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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빛 Aug 17. 2023

구례 헌책방 그리고 사색

아이들을 보며 내안의 아이를 떠올린다...

  구례에 가끔 여행을 간다.

  고흥 초입에서 비교적 가까운데다 지리산 자락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이국적인 여행지의 느낌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최근은 두차례나 간단히 방문할 곳으로 헌책방을 들리다 보니 사장님이 알아보신다. 책 읽는 아이들이 반가우셨는지 한권씩 그냥 주기도 하신다.

  이번주에는 TV와 잡지에서 사장님이 나오기도 한걸 보니 꽤나 유명인사시다. 훗날 내 책이 나오게 된다면 꼭 선물하고픈 분이다. 책의 가치에 대해 누구보다도 소중한 마음을 갖고계신거 같아서 뵐때마다 반가운 마음이다.


   학습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지만, 간간이 동화책이나 잡지 등 다른 부류의 책도 읽기 때문에 만화도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린이 소설이나 긴 호흡의 책으로 어떻게 옮겨가게 할 수 있을지는 고민이기도 하다.

   아들은 오늘도 헌책방에서 어린이 백과사전 같은걸 집어든다. 올때마다 두권씩 사는데 시리즈를 모을판이다. 한권에 4000원. 사진이 크고 알차다.


   헌책방에서는 많이 오래된 책이나 절판된 것은 그 값이 오르기도 한다. 지난번 왔을때는 내가 좋아하는 오경아 작가님이 초창기에 쓴 영국가드닝 책을 발견해서 구매하기도 했다. 이 역시 절판된 책이고 내가 가드닝 서적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나온 것이라 나름 나에겐 귀한 발견이었다.

    

  농촌에 살다보니, 저절로 가드닝에 관심을 두게 된다.

   방법론적인 책보다는 이미지가 크게 많이 들어간 책들이 마음 편하게 다가오는데, 일반적인 평점이 낮다한들 큰 사진이 페이지 여백 없이 들어간 책들은 소장욕을 불러일으킨다.

   

   헌책방에서 만난 어떤 손님은 필름사진책을 열심히 (사장님과 옛이야기 나눠가며) 찾아 구매하고 있었다. 디지털이 줄 수 없는 깊은 그 느낌에 대하여, 요즘엔 출간되지 않는 필름사진의 발견에 대하여, 귀동냥으로 듣는데 친구얘기 듣는것 마냥 즐거웠다.

  

   나도 소싯적 PD일할때, 6mm 필름테이프로 영상을 담지 않았던가. 그만둘때쯤 디지털이 사용되기 시작했지. 편집 시간을 줄일수 있고 고생이 덜했다면 좀 더 오래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사실 키 큰 남자였다면 좀 더 유리했을 직업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태어날때부터 남자이길 바랬던 집에 태어난지라 유독 고르는 직업마다 남자였음 좋았을 일들이 많았다. 뭔지 모를 극복의 대상이 되어버렸던 걸까.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멋진 딸 될게요~!'

   라고 어버이날 편지에 썼던건 나름의 아픔이 담겨있다. 사실은  앞이야 어찌됐든지간에 끝엔 '예쁜 딸 될게요' 라고 쓰고 싶었다. 심한 차별 속에 자란건 아니지만 어떤 선택이나 노력과 상관없는 날때부터의 다름은 어린 시절의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그랬다.


   부모님이 가까이 사시고 이젠 날 조금은 의지하며 사시더라도 유년시절의 감정들이 다 사라지진 않는다. 상처가 그 사람을 더 성장시킬 수도 있지만, 나도 실수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수도 있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는 그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빽 빽 소리지르고, 투닥투닥 초딩아들과 K장녀 마냥 말싸움 할땐 화도 나지만, 왠지 첫째로 아들을 낳아서 다행인것 같다. 서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사그러든달까. 이것도 대리만족의 하나일까.

 

   시골에 살다보니 어른신들로부터 꼭 듣는 얘기가 있다.

   "딸은 꼭 있어야해."

   요양보호사를 하시며 여러 집을 방문하는 어머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아쉬워 하신다. (어머님은 아들만 둘. 우리엄마는 딸만 둘.)

     딸 있는 집에는 가보면 간식거리들도 많고, 요양보호사를 신청하는 등의 혜택도 딸들이 챙긴다고 하신다. 어르신들의 '필요없다, 됐다.'는 말은 곧이곧대로 들어선 안되는것 같은데, 아들들이 쉽사리 곧이곧대로 듣나보다.

   오냐 자식이 더한다고 귀하게 대접받은 자식이 오히려 도시에서 성공해서 부모님은 덜 찾게 되는것도 많이 본다. 시골 골짝에서 다양한 외제차도 많이 본다. 할머니들의 집은 매우 허름한데.

  할머니들은 또 이런 얘기도 하신다. '그래도 큰 일은 아들들이 해.'라며.


   각각의 역할이 있고 성향이 있고 방향이 있고 상황이 있는거겠지. 아들이고 딸이고가 뭐가 중요할까?

딸은 꼭 있어야 한다던 할머니들이 젊었을때 아들을 더 선호하셨을지 어떻게 아냐고요.


  아들이 쌀을 씻는다.

  글 쓴다고 잠깐 밖에 있었더니, 냉장고에 있는 반찬 다 꺼내놨다. 오늘도 티셔츠를 앞 뒤 돌려 입고선.

  

   크크크. 웃기다. 아까도 투닥거렸는데, 마음이 녹는다. 딸 둘이 있어서 더 행복한건 사실이지만, 아들도 섬세할 수 있다구요!


   아들 딸 편견 않고 하나든 둘이든 소중하고 예쁘게 키우려는 요즘 세상이 참 좋다.


   모두 귀한건 당연한건데, 그게 왜 어려웠을까.


아들의 상차림. 가지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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