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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Sep 19. 2024

삶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

연명의료 결정제도(사진by국민건강보험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올해 추석은 계획만 잘한다면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혼자만의 긴 여행이 가능할 것 같았다.
엄마에게 미리 다니러 가겠다고 하고 평일 휴가를 냈다.



사실 엄마의 호출이 있었다.


웬만하면 평일엔 부르시지 않는데 전화기 액정 깨졌단다. 이상했다. 아예 핸드폰을 바꿔야 할지, 액정만 갈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신다. 일단 갈 테니 그때 결정하자고 말씀드리고 이틀뒤 쓩하고 갔다. 우리도 핸드폰이 안되면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기에...




날씨가 더워서일까?


엄마의 맛깔난 각종 나물 반찬을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솔직히 이 폭염에 건조한 나물을 불려서 삶고, 지지고 볶고 무치기를 반복할 엄마를 생각하니 소름 끼치게 싫었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자식이 최소한 나는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당당하게 엄마집 근처 샤부샤부집으로 갔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니 채소가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채소의 각종 맛을 느끼기에 샤부샤부가 내겐 제격이다.

육수에 배추며 버섯등을 넣고 적당히 한숨 죽인 채소를 소스에 촉촉이 적셔 먹으면 이게 천국인가? 싶다.

샤부샤부하나로 우린 한마음이 되어 함께 나온 월남쌈까지 말끔히 클리어하고 적당한 배부름을 뒤로하고 일어섰다.




핸드폰 A/S센터를 갔더니, 아직 쓸만하니 바꿀 필요는 없어보이고 액정만 교체 해될거 같다고 한다. 6만 5천 원의 비용이 예상된다며 고칠 때까지 잠깐 기다려 달란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S사의 핸드폰 서비스센터는 참 쾌적하다.


  



잠시 앉아 있는데 엄마가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여기 바로 근처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있는데 거기 가서 신청할 게 있는데 지금 갔다 오면 안 될까?



국민건강보험은 채 5분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연명의료 결정제도


엄마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신청하고자 했던 것이 연명의료 결정제도였다.


60대는 족히 넘어 보이는 나이 지긋한 상담사분이 우리를 따듯하게 맞아 주셨다. 엄마는 연명의료 제도에 대해 이미 공부를 충분히 하고 오신 듯했다.


집에 신청서를 써 는데 알고보니 직접 신청하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생애말기 연명의료중단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혀두면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여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돕는 법






엄마는 60이 넘은 해 장기기증을 하셨다.


엄마의 선택은 항상 옳았기에 자식의 허락이 있어야만 한다는 엄마의 조심스런 설득에 우리 삼 남매는 무조건 yes를 했던 기억이 났다.


2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이제야 오늘 나를 부른 이유가 명확하게 납득이 되었다.


그까짓 핸드폰 A/S가 아닌 것을...



삶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
삶의 마지막을 내가 결정한다는 것







상담사분의 마지막 말씀이 나의 귀에 한동안 맴돌았다.



따님도 신청하세요
요새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대잖아요
18살부터 가능하니 한번 생각하고 오세요




엄마의 큰 그림을


다시 느끼고

그리고

보고 올라가는 데...


오늘따라 하늘은 왜 그리 맑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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