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비된화살 Nov 02. 2023

외로우면 사고 친다.

리더도 외롭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오늘의 모임이 내키지 않았다. 내일이면 비가 온다니 아마도 낙엽이 그럭저럭 아름답게 흩날리는 경을 보기에 오늘이 적기임에도 말이다.


담임교사로 지낼 때는 이런 날 한 번쯤 나가는 게 소원이었는데 원 운영을 하고서는 외근이 생각처럼 즐겁지 않다. 격이 없는 친구와의 만남이야 어찌 거북스럽겠냐만은 한 겹 커튼을 치고 만나는 모임은 늘 부담스럽다.


남산 맛집에서 11시 30분까지 만나기로 했다. 출발 당시 분명 네비는 11시 05분 도착이라고 했건만 점점 시간이 늘어 11시 33분이라고 한다. 더 답답한 것은 그 시간 또한 보장받을 수 없을 만큼 밀리는 도로 사정이었다.


사실 늦장을 부렸다. 적어도 9시에는 출발했어야 는데 10시가 다 되어서야 톨게이트에 진입했다.  오늘따라 핸들이 무겁고 독한 감기약을 먹은 듯 머릿속은 멍했다.


결국 12시가 다 되어서 도착하는 걸로 내키지 않던 모임은 시작됐다.


달갑지 않은 모임을 뒤로하고 돌아오는길... 그래도 가을 끝자락의 단풍은 아름답다.




이 모임은 과연 어떤 모임일까?


교사 시절 원장의 외근은  즐겁게 랄라룰루 놀러 나가는 걸로 보였다. 우아한 스카프를  걸치고 똑 떨어지는 정장을 입고는 경쾌한 걸음으로 나가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점심까 밖에서 먹는 날에는 은근 신경질도 났다. (우린 매일 어린이집 밥만 먹는데 원장은 맛있는 밥도 먹고 ! 좋겠다.)


지금이야 원장실 책상 구석이 더 편하고 어린이집 밥이 기다려지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외근을 간다는 것이 한 달에 한두 번이면 적당하지 그 이상이 되면 곤욕스럽다. 사람을 만나서 의견을 듣고, 절충점을 찾고 무언가를 정하고, 계약을 하고 물건을 사고... 이런 일들은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은 즐겁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또한 일이기에. 다분히 피곤한 감정 노동일뿐이다.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외근을 나가는 게 노는 건가?

그럴 때면 이런 잣대를 대 봤다.

 

나는 이모임의 구성원들과 주말에도 만날 의향이 있는가?

나는 이모임의 구성원들과 퇴근 후 만날 만큼 돈독한가?

나는 이모임의 구성원들을 만나러 갈 때 설레는가?


만약 위 세 가지 질문에 갸우뚱하게 된다면 그건 분명 일로 만난 사이로 사업 파트너일 뿐이다. 그러니 리더의 외근은 대부분 즐거운 일, 노는 일이 아님이 확실하다.


늘 바쁘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지만 뒤돌아서면 감정노동 강도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하다.




요사이 어느 유명인의 사기 스캔들로 나라가 들썩들썩거린다.


서로 사랑을 했는지, 계획적으로 사기를 공모했는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 사건의 기조에는 '외로움'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


꽤 알려진 프로파일러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유명인들은 외롭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잘해주고, 인정해 주면 쉽게 마음이 넘어간다고 그래서 그런 직업군의 사람이 사기에 노출되기 십상이라고...




외로우면 사고 치게 된다.

원운영을 하는 리더도 때때로 외롭다. 유명인들의 외로움과는 크기나 모양이 다를 테지만!




오늘의 퍽퍽한 만남 끝에 진정한 한 사람이 그립다.


갑자기 역발상을 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꾸밈없이 바라보며 잘해주고, 인정해 주는 든든한 조력자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주면 어떨까?


바쁘게 사람을 만나고 서로 웃고 즐기는 듯해도 누구든 허전한 마음이 들기에 말이다.


두 팔 벌려 그들을 다독여 준다면 사고 치는 사람이 조금은 줄어드는 세상이  않을까? 모든 인간은 외로우니까...

 

    




작가의 이전글 조용히 오붓한 장례를 치르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