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비된화살 Nov 02. 2023

수제비와 주꾸미

가성비와 가심비가 좋은 사람

늦은 저녁,


퇴근을 하려는데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는 아들이 온단다. 미리 얘기도 없었기에 집에 마땅히 차려줄 반찬도 없어 조바심이 났다.


어린이집 근처로 온 아들에게 가는 길에 아예 밥을 먹고 들어가자고 하니 흔쾌히 좋다고 한다.




마침 큰 마트 옆에 ‘수제와 주꾸미 덮밥’을 하는 집이 보였다.


요즘 식당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시스템이라도 좌식이 아닌 입식 테이블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 이곳도 얼마 전 왔을 땐 모두 좌식 테이블이었는데... 이젠 모두 입식이다.


일자릴 찾는 분들이 식당을 선택할 때 좌식보다는 입식테이블을 선호하여 그 기준으로 일터를 선택한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 들은 터였다. ‘아~ 그래서 이 식당도 바꿨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일할 때 허리에 무리가 덜 가서 그런 것 같다고 살짝 알려주었었다.



    

아들은 주꾸미 1인분을, 난 수제비 1인분을 주문했다.


다소 투박한 옹기 같은 손바닥 만한 볼에 보리밥과 야채가 소담하게 담겨 나왔다. 수제비 먹기 전 먹는 음식인 듯했다. 꽁보리 비빔밥과 열무김치, 무나물, 콩나물을 넣고 빨간색 튜브에 담긴 고추장을 한 바퀴 쓱 돌린 후 비벼 한입 먹으니 까슬까슬한 보리밥의 식감과 고소한 참기름 향이 식욕을 돋웠다.

 

이어 큰 사발에 주꾸미 한 접시가 나왔다. 아들은 혹시 2인분 시켰냐며 묻는다. 양이 꽤 많아서다.

이어 움푹한 옹기그릇에 따뜻한 수제비와 낚지 한 마리가 떡하니 있는 음식이 나왔다.


먼저 수제비와 국물을 앞 접시에 떠서 후루룩 먹으니 추위로 잔뜩 움츠려 들었던 몸이 스르르 녹는다.

아들은 또  2인분 시켰냐며 묻는다.


“아니~~ 일 인분 시켰는데?”  혹시나 몰라 주인아주머니가 두고 가신 계산서를 보니 1인분이 분명히 맞다.

가격도 착하기도 하지...  모두가 24,000원이다. 갑자기 울컥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이 너무 고맙다고 고해성사하듯 아들에게 읊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뭔 소리지?’ 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만약에 엄마한테 24,000원을 주면서 주꾸미 덮밥이랑 낙지 한 마리 들어가 있는 수제비 먹고 싶은데 지금 당장 10분 안에 만들어 달라고 하면 죽어도 만들 수 없다고, 이렇게 빨리, 이렇게 싸게, 이렇게 푸짐하게 그것도 두 가지 메뉴를 한꺼번에 주니 감사하다고...

  



워낙 말수도 적고 표현도 하지 않는 아들은 조용히 듣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분들은 참 훌륭한 분들이야”     


요사이 너무나 풍요롭고 풍족함 속에 살고 있다.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내가 사 먹는 것’이라는

당당한 소비를 말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 돈을 주고 이런 음식을 만들라고 하면 난 정말이지 자신이 없다.


그리고 아마도 한숨이 나오고 머리가 아프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고, 그 분야의 달인이기에 가능하겠지만 난 그들의 노동력이 너무나 숭고하다생각했다.

    

나의 일도 누군가에겐 너무나 숭고하고 그리고 감사하게 여겨진다면 그 또한 행복할 거 같다. 그러려면 아이들은 재미있어하고 학부모는 안심하며 교사들은 즐겁게 일하는 환경을 제공하는 가성비 좋은 원장이 되어야겠지


그런데 오늘은 조금 욕심을 부리고 싶다. 가성비를 넘어서 *가심비가 좋은 원장으로!

  

*가격대비하여 심리적 비율이 적절할 때 쓰는 말

 

가격대비하여 심리적으로 만족이 된다는 것, 그 정도면 적절하다고 인정받는 것 그렇게 우리 학부모에게 교사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지지받는다면 정말 행복하겠다.


나의 직업의식이 오늘 수제비와 주꾸미 식당 사장님으로 인해 리셋되었다.


“사장님! 오늘 가심비 좋은 저녁식사 잘 먹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외로우면 사고 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