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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화살 Sep 30. 2023

아들에게 지원하던 모든 것을 끊기로 했다.

마음이 아리고 아플지라도 [사진 by준비된 화살]


아마도

3년 전쯤이었던 거 같다.

아들에게 선전 포고했다.

스물여덟이 되면 너에게 지원하던 모든 것을 끊겠다!


그 당시 아들은 군대 제대 후 복학하여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혹시나 유학을 가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으니 유학 생각은 없으나 단기간 미국에 다녀올 생각은 있고, 대학원 진학 계획은 없지만 여러 가지 배워보고 싶은 게 많다는 이야기도 조심스레 했다.(일단, 유학도 대학원도 갈 생각이 없다는 말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너무한 에미인 건가?)


그때, 미세하게 흔들리는 아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아! 엄마가 언제까지 나를 뒷바라지해 줄 수 있을까?

대학 졸업은 다가오는데 과연 언제까지 '비빌 언덕'이 되어 줄까?

유일한 돈줄인 엄마의 생각을 불안히 살피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개그우먼 이성미 씨를 좋아한다.

그녀의 큰아들 양육 스토리는 어렵지 않게 여러 매체(나는 주로 유튜브에서 본다.)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녀는 말한다. 성인인 자녀에게 아무런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고... 나는 너무 멋지다 못해 대단해 보였다. 부모로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바로 그 부분 아닐까? 




아래와 같은 세부류의 부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단, 부모 모두는 자녀를 사랑하고 그들의 미래가 잘되길 바라며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준생인 자녀를 둔 경우라고 전제한다.)


1. 돈이 없다. 따라서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못한다.
2. 돈이 없다. 하지만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3. 돈이 있다, 하지만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향한 경제적인 지원에 유독 약하다.


1번처럼 마음은 있지만 지원해 줄 여력이 없는 경우의 부모는 피눈물이 난다. 조금만 지원을 해준다면 훨씬 유능한 사회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형편과 사정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그러나 과연 자녀는 나쁜 결과만 얻게 될까?


2번의 경우, 없는 돈을 모아 모아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부모의 뒷바라지로 사회생활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어느 정도 지원 할 것인가 명확히  필요가 있다.(정확히 하지 않으면 *캥거루족을 양산하기 십상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되지 않아 부모님과 여전히 동거하는 청년들을 일컫는 말


3번의 경우, 돈은 있는데 그의 진정한 독립, 자립을 위해 지원을 하지 않는 부모이다. 아이가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수백 번, 수천번 돈을 쥐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에 빠질 수 있다. 


부모란 못 줘도, 안 줘도 모두 가슴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중에 진정 고수 부모는 3번, 안 주는 부모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줄 수 있음에도 자녀의 독립을 위해 절제한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

 



생일날

아들에게 편지를 받았다.


생일은 항상 추석 전후일 때가 많았다.

암튼 추석이 다가오면 더불어 생일도 따라왔다는 생각이 드는 게 더 정확하다.

가족이 모인덕에 축하는 받지만 왠지 진심의 축하가 아닌, 추석에 밀리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번 추석은 조금 특별했다.


사랑하는 엄마, 생일축하드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 얼마나 많은 힘든 길을 걸어왔는지 아니까 잘 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나는 엄마가 자랑스러워 도전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멋져서 항상 친구들한테 자랑하지 ㅎㅎ



(중략)

내년에는 약속대로 금전적 도움 없이 살아볼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 열심히 기도해 줘 >


누가 그랬던가 아줌마는 제3의 성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나 엄마들은 의외로 쉽게 무너지고, 쉽게 감동받는다. [by준비된 화살 -아들에게 편지 받은 날]

 

이제 스물여덟을 앞둔 아들은 나와의 계약 기간(?)이 임박해졌음을 기억하고 그동안 독립할 수 있는 발판을 야무지게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 아들에게 적합한 독립 연령은 스물여덟이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알고 있다.

온전한 경제적 독립이 진정한 정서적 독립의 시작이란 걸





이제 아들의 원룸 월세와 학원비 지원을 졸업하고 말 거다.

나의 졸업은 곧 아들의 생 리얼 독립 입학을 의미한다.

자녀로서의 삶이 아닌 한 인격체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독립을 열렬히 응원하고 그리고 지지한다.


나는 그렇게 아들에게 지원한 모든 것을 끊기로 했다.

마음이 아리고 아플지라도!


아들은 성숙한 사회인으로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될 거다. 

그것이 성인인 아들을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존중이고 예의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진정한 독립을 꿈꾸며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청년들과 ,

자녀의 온전한 자립을 위해 

끊기를 준비하고 있는 용기 있는 부모들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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