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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Sep 17. 2024

별다방 커피 들고 공원산책, 안될까?

점심식사 시간이 전쟁인 사람들-보육교사

평일 하루,

교직원 워크숍으로 온종일 시간을 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하루는 고사하고 채 20명도 안 되는 모든 교직원이 함께 밥 한 끼 하기도 쉽지 않다.

어린이집은 일 년 중 빨간 날(휴일로 지정된 어린이집은 휴일도 근무하니 사실 그것도 보장되지 않는다.)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휴원하는 날이 없다. 




젊을 땐 그것이 당연한 줄로 알고 살았지만 이 업을 30년을 하고나니 아닌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웰까? 

나이가 들어 이젠 간이 배 밖으로 나온건가?

큰 조직인 '회사'라는 어머무시(?)한 생활을 경험해 보지 않음으로 인한 무지함에서 오는 건 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무식함으로 당당하고 용감하게!!




그래도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집 보육교직원은 무슨 AI도 아니고, 1년에 단 1회만이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과 평일에 밥 한 끼 먹을 수 없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난번 운영했던 어린이집은 야간연장반과 휴일보육이 지정되어 평일 야간은 물론 휴일도 운영한다.

보육수요가 있다면 토요일은 물론 때때로 일요일도, 공휴일도, 근로자의 날도 제깍제깍 토 달지 않고 운영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일 할 직장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더욱이 어린이집 운영 취지(부모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도움)에 따라 맞벌이 부모를 위한 보육서비스는 중요하다는 나의 마인드와도 똑 닮았기에 그 당시만 해도 이해가 안 될 일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우린 코로나를 겪었다.

코로나 전, 대부분의 음식점은 9시 넘어서까지 운영했으며 늦은 저녁까지는 물론 심지어 24시간 운영하는 음식점이 즐비했다. 늦게까지 밥을 먹어도 눈치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8시만 지나도 하나둘 함께 식사하던 옆 테이블 팀들이 자리를 뜬다. 

그러면 덩달아 마음이 분주해지며 서두르게 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이집은 야간연장에 휴일보육을 하며 근로자이나 근로자의 날 쉴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윗사람들은 우리가 철인인 줄 아는 게 확실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휴일 근무를 하는 건 아니다. 

당직 근무로 순서에 따라 진행되니까 


그러나 원장인 경우 늘 불안하다. 

출근을 안 해도 불안하고 그 모든 일에 다 관여하자니 피곤하다. 

대부분의 원장은 스스로를 성인 ADHD라 부른다. 

너무 할게 많다보니 이 말하다 저 말하다, 이 생각하다 저 생각한다며 스스로를 그렇게 명명했다.

그게 원장의 숙명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숙명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식당도 문 닫는 시간을 당기고, 브레이크 타임을 당당히 요구하는 코로나 이후의 삶을 사는 지금, 

어린이집은 늘 그래왔듯이 운영 시간을 늘려간다는 건 뭔가 좀 아이러니하다. 

그러면서 늘 친절하여야 하고, 

키즈노트에 사진은 전문가 뺨치는 인물 사진을 올려야 하고

아이들에게 훈육을 할라치면 아동학대라는 무시무시한 프레임에 갇히게 되니 뭔가 코너에 몰린 느낌이 든다.

여기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유보통합이라는 정책도 불안함에 한몫한다.

결과적으로 직업 만족도는 점점 바닥을 친다.




어린이집의 점심시간은 제일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그 이야기는 제일 바쁜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교직원의 식사시간은 대부분 5분을 넘기지 않는다. 하루 중 제일 소중한 한 끼를 마치 살기 위해 먹는 사람들처럼... 그래서일까 위장장애를 겪는 사람이 많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공원으로 현장학습을 나갔던 선생님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원장님, 
우리도 오전일 하고 점심시간에 "뭐 먹을까?" 고민도 해보고,
별다방 커피 한잔 들고 공원 산책 하면 안 될까요? 


사원증 목에 걸고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들고, 공원을 다니며 소중한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봤다고 했다. 돗자리를 펴고 현장학습후 점심식사하는 아이들을 보고 귀엽고 예쁘다며 동물원 원숭이 보듯 바라보는 회사원보며 김밥을 욱여넣는 자신의 모습이 씁쓸했다고 말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모든 교직원과 함께 밥 한 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현장학습날 교사의 김밥 얘기까지 하게 됐다.


그렇지만 늘 그런 씁쓸함만 있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일을 놓을 수가 없는 많은 이유가 있다.

매일매일 오전간식, 점심식사 그리고 오후간식까지 건강한 먹거리가 제공되는 직업이라는 것

추울 땐 따스한 온기가 있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라도 빵빵한 에어컨이 있는 공간에서 시원하고 쾌적한 근무를 보장받는 다는 것

무엇보다 행복한 에너지가 쉴 새 없이 품어져 나오는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 

아이들과의 생활은 생각 이상으로 참 재밌다.


더욱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이 바로 일이이라는 이유이다.




그래도 한 번쯤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우리 선생님들 점심시간에 뭘 먹을까 고민도 해보고 별다방 가서 시원한 아아 한잔하고 공원 한 바퀴 돌 수 있는 여유 가져보기!

잘 계획해 보면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니... 





아마도 이 더위에 잠깐 바깥 외출 후 들어오며 

"어린이집이 제일 시원하고 좋아요"라는 소릴 하지는 않을까? 상상해 보니 그 또한 재밌다.


우린 못해본 일은 왜 그렇게 더 대단해 보이고 하고 싶어 목매는지 

참 궁금하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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