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깊이감 때문인지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값어치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시간의 예술이 느껴졌다.
시간의 깊이감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 화려하고 멋지게 꾸며진 정원들은 많을테지만,소쇄원 속으로 걸어들어간 우리는 사진으로는 담아지지 않는다면서도 연신 촬영 버튼을 눌렀다.
우리동네에선 못봤을 매우 두꺼운 대나무, 껍질이 벗겨져 맨들한 나무속살을 드러낸 동백나무의 노련미에는 길가의 화려한 꽃들이 범접못할 멋짐이 담겨있었다.
소쇄원에 담긴 뜻과 유래는 브런치의 어느 정원 전문가 작가님의 글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깊은 지식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알고 갔더니 더 이뻐보인다.
아는만큼 보이기도 하고, 자세히 보아야 이쁜게 맞나보다.
세월이 예술로 승화중인 민간정원, 소쇄원
정갈하고 자연스러운 멋을 보여주는 소쇄원. 큰 바위와 거침없이 흐르는 물길이 주는 시원함은 소담한 소쇄원에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정자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 아쉬웠다. 여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니 떠날 시간부터 생각한 터였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꽃을 심고 계신 부모님을 모시고(목적지 밝힘도 없이 덜컥 차에 타라하고) 먼 산책길에 나선 것이었는데, 짧지만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요즘 정원에 관심을 두고 여기저기 다녀보니, 등산하는듯한 수목원 보다는 소담한 민간정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소쇄원 청둥오리
소쇄원의 집사는 청둥오리.
꺄악 소리와 함께 너무 귀엽다고 계속 난리 난리를 친건 오리가 아니라 나였다.
새를 만질수만 있다면 한번 키워볼텐데.
어릴적 길가다가 비둘기 죽은걸 많이 봤던지라 난 아직도 새를 못만진다. 깃털만 봐도 사채의 기억이 떠올라 움찔움찔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사색... 녹색갈증 vs 불빛갈증
서울이라도 어릴적 한옥집에도 살았고 지금보다 오히려 많이 걸어다녔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엔 애석하게도 죽은새를 만나기도 했지만 양쪽으로 온갖 가게들이 있어 두리번거릴 재미가 있었다.
지금 시골에 살다보니, 뭐 하나라도 사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하고, 아이들도 동네 산책할라치면 이제는 목적지없는 걷기가 흥미롭지 않은거 같다. 우리는 차를 타고 5분이라도 나가 바닷가 위(갯벌 풍경)를 걷기도 하고, 편백나무 아래를 걷기도 한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갖고 있는 아파트가 더 산책 친화적이겠단 생각이 들때도 있고, 시골에 사는것이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 외에 어떤 긍정적인 삶의 영향이 있는건지 고민이 들때도 있다. 물론 드넓은 풍경이 펼쳐지고 사방이 푸르딩딩하고, 너무하다싶은 녹음이 우거지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진 녹색갈증의 해결을 지나쳐 과하다는 배부른 소릴 하고 있다.
나에겐 회색 갈증이 있다.
원래 좋아했던 노란빛 갈증도 있다.
난 어쩔 수 없이 여기 살지만, 감사하며 살기도 하고 슬플때도 있지만, 나의 가족이 있기에 여기 머문다.
시골은 저녁이면 시커매진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밤하늘의 별은 반짝이지만, 고개를 들지않으면 밝은지 어쩐지 보이지가 않는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이 그리울때가 있는거다. 또 여름밤이면 누렸던 야외상영 영화제의 추억도 떠오르는거다. 선선한 바람결에 어울려 음악 공연도 보는 그런게 필요한거다.