려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제 동료들과 산책 가기 전 주유를 했더라면
집에 들어가기 전 좀 더 예민하게 기름을 체크했더라면
주유 경고등 소릴 좀 더 빨리 들었다면
안일하게 설마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비 오는 날 월요일 출근길의 엥꼬
다음부터는 꼭! 경고등 울리면 바로 주유하기!!
그리고 비 오는 날은 빨간 옷 입지 않기(주유했으면 입을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